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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움이 오면 더움은 가고 가을에는 거두며 겨울에는 감추어 보존한다. 자연은 자기 때를 알아 가고 오며 때를 따라 열매 맺고 다시 잠잠히 때를 기다리어 다음 생명을 낳고 먹이며 기른다. |
寒(찰 한)은 집(宀갓머리)에서 사람(人-인)이 풀(艸-초)을 깔고 잘 만큼 춥고 밖에는 얼음(冫-빙)이 언다는 데서 '춥다'는 뜻을 지닙니다. 집안에 풀을 깔고 사람이 누운 모양이지요. 따라서 ‘어렵다, 가난하다, 쓸쓸하다, 천하다’라나 뜻으로 연결되며, 반면 ‘침묵하다, 울지 않다, 중지하다, 그만두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불에 굽다, 삶다’는 뜻도 있지요.
來(올 래)는 보리의 모양을 본뜬 글자입니다. 원래 보리는 외래에서 들어온 곡식인데, 필요할 때 우리에게 들어와서 하늘에서 내린 곡식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보리가 우리에게 왔다고 해서 '올 래'를 보리 모양을 본떠 만들었구요, 보리를 지칭하는 글자는 麥(보리 맥)자로 별도로 쓰게 되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부르다, 앞으로, 미래’ 이런 뜻도 지니며 ‘위로하다’란 뜻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가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위로가 됩니다. 이렇게 보리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미래가 우리에게 당도할 것임을 이 글자를 기억하며 마음에 새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暑(더울 서)는 日(날 일)과 者(놈 자)가 합하여 이루어졌습니다. 햇볕에 쬐어 무더운 일을 말하는데 나중에 이 暑는 ‘차다’는 뜻인 寒(한)의 반대로, 冷(찰 냉)의 반대는 熱(더울 열)로 쓰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熱은 인공적인 더위를, 暑는 외기(外氣)의 더위로 구별하여 쓰입니다.
往(갈 왕)은 彳(두인변☞걷다, 자축거리다)과 王(임금 왕)이 합쳐진 글자입니다. ‘향하다, 과거, 뒤’의 뜻을 지닙니다.
秋(가을 추)는 禾(벼 화)와 火(불 화)로 이루어졌는데, ‘곡식을 베어서 말리다’는 뜻이며, 그렇게 하는 계절인 가을을 뜻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때, 시기, 세월’이란 뜻이 있고, ‘여물다, 근심하다, 시름겹다’란 뜻이 있습니다. 무르익어 수확을 하기까지는 여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속이 차고 여물기 위해서는 근심과 시름을 겪는 게 또한 필요합니다. 그것은 맞이할 현실(결실結實)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인생이 지니는 무수한 모순과 역설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現實에서 ‘나타날 현’인 現은 본디는 見(볼 견/현)만으로 썼으나 玉(옥)을 갈아서 빛이 난다는 데서 玉를 뜻하는 王과 見을 합하여 現자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현실은 곧 지금까지 걸어온 걸음의 ‘결실’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현실은 내가 수고하고 견뎌 내고 빚어낸 결실인 것입니다. 내일은 오늘의 삶이 만드는 것이지요. 그러니 소중히 정성을 다해 소망하는 바대로 오늘을 잘 살아야겠습니다.
收(거둘 수)는 攵(=攴등글월 문/칠 복)과 丩(얽힐 구)가 합해진 글자인데, 丩는 ‘세게 졸라매다, 매다’는 뜻입니다. 즉, ‘쳐서 매다’는 뜻으로 ‘거두어들여 정리하는 것, 모으다’는 뜻이며, ‘쉬다, 그만두다’는 뜻을 지닙니다. 거두고 정리하는 것은 쉼으로 나아가는 길이기도 하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한편 ‘시들다, 쇠하여지다, 사라져 없어지다’는 뜻도 함께 지닙니다. 결실을 맺었으면 이제 시들고 쇠하여 사라져야 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탄생을 위해서 말이지요.
冬(겨울 동)은 冫(이수변. 얼음 빙)과 夂(뒤쳐올 치/종, 천천히 걷는 모양)의 합자입니다. 추위가 모이는 계절인 겨울을 뜻하며, ‘동면하다, 겨울을 나다’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한편 소리를 나타내는 형용으로 쓰이며 북소리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추운 겨울 대지가 잠잠한 가운데 땅 속 깊이 움츠려 잠들어 있는 동물들을 생각하게 되는 글자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잠잠히 사그라든 시간을 기꺼이 맞이하고 묵묵히 견뎌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은, 더욱 뜨겁게 가슴에 울림을 키우는 시간이기도 할 것입니다. 마음 속 두근거림이 북소리만큼 커질 때, 생명이 마침내 대지 밖으로 솟아날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깊이 울리는 두근거림을 키워 가는 겨울의 시기를 우리가 잘 통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藏(감출 장)은 초두머리(艹=艸풀 초, 풀의 싹)와 臧(착할 장)이 합하여 이루어진 글자입니다. 臣(신하 신)은 눈을 지그시 감은 모양이며, 戕은 ‘죽일 장’입니다. 臧은 전쟁에 져서 잡혀 눈을 상처내거나 입묵(入墨)을 당하거나 한 노예를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 글자는 善(선☞좋다)의 뜻으로 쓴 예가 많아 ‘착하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후에, ‘넣어두다, 감추다, 곳집’이게 된 것은 음이 비슷한 裝(꾸밀 장☞물건을 싸다→넣어두다), 莊(씩식할 장☞풀이 무성하다→물건이 괴어서 모이다), 倉(곳집 창☞물건을 넣어두다, 곳집)과 결부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藏은 ‘숨다, 곳집, 광, 감추다’란 뜻을 지니며, 오장(五臟)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 찬 기운이 오면 더운 기운은 스스로 자리를 내줍니다. 가을에는 곡식을 거두고 겨울에는 한 해를 마치고 다음 해를 생각하여 곡식을 저장합니다.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나지 않고 버티고 있어도 안 되며, 와야 할 때 안 오고 있어도 안 되고, 거두어야 할 때 감추어 두고 있어도 안 되고, 감추고 저장해 둬야 할 때 거두려고 해서도 안 되지요.
무엇을 해야 할 때인지 알고 그것을 따를 수 있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자연 안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의 섭리라는 커다란 질서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이 섭리를 깨뜨리고 반대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모든 도모는 이 자연의 섭리를 존중하는 가운데 이뤄질 때 의미 있는 것이지요. 인간이, 우리의 환경이 되어 주고 우리와 함께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자연만물을 무시하고 굳이 자신이 능력 있음을 보이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오만한 태도인지요. 언제나 우리가 누구와 함께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 때, 비로소 때를 알고 때를 사랑하고 때에 맞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 자신의 소감을 적어 보세요. --------------------
오늘 배운 글귀는 나에게 좋은 깨달음을 준 것 같다. 자연은 자기 때에 따라 오간다는 것에서 나도 자연처럼 때에 따라 알맞게 행동해야겟다는 것을 느꼈다. 오늘 배운 것을 명심해서 앞으로 잘 해나가야겠다. / 혜민
4계절에 대해 나온 내용인 것 같다. 역시 깊은 뜻이 있었다. 여러 가지 듯을 품은 천자문, 정말 신비하고 놀랍다. / 시원
차가움이 오면 더움이 간다는 말이 '일월영측'의 의미와 비슷한 것 같다. 이번 글귀는 자연의 섭리에 대한 뜻으로, 모두를 생각하며 자기중심적으로 살지 말라고 하는 것 같다. /준모
오늘 수업을 듣고 어떤 것이든 삶과 관련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렇게 저렇게 생각해 보면 말이다. 동물들이 겨울잠에 드는 것, 이것도 때에 맞춰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 같다. 그때에 식량을 축적해 두고 겨울잠을 자지 않으면 추워 죽는다는 것을 알고 때에 맞추어 겨울잠에 드는 것이니. 생각해 보면 무수히 많을 것 같다. / 은옥
다른 때보다도 한자 풀이가 이해가 잘 됐고 외우는 것도 쉽게 됐다. 오늘 가장 크게 배운 것은 '때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도 그렇다. 차가움은 자기 때에 자신을 충분히 펼치고 그 후엔 더움에게 자리를 내준다. 더움도 마찬가지로 차가움의 때엔 조용히 물러나 있다가 자신의 때엔 또 열렬히 자기를 펼친다. 이런 점에선 '일월영측'과도 비슷한 것 같다. 이렇게 때를 기다리며 질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모두를 위해서이다. 자신만 생각한다면 자기만 위에 있고 자기만 좋으면 되기 때문이다. 너도 좋고 나도 좋으면 너와 나는 물론이고 제3자까지 좋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때'를 잘 알 수 있게 되면 좋겠다. / 하늘
계절들이 '나만 계속 이러고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지 않고 다른 계절을 위해 이제 비켜 주는 것과 겨울에 생명의 힘을 모으고 있다가 봄이 왓을 때 생명을 싹틔워 내는 그런 것이 기억에 남는다. 내 힘을 모으고 그 힘을 써야 할 때 틔워 내는 게 좋은 것 같다. / 다소
한자가 재미있다. 멋있는 한자가 많다. / 선욱
감출 장이라는 한자가 수업이 끝난 후에도 기억에 남았다. 눈이 없는 신하와 칼로 찌른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게 계속 남았다. 그리고 천자문 수업은 재미가 있는 것 같다. 수업 내용이 귀에 쏙쏙 들어와서 다행이다. / 예성
오늘은 인생은 나무토막처럼 나눠지지 않는다는 걸 배웠고 나만 더 잘 돋보이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면 다른 사람은 찌그러지니까 말이다. / 정희
천자문 수업을 들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 봉실 샘이 뜻을 풀이해 놓으신 문구가 딱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서 멋지고 신기하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는 것들이 천자문에 깊은 뜻으로 들어 있단 신기하다. 오늘은 왠지 모르게 집중이 잘 안 돼서 아쉬웠다. 다음에는 더 열심히 들으면 좋을 것 같다. / 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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