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감영[한국 순교자 형(刑)과 옥(獄)살이] 9
▲ 위치:현 종로구 평등 164, 서울 적십자병원 및 강북 삼성병원 자리
경기도 관찰사 즉 경기감사의 관아로, 경기감영의 위치는 몇 차례 변동이 있었던 것으로, 감영에는 지방의 행정, 군사, 사법, 경찰을 총괄하는 관찰사와 이를 보좌하는 경력, 도사, 판관 등이 파견되고, 실무 사무는 6방 아전들이 담당하였다.
1). 경기감영과 천주교 순교사
경기감영에서는 천주교 신자 체포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일찍부터 서울의 좌, 우포도청에서 서울 도성 지역뿐만 아니라 성저십리지역 까지 담당하였고, 그 밖의 지역은 각 읍의 진영장의 주관 아래 기찰이 이루어진 데다가 필요시에는 포도청에서 각 읍에 공문을 보내 죄인을 잡아 올리도록 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1800년 4월. 부활 대축일에 여주에서 일어난 박해로 체포된 신자들은 여느 때와 달리 경기감영으로 압송되어 문초와 형벌을 받게 된다.
여주 출신의 복자 최창주, 복자 이중배, 복자 원경도, 양근 출신으로 여주 임희영 집에 기거하던 복자 조용삼과 부친 조제동, 동생 조호삼, 정종호, 예비 신자 임희영 등이 모여 개를 잡고 술을 빚어 대축일의 기쁨을 나누고 있던 차였다. 포졸들이 몰려오자 조호삼은 도망치고, 나머지는 모두 체포되었다.
그런 다음 동료들과 함께 경기감영으로 압송되어 다시 문초와 형벌을 받아야만 하였다. 경기감영은 1801년의 복자 조용삼의 순교터요. 복자 최장주, 이중배, 원명도와 임희영, 정종호의 신앙 증거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