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굽는 사회
요즘 여러 TV방송에서 유행처럼 앞 다퉈 부쩍 많이 방영하고 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가 맛집 탐방이나 시골 기행 같은 것들이다. 바야흐로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랐을 정도로 살만해져서 그런지는 몰라도, 식도락이나 여행을 즐기는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런 프로그램들은 대개 맥락이 비슷하다. 마당가의 평상이나 정자에 둘러앉아 삼겹살을 굽고, 텃밭에서 직접 재배한 싱싱한 야채라는 멘트와 함께 쌈을 싸서 양 볼이 터질 듯이 푸짐하게 입에 넣는 장면은 이제 너무나도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아하, 행복은 바로 저거다. 그래서 너도 나도 그 주인공이 되어보려는 심산일까. 모처럼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신선한 경치를 감상해보리라 찾아간 강가든 바닷가든 골짜기든 그 어디를 가나 갈비나 삼겹살 구이 간판 없는 곳이 없고, 야유회 나온 사람들이 고기를 구워대는 매캐한 냄새와 연기를 피해갈 재간이 없을 지경이니, 이쯤 되면 가히 고기에 한 맺힌 민족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만도 할 듯하다.
내가 전원으로 이주를 하고 나서 역설적이게도 과감하게(?) 포기한 것 중의 하나가 고기 구워 먹는 일이다. 물론 무리 중에 어울려서 먹기는 하겠지만, 굳이 스스로 구워 먹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궁핍한 옛적에야 고기는 부자들이 먹고 살도 안찌는 푸성귀 따위는 주로 가난한 이들이 먹었다지만, 도처에 고칼로리 먹거리가 넘쳐나는 지금은 그 반대라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고기보다 채소다 더 비싸졌다고도 한다. 내 유년 시절, 고기(비싼 소고기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대상이었고, 일반적으로 돼지고기를 그렇게 불렀다)는 일 년에 서너 번도 먹기 힘든 참으로 귀하고도 귀한 음식이었다. 추석이나 설이 되어야 모처럼 겨우 한 끼 정도 먹을 수 있었고, 간혹 동네 잔칫집이나 초상집 마당을 어슬렁거리다가 한두 점을 얻어먹을 수 있었던 것이 전부였다. 그렇다면 그때에 비해 상대적으로 풍요하다 할 현재 시점에서는 고기에 맺힌 그 한을 풀어보려는 보상 심리 같은 것이 작동해서 실컷 먹게 될 법도 할 것이다. 그러나 고기를 먹을 때마다 이따금씩 그런 내 욕망을 억누르는 비릿한 추억 하나가 씹히곤 한다. 초등학생 때, 학교 대표로 섬(당시 나는 낙도에 있는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에서 여객선을 타고 나와 육지인 소사(부천)의 어느 학교에서 열리는 무슨 과학실험대회인가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대회가 끝난 뒤, 나를 인솔했던 당시 교감 선생님께서 점심을 사주셨는데, 머뭇거리고 있는 내게 철판에다 구운 고기 한 점을 집어 주셨다. 그런데 그것을 입에 넣고 한 번 씹었는가 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구역질을 하며 뱉어버리고 말았다. 아, 그 느끼하고 비릿한 맛이라니! 몇 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 역겨웠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이 촌놈 같으니라고. 이거 비싼 건데……. 첨 먹어 보는 거냐?” 선생님의 황당해하시던 표정과 말투가 여태껏 선하게 떠오른다. 아마도 당시로서는 고급 음식인 소고기 로스구이였을 듯싶다. 양념이나 간을 해 익힌 돼지고기는 먹어봤지만,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고 구운 소고기는 난생 처음이었던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참으로 다정다감한 분이셨는데, 궁벽한 깡촌 제자에게 베풀어주신 특별한 은덕을 삼키지 못한 그 송구스러움을 평생 동안 고마움으로 되새김질하며 살고 있다.
지난 주말에 이어 이번 주말에도 주위의 전원주택 어디에선가 고기 굽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그 냄새가 바람결에 날아와 나를 자극하겠지만, 맑고 푸른 산을 멀리 바라보며 애써 외면하려고 한다.
- 『청소년 평화』 (2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