장보고는 미스테리다
김경석 - 전)장보고연구회사무국장, 전)완도군번영회사무처장, 현)장보고연구회이사
우리는 장보고에 대해서 너무나 모른다.
당나라 시인 두목의 번천문집 이나 일본 고승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 가 없었다면 이 땅에 장보고는 없었을 것이다. 마치 고구려의 안시성 성주 양만춘처럼 역사서에는 전혀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고 구전으로 이름이 전해지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연출되었을 지도 모른다. 생각만해도 아찔하다
우리 역사상 수많은 영웅호걸 중에 장보고만큼 푸대접을 받은 인물이 또 있을까 싶다. 대사께서 무참히 암살당하신 후 약 300년 지나 김부식에 의해 편찬 작업이 진행된 삼국사기.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대사님의 행적에 대한 우리의 기록이 부족하여 두목의 번천문집에 수록된 장보고정년전을 그대로 인용해야만 했는지 진정 부끄럽고 안타까운 마음 그지없다. 그동안 장보고연구회 사무국장, 이사로 활동하면서 장보고 대사님의 일대기를 들여다 볼 때마다 느끼는 키워드는 바로 미스터리 그 자체였다. 출생부터 사망까지 알려진 내용보다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 너무 많다. 먼저 대사님의 서거일에 대한 기록도 우리 사료와 일본측 사료 사이에 큰 차이가 난다. 삼국사기에는 846년(문성왕8년) 봄으로, 속일본후기에는 841년 11월 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다른 기록에 의한 정황상 841년 11월이 유력하지만 단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서 논의하고자 하는 탄신일에 대한 기록은 아예 없다. 어쩔 수 없이 토론을 통해 다수의 중지를 모아 정하고자 하는 게 금번 세미나의 주목적이고 그렇게해서 정해진다면 늦었지만 너무나도 늦었지만 생일상을 내년부터 올릴 수 있게 된다면 후손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를 하게 되니 이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탄신일에 대한 저의 의견을 말씀드리고자 한다. 청해진의 설진이 828년 4월 이라고 기록된 바 현재의 양력으로 본다면 5월일 것이고 그 때를 생신월로 정하자는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렇다면 다음은 생신일이 문제다. 크게 두 가지 의견이 있는 것 같다. 장보고축제 기간인 5월 초로 정하자는 것과 완도군민의날인 5월 31일로 정하자는 의견이다.
저는 후자로 정했으면 하는 의견이다. 5월 31일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첫째는 완도군민의 날이고 둘째는 국가가 정한 바다의 날 이기도 하다. 군민의 날이므로 장보고대사님의 탄신일이라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이고 또한 바다의 날을 기념한다는 것은 바로 해상왕 장보고대사님의 탄생을 축하한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하므로 더욱 더 잘 어울릴 것이라 사료된다.
끝으로 장보고 선양사업 활성화에 대하여 한 말씀 더 드리고자 한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과 함께 핵심 사업으로 본격 추진되면서 불같이 타올랐던 장보고 선양사업이 그동안 침체의 늪에 빠져 있었다. 이제 다시 시들어가는 불씨를 활활 타오르게 해야 한다. 미완의 숙제로 남아 있는 청해진 법화사 건립 문제라든지, 장보고 대사 영정 재조명 등등 우리 군과 학계의 부단한 관심과 노력으로 조속히 완결되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