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체성사의 효력, "빵과 포도주 안에"
합당한 조건을 채우고 영한 성체가 각 개인에게 미치는 효력은 그것이 육신의 부활을 위한 근거가 된다는 사실에 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신앙이 너무 빈약하고 참된 신앙을 아주 이상한 방법으로 왜곡시키기 때문에, 그렇게도 분명한 예수님의 말씀을 알기 위해서는 초대 교회의 교부들에게로, 위대한 성인과 교황들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이레네오 성인의 말을 들어보자.
"물과 섞여진 성작의 포도주와 준비된 빵에 하느님의 말씀이 내릴 때 그것은 성체가 된다. 즉 우리의 육신을 강화시키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된다. 육신이 주님의 살과 피로 연명되고 그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다면, 어떻게 그노시스파들은 육신이 영원한 생명인 하느님의 선물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지상에 뿌리박은 포도나무가 때가 되면 열매를 맺듯이, 땅에 떨어진 밀알이 썩어서 새로운 싹을 틔우듯이...... 그렇게 성체를 영한 우리의 육신도 땅에 묻혀 썩어지면 때가 되어 부활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성부이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부활을 선사하실 것이므로. 그분은 죽어 없어질 것에 영원한 생명의 옷을 입혀주시고, 아무 조건 없이 사라져 없어질 것에 영원성을 선물하신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능력은 미약함 안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영원성과 부활의 증표로서 성체를 바라보는 성 유스티노의 견해는 리옹의 이레네오 성인과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성인과 일치한다.
몇몇 주석가들에 따르면, 그는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우리 몸 안에 성체를 받아 모시면 성체는 우리 몸을 죽지 않게 만들고 실제로 부활을 시작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오리게네스는 선언한다.
"......성체는 성체를 영하는 사람에게 영원성을 나누어준다.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렇게 쓴다.
"......이러한 효력을 성체성사에 돌리는 것은 옳은 일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것처럼, 하느님의 말씀은 영혼을 소생시키고, 살이 된 그 말씀은 육신을 살게 한다. 이 성사 안에 말씀이 그분의 신성과 함께 계실 뿐 아니라 그분의 육신과도 일치한다. 그러므로 성체성사는 영혼뿐만 아니라 육신의 부활의 근거가 된다."
1976년 부활절 메시지에서 교황 바오로 6세는 이렇게 말했다.
"주님이신 그리스도는 참으로 부활하셨다. ... 형제며 자녀인 우리도 부활할 것이다. ... 우리가 부활하신 성체를 깨끗하고 올바른 마음으로 모신다면 ... 왜냐하면 그러한 생명의 양식을 먹는 자들을 '내가 마지막 날에 살릴 것이다.'(요한 6,54)라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성체의 효력은 각 사람 안에서 충분하고도 넘친다.
바울로 사도는 말한다.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피조물이 제 구실을 못하게 된 것은 제 본의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곧 피조물에게도 멸망의 사슬에서 풀려나서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스러운 자유에 참여할 날이 올 것입니다." (로마 8, 19-21)
또한 모든 피조물들은 모종의 방법으로 영광에 참여하라고 부름 받았다.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는 분명 우주 만물의 변화에 참된 근거가 된다.
바울로 사도는, 우리 인간들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고"(골로 1,24), "피조물들은 하느님의 지녀가 되기를 고대한다."(로마 8, 19 참조)라고 우리에게 털어놓는다. 또한 하느님은 성체를 통해 '그리스도가 된' 인간이 우주 만물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데 이바지하기를 기다리신다.
성체성사의 빵이 가진 능력 안에서 사람들은 우주 만물을 위한 '성체'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그리스도와 함께 우주의 새로운 변화를 위한 싹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성체가 바로 인간 부활의 근거라면, 성체를 통해 신성화된 인간의 몸이 우주 만물이 새로워지는 데 이바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땅속에서 썩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는 죽어서 예수님과 함께 이 땅의 성체가 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성체를 먹듯, 땅은 우리를 먹는다. 땅속에서 우리가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땅을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으로 변화시킨다. 죽은 그리스도인들의 육신이 하느님과 함께 공동 작용하여 우주 만물을 새롭게 하는 사명을 가진다는 것은 매혹적인 생각이다! 이로써 우리보다 앞서 죽은 사람들에게 애정과 존경이 생겨날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죽은 자들을, 특히 성인들의 유해를 제대 위에서 경배하는 이유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성체는 우리를 구원하고 신성화시킨다. 우리는 우리의 죽음으로 대자연의 변화에 이바지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 대자연 안에서 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은 스스로 인성을 가진 인간이 되시고 그 인성 안에서 온 대자연을 통합하셨다.
(발췌:'마리아(maria)' 통권 134호, 키아라 루빅,이탈리아 'Neue Stadt'에서, 아베마리아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