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30분, 착한 동생 이기전 아우의 '곧 집 앞에 도착한다'는 카톡에 입동을 지나 본격 추워진다는 일기예보에 긴장한 채, 서둘러 두겹 세겹 옷을 입고 집을 나선다.
아파트 정문밖 첫공기, '오늘 새벽여행이 선사할 따뜻한 열기가 먼저 전해진 것일까?' 그렇게 차갑지 않다. 대전스토리투어를 떠난다. 대청호 5백리길 새벽여행.
6시 대전시청앞서 모여 출발하는 버스투어. 27명이 함께 한단다.
어두운 도시만큼이나 버스 안도 어둡다.
잠이 덜깬 사람들에 대한 배려일까? 아니다. 새벽버스의 컨셉이란다. 음악이 흐른다.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의 'Before the Dawn'. 새벽이 오기전에 들리는 속삭임. 누구의 속삭임일까? 오늘 떠오를 태양이 오기전에 속삭이는 천상여인의 속삭임일까?
이어지는 혜은이의 '새벽비' 오리지널버전. 어릴적 혜은이였으니 한 사십년쯤 된 음반일까? 저 예쁜 여인의 얼굴이 보여주는 세월의 흐름만큼 대청댐, 대청호의 세월도 흐른 듯하다. 대청호도 벌써 40년의 나이란다.
어두운 버스 안에서, 오늘도 안여종쌤의 옛날옛적 대전이야기는 이어진다. 눈은 아직 졸리움이 가득하나 귀는 안쌤의 이야기 한구절한구절에 쫑긋하다. 버스길을 따라 대전학 강연이 명쾌하게 들려온다.
여수 향일암에서 시작된 17번국도를 따라 원동4거리에서 인동시장까지 이 길이 대전의 중심이었다는 이야기, 일제강점기 본정1정목인 원동을 중심으로 차례로 본정2정목(인동), 본정3정목(효동).. 원동(산내면 대전리) 동쪽으로 대동, 서쪽으로 서리(문창동)... 어느새 나는 어둠속에 펜을 찾고 메모를 하며 새벽공부에 바쁘다. 이렇게 한밭 대전은 1872년에 공주목 산내면 대전리로 기록되었다는 이야기를 버스안에서 배운다.
이젠 경주 감포항이 시작인 4번국도를 버스가 달린다. 6.25때 수도가 함락되고 북한군을 막기위한 거점지구 대전을 지키기 위한 윌리엄 딘소장의 혈투이야기를 듣는다. "그때 이길로 갔어야 하는데 잘못들어서서..."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대전의 4번국도는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바뀐다.
1934년 대전에 처음으로 상수도가 들어오게 되는 이곳, 판암근린공원(판암정수장)의 스토리를 듣는다. 동구다기능노인복지관 어르신 바리스타가 직접 만드는 1천원 커피 이야기에 다음을 기약 안할 수 없겠다.
커피한잔 테이크아웃한 채, 봄날 물안개를 기다리며 세천고개에서 대청호까지, 벚꽃과 함께 한다면 그 어느 아름다운 세상과 비교할 수 있을까? 다음 여행이 기다려진다.
비룡동(줄골)의 돌장승앞에서 여행의 첫 바깥공기를 마신다.
가을내음, 시골내음, 새벽내음 범벅인 이곳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장승 왼쪽의 지하대장승과 오른쪽의 천하대장승 앞에서 하늘과 땅을 반복해 바라보며 온 세상의 기를 받아보려 애써본다.
비가 와서 물이 흐르면 고개 한쪽의 물은 대청호로, 또 한쪽의 물은 대동천, 대전천, 유등천 갑천을 지나 금강으로 흐르는 이곳 고개에 두 남녀 장승은 신작로 한 길만큼 떨어져 있지만, 이는 잠시일뿐 언젠가는 다시 만날, 아니 영혼은 지금도 함께 하리라 하는 인연의 섭리를 생각해본다.
어느덧 추동마을이다.
명상정원이 있는 이곳은 2005년 MBC 드라마 슬픈 연가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촬영용이었을까 우물을 보니 옛 선화동 호수돈여고 날맹이 우리집 안의 우물이 생각난다.
대전여지도의 저자 이용원쌤의 마을 이야기에 빠진다.
지금 이모습도 이리 아름다운데, 댐이 들어서기 이전과 이후는 언제가 더 아름다울까?의 화두를 말한다. 옛 금강 백사장의 추억을 듣는다.
금성마을 김형구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다.
혼자 마을을 만들기 위해 뛰어다니다가 교회지인들과 땅을 알아보다가 버려진 땅 무터골을 찾아, 가진 것 없는사람 살수있도록 간청하고 노력해서 조성된 마을이야기,
댐만들어지기 전엔 논이 풍성해서 부자마을이었지만, 농지는 수몰되고 지금의 마을에서 밭농사 짓다가 평생베필은 몇해전에 하늘로 보낸 후 '영감 생각나서 그래'라 웃으며 털어내는 막걸리한잔 걸치신 할머니의 사랑이야기...
이곳엔 드라마 속 이야기만이 아니라 86개 마을 2만6천여명의 수몰민이 간직하는 슬픈 삶의 이야기가 있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해가 뜨는 황홀함과 정겨운 호수의 풍광도 좋지만, 이용원쌤이 말했듯 물안에 가라앉아 있을 아픔이야기가 40년 나이 대청호엔 가득할 듯하다.
27명이 함께 야외의 쉼터에서 즉석 공연을 즐긴다. '낭만열차'를 부른 가수 윤휘찬 아우가 펼치는 즉석공연. 보라빛 엽서와 아침이슬이 아침 야외 이 분위기에 딱이다.
노래를 함께 불으며 차를 마신다. 꽃차다.
찔레꽃, 국화꽃, 각종 꽃차다. 꽃차는 눈으로 먼저 마시고, 향으로 마신 후, 다음엔 입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마음으로 마신다고 한다.
어두운 새벽이전에 만나, 동트는 신새벽을 함께 하고, 우리는 이곳 대청호에서 화려한 꽃차와 함께 화려한 아침을 누린다.
이 시간, 이 공간안에 내가 있음에 행복하다.
대전의 자연과 대전의 이야기를 눈으로, 향으로, 대화로, 그리고 마음으로 만난 나의 11월 새벽여행, 다음이 기다려지기에 더욱 행복하다.
<강영환의 어의운하 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