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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말씀: 시편 74:1-11]
1 하나님이여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버리시나이까 어찌하여 주께서 기르시는 양을 향하여 진노의 연기를 뿜으시나이까
2 옛적부터 얻으시고 속량하사 주의 기업의 지파로 삼으신 주의 회중을 기억하시며 주께서 계시던 시온 산도 생각하소서
3 영구히 파멸된 곳을 향하여 주의 발을 옮겨 놓으소서 원수가 성소에서 모든 악을 행하였나이다
4 주의 대적이 주의 회중 가운데에서 떠들며 자기들의 깃발을 세워 표적 으로 삼았으니
5 그들은 마치 도끼를 들어 삼림을 베는 사람 같으니이다
6 이제 그들이 도끼와 철퇴로 성소의 모든 조각품을 쳐서 부수고
7 주의 성소를 불사르며 주의 이름이 계신 곳을 더럽혀 땅에 엎었나이다
8 그들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우리가 그들을 진멸하자 하고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회당을 불살랐나이다
9 우리의 표적은 보이지 아니하며 선지자도 더 이상 없으며 이런 일이 얼마나 오랠는지 우리 중에 아는 자도 없나이다
10 하나님이여 대적이 언제까지 비방하겠으며 원수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능욕하리이까
11 주께서 어찌하여 주의 손 곧 주의 오른손을 거두시나이까 주의 품에서 손을 빼내시어 그들을 멸하소서
[말씀나눔]
우리들은 어려운 일이 연속해서 계속 일어나는 경우에 갈수록 태산이나 설상가상(雪上加霜)과 같은 말을 종종 사용하게 됩니다. 이 속담과 사자 성어와 같이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연이어 어려운 일들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그 역경의 또 다른 면은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큰일의 시작 일 수 도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 중에서 가장 큰 부를 가져다 준 대통령을 꼽으면 단연코 17대 대통령 앤드류 존슨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그가 대통령으로 재직시 소련으로부터 알래스카를 헐값에 구매하여 미국의 소유로 삼았습니다.
알래스카는 미국의 5분의 1, 남한의 17배나 되는 엄청나게 큰 땅입니다. 문제는 앤드류 존슨 대통령이 의회의 동의도 없이 당시 720만 달러(한화 약 1백억 원)에 구소련으로부터 구입했습니다.
의회가 대통령을 소환해 알래스카를 사들인 것에 대해 집중 추궁하며 공격하자 앤드류 존슨 대통령은 공동조사단을 구성해 알래스카에 탐사를 보낸 후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을 지겠다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탐사단은 모두가 아이스박스에 불과하다 폄하하는 알래스카를 탐사하면서세계에서 가장 많은 양의 석유, 순금, 백금 등 헤아릴 수 없는 지하자원과엄청난 어류, 산림 자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겉보기에는 꽁꽁 얼어붙은 얼음 덩어리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지만실제로는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천연자원을 가지고 있는 보물 창고였습니다. 모든 매스컴은 앤드류 존슨이 아이스박스가 아닌 황금박스를 거저 얻었다고 대서특필했습니다.
수많은 비난과 공격을 받으며 위기에 처했지만 침착함을 잃지 않았던앤드류 존슨은 일생 가운데 소중한 신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신조는 ‘어떤 시련이 있어도, 환경이 아무리 불리해도, 하나님 안에서 절대로 절망하지 않는다.’ 였습니다.
평생 ‘하나님 안에서 절대로 절망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살아감으로 자신은 물론 미국 역사에 길이 남을 훌륭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성도의 삶은 언제나 형통할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믿음 좋은 성도들의 삶에도 어려움은 어김없이 닥쳐옵니다.
심지어 도저히 빠져나갈 길도 찾을 수 없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한숨과 탄식뿐인 상황도 마주하게 됩니다.
내 자신이 문제 해결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며 나의 무능함으로 인해 더욱 낙심하게 됩니다. 그 누구도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고 오히려 경멸의 눈초리로 바라봅니다. 나 혼자 오롯이 고난을 이겨내야 하지만 그 끝이 언제 일지 알 수도 없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어둠의 터널을 마냥 걸어야 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의 시인도 매우 참담한 상황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고난 중에서라도 탄식에 매몰되지 않고 소망을 품을 수 있는 비결을 찾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6-8절에, 외침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성전 안에있는 기물과 회당이 화재로 소실된 내용이 기록된 것을 볼 때 B.C. 587년 바벨론의 침략 시점에 기록되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라는 측면에서 대체 할 수 없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시온을 망하지 않는다는 ‘시온불패’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그들이,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지고 예루살렘 성안이 적군으로 인해 유린당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자 하나님의 처소라 생각하였던 성전도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 충격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였을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백성들은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 내실 때 홍해를 가르시고, 요단강 강물을 벽처럼 세우신 분입니다. 당시 세계에서 제일 막강하였던 애굽의 병거와 마병들을 홍해에 수장 시키신 분입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을 대적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예루살렘이 무너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이 함락되었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그래서 ‘더 이상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는다’고 의심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이여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버리시나이까? 라고 탄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외침은 포로기 백성들이 가지고 있었던 신학적인 의문과 연결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셨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과연 우리가 지금도 하나님의 백성인가?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의 하나님인가?’라는 의문을 품었던 것입니다.
또 다른 생각은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 것인가?’ 였습니다.
대적들이 쳐 들어와서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성전을 불태우는데도 하나님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십니다.
언약궤를 옮기던 중에 수레에서 떨어지려는 언약궤에 손을 데었다가죽은 베레스 웃사(삼하 6:1-8 참조),사건과 모세의 권위에 도전했던 미리암의 문둥병 사건(민12:1-16 참조)과 같이 즉각적인 심판도 없으십니다.
오히려 대적들이 쳐 들어와서 그들의 승리의 깃발을 나부끼며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함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의 도성 시온이 무너지는데도 하나님께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들 수 있습니다.
즉, ‘혹시 이 상황이 하나님의 진노하심 때문인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어찌하여 주께서 기르시는 양을 향하여 진노의 연기를 뿜으시나이까?”라고 탄원합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저런 일들이 일어나고 이런 저런 주장들이 분분한데 하나님 뜻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방에 적군의 깃발이 나부끼지만 이러한 상황을 설명해 줄 선지자도 없고 하나님의 깃발은 더 더욱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일이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그 누구도 대답해 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없다는 것이 시인에게는 더 큰 절망을 가져다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말라버린 상황인 상황 속에서 시인은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시인의 첫 번째 간구는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하박국 선지자가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하박국3:2)라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것과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하박국 선지자는 이 일이 하나님의 징계임을 명확히 알고 있지만 시인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께 ‘주의 회중을 기억하소서’, ‘하나님이 계시던 시온 산을 생각하소서’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를 통해 주신 약속,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며 모든 열방 중에 제사장의 나라가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출 19:5-6)
시인은 마치 모세가 자신의 생명을 걸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기도를 드림과 같습니다(출32:31-33).
시인 이어서 하나님의 행동을 요구합니다.
3절에 보면, 영구히 파멸된 곳을 향하여 주의 발을 옮겨 놓으소서 원수가 성소에서 모든 악을 행하였나이다 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즉 ‘원수들이 하나님의 거처인 성소를 이렇게 파괴하였으니 영원히 폐허가 된 이곳에 주님의 발걸음을 옮겨 놓아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무너진 성전에 하나님께서 직접 오셔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온갖 패역을 일삼는 저들을 짓밟아 주십시오’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대적들은 마치 하나님이 없는 듯이 행동하며 심지어 하나님을 조롱하기까지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만나는 모든 곳을 불살라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은 처참하게 유린당하였습니다.
시인은 눈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자행되는 대적들의 악행을 보며 주께서 어찌하여 주의 손 곧 주의 오른손을 거두시나이까 주의 품에서 손을 빼내시어 그들을 멸하소서라며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 속히 그들을 심판하심으로, 대적들이 여호와 하나님만이 여호와인줄 알도록 주님 안에서 멸하여 주십시오 라고 간구합니다. 대적들이 해와 달과 광야의 신에 의해 멸망당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보아도 하나님의 심판임을 알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대적들이 들을 때 시인의 이러한 기도는 허공을 가르는 허무한 절규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시인의 부르짖음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대적들에게 멸망당하여도 아무런 관심도 없으시다.
오히려 악인의 형통을 즐거워하신다.
심지어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할 정도로 혼란스럽고 절망과 낙심이 가득한 상황에서 시인의 선택은기도였습니다.
기도가 밥을 먹여 주나? 기도하면 뾰족한 수가 생기나? 기도한다고 하나님이 들어나 주시나?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앞서는 상황에서도 시인은 기도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시인이 하나님이 버리셨다는 생각이 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모든 일을 해결 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이 있기 때문에 기도가 가능한 것입니다.
과거 선조 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주시고 보호하시며 구원해 주셨던 이스라엘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변함없이 이스라엘의 구원자이시며 통치자이심으로 이 상황에서 반드시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인이 이렇게 원하고 바라던 하나님의 심판은 70년이 지나고 현실이됩니다.비록 시인은 자신의 기도가 응답되는 것을 생전에 보지 못하였다고 할지라도 이 시인의 기도가 하나님을 일하게 하심으로 70년 뒤에 예루살렘이 회복되는 은혜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살아가는 현실에서도 시인이 경험한 것과 같이 탄식의골짜기를 걸어가야 할 순간들이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기억하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시편 23편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내 인생에서 없애 주셨기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서 하나님의임재를 경험하게 하셨음에 찬양할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길에서 탄식의 골짜기를 없애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골짜기를나 혼자 걷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지금 여러분을 고통스럽게 하는 일들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마음을 낙심하게 하는 일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 그 마음을 내어 놓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낙심하였던 우리의 마음에 소망이 생깁니다.
희망이 없어서 죽어가던 우리의 마음에 소망의 싹이 돋아납니다.
절망과 탄식의 늪에서 소망의 꽃을 피워 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그 약속을 믿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하나님께 간구하는 모든 기도는 헛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주님 안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반드시 응답됩니다.
문제는 기도 응답에 대한 믿음이 우리에게 있느냐 입니다.
기도응답이 즉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믿음을 지키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 수목원 중에서 아시아 최초 국제 수목학회로부터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지정된 곳이 있습니다.
바로 1971년에 시작된 천리포 수목원입니다.
작년은 천리포 수목원 설립 5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이 수목원의 설립자는 미 동북부 펜실베니아에서 태어난 칼 페리스 밀러입니다. 귀화한 그의 이름은 민병갈입니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3백년 뒤를 보고 수목원 사업을 시작했다. 나의 미완성 사업이 내가 죽은 뒤에도 계속 이어져 내가 제 2의 조국으로 삼은 우리나라에 값진 선물로 남기를 바란다."
나무 한 그루에도 소망을 심어 후대를 기약하는 것처럼, 우리의 기도 또한 50년 100년 뒤의 믿음의 후손들을 위한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반드시 응답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은 절망의 상황에서도 소망을 품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저와 여러분이 경험하는 어려움들도 반드시 해결해 주십니다.
지금 코로나로 인해 어려움에 처해 있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주신 소망은 무엇입니까?
지금 당장 기도의 응답이 없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기도가 역사의 흐름을 바꾸고 있는 중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며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도할 수 없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기도의 끈을 놓치지 않고 주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포기 하지 않고 기도함으로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저와 여러분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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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숨을 바꾸셨네(G),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G), 기뻐하며 왕께 노래부르리(F), 나 주의 믿음갖고(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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