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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야 청산가자
이 홍사
- 춘향이가 몇 년생인지 아시우?
고갯길로 접어들자 그 말이 불쑥 떠올랐다. 한 보름 남짓 되었을까. 이 고개에서 만난 사내에게 들은 말인데 여태 그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아니, 답이 아니라 그를 잊고 있었다는 말이 맞겠다. 헌데 이 길로 접어들자 그가 떠올랐고 동시에 생뚱맞게도 그것이 궁금해졌다.
도대체 춘향이가 몇 년생일까?
가만, 춘향이가 누구더라? 인당수에 몸을 던진 춘향이가, 아니 심청이가, 그러고 보니 그가 물었던 게 춘향의 나이가 아니라 심청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새벽운전에 혼몽해진 내 머리 속에 춘향과 심청이 헛갈리고 고개 중턱을 오르는 차의 속도는 현저히 떨어지고 있었다.
**아버지의 봄은 언제나 남쪽 바닷가 유채 밭에서 시작된다. 유채가 피면 아버진 벌통 옆에 천막을 쳤다. 그리고 꿀같이 달콤한 주문을 풀어놓는다. - 올해는 많이 따야 될낀데- 그 주문은 노란 유채밭에 벌처럼 날아다녔다. 유채가 끝물이면 싸리꽃을 찾고 그 꽃이 지면 아버진 다시 아카시아를 찾는다. 아버지의 천막은 느리게 꽃을 따라 흐른다. 나는 그 흐름을 봄이 북상하는 속도라고 믿었다. 아버지는 늘 봄날의 아지랑이 속에 그렇게 떠있고 그의 몸에는 언제나 새 소리가 났다. 비비추, 비비추.**
백두대간은 온전한 날이 없는 모양이다. 역시 오늘도 골짜기마다 안개가 포진하고 있었다. 나는 안개의 진지를 뚫고 첨병처럼 조심스레 길을 더듬었다.
- 아따! 안개가 지독하구만
그가 있었다면 분명 <아따>를 앞세웠을 것이다. 사내가 앉았던 조수석으로 눈을 던졌다. 빈자리다. 한 손으로 핸들을 꺾으면서 실내등을 켜고 조수석 의자 뒤를 살폈다. 허리춤에 차고 있던 국방색, 손때가 꼬질꼬질 묻은 보조가방은 온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벌써 보름 넘게 실려 다니는 주인 잃은 물건이다. 오늘은 저 물건을 주인에게 돌려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산모퉁이를 돌아 나올 때마다, 길 쪽으로 휘어진 아카시아 줄기와 잡풀들이 일제히 물러섰다가 주저앉곤 했다. 고갯마루를 오르는 대형화물차의 바퀴와 사백오십 마력 머플러가 토해내는 열기에 길가 여린 수목은 화들짝 일어섰다가 주저앉는 것이다. 그 너울거림은 마치 어깨를 결속하고 파도타기 하는 응원군처럼 보이기도 했다.
대형화물을 운전하다보면 신경의 오 할은 앞쪽보다 차의 꽁무니에 두는 법이다. 그런 만큼 화물차는 뒤가 밝아야 한다. 적재함 아래쪽에 거꾸로 붙은 후등은 전조등과 같은 밝기로 꽁무니를 비추며 따라오고 있다. 고개를 오르는 동안 백미러와 후등을 통해 나는 본다.
너울거리는 아카시아와 자귀나무, 그리고 잡초를.
그 너울거림을 보다가 내 가슴속에서 뉘엿거리는 무늬를 읽었다. 그렇다 무늬였다. 그건 아카시아나 새벽안개가 지닌 이미지가 아니라 길의 무늬이다. 길의 무늬, 뱉고 보니 어색한 감이 영 없지 않은 말이지만 면밀히 관찰하면 모든 사물에는 저마다 지닌 독특한 무늬가 있다.
같은 하늘이라도 서쪽 하늘만이 지닌 독특한 느낌이 있고, 동해바닷물만이 지닌 무늬가 있다. 물론 길에도 무늬가 있다. 나에게만 국한되는 얘기인지는 모르지만 길은 제각각 다른 무늬들을 지니고 있다. 길에 대해서 잘 벼르진 더듬이를 지니고 있는 나는 그 차이를 명확히 읽을 수가 있다. 가령 25번 국도와 경부고속도로의 빛깔이 다르고, 강화도로 가는 길과 광양만의 제철소로 향하는 무늬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길의 무늬라, 여름날 길 저쪽 끝에서 신기루처럼 피어나는 아스팔트의 열기나 아지랑이가 떠오르지만 그렇게 쉬 볼 수 있는 얄팍한 무늬가 아니다. 형언하기 어렵지만 길 위에서 얻어지는 무늬는 내 기억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친다. 무슨 일이든 능숙해지면 몸이 먼저 체득하는 것이겠지만, 길의 무늬는 내가 그 길을 처음으로 달릴 때 얻어지는 이미지와 느낌으로 비롯되는 것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내 가슴에는 지금 이 길의 무늬가 뉘엿거리고 있다. 보름 전쯤에 만난 사내가 그려놓은 무늬다. 물의 냄새만으로 제가 난 곳을 찾아가는 회귀성 어류가 그러하듯이 이제 길의 무늬만 더듬으면 이정표나 지도가 없이 목적지 까지 갈 수가 있겠다.
그 날 새벽, 아마 이 시간쯤이었을 거다. 황지를 지나고 태백을 거쳐 영주로 향하는 바로 이 고갯길이었다. 그날도 내가 꺾는 핸들의 방향대로 길이 십 미터가 넘는 대형적재함이 딸려오고 적재함 위에는 건축기초자재인 콘크리트 파일이 실려 있었다. 파일은 무게만도 이십 톤이 넘는 과적상태고 분리할 수 없는 제품인지라 적재함 뒤쪽으로 삼 미터 넘게 튀어 나온 까닭에 고속도로를 이용할 수가 없었다. 적재함 밖으로 나온 파일의 꽁무니에 경광등을 붙일 수가 없는 경우에는 하다못해 붉은 천이라도 한 조각 달아서 뒤차에게 주의를 주어야하기에 붉은 비닐 조각을 붙인 것조차도 그날과 너무 흡사하다.
대형화물차야 항상 그렇겠지만 좁은 이차선 국도에서 급커버를 돌아나갈 적에는 차의 앞축이든 뒷바퀴든 중앙선을 넘게 마련이다. 그래서 좁은 국도나 커버길에서는 마주 오는 차뿐이 아니라 뒤 따라오는 차량에도 신경을 써야한다. 하지만 밤을 새워 달려오다 보면 한적한 도로에서는 그런 것에 대한 신경조차 순간적으로 무디어질 때가 있다. 이런 도로는 한 시간을 달려도 차 한 대 마주치지 않을 경우가 허다하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한밤의 가요산책 아니, 주파수가 맞지 않아 지지거리는 소음산책 뒤에 내가 흥얼거리는 노래가 아니면 지겹고 따분하기 이를 데 없는 길이다. 이런 길을 달릴 때면 헛헛함을 달래기 위해 노랫말을 읊어보거나 괜히 산이 떠나갈 듯한 경적을 울려 잠을 쫓곤 한다.
파주에서 출발하여 밤을 새우다시피 내처 달려온 나는 몽롱함에 취한 채 길의 윤곽을 따라 기계적으로 핸들을 꺾고 있었다. 그 때 길가에서 손을 드는 듯한 무엇을 보았다. 그러나 환시라고 간주했다. 안개 속을 달리다보면 얼핏 보이고 차를 세우고 자세히 보면 아무것도 아닌 홀림 같은 것, 올빼미 운전을 하다보면 가끔 조우되는 ‘헛것’이라는 생각에 무시하고 고갯마루를 치기 위해 가속페달에 힘을 주고 있을 때 비명소리를 들었다. 순간적으로 환시나 환청이 아님을 일깨워주는 소리였다.
엔진소음에 섞여 찢어지는 소리, 소름이 오싹할 정도의 외침이었다. 악! 이라고 했는지 꽥! 라고 했는지 정확히 표기하기는 어렵지만 그 소리는 비명에 가까웠다. 기계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반은 올빼미가 되는 대형화물차 경력이 십 년에 가까우면 내 몸도 엔진과 제동장치의 일부가 된다. 그렇다. 나는 분명히 기계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적재량을 초과한 중량차가 멈춘 곳은 허연 물체를 본 데서 한 구비를 돌아나가려는 커버길이었다. 순식간에 몽롱함을 털어버리고 조수석의 백미러로 뒤를 살폈다. 차의 옆구리에 받친 노루나 멧돼지일 수도 있다. 그러나 후미등이 켜진 노견으로 허옇게 뛰어노는 형상을 두 발로 달리는 짐승이다. 두 발로 달리는 동물은 인간뿐이던가. 나는 안도의 한숨을 훅 내쉬었다. 헛것을 들이받거나 바퀴로 갈아 뭉갠 건 결코 아니라는데 대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 첩첩 백두대간 산 중에 사람이 있다니, 경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조수석 쪽의 창을 조금 내리고 그의 행색부터 살폈다. 마흔 줄이 넘어선 중년의 사내였고 작은 배낭을 메고 있었지만 등산복차림은 아니었다.
- 아따! 무슨 인심이 그런교?
숨이 차는지 헐떡거리는 사내는 내가 내려주는 창을 통해 힐책부터 날렸다. 그리고 태워달라고 사정하는 것이다.
- 가는 길에 재 너머까지만 좀 타고 갑시다.
듣고 보니 사정이 아니라 타고가자는 일방적인 통보였다. 썩 내키는 건 아니었지만 외통수 길이었기에 마다할 구실을 찾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거절했다간 차 옆구리에라도 달라붙을 작자처럼 보였다. 차를 세운 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 말없이 조수석 문의 시건장치를 풀어주는 수밖에. 그럴 경우에 그냥 태워주는 것이 빨리 가는 법이라는 걸 나는 길에서 배웠다.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배운 법이다.
벌써 오륙 년 전의 일이지만 잠시 짚고 가자. 그 때 휴대폰이 한창 보급되던 시기였고 나는 대형화물의 초보를 제대로 떼지 못한 신참에 불과했다. 울진에서 꽤나 무거운 냉동수산물을 싣고 영양을 거쳐 원주로 넘어가는 길이었다. 그 때 한적한 국도의 고갯마루를 차다가 손을 드는 청년을 만난 적이 있다. 아니 놈팽이라고 해야 되겠다. 나는 차를 세우다말고 그냥 지나쳤다. 한 눈에 본 인상도 좀 그렇고 차를 세우는 모양새가 태워달라고 부탁하는 투가 아니라 무조건 세우라는 건달의 졸개같이 시건방진 태도였기에 길옆으로 차를 붙이다가 말고 수가 틀려서 그대로 지나친 것이다. 헌데 그것이 결코 빨리 가는 길이 아니라는 걸 고개를 넘어서야 깨달았다.
고개를 넘어 면소재지를 빠져나오는데 파출소 앞 도로에는 한 쪽 차선에 바리게이트를 친 경찰들이 수배차량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수배차량은 다름 아니라 바로 내가 끌고 가는 차였다. 경찰의 손에는 정확히 내 차의 넘버가 적힌 메모지가 쥐어져 있었다. 그 미친 자식이 차를 세워주지 않은 데 대한 앙심을 품고 휴대폰으로 허위신고를 한 것이었다. 자전거를 들이받고 그냥 가버린 도주차량이라고.
차에 실린 화물의 성격상 그렇게 한가하게 잡혀있을 수가 없었다. 시간을 못 맞추면 하차시간이 그 만큼 늦어진다. 하차시간이 늦어지면 내려오는 물건을 차고 올 화물 알선소에서 배차 순위가 밀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 까딱하다간 몇 시간의 지체로 하루를 묵었다가 올 수도 있는 것이다. 하룻밤 묵는 게 문제가 아니라 차에 실린 냉동수산물을 변상하라는 시비가 붙을 수도 있는 문제였다. 냉동수산물은 신속이 생명이다. 정말이지 환장할 일이었다. 나는 자전거를 들이받기는커녕 그 길을 오면서 자전거를 본 적도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녀석의 소행이 분명했고, 태워주지 않은 데 대한 허위신고라고 사정을 했지만 경찰은 믿으려하지 않았다. 그 녀석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진실을 밝혀줄 어떤 방법도 없었다. 그 녀석은 다른 차를 이용해서 지나쳤는지 세 시간이 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하긴, 세 시간이 아니라 삼 년을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을 작자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실린 냉동수산물은 녹아 비릿한 물이 적재함 아래 아스팔트로 두둑두둑 떨어지고 내 입에서 더 비릿한 욕설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 아우! 죽일, 죽일 놈의....
한나절이 넘어서야 나는 그 파출소에 차량등록증과 면허증을 복사해 놓고서야 풀려났다. 풀려나고 보니 차라리 그곳에 있을 때가 몸은 편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급해졌다. 점심 먹을 짬도 없이 과속으로 밟다가 단속카메라에 두어 번 찍히는 ‘재수 옴 붙음’을 당하고 해질녘에야 목적지에 닿았다. 길손하나 태워주지 않은 대가치고는 참으로 톡톡히 치렀다. 그건 분명히 한적한 오지의 국도에서 뒤집어쓰는 인간의 공해였다. 그 날 이후로 나는 길에서 손을 드는 사람이면 가급적이면 태워주곤 한다. 길에서 배운 겸손이다.
다시 말머리를 돌려서, 그날 새벽에 안개 속에서 만난 사내는 문을 열고 배낭을 벗어 차 안으로 던져놓고 키 높이와 엇비슷한 조수석으로 낑낑거리며 올라왔다. 다시 출발하는 차는 파열음에 가까운 엔진소리를 토해내며 가까스로 바퀴를 밀어올리고 있었다. 오르막에서 차를 세우고 나면 출발하여 탄력을 붙이는데 시간과 무릎의 힘이 꽤나 소요되는 법이다. 중량물이 실려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차가 탄력을 붙을 동안 그의 행색을 살폈다. 이 새벽에 산 중에서 만난 사람이라니, 혹시 간첩이나 도망자? 아니다. 느긋함으로 보아 그런 사람은 아니라 어쩌면 벌을 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벌의 날개를 지녔다. 벌이 잘 날 수 있는 맑은 날에는 아버지의 날개도 힘이 실렸고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부는 날이면 아버지 또한 처진 날개를 접었다. 날개를 지닌 아버지를 두고 어머니는 싸리골 꽃미남이라 불렀다. - 너그 꽃미남이 요새 조석이나 챙겨 자시는지 모르겠다. 그런 말을 하는 날이면 어머니의 입에서 노란 꽃가루가 날렸고 먼 산, 아지랑이를 보는 눈에는 진하게 아버지가 묻어 있었다. 그런 어머니를 보고 있으면 어디선가, 어김없이 새소리가 들렸다. 비비추, 비비추.**
가끔 국도를 따라 다니다보면 벌을 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꽃을 따라서 이동하는 그들은 밤 시간에 벌통 아가리를 막고 다른 꽃밭을 찾아 나선다. 국도변에 화물차를 세우고 벌통을 싣는 모습을 보면 꼭 야반도주를 위해 짐을 챙기는 사람들처럼 은밀하고 부산스런 데가 있다. 초저녁부터 작업하여 벌통을 먼저 보내고 뒷정리하다가 남은 자 일수도 있다.
- 아따! 짐을 에지간히 실은 모양이네. 차가 맥을 못 추는구만. 이 거 몇 톤이나 되우?
혹시 양봉하시는 분이냐, 고 물어보려는 찰나 그가 먼저 던진 질문이었다.
- 뭐하시는 양반인데 이 시간에 이런 골짜기에서.... 귀신인줄 알고 놀랬잖아요.
- 아따! 귀신이 뭐가 그리 무서운교? 사람이 더 무섭지.
- 꼬리달린 사람 말입니까?
- 아따! 꼬리 달린 게 어디 사람인감. 여우나 귀신이지.
그가 말을 시작할 때마다 나는 속으로 쿡, 하고 웃었다. <아따> 감탄사인지 버릇인지 <아따> 가 들어가지 않으면 말이 안 되는 모양이다. 고개를 넘는 동안 그는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에 없지만 <아따> 라는 말을 스무 번도 넘게 들으며 백두대간을 넘었다. 대체로 그는 말을 하는 편이었고 나는 듣는 쪽이었다. 아니 듣기만 한 게 아니라 그의 말끝마다 토를 달았다.
- 아따라구? 또?
물론 그 말은 목젖 아래 눌려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는 많은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밝히기에 소탈하지 못했다. 하긴 그가 뭘 하는 사람인지 그게 절실하거나 궁금했던 것도 아니고 그냥 말동무삼아 잠을 쫓다가 고개를 넘어서 내려주면 그만일 뿐이다.
고개를 넘으니 날이 완전히 밝아있었다. 고개 너머까지만 타고가자 했음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넘고 근 한 시간을 달려 봉화를 지나고 있었건만 그는 내릴 기색이 비치지 않았다. 봉화를 지나치며 어디쯤 내려드릴까, 하고 슬쩍 행선지를 물었는데 못 들은 것인지 외면하는 것인지 대답이 없고 창밖을 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 아따! 여그는 물이 좋은가 보네? 규수들이 이뿌구만.
나를 외면한 그의 눈길은 길가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는 교복차림의 여학생들에게 가 있었다. 그를 내려주고 나면 어디쯤 가다가 기사식당이라도 들러서 아침을 먹어야 할 참이었다. 밤을 새운 빈속이 심하게 쓰려오고 있었다. 자정이 넘어서 현탁액으로 된 위장약을 두 봉지나 털어 넣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조금 더 큰 소리로 물었다.
- 어디쯤 내리는 게 적당할까요?
- 기사! 아니 젊은 사장! 혹시 춘향이가 몇 년생인지 아시우?
딴청을 부리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꽤나 성가신 인물 하나 얻어 걸렸구나, 하는 우려가 슬몃 밀려들었다. 그 우려는 속 쓰림을 가중시키고 있었다. 올빼미 생활로 인한 직업병이다.
-아따! 뒤에 파일이 실린 걸 보니 어디 공사현장으로 가는갑네?
속을 달랠 기사식당을 더듬으며 서행하고 있을 때 서먹해진 분위시를 깨고 그가 던진 말이었다. 갈 곳이 없는 작자라는 걸 직감으로 느꼈다. 혹시 공사현장을 찾아 떠도는 작자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제안을 흘렸다.
- 어디까지 가시는지는 모르지만 그냥 내가 가는 곳까지 내처 갑시다.
- 아따! 눈치 하나는 쥑이시네. 그러면 나야 좋지.
예감이 적중했다. 더 떠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는 그의 전용어인 <아따>를 슬쩍 끌어다가 호기롭게 외쳤다.
- 아따! 그렇더라도 아침이나 먹고 가야지요.
호기롭게 외치긴 했지만 차를 호기롭게 식당으로 꺾어 넣을 수가 없는 입장이었다. 대형차는 주차 공간 때문에 아무 식당에나 들어갈 수가 없다. 봉화를 거의 빠져나와서야 주유소를 겸하고 있는 기사식당으로 가까스로 차를 밀어 넣을 수가 있었다. 속은 쓰리다 못해 경련을 일으키기 직전이었다.
- 아따! 신세를 곱빼기로 져서 우짜노?
김치찌개 이 인분을 시키고 나자 그가 한 말이다. 밥값이 고스란히 내 몫으로 굳어지게 만드는 경상도 사투리였다. 그걸로 부담을 느낄 일이 아니었다. 밥값만으로는 어림없다는 사투리는 그 다음에 따라왔다.
- 아따! 쐬주 한잔 있으면 쥑이겠네.
끓는 찌개를 빈 숟가락으로 뒤적이며 그는 소주를 들먹였다. 소주값까지 내 몫으로 굳어지기에 충분한 말이고 내가 소주를 시키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말이었다. 가만히 들어보니 버릇처럼 쓰는 <아따>라는 접두사는 자신의 말에 넣어주는 추임새였다. 참 편리한 <아따>였다. 그는 밥보다 소주병에 먼저 손을 주었다. 언어는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고 했던가. 아니면 억양은 전염성이 강하다고 했던가. 나는 어느새 그의 말투를 따라하고 있었다. 어떻게 들으면 비꼬는 말로 들릴 수도 있다.
- 아따! 밥보다 소주가 땡기는 갑네요?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자신의 말에 추임새를 이번에는 중간에다가 넣었다.
- 딱 보름만에 한잔 마셔보네. 아따! 속이 짜리하구만, 근데 내가 어디 있다가 온 줄 아시우?
그럼 그렇지. 이제부터 시작인 모양이다. 그가 어디에 있다가 온지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하지만 나는 안다, 그가 어디 있다가 온 것을 아는 게 아니라, 대답을 기다리는 질문이 아니라는 걸. 소주가 한 잔 들어가자 자신의 행적을 주저리주저리 풀어놓기 위한 추임새, 예컨대 <아따> 같은 성질의 물음이라는 걸 안다.
기사식당에 마주앉아 그는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중간 중간에 말이 끊어지면 뜸을 들일 짬도 없이 <아따>로 추임새를 넣으며 이어가는 그의 얘기를 종합해서 분석해보면, 그는 고개 너머 골짜기의 작은 암자에 보름간 기거했단다. 누가 오라고 해서 간 곳이 아니라 지나는 길에 들른 암자가 자신을 붙들더라는 말이다. 지남철이 쇠붙이를 당기듯이 자신을 슬쩍 끌어안더라는 것이다. 아마 내 차를 세운 그 부근의 골짜기 암자거니 짐작하며 관심이 있는 척 들어주었다. 사실은 그의 말을 듣는 것보다 쓰린 속에 얼큰한 김치찌개를 쑤셔 넣기에 나는 바빴다. 재바르게 숟가락을 놀리며 생각했다. 절이 자석처럼 사람을 끌어당긴다는 것이 참으로 희한하고, 그렇게 말하는 사내 역시 나만큼이나 지독한 역마살을 지닌 작자라고. 아니나 다를까 그는 자신의 역마살을 입증하듯 엉덩이가 짓물러 한 곳에 보름이상 있질 못한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 골짜기의 비구니 혼자서 지키는 암자에서 살인적인 인내심으로 보름간 버틴 이유는 오로지 길을 불사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암자로 올라가는 길이 수해를 입어서 온통 패이고 깎인 걸 그는 지나는 길에 보았다는 것이다. 아니 그 패인 길이 자신을 불렀다고 했다. 그 절에 보름 간 기거하며 새벽기도가 끝나면 곧바로 길을 고치는 일에 몰두했다고, 무엇에 홀렸는지 몰라도 그렇게 몸으로 시주를 했노라고, 소주를 털어 넣고 안주를 집는 것조차 잊은 채 말했다. 나는 김치찌개를 우물거리며 통나무를 잘라 계단을 만들고 근처의 흙을 퍼서 등짐으로 져다가 메우는 그의 모습을 상상했다. 일의 끝이 어지간히 보이는데 역마살이 슬금슬금 기어올라 더는 견디지 못 하겠더라는 것이었다. 역마살이 도지기 시작하니 잠시도 견딜 수가 없더라는 것이었다. 하여 보름간이나 했던 시주의 화룡정점을 눈앞에 두고, 자신을 끌어당겼던 지남철의 완력이 느슨해진 새벽기도 중에 야반도주하듯이 절을 빠져나왔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그 부분만큼은 이해를 하겠다. 역마살이 짙으면 그 순간을 못 넘기는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나 역시 <한 역마살>하는 작자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첫 직장에서 내근 두 달만에 근질거리는 엉덩이를 추스르지 못하고 영업직으로 뛰겠다고 자처하고 나섰을 때 입사동기생들은 내 역마살에 혀를 내둘렀다. 살이 도져 오 년을 못 넘기고 동기생들 중에서 제일 먼저 회사를 그만둔 흥부의 둘째아들인 나는 어쩔 수 없이 처갓집 돈을 꾸어다가 도서대여점을 차렸다. 헌데 틀어박혀있자니 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 때까지 나는 그런 장사를 하면 가만히 앉아서 원 없이 책만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멍석을 깔아놓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소설이나 만화조차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국도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아파트상가에 위치한 도서대여점 주인이 된 흥부둘째아들의 유일한 낙은 책을 읽는 것보다 창밖으로 달리는 대형화물차를 좇는 것이었다. 내 상상은 늘 화물차 꽁무니를 따라 다녔다. 저 짐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저 차는 어디에서 자고 오는 것일까? 노선을 따라 움직이지 않고 날마다 새로운 행선지가 정해진다는 그 동선의 신선도. 그리고 일단 차에 앉으면 간섭할 놈이 없다는 기막힌 해방감. 생각만으로도 구미가 당기고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는 것이었다. 결국 적성에 맞는 직업은 오로지 그것뿐인 양 화물차로 말을 갈아 탄 것이다. 도서대여점을 오픈한지 꼭 칠 개월만의 일이다.
- 아따! 아실란가 모루겠네, 세상에는 딱 두 종류의 인간이 있지.
대충 아침을 때우고, 입가심으로 종이컵 커피를 마시며 자판기 앞에 서성일 때 사내가 한 말이었다.
- 두 종류? 어떤 종류의 인간인데요?
- 아따! 눈치없기는... 떠나는 자와 남는 놈이지.
퉁을 먹이며 슬쩍 던지는 그 말은 참 명확한 해답이고 지독한 역마살을 대변하는 아포리즘이었다. 어서 가자는 말이겠지. 어지간히 성급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짐작하는 순간 그는 나보다 먼저 차에 올라앉았다.
하여간, 그렇게 만난 사내를 태우고 두 시간을 더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물론 조수석에서 들려오는 <아따>라는 말은 서른 번도 넘게 들은 뒤였다. 그 날 싣고 간 콘크리트 파일로 미루어 짐작할만한 일이지만 도착지는 아파트 공사현장이었다. 이제 막 부지 정리를 끝내고 기초공사가 한창인 현장으로 차를 밀어 넣자 분주한 공사장의 정경이 고스란히 펼쳐졌다. 곳곳에 포크레인과 지게차 항타기 등 중기들이 바쁘게 돌아가고 안전모를 쓴 인부들이 움직이는 모습에 조수석의 사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물 만난 고기가 따로 없었다.
- 아따! 물이 좋은데... 현장 한번 쌈빡하구만.
그렇게 감탄으로 입맛을 다시고는 말릴 틈도 없이 조수석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현장의 하차 책임자에게 물건을 내릴 장소까지 파악하고 후진하라고 외치는데 참말이지 통제불능이었다.
- 아따! 오라이, 빠꾸로 오라이,
시키지도 않았건만 차가 멈추자 그는 나에게 눈을 찡긋해 보이고는 짐칸의 체인을 풀고 또 지게차가 파일을 내리자 파일을 놓을 자리에 고임목까지 고여 주었다. 내가 손을 놓고 운전석에 앉아 있기만 해도 놀랄 정도로 일이 척척 진행되는 것으로 미루어 공사장에서 어지간히 뼈가 굵은 자임에는 틀림이 없다. 정작 내가 놀란 건 일하는 솜씨가 아니었다. 물건을 다 내리고 차가 현장을 빠져나오려고 하자 조수석으로 쫓아와서 배낭을 내리며 한 말이었다.
- 아따! 여그 물이 좋아 한 보름 눌러있을 참이구만요.
어느 틈에 구워삶았는지 그 현장에 자신이 끼일 틈새를 만든 모양이었다. 여기서 일을 하기로 했냐고 물었을 때 그는 또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이며 대답을 했다.
- 아따! 뭐 간단하지 뭐.
어떤 수완인지, 넉살인지 실로 간단한 취업이었고 참으로 간단한 대답이었다.
안개 속에서 태운, 안개만큼이나 성가신 작자를 그 현장에 내려놓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현장을 빠져나와 인근도시의 화물 알선소로 갔다. 그 곳의 소개로 어느 공장으로 들어가 전자부품을 싣고 있을 때 차에 흘리고 간 그의 가방을 발견한 것이다. 허리춤에 차도록 끈이 달린 작은 가방은 조수석 의자 뒤, 간이침대에 놓여있었다. 그의 가방을 돌려주기에는 이미 늦었다. 참 어지간히 성가신 작자라고 투덜거리며 가방을 뒤졌다. 그 안에는 얄팍한 지갑과 몇 장의 사진 그리고 볼펜과 전화번호가 적힌 수첩 등 잡동사니가 들어있었다. 지갑 속에는 돈이라곤 한 푼도 없고 빛바랜 주민등록증과 몇 장의 헌혈증서 뿐이었고 귀퉁이가 닳은 사진 속은 인물들은 그의 가족인 듯 했다.
그에게는 절실한 물건일지 모르나, 내가 전해주기에는 절대로 급한 물건이 아니었다. 이미 짐을 싣고 있었으므로 의자 뒤에 그대로 던져두었다. 혹시 그 현장으로 갈 일이 생기면 그 때 전해 주어도 되고 여의치 않으면 주민등록증이야 어디 지나가다가 우체통에 넣어버리면 된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던져두고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오늘 새벽 고개를 넘으면서 그를 떠올렸고 길의 무늬와 함께 그의 가방을 기억한 것이다. 오늘은 저 가방을 전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 역마살>하기에 한 곳에서 보름이상 눌러앉질 못한다는 그가 과연 아직까지 그 현장에 있을 지가 의문스러운 일이다.
춘향이의 나이를 헤아리며 고개를 넘고 국도를 더듬어서 목적지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여덟 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오는 길에 아침도 먹지 말고 내처 달려올 걸, 하는 후회가 밀려들 만큼 앞의 차들이 밀려 있었다. 합판, 철근, 각목, 등 건설자재를 하차할 차 대여섯 대가 줄을 지어 서있는 것이다. 기껏해야 나 보다 오 분, 십 분 먼저 도착한 차 들일게다. 한 삼십 분만 먼저 왔어도 맨 앞에 섰을 터인데, 앞 차들이 하차하도록 기다리려면 한 대에 삼십 분을 잡아도 얼추 세 시간은 넘게 기다려야 할 것이다.
이럴 때는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잠이나 한 숨 자 두는 것이 상책이라는 걸 나는 길에서 배웠다. 에어브레이크를 채우고 운전석 의자를 뒤로 젖히자 혼곤한 피로감이 어질하게 밀려들었고 곧 잠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음을 느끼며 나는 생각했다. 춘향이가 몇 년생일까?
**중절모를 쓴 아버지가 가끔씩 집으로 왔다. 내가 자는 사이에 왔다가 내가 깨기 전에 떠나시곤 했다. 잠결에 내 이마에 쓰다듬는 꺼칠한 손길을 느끼면 나는 아버지의 무릎을 끌어다가 베었다. -아따! 이 놈은 흥부네 둘째아들 같구만, 꺼칠한 게 컬려구 그러나- 아카시아 꽃내음이 물씬 풍기는 무릎을 베고 잠들지 않겠다고 버티며 눈을 비비지만 이내 잠이 든다. 아버지의 몸 어디엔가 늘 새소리가 들렸다. 비비추. 비비추, 아침에 일어나면 새소리만 남겨두고 아버진 없었다. 비비추, 비비추. 흥부네 집에 새소리가 들리는 날이면 아버진 온 집안에 꿀물을 뿌려놓고 가신 날이다. **
춘향의 꿈을 꾸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다. 누군가 차문을 탕탕 두드리며 나를 깨웠다. 얼마나 곯아 떨어졌는지 앞에 서있던 차들이 짐을 다 부리고 현장을 빠져나간 걸 모르고 춘향이를 더듬고 있었던 모양이다. 보다 못한 현장정문의 경비업체 직원이 좇아와서 차 문을 두드린 것이다. 엉겁결에 춘향이를, 아니 잠을 추스르고 현장으로 차를 밀어 넣었다.
현장은 기초공사 막바지에 접어들어 더욱 분주해져 있었다. 한쪽에서는 콘크리트를 치고 다른 쪽에서는 기초공사 터파기를 하고 있으니 자재를 실은 차가 들어갈 틈조차 남겨두지 못한 실정이었다. 나는 반장의 손짓에 따라 몇 번 수정한 끝에 가까스로 철근더미 사이로 차의 꽁무니를 밀어 넣고 짐을 묶고 있던 체인을 풀었다. 기다리던 지게차가 철근더미 사이로 와서 파일을 하나씩 떠다가 후진으로 철근더미 사이를 빠져나가 회전을 해야 할 정도로 협소한 공간이었다.
물건을 내리는 동안 나는 운전석 지붕에 올라서서 현장을 휘 둘러보았다. 내 눈은 그 사내를 찾고 있었다. 현장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올라섰지만 <아따>는 보이지 않았다. 콘크리트 치는 곳, 터파기를 하는 곳, 자재를 나르는 곳까지 두루 눈여겨 살폈지만 그와 비슷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한 곳에서 보름을 넘기지 못한다는 지독한 역마살에 밀려 또 어디로 간 모양이다. 그렇더라도 반장에게 물어보아야겠다. 하지만, 그의 이름조차로 모르고 있다. 주민등록에서 이름을 얼핏 보았지만 잊고 있었다. 운전석 지붕에서 내려와 지게차를 지시하는 반장의 곁으로 다가갔다.
- 그 양반 있죠? 아따 아따를 자주 주워섬기는 사람.... 지난번에 내 차를 타고 와서 여기서 일하기로 했는데....
고개를 갸웃하는 걸로 미루어 반장은 누군지 모르겠다는 투였다. 할 수 없이 운전석에 올라가 그의 가방을 뒤지고 주민등록증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주민등록상 그의 이름은 주봉평이다.
- 아하! 미스터아리랑 말이구만.
주민등록증을 받아 쥔 반장이 한 눈에 알아보겠다는 투로 주민등록증을 건네주며 그의 별명을 주워섬겼다. 여기서는 <아따>가 아니라 <미스터 아리랑>으로 불렸던 모양이다. 돌아다니는 만큼 얻어걸리는 별명도 다양하리라.
- 미스터 아리랑이라구요?
- 이 친구, 정선 아리랑을 얼마나 잘 불렀다구. 소주 한잔 하면서 식당에서 아리랑을 불러재끼는데 식당 아줌마들 오줌을 질질 쌌다니까. 근데, 이 친구 오늘 아침에 갔어. 마누라가 갑자기 죽게 생겼대나 어쨌대나 하면서 일을 하다가 느닷없이 보따리를 쌌는데.... 그건 그렇고 저기 짧은 파일은 다섯 본을 반품 처리해야하는데 짐이 안 잡혔으면 이 차가 싣는 게 어때요?
그 한마디는 내가 <아따>인지 <미스터 아리랑>인지를 잊기에 충분한 말이다.
운 좋게도, 나는 그 현장에서 반품되는 짐을 실을 수가 있었다. 지반이 연약한 관계로 길이가 십 미터 미만의 파일을 더 긴 것으로 교체하기 위한 반품인데 그 짐을 내가 맡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차한 차에게 주어지는 뜻밖의 행운이다. 그건 보통 운이 아니라 횡재나 다름없다. 화물 알선소에서 소개비로 뜯기지 않아서 좋고, 운임도 썩 괜찮은 편이다. 또 파일이라는 물건이 운전자의 입장에서 보면 한없이 참한 화물이다. 우선 파손이나 분실의 우려가 없고 또 신선도를 따질 만큼 정확한 도착시간을 요구하지 않는 물건이다. 전자제품이나 고가의 물건을 실을 경우에 운전보다 힘 든 것이 물건 관리다. 휴게소에서 잠시 쉬는 짬에도 짐에 대한 신경을 접을 수가 없고, 신선도를 따지는 농산물이나 수산물을 실을 경우에는 아무리 피곤하고 졸리더라도 마음대로 눈을 붙일 수 없이 부지런히 가야하는 것이다. 운임을 더 받는 것도 아닌데, 그런 물건에 비하면 콘크리트 파일은 얼마나 부담 없는 짐인지 모른다.
물건을 다 내리고 반품되는 짐을 싣는 동안 나는 현장 사무실에 들러 송장에 확인을 받고 현장의 간이식당에 들러 캔커피를 서너 개 사서 반장과 지게차 기사에게 하나씩 돌리고 현장을 나섰다. 그 때 시간이 겨우 오전 열한 시가 좀 넘어있었다. 올라가는 짐을 찬 시간 치고는 엄청 빠르다. 여유롭게 내일 아침까지 도착하면 되는 것이다.
참한 화물에 정신이 팔려 그 때까지는 <아따>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다시 <아따>를 떠 올린 것은 현장 정문에서 좌회전해서 좁은 골목을 거의 다 빠져나왔을 때였다. 그를 떠올린 게 아니라 골목입구의 슈퍼에서 튀어나온 그가 나의 차를 세운 것이다.
- 아따! 뭔 짐을 부리는데 이렇게 오래 걸리는감.
차를 세우자 그곳이 정해진 제자리인양 조수석으로 오르며 그는 불평부터 늘어놨다. 아니다 어쩌면 친근감을 그렇게 표현하는 게 그의 버릇인지도 모르겠다. 내 차가 내려오는 걸 보고 어지간히 급히 슈퍼에서 나온 모양이다. 배낭은 한쪽 어깨에 메고 손에는 마시고 있던 맥주 캔을 쥐고 있었다. 슈퍼 앞에서 맥주를 마시며 어디론가 태워다 줄 차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가.
- 집에 급한 일이 생겼다더니만요?
- 아따! 급한 일은 무슨.... 칠 년 전에 죽은 마누라 가끔 한번씩 팔아먹는 거지. 아따! 낮 술 한잔 걸치니 앞산이 야트막하게 보이는구만.
얼굴이 불콰한 그는 대수롭잖게 흘리며 조끼 주머니에서 금방 산 듯한 컨디션 한 병을 꺼내 내밀었다. 그 음료를 받아드는 나의 컨디션이 가뿐해졌음은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고, 벌써 떠났을 텐데, 혹시나 이 차가 들어올까 자재 싣고 들어오는 차를 쳐다보느라 눈이 빠지는 줄 알았다는 말에 기분은 한껏 고조되었다. 나를 기다린 게 아니고 저 가방을 기다린 게 아니냐, 고 은근히 비꼬면서 곁눈으로 조수석 뒤에 던져진 보조가방을 가리켰다.
- 아따! 이 놈의 자식이 여기 있었구만. 나는 오다가 그 식당에서 흘린 줄 알았는데....
달갑잖게 뱉으며 보조가방을 끌어다가 허리에 찼다. 들어보니 그가 기다린 건 가방이 아니라 내 차였음이 분명하다. 오늘 아침에 현장 담장 너머로 내 차가 보이자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더라는 거였다. 콘크리트 치던 작업을 접고 곧바로 보따리를 싸는데 웃음이 실실 나오더라는 얘기. 칠 년 전에 죽은 마누라가 위급하다고 우거지상으로 둘러대야 하는데 표정관리가 잘 안될 정도로 설레더라는 얘기. 어제가 간조날인데 오늘 내 차가 들어오니 인연도 이렇게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지는 인연이 없다며 오늘 점심은 자기가 사겠노라고 침을 튀겼다.
읍내를 빠져나오는 동안 그는 <아따>를 열 번이 넘게 주워섬겼다. <아따>를 걸러내고 짚어보면 같이 일을 하던 인부들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는 거였다. 그렇잖아도 인부가 모자라는데 오늘처럼 콘크리트 타설 중에 한 명이 빠지면 남은 사람들은 뼈가 빠지든지 아니면 하다못해 좆이라도 빠질 수밖에 없다는 말을 걸쭉하게 덧붙였다.
- 이번에는 어디로 가실거요?
읍내를 빠져나와 국도로 접어들면서 내가 물었다. 내가 가야할 길은 짐을 싣는 순간 정해졌다. 오늘 새벽에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야하는 것이다. 어제 오후에 짐을 실었던 그 공장으로 되짚는 길이다. 가는 길에 그를 어디쯤서 내려줘야 하는가. 나의 관심은 그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은근슬쩍 엉뚱한 곳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 어디 가서 짐을 실어야하는 거 아닌감? 빈차로 올라갈려구?
- 짐은 이미 실었고, 어디로 가실 거냐구요?
엉뚱한 곳으로 슬쩍 빠지는 말의 꼬리를 좀 모질게 밟았다. 그제서야 그는 창을 내리고 고개를 쭉 배고 적재함을 넘어다보았다.
- 아따! 짐 한번, 참한 거 실었네. 이거 싣느라고 늦었구만?
꼬리를 단단히 사리면서 단청을 부리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좀 짓궂게, 집요한 척 다시 물었다.
- 아따! 이번에는 어디로 가실 거냐구요?
-아따! 젊은 사장! 혹시 춘향이가 몇 년 생인지 아시우?
그렇다. 일순, 밟고있던 그의 꼬리를 놓아버렸다. 어쩌면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가 어디를 가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말동무 삼아서 가는 곳까지 가서 내려주면 그만이다. 나는 실소를 흘리며 그의 말을 물고 늘어졌다.
- 뜸 들이지 말고 춘향이가 몇 년 생인지 좀 가르쳐 주시지요.
- 아따! 낸들 아나? 그러나 알아보는 방법이 있긴 있지.
- 어떻게요?
- 춘향아! 너 몇 년생이냐? 하고 물으면 금세 답이 나오잖어? 어렵게 살지 말자구.
그의 말에 이마를 쳤다. 그렇다 어렵게 살 일이 아니다. 하긴 나의 관심은 그가 어디에 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무슨 말이든 해서 그의 입을 열게 만들어 지겹지 않게 가겠다는 속셈이다. 내 의도대로 그는 주저리주저리 자신의 과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 마누라가 죽고 나서 칠 년을 내처 이렇게 살았어. 나에게 목적지는 애당초 없어, 다만 행선지만 있을 뿐이지. 움직이지 않는 별이 있나? 모든 별은 행성이지. 행성은 목적지가 없어 그냥 떠도는 거야. 내가 보름마다 옮겨 다녀도 몇 번 옮겨 앉을 수 있을 것 같우? 일 년이면 겨우 스무 번 정도? 드러눕기 전까지 앞으로 십 년이래도 이백 군데 밖엘 못가. 세상은 넓은데, 이거 억울하잖어?
그래 저렇게 살 수도 있구나. 십 년 이면 이백 군데, 존재의 유한성을 저렇게 보상받을 수도 있겠구나. 가정이라는 둥지로 날고 들어야한다는 나의 보편정서가 무너지고 있었다. 은근히 그의 자유, 행선지는 있되 목적지가 없는 행보가 부러웠다.
- 아리랑을 찾아다니는 별이구만요? 아! 참, 그 현장에서는 <미스터 아리랑>으로 통하더군요. 아리랑을 그렇게 잘 부르신다면서요? 식당아줌마들이 오줌을 질질 쌌다고 하던데....
말문이 열었을 때 무슨 말인가 걸고 넘어져서 그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게 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도록 추임새를 넣어주고 있었다.
- 아따! 어떤 싸가지 없는 자식이 그런 소리까지 해버렸어? 기분 좋구로....
- 아리랑을 한 번 멋 떨어지게 불러 봐주시죠.
대수롭잖게, 지나가는 소리로 했는데 한 치의 주저거림 없이 그는 큼큼, 거리며 목을 가다듬었다. 사실 노래까지는 기대했던 것도 아닌데 그는 청을 기다리고 있었다 싶을 정도로 망설임 없었다. 불콰한 그의 목청은 곧 아리랑 고개로 들어섰고 그 고개를 구구절절 애간장을 녹이며 넘어가고 있었다. 구성진 고개를 절절히 넘어가는 아리랑을 들으며 그의 말을 되새겼다.
세상에는 움직이지 않는 별이 없지. 모두가 행성이야.
아리랑 가락을 타고 있으니 나도 행성이 된 기분이었다. 앞으로 이 길을 떠올리거나 달리게 되면, 눈썹이 짙고, 아따! 라는 추임새로 입을 여는 투박한 얼굴의 저 아리랑, 저 떠도는 행성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저 얼굴이 이 길의 무늬로 오래토록 남을 것이다.
사내는 또 내가 내려주는 어딘가에 한 보름 간 주저앉았다가 자신의 빛을 거두어서 별처럼 흐르겠지. 나는 그를 어디쯤에서 내려주는 것이 적당할까 짚어보는 사이, 정선아리랑을 끝낸 그는 입을 다물지 않고 바로 다른 노래를 이어 불렀다.
- 나비이야 청산가자 범나비야 너도 가자.
유창하게 노래를 부르던 그가 범나비라는 노랫말 부분에서 밉지 않게 검지로 나를 가리켰다. 그 손가락에 의해서 꼼짝없이 범나비로 변하는 나를 보았다. 그렇게 나비가 되어 너울거리는 날개를 펼치자 달리는 국도가 청산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너울너울, 화물차는 길의 무늬를 따라 나비처럼 날기 시작했고 나도 모르는 새 그의 노랫말을 따라 부르고 있었다.
- 나비야 너도 가자. 청산가자 범나비야 너도 가자.
그 노래는 꽃을 따라 다니시던 아버지가 즐겨 부르던 노래였다.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비비추, 비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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