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뜨락은 남한산성 / 정순복
우리 집은 남한산성을 바라보고 있는 넓지도 좁지도 않은 아담하고 아늑한 3층의 건물. 마치 이곳에 들어오면 산장에 들어와 있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창문을 열면 제일먼저 남한산성이 우리가족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어젯밤은 별들이 유난히 반짝이더니 그 별들도 힘이 들었는지 새벽 아침 풀잎 위에 어린 아이처럼 실례를 했지 뭐예요. 새벽 아침이면 제일먼저 꼬끼오하고 나를 반갑게 불러주는 닭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눈을 뜨고, 산새들도 저마다 일찍 일어나야 먹이를 많이 얻을 수 있다고 노래 부르며 하루가 분주하게 시작된다.
처음에 이곳으로 이사 오려고 생각했을 때 많이 망설였다. 누군가가 얘기 한 적이 있었다. 아이들을 위해서는 시내로 나가서 살아야 한다고….
그러나 남편과 나는 시골에서 태어나고 시골에서 자라서인지 남한산성이 보이는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어디로 이사를 했으면 좋겠니? 시내로 나갈까 아니면….”
남편은 딸과 아들에게 묻는다.
“저는 남한산성이 있는 곳이 좋아요.”
“아빠 저도 그곳이 좋아요.”
모두 의견이 일치했다. 우리는 이사 갈 집을 가계약을 해 놓고 걱정이 되어 남편과 함께 우리 집이 되어주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아침운동을 가계약 해 놓은 집을 한 바퀴씩 돌기도 했다. 가계약이 혹시 취소될까 망설이고 있던 어느 날, 집을 팔려고 내 놓으신 주인아주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집값을 더 줄 테니까 팔라고 한다면서 계약을 하시려면 얼른 부동산으로
나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가계약을 해지하자고 할까 봐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계약을 하러 오라고 하니 그 보다 더 기쁜 일은 없었다. 남편과 나는 눈썹이 휘날리도록 부동산으로 달려갔다.
아주머니께서는 벌써 와 계셨다. 서로가 계약이 끝나고 커피를 한잔씩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주머니께서는 그곳에서 평생을 살려고 도배, 장판, 싱크대, 화장실도 새로 고치고, 하다못해 문짝도 다시 새것으로 바꾸어 새집으로 만들어 놓으셨다고 했다. 그런데, 친구분에게 보증을 서 준 것이 잘못되어, 그 집을 팔고 아들 집으로 들어가야 하신다고 하시면서 눈물을 글썽이셨다.
그러면서 마음 같아선 다른 사람에게 팔고 싶었다고 하시는 것이다. 집을 팔려고 내놓은 값에 천만 원을 더 얹어 준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이 자기한테 팔라고 사정을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고 말씀을 하신다.
이상하게도 새댁의 얼굴이 자꾸 눈에 아른거리며 보였다고 하면서…. 돈에 욕심이 났지만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아, 얼른 계약을 하고 나면 그 어떤 유혹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전화를 했다고 하시는 것이다.
정말 너무 고마웠다. 처음에 집을 보러 갔을 때 같은 여자가 보기에도 예뻐 보이고, 그 어떤 사람보다도 편안한 느낌이 들었는데…. 마음까지 천사 같은 마음을 가지고 계셨으니 내가 어찌 그분을 잊을 수 있을까. 죽는 그날까지 내 기억 속에 함께 살아갈 소중한 분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곳에 이사 올 때 아카시아꽃이 활짝 피었다. 우리 가족은 아카시아 꽃향기로 축하를 받으며 이사를 왔다. 처음으로 나의 집을 갖게 되었다는 기쁨에 첫날밤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별들도 나처럼 기뻤는지 나를 향해 손짓하며 반짝였다.
‘그래 세상은 이처럼 아름다운 거야. 내가 비록 가진 것은 없다 하여도, 나와 함께 기뻐하며 나와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우리 가족과 나를 아는 모든 사람과 세상의 모든 만물이 나와 함께 동행 하고 있으니 이처럼 행복으로 집을 지으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내 나름대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행복한 거야. 그래. 생각이 행복을 만드는 거야.’
나는 스스로 행복이 가득한 앨범을 만들고 있었다.
이사 오고 나서 남한산성은 우리 집 정원이 되었다. 우리 정원에는 사계절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창문을 열고 정원을 바라본다. 봄에는 나무에 까치집과 까치집을 안고 있는 나무 밑에 수줍게 핀 진달래꽃이 나의 남편을 몰래 훔쳐본다. 산수유는 진달래꽃보다 자기가 더 예쁘다고 나의 남편을 당당하게 바라보고 있지 않는가. 질투 많은 나는 그 꽃들에게 사랑으로 남편을 바라보기만 하라고 조용히 눈감아준다.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는 날이면 남편과 나는 손을 잡고 우리 정원인 남한산성을 한 바퀴 산책을 한다. 더덕 씨를 편지 봉투에 담아 정원 깊숙이 덤불 속에 심는다. 더덕 심어 놓은 곳에 더덕이 잘 자라고 있나 확인하려고 들어가면 더덕은 보이지 않고 대신 영지버섯을 선물로 받아 들고 올 때도 있었다.
산 할아버지께서 남한산성에다 벚나무도 심어 놓으시고 만남의 다리를 손수 만들어 놓으시고 보이지 않게 나무를 심고 사랑하고 계신다. 산속에서 산을 지키며 살고 계시는 산 할아버지. 그분은 우리보다 더 남한산성 정원을 당신의 정원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계시리라 믿는다. 때론 남편과 함께 산 할아버지가 계시는 그곳의 옹달샘에 가서 물 한 모금 동양하고 돌아올 때면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아카시아 꽃이 필 때면 하얀 천사의 마음을 닮아 가는 마음을 배우기도하고 아카시아 향기에 취해 꿈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여름이 되면 매미들은 우리 정원에서 큰소리로 책을 읽고, 창문을 열어 놓으면 남한산성의 바람이 우리 집으로 마실 나온다. 한꺼번에 마실 나온 바람 때문에 남편이 아들에게 묻는다.
“누가 에어컨 켜놓았어. 우리 아들이 에어컨 켜 놓았나?”
이 말 한마디에 가족들은 행복한 웃음을 터트린다. 하늘을 바라보며 행여 지나가는 비행기라도 보게 되면,
“저기 날아오는 비행기는 엄마 자가용이란다. 이쪽으로 날아오는 비행기는 아빠 자가용이고….”
못 말리는 남편의 말 한마디에 또다시 웃는다. 휴일이면 돗자리와 간단히 먹을 간식을 챙겨들고 물 흐르는 골짜기의 정원을 찾아 발을 담그고 가제에게 먹을 것을 준다. 그러면 어린 가제가 살며시 그들에게 다가선다. 너무도 연약한 가제이기에 놀랠까 봐 잔잔한 물을 만들며 지켜본다. 다음에 또 이곳에 오면 그 가제는 어느덧 의젓한 가제가 되어 있다. 살아 움직이고 있는 가제도 우리 정원에서 살고 있으니, 그 어떤 것이 소중하지 않을 것인가. 풀잎 하나, 하다 못 해 돌 하나 우리에겐 모두가 소중했다.
가을이 되면 단풍들은 시인의 마음보다 더 화려하게 옷을 갈아입고, 아름다운 시를 쓰고 있다. 때론 고상한 옷을 입고 고상하게 시를 쓰기도 하고, 때론 외로움으로 몸을 떨기도 한다. 활활 타오르는 열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푸른 창공을 나는 행글라이더가 아름다운 가을 충경에 심취되어 갈 길을 떠나지 못하며 그 자리를 뱅뱅 맴돌다가 산에서 내려오곤 한다.
겨울에 눈이 내리는 날이면 토끼들이 하얀 눈 위에 발자국을 찍는다. 나도 따라 발자국으로 꽃잎을 만들어 놓고 조심조심 남편의 손을 잡고 행복을 누린다. 얼음 밑으로 졸졸졸 시냇물은 흐른다. 어디까지 가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우리 정원을 자랑하려고 바삐 길을 떠나나보다.
많은 사람이 오고 가는 우리의 정원. 이곳을 다녀가는 모든 사람이 행복을 마음속에 가득 담아 집으로 돌아가리라 믿어 본다. 알게 모르게 나무도 심고 산 위에 조그맣게 꽃밭도 만들어 놓은 사람도 있었다. 우리 정원이라고 하기엔 내 가슴이 너무 작아진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우리의 정원이라고 하고 싶다.
이 정원을 바라보며 삶을 배우고 고마움을 알게 되는, 가장 나와 가까운 친구가 되어 준다. 영원히 변치 않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주는 소중한 우리 가족의 커다란 정원이자 친구가 되었다. 이처럼 행복은 마음속에, 생각 속에 있는 것이다. 우리 가족이 이곳에 사는 날까지 남한산성은 우리 마음속에 영원한 정원이 되어 함께 숨을 쉬며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