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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 속의 언어와 개념들이 다 소화되지도 않은 채 정해진 시간 안에 읽어 내기 위해서 책에 코가 박혀 있는 나를 끄집어내서 한나 아렌트의 질문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자.”을 물어본다.
‘학교’식의 빡센 공부는 안 쓰던 근육이라 근육통을 느끼며 탱자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을 까 자신이 없어지는 나에게 한발 물러나서 물어본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인간의 조건을 왜 읽고 있는가, 탱자학교에 입학하여 왜 공부하고 있나.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어서. 한 치라도 끌어 올리고 싶어서.’ 라고 내 입으로 나에게 한 말들이 있다. 입..을 다물고 책을 다시 펼쳐본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물었던 건 20살 이후 부터다.
90년대에 태어나 한국식 입시교육 체제 안에서만 살았었다. 사유와 질문없이 ‘학교’인지 모를 학교에 가고, ‘공부’가 무엇인지 묻지 않는 공부하고, ‘대학’을 가야하는데 인 서울을 해야해서 한국인 종특 ‘열심히’ ‘잘’해서 인서울을 목표로 달리는 그 틈에서 - 나는 구멍을 내진 못했다. 낼 생각을 못 했다.
그렇게 대학을 가고 20살이 되어서야 ‘근데 나 뭐하고 있지? 묻게 되었고 내가 노예(나란 존재와 모든 게 화폐로 환원되는 시스템의 노예?라고 해야하나요) 같았다. 아팠다.
한국에 살고있는 모든 사람들이 노예 아니면 왕따 두 분류로 보였다.
노예가 멋있어 보이지도 않고 적응하기도 어렵고, 나의 길을 찾아야 겠는데 무엇을 어ᄄᅠᇂ게 해야할지 모르겠고, 스승도 친구도 없고, 서울에서 비슷한 냄새의 사람을 찾기가 어려워 처음엔 신문과 책을 그냥 봤었다. 그러다 우연히 한 살림 소식지 맨 밑에 작은 글씨로 적혀있는 ’온 우주 생명이 협동해 밥을 만들 듯 이 밥을 먹는 사람도 우주만물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요‘라는 문장을 보고는 질문들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흙을 만지자. 농사를 짓자. 자기로부터 소외되어있고 땅으로부터도 소외되어있는 이 무력감을 회복하려면 흙을 손으로 만지는 것부터 시작해야했다. 땅위에 서고 싶었다. 뿌옇게만 느껴지지만 분명히 잡히는 끈을 감각하고 대학과 집에서 나왔었다.
집을 나온지 8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과정’중에 있고 (아마 죽기전까지 ‘과정’이고) 자유롭지 못한 것들도 고단한 것들도 많다.
‘자급’의 관점에서 여전히 ‘시골’에서 살아내고 싶고, ‘존재’로서 들어와 균열내고 싶고, ‘일상’에서 부딪히면서 말과 행위로 조금씩 바꿔가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참 쉽지 않다.
특히 1인가구로 자급을 위한 노동, 생계형 노동(알바), 집밖일(시골집 수리&관리), 집안일(청소 빨래 밥), 친구들도 만나야하고(지역적으로), 마을사람들 관계도 챙기고, 자의식비대를 막기 위해서 일상적으로 비워내야하고, 번뇌와 우울에 양분을 주지 않기위해 일상적으로 의식해야 하고, 공부 놓치면 안되고 – 바쁘다. 바쁜 것 보다 떠밀려 다니 듯 시간이 지나가며 사유함이 좁아진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인간의 조건]을 읽고나서 특히 ‘예술, 상상력 행위의 부족함’을 다시 느낀다.
사유함의 부족함도 있겠지만 나 스스로 억압적인 부분, 또 다른 틀이 생겨버린 나, 여전히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지점들이 있다는 변명으로 아직 예술 작업, 행위ᄁᆞ지 가지 못했다. (물론 농사도 예술이라고 생각하지만)
분명히 나에게 첫 마음 – 흙을 만지는 것부터 시작해서 감각들을 깨워 나가다보면 표현되어지는 것들, 작고 쓸데없지만 아름다운 것들,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물들일 수 있는 어떤 무엇들, 예술 그대로 살리라는 마음이 있었다.
다시 기억하고 이어가자.
무감각하고 무기력한 사회에 균열을 내기 위해 어ᄄᅠᆫ 씨앗이 될 것인가.
어ᄄᅠᇂ게 하면 좀 더 자유롭게 도전하며 명랑&경쾌하게 지속할 수 있을까.
여전히 답이 어정쩡하더라도 용기를 가지고 질문들을 놓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