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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랑길 42코스(남해 바래길 10코스)
산과 바다, 농경지와 마을이 함께 만든 풍경화
앵강만이 에메랄드빛을 띠고 있다. 쓸쓸하게 겨울을 나고 있는 바다는 한적하고 평온하다.
앵강만 가장 안쪽에 자리한 신전숲의 나무들이 잎을 떨군 채 맨몸으로 겨울바람을 맞고 있다.
오늘따라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유난히 차갑고 거세다.
이런 방풍림이 있어 숲 안쪽에 자리한 신전마을은 포근하게 겨울을 날 수 있겠다.
남해 바래길 10코스를 걷기 위해 신전숲에 도착했다.
신전숲 안에 ‘남해바래길 탐방안내센터’가 2층 건물로 아담하게 자리를 잡았다.
탐방안내센터 실내로 들어서니 남해바래길 지도와 책자들이 진열되어 있다.
바래길 탐방안내센터 옆에는 남해약초홍보관도 자리하고 있다.
남해바래길 10코스는 남해바래길 탐방안내센터에서 시작된다.
남해바래길 탐방안내센터에서 신전숲으로 들어선다.
앵강만 안쪽 해안가 1천 평에 이르는 넓은 땅에는 수백 년 된 상수리나무 등 활엽수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신전숲은 독일마을 아래에 있는 물건리방조어부림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앵강만을 끼고 있어 예쁘고 포근하다.
신전숲은 4백여 년 전부터 숲 안쪽 신전마을 주민들이 조성한 방풍림이다.
신전숲은 앵강만을 바라보고 있다 해서 앵강다숲으로도 불린다. 앵강다숲이 있어 남해바래길 10코스에 ‘앵강다숲길’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신전숲 근처에는 한동안 군부대가 있었다. 2007년 군부대가 이전하고 주민들에게 반환된 뒤
남해바래길 탐방안내센터와 약초홍보관이 들어서고 주변은 공원화되었다.
신전숲 주변은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 야생화관광자원화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야생화관광단지로 탈바꿈되었다.
지금은 겨울철이라 야생화를 볼 수 없지만 꽃무릇, 맥문동, 구절초, 비비추, 원추리 등 13종에 이르는 야생화가 계절따라 아름답게 꽃을 피운다.
신전숲을 지나 해변으로 나가니 앵강만이 푸르다. 앵강만 가장 안쪽에 자리한 신전해변에서는 앵강만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신전해변에서 화계해변에 이르기까지는 넓은 갯벌지대를 이룬다.
지금은 물이 차있어 갯벌을 덮고 있지만 썰물 때면 갯벌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곳 갯벌에서는 개불, 바지락, 고둥, 게 등 다양한 해산물이 잡힌다.
갯벌에는 돌로 둥그렇게 쌓아 밀물 때 들어온 고기가 썰물 때 빠져나가지 못하는 전통어로방식의 석방렴 두 기가 있다.
석방렴은 돌을 발처럼 쌓아 만든 돌발의 한자어다.
옛날에는 돌발을 이용하여 많은 고기를 잡았지만 지금은 어업용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해변을 따라 걷는데 앵강만이 거대한 호수처럼 잔잔하다. 앵강만은 입구에 노도가 있어 수문장 역할을 한다.
앵강만은 설흘산과 호구산‧금산 같은 산에 포근하게 감싸여 있다.
화계마을 앞바다에는 목단도라 불리는 아주 작은 섬이 있다. 마을 앞바다에 목단꽃 같은 섬이 있어 화계(花溪)마을이라 불렀다고 한다.
해변길을 걷다가 화계마을 골목길로 들어선다. 골목으로 접어들자 느티나무 거목 한 그루가 우뚝 서 있다.
이 느티나무는 수백 년을 한 자리에 서서 마을을 지켜오고 있다.
마을 안쪽 농경지에서는 마늘과 시금치가 겨울철이지만 푸릇푸릇하다. 마늘과 시금치는 남해의 특산품이다.
시금치는 겨울철에 가장 맛있는데, 한겨울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면서 맛이 더해진다.
1024번 지방도로를 건너 농로를 따라 가는데 호구산(626.7m)과 송등산(616.8m)이 다정한 형제마냥 나란히 솟아
주변 마을과 앵강만을 감싸고 있다. 호구산 정상부위는 바위봉우리를 이루고 있는데,
이곳 사람들은 이 바위가 호랑이를 닮았다고 여긴다. 호구산(虎丘山)이라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옛날 호랑이가 지리산에서 건너와 이 산에 살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호구산을 바라보며 경사지를 따라 올라간다. 주변의 계단식 논에서는 추운 날씨에도 시금치를 수확하는 주민들이 종종 눈에 띈다.
호구산을 바라보며 걷다가 뒤돌아보면 앵강만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바래길은 호구산 자락 임도를 따라간다.
숲으로 둘러싸인 임도를 걷다보면 종종 전망이 트여 마을과 들판, 앵강만이 바라보인다.
산과 바다, 들판이 함께 한 해변마을들이 포근하고 정겹다.
임도를 따라 걷다보니 길 아래로 미국마을이 내려다보인다. 미국마을 앞쪽으로 앵강만과 노도가 자리하고,
앵강만 건너에서는 남해의 대표적인 산 금산이 손짓한다.
이렇듯 미국마을은 호구산을 등지고 앵강만과 금산을 바라보며 남향으로 자리를 잡았다.
미국마을은 미국풍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22가구의 주택과 민박형 펜션으로 이뤄져 있다.
삼동면 독일마을이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은퇴 후 모국생활을 위해 조성된 마을이라면,
이곳 미국마을은 모국에 돌아와 노후생활을 하고 싶어 하는 재미교포들을 위해 만들어진 마을이다.
미국마을은 용문사를 거쳐 호구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초입이기도 하다.
미국마을을 지나 산자락 임도를 따라 걷는다.
길 위쪽은 숲이지만 아래쪽은 밭이어서 앵강만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며 걷는 행운을 누린다.
산과 바다, 농경지와 마을이 조화를 이룬 풍경화가 아름답고 푸근하다.
바래길 10코스는 완만한 길을 걸으며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기에 좋은 구간이다.
그래서 바래길 10코스는 남해 바래길 16개 코스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잠시 솔숲 그윽한 숲길을 지나 1024번 지방도로로 내려선다.
10분 쯤 도로 갓길을 따라 걷다보니 두곡해변에 닿는다.
해변으로 내려서자 두곡방파제와 연결된 작은 바위섬 꼭두섬이 길손을 맞이한다.
도저히 뿌리를 내릴 수 없을 것 같은 바위에 몇 그루의 소나무가 서 있다. 놀라운 생명력이다.
해변은 타원을 그리면서 길게 이어진다. 짧은 모래사장을 지나자 몽돌해변이 등장한다.
해수욕장 옆 도로를 따라 걷는데 파도가 조용히 다가와 말을 걸어온다.
해수욕장 안쪽으로는 길게 소나무 방풍림이 조성되어 바람으로부터 마을과 농경지를 보호해주고,
여름철에는 시원한 그늘막이 되어준다. 해변 곳곳에 펜션들이 자리를 잡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어준다.
두곡마을과 월포마을을 잇는 두곡·월포해변은 폭이 70m 정도로 좁은 편이지만 길이가 900m에 달한다.
두곡‧월포해수욕장은 남해의 대표적인 해수욕장인 상주해수욕장에 비하여 규모는 작지만 앵강만 안쪽에 위치해 안온한 느낌을 준다.
길은 두곡해변에서 월포해변으로 이어진다. 두곡해변은 몽돌해변이지만 월포해변은 모래해변이다.
나란히 붙어있는 해변인데 한쪽은 몽돌, 다른 쪽은 모래라니 신비롭기 그지없다.
활처럼 휘어진 해변의 몽돌과 모래는 앵강만의 에메랄드빛 바다와 행복하게 어울린다.
남해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외딴섬 소치도는 원뿔형으로 솟아 오가는 배들의 등대역할을 해준다.
햇빛이 만들어준 윤슬이 앵강만을 금빛으로 물들이고, 바다에 떠 있는 어선들은 윤슬의 따스한 기운에 낮잠을 잔다.
인적 없는 겨울 해수욕장에서 텅 빈 충만감이 느껴진다.
꾀꼬리가 우는 강이라는 뜻을 가진 앵강만(鶯江灣)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유래되었을까.
앵강만에 대한 유래는 몇 가지 설만 있을 뿐 확인된 것은 없다.
앵강만의 지명이 바다·호수·하천 등과 접해 있는 육지 부분을 칭하는 ‘연안(沿岸)’의 일본 발음인 ‘앵강’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있다.
이 설은 우연히 앵강이 일본말과 같을 뿐 특별한 상관관계가 없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비오는 밤이면 앵강만과 접해있는 두곡·월포해변 근처에서 꾀꼬리 울음소리가 나 ‘앵강’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한 주민의 얘기가 오히려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해변에 자리한 월포마을을 지나 언덕 위 숲길과 밭길을 지난다.
숙호마을 앞 폐교는 남해군청소년수련원(대해원)으로 쓰이는데, 코로나 19로 문이 닫혀있다.
숙호마을 앞 농로를 따라 해변으로 나아가니 숙호숲이라 불리는 해송숲이 바닷바람을 막아서고 있다.
숙호해변은 아담한 몽돌해변이다. 몽돌이 훤히 보일 정도로 남해의 바닷물은 맑고 깨끗하다.
앵강만 건너에서는 한결같이 금산이 눈을 맞춘다.
앵강만을 둘러싸고 있는 금산과 호구산, 송등산, 설흘산 같은 산들은 수평을 이룬 바다와 어울려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었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상태로 내륙 깊숙이 파고 든 앵강만은 홍현, 숙호, 두곡, 월포, 용소, 화계, 신전, 원천, 벽련마을 등
아홉 개 마을을 품고 있다. 오랜 옛날부터 이곳 주민들은 산을 등지고 바다를 마당삼아 마을을 이루고, 반농반어 생활을 해왔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는 대대로 이 땅을 지켜온 사람들의 문화가 스며있다.
숙호해변을 지나 홍현마을로 향한다. 무지개 고개이라는 뜻을 가진 홍현(虹峴)마을에는 전설이 있다.
옛날 이 마을에는 금슬 좋기로 소문난 부부가 살았는데, 어느 날 무지개를 따라간 남편이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를 않았다.
애타게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는 무지개가 뜨면 돌아오지 않은 남편을 부르며 무지개를 향해 뛰어가곤 했다.
이런 아내를 가엾게 여긴 산신령이 남편이 떠나간 방향을 일러주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어 아내는 남편도 찾지 못하고 무지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고야 말았다.
이후로 이 마을을 무지개 홍(虹), 고개 현(峴)을 써서 홍현마을이라 불렀다.
홍현마을은 설흘산과 도성산을 등지고 앵강만을 바라보고 있다.
홍현마을 앞 해변에도 다른 마을과 마찬가지로 조그마한 방풍림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 남해군 남면 홍현리 해라우지마을은 전복, 해삼, 멍게, 소라, 문어가 자생하는 청정해역으로 약 200년 전에
앵강만에서는 최초로 석방렴을 만들어 어로활동을 해왔다.
창선교 근처에 지금도 남아있는 대나무로 만든 죽방렴과 바다에 돌담을 쌓아 만든 이곳의 석방렴 모두 전통적인 고기잡이방식이다.
홍현해변을 지나 가천다랭이마을로 가기 위해 1024번 지방도로 아래쪽 숲길을 따른다.
홍현 황토촌 앞에 서자 앵강만 초입에서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는 노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남해 바래길 10코스 출발지점 앵강만 가장 안쪽의 신전숲도 멀리 바라보인다.
다랭이마을로 이어지는 숲길을 걷다보면 종종 푸른 바다가 보인다. 앵강만을 벗어나자 바다는 망망대해를 이룬다.
남서쪽 멀리 여수 돌산도와 금오열도가 바라보인다.
오솔길 아래로는 기암절벽이고, 길은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다랭이마을로 이어진다.
숲은 참나무 같은 활엽수와 함께 후박나무, 동백나무 같은 난대림이 사이좋게 공존한다.
산길을 걷다보면 옛 전투경찰 초소를 만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홍현마을에서 오는 오솔길은 과거 전투경찰들이 경비초소를 오가며 다녔던 길이다.
숲길을 걷다가 발길을 멈추고 조용히 귀 기울이면 파도가 불러주는 노랫소리가 감미롭게 들려온다.
숲길을 벗어나자 다랭이논과 가천마을이 나타난다.
가천다랭이마을은 아기자기한 바위봉우리를 이룬 설흘산이 감싸고, 앞으로는 푸른 바다가 드넓게 펼쳐진다.
가천마을 다랭이논은 가파른 경사지에 층층이 석축을 쌓아 만들어졌다.
산비탈에 만들어진 논이다 보니 구불구불하고 폭이 좁다.
사람들은 다랭이논에 공중배미, 삿갓배미, 하늘배미 같은 재미있는 이름을 붙였다.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이 높은 곳에 자리 잡았다 해서 공중배미고, 하늘에 제일 가까운 논배미여서 하늘배미며,
삿갓을 벗어 덮으면 안 보인다고 하여 삿갓배미다.
다랭이논의 아름다움은 척박한 땅을 일구어 생계를 유지하려는 우리의 선조들이 만들어낸 예술품이다.
마을로 들어가 암수바위를 만난다. 암수바위에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조선 영조 27년(1751) 현령이었던 조광징의 꿈에 백발 휘날리며 한 노인이 나타나 “내가 가천에 묻혀 있는데
우마의 통행이 잦아 일신이 불편해 견디기 어려우니 나를 일으켜 주면 필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 말했다.
이튿날 꿈에 나타난 곳으로 가서 땅을 파보니 남자의 성기를 닮은 높이 5.8m, 둘레 1.5m의 거대한 수바위와
아기를 밴 배부른 여인 형상의 높이 3.9m, 둘레 2.5m 암바위가 있는 게 아닌가.
현령은 암바위는 누운 그대로 두고 수바위는 일으켜 세워 미륵불로 봉안하고 제사를 올렸다.
이때부터 주민들은 미륵불이 발견된 음력 10월23일이면 제사를 올려 마을의 안녕을 빌었다.
가천다랭이마을에는 겨울철임에도 관광객이 많다. 유명관광지가 되다보니 올 때마다 마을은 몰라보게 변해 있다.
전망 좋은 곳곳에 식당과 카페가 들어서고, 펜션이 늘어나는 등 변화를 겪고 있다.
토착민이 살고 있는 가옥과 마을주변의 다랭이논은 옛 모습 그대로다.
다랭이논에서는 마늘과 시금치가 겨울을 견디고 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여전히 차갑다.
(2021. 12. 25)
*여행쪽지
-남해 바래길 10코스는 금산과 호구산, 설흘산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앵강만을 바라보며 걷는 길이다. 신전숲을 비롯해 해변마을 방풍림을 만나고, 가파른 경사지를 일구어 농사를 지은 다랭이논도 만날 수 있다. 남해 바래길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구간이다.
-코스 : 남해바래길 탐방안내센터(신전숲)→화계마을→미국마을→두곡‧월포해변→홍현해변→가천다랭이마을
-거리, 소요시간 : 15.6km, 6시간 30분 내외
-난이도 : 보통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남해바래길 탐방안내센터(경남 남해군 이동면 성남로 99)
-중간에 식사할 수 있는 곳은 두곡‧월포해변의 회춘장어구이(055-862-0034, 장어구이‧장어탕)와 숙호해변의 남해자연맛집(055-863-0863, 전복죽‧전복미역국)이 있다. 도착지인 가천다랭이마을에는 식당과 카페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