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칼코마니
박영신
펜과 붓으로 나비를 그리면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대칭되는 무늬가 놀라웠다. 신이 펼쳐놓은 신비한 예술을 보는 것만 같았다. 사물에 숨겨진 놀라운 대칭 무늬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 평범한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삶의 무늬도 정확한 대칭의 무늬로 보일 때가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상황에서 과거의 한 풍경이 왼쪽이라면 현재의 오른쪽은 왜 다른 색깔 다른 감정으로 보일까. 그러고 보면 인생은 길고 긴 시간을 따라 데칼코마니를 그리는 과정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종종 휴대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산책을 한다. 천변을 따라 걷 다가 신기루처럼 빠져들게 하는 곡에 발길이 멈춘다. 그것은 에 르네스토 코르타자르의 〈waiting for you〉. 기다림의 서정이 묻어있는 짧은 연주곡이다. 다리가 껑충한 흰 두루미가 가까이서 나를 관찰하는 줄도 모르고 회상에 사로잡힌다.
그때 나는 허리가 맵시 좋게 잘록한 긴 흑백의 체크무늬 스커트를 입고 있었고 윤기로 반들거리는 긴 머리를 귀 옆으로 쓸어내며 한없이 사랑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젊음의 순결한 빛이 드러난 이마를 반짝이며 골목 끝을 바라보았다. 그는 나를 도시의 번잡한 길 가운데 세워놓고 할 일을 하고 올 테니 기다리라고 말했다. 두 시간쯤 걸린다고 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몰랐지만 보도블록 사이로 지하의 환풍기가 불룩 튀어나온 빌딩 앞에서 그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는 인파 속으로 표표히 사라졌고 두 시간을 그냥 무작정 기다리기로 했다. 꽉 짜인 고층빌딩들은 유리의 반사광으로 번쩍이고 소란스럽게 오가는 사람들 틈 사이로 도시의 모습은 빈틈없이 완벽했지만 갑갑하지 않았다. 내가 그를 기다리는 시간은 그를 마음에 담아 오롯이 봉헌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막 피어난 꽃봉오리가 햇빛을 받아들이는 시간처럼 시간의 흐름은 내게 순항하는 운명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내 앞의 그는 언제나 반듯한 얼굴에 열정과 고뇌와 우수가 번갈아 반짝이고 눈빛은 강렬하며 선한 모습으로 삶의 의지에 불타올랐다.
그는 바쁜 나머지 며칠 감지 못한 머리카락은 꾀죄죄했지만 어쩐지 그 냄새도 좋았다. 가로수들은 간간이 바람에 흔들렸고 범람하는 홍수처럼 밀려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신기루처럼 나타난 그가 몽상적이며 유쾌한 모습으로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휘어지고 야트막하게 내려다보이는 길목은 훈훈한 긴장감이 느껴지고 오후의 공기는 신선했다. 그에게서 풍겨오는 모든 것들은 내 영혼의 창문을 흔들었으며 마음의 조그만 언덕을 넘었고 산을 넘었고 드디어 구름으로 두둥실 떠 있는 것만 같았다. 사랑은 삶에 조화롭게 빛났으며 영원을 확신할 자신이 있었다. 세월 따라 깊어질 미세한 잔주름을 너그럽게 바라보며 담백하고 편안한 세월을 맞이하고 싶었다.
두 시간이 조금 지났고 그는 보이지 않았다. 빌딩의 틈새로 오후의 햇살이 분수처럼 쏟아져서 몇 가닥은 눈을 찔렀다. 바삐 지나쳐가는 사람들은 슬픔도 권태도 조급함도 보이지는 않았지만 지친 듯이 보였다. 가로수가 바람 소리를 내며 요령처럼 흔들렸다. 그의 향기가 코끝으로 잠깐 스치는 듯했다. 예감처럼 그가 나타나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입가엔 다정한 미소가 흘러넘쳤다.
어느덧 음악은 끝났다. 천변에서 나를 훔쳐보던 두루미가 발자국 소리에 예민해진 얼굴을 반대로 돌린다. 아직은 좀 더 음악의 잔상에 머물고 싶지만 텅 빈 적막 속으로 소리는 흩어졌다. 심상心象으로 미끄러지던 음악의 풍경 속에서 빠져나온다. 집에 도착하여 모자를 벗으니 흰 머리카락 몇 가닥이 쓸어내리는 손바닥을 타고 부스스 떨어진다. 안경알을 닦아내고 움푹한 두 눈을 비비고 둔중한 허리에 붙였던 파스를 떼어냈다. 발톱을 깎다 말고 서창에 물든 저녁노을을 바라본다.
이별이라는 변곡점은 대칭의 가운데 지점처럼 느껴지고 그와 나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갔다. 붉고 탱탱한 복숭아가 익어가는 시 절이 있고 떨어지는 시기가 있고 떨어져서 흙에 파묻히는 시기가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잘 익어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떨어져 방치된 복숭아는 향기가 진하다. 복숭아도 한 철의 기쁨을 슬픔의 향기로 토하는 것이다. 그처럼 처절한 시기도 세월에 묻혀 간단하게 흘러간다.
수십 년이 지난 후에 사람들이 몹시 붐비는 빌딩에서 그와 우연히 마주쳤다. 비록 먼발치였지만 그도 나도 무연한 시선으로 그냥 지나쳤다. 한올의 애증의 그림자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뒷모습도 그렇게 보였다. 흐르는 시간을 밟고 삶의 또 다른 명제 앞에 자신을 드러내며 또박또박 걸어가듯, 당당한 걸음으로 서로 뒤돌아보지 않았다. 지금은 그 풍경이 긴 세월을 두고 데칼코마니를 그린 것처럼 보인다. 선명하게 보이는 그림 위에 더 찍어야 할 붓질은 없다. 어느쪽으로든 삶은 변화되고 사화산死火山처럼 느껴지는 지금의 삶에도 시간의 봄비는 내린다.
무궁무진한 삶의 계곡이 숨겨놓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타인을 향한 시선을 거두고 자신에게 차분하게 자리를 주는 시간이다. 상 대에게 투사했던 희로애락의 감정과 스스로의 존재를 돌아보는 시점이다. 참된 자기 이해는 스스로 길을 찾아 끝없이 걸어가야 할 난제와 같다. 내 안에서 거울처럼 반사되는 타인이기에 온전히 타인의 존재를 이해하는 것과 자기를 아는 일은 닿아있는 것 같다. 무장한 세월이 지난 끝에, 덧씌워진 착각과 환상의 너울을 벗고 백지와 같은 마음으로 다시 바라보게 된다. 나비의 두 날개를 닮은 이색적인 양 날개를 관조하고 총체적인 삶의 이면도 보게 된다. 다시 흰 종이를 펼쳐놓고 색색의 물감을 듬뿍 묻혀 붓질 한 후에 절반을 접었다 편다. 다채로운 빛깔의 나비 문양이 새롭게 탄생한다. 황홀하고 다소 추상적이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진리처럼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