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
나는 트리니티가 신급 능력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매트릭스>에서 트리니티는 죽은 네오를 사랑의 힘으로 되살린다. <매트릭스 2>에서 트리니티는 죽었다가 네오에 의해 되살아난다. <매트릭스 3>에서 트리니티는 네오를 기계 신에게 데려다주고죽는다. <매트릭스 리저렉션>에서 트리니티는 부활한다.
신을 되살린 사람, 신에 의해 되살아난 사람, 신과 함께 죽은 사람이 신과 함께 부활한다. 전혀 이상하지 않다 49p
어바웃타임~
' {사랑은 감정의 배타적 인정이다.}
독일 철학자 악셀 호네트(A. Honneth)의 말이다. 인정의 반대는 무시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온갖 인정과 무시로 점철되어있는 인생을 산다.
갓 태어난 아기는 혼자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지만 부모의 극진한인정을 받는 능력이 있다. 엄마, 아빠 눈에 자식보다 예쁜 아기는 없다. 아기는 엄마 젖을 뗄 때 인생에서 처음으로 무시를 경험한다.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직장에 가서 남들과 어울리면 인정과 무시의 경험은 더 다양하고 격해진다.
사랑은 인정이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지 테스트하는 방법은 그와 통화해보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하면 다른 어떤 사람이 말할 때와도 다른 느낌이 든다. '인정'의 느낌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해도 그가 반응하지 않으면 기분이 나쁘다. '무시'의 느낌이다.
사랑은 배타적 인정이다. 사랑에 빠지면 눈이 머는 게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만 보이고 타인은 보이지 않는다. 샬롯이 꼬드길 때 팀은 메리에 대한 배타적 인정의 감정을 느끼고 메리에게 달려간다.
배타적 인정은 함께 같은 쪽을 바라보는 사랑이 아니라 서로 마주보는 사랑이다. 서로 마주 보지 않고 눈길이 어긋나면 사랑할 수 없다. 이 세상 모든 사랑은 서로 눈길을 자기에게 붙잡아둬야 이뤄진다.
법정 스님이 틀렸다.
법정 스님이 서로 마주 보는 사랑을 몰라서 서로 함께 바라보는 사랑을 권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님은 서로 마주 보는 사랑에 문제가 있고 함께 바라보는 사랑이 그 문제를 해결하는 참사랑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서로 마주 보는 사랑은 무엇이 문제일까? 인정의 주체가 감정이라는 게 문제다. 감정은 변신의 귀재니까.7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