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러분~
우리는 26년 3월 22일부터 5월 3일 동안
7주간의 명상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주간의 핵심 주제는
“윤회는 내 삶의 반복인가, 깨어남의 문인가?”
입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분들의 소감을 무기명으로 나눕니다.
00님
JOA의 여정에서 제가 배운 것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제 몸에게 양육하듯 말을 거는 법이었어요.
상담자로서는 상담이 무엇인지 한 번 정립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상담이 문제의 해결책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오해할 때,
저는 결국 <상담을 믿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상담이 못 미더우니 상담이 아닌 것(해결책 알려주기)을 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이지요.
그러나 상담은 제가 제 안에서 양육의 관계를 맺어
저 자신을 들여다봐주고 돌봐주고 편이 되어
자신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과,
바로 그렇게 했던 힘으로 내담자 역시도 자기 안에서 자기를 들여다봐주고 돌봐주고 편이 되어서 힘을 실어주도록 안내하는 일 같습니다. 이 일의 가치를 경험하고 가능하다는 것을 믿으면 상담을 믿는 것 같습니다.
다른 때 명상할 때는 '명상 하다보면 당연히 아프기도 한 거지 뭐. 끄달리지(주의를 기울이지) 말고 그냥 지나가면(무시하면) 될 일이지.'라고 생각을- 등판 통증을 주시했습니다. 등판이 충동적으로 뭐라고 말하도록 아무 생각 없이 기달렸어요.
등판은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면서 대화의 장이 열렸습니다.
"너는 왜 내가 아프다고 소리쳐도 맨날 천날 무시를 하냐?"
"너는 관심이 없다."
"어디 정신이 팔려있는 거냐"
이런 소리침을 처음 들었습니다.
그리고 불현듯 어릴 적에 엄마가 아파서 죽으면 어떡하지 무서웠던 기억이 났어요.
아프다는 게 무서워서 보기 싫어서 고개를 돌렸던 기억도 났습니다.
그 모습이 "아픈 걸 왜 무시하냐"고 소리질렀던 등의 소리침이랑 겹쳐 들렸어요.
다른 날, 단전이라고 부르는 그곳과 대화했을 때에요.
"나는 혼자야. 아무도 없어."라는 말을 들었고
"내가 너랑 함께 할께"라고 말했습니다.
뭐랄까 엄마가 된 것 같은, 아기를 품은 엄마의 모습이 제 몸에서 느껴졌어요.
다른 날에는 제 이야기를 하기 싫을 때 느끼는 감각을 느꼈어요.
뭔가 얇은 막이 쳐지면서 말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는.
연인 관계에서 때때로 느끼는 그 감각. 공격 받을까봐 굉장히 경계하고 의심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사극에서 보았던 독살에 시달려서 약간 미친 사람이 된 왕의 덜덜 떠는 모습이 시각화되어 보였어요.
다른 날에는 제가 얼마나 아빠가 내 곁에 있기를 바랐는지
그 목소리를 처음 들었습니다.
엄마가 아플 때 아빠가 든든하게 의지가 되기를 원했다는 말을 마음 속으로 들었지요.
예전부터 아빠 없이 자랐다는 얘기를 티비 속 사람들이 좀 슬픈 톤으로 할 때,
'아빠가 뭐가 필요해. 아빠 없어도 아무 상관없는데'라고 생각하며 좀 짜증도 하고 화도 났는데요.
그게 아빠가 의지가 되었으면 하는 욕구가 만족이 안 되어서 그렇게 화가 났구나 알아주었습니다.
또 다른 날은 저의 현실에 대해 떠올리면서,
저를 채찍질 해왔던 ‘상전’의 목소리와 만났습니다.
그 전의 여정까지 하인을 아기처럼 양육해와서 이제 상전에게 대들 수 있었던 것일까요.
다섯 째 날 명상할 때는 '열등감"이라는 주제가 나오니
그렇게 졸려서 '이번 명상에는 왜 이렇게 졸리나' 하다가
"정말로 꼴 보기 싫다. 내가 실패해온 것들 떠올리는 거 하기 싫고 꼴도 보기 싫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목소리 하나를 들었습니다.
그 사이, 명상 법회 때 졸려서 자고 싶어하는 제 마음을 좀 어루만져주고,
'한 번 얘기 들어주면 알아서 해라! 두번 째는 없다!'라고 다그치는 상전의 목소리도 알아차린 덕분인지, 마지막 날 명상 때에는 졸음이 오지 않았어요. 이불 같던 안대가 안경처럼 느껴지는 게 신기했습니다. 그 안경 너머로 지난 십년 동안 조건부로 -너 성공하면 사람인데, 이거 또 못하면 사람도 아니다. 사람 구실 좀 하고 살아라 쫌- 살고 있는 제 삶이 보였습니다. 그 조건부를 내거는 상전에게 "야 임마. 이게 내 속도다. 좀 살자 좀 살자" 당당하게 소리를 내었습니다.
이번 여정은 생존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던 어린 시절에게
마치 내 자신이 엄마와 아빠가 되듯이
너와 같이 있어 주겠다고 떠나지 않겠다고 따듯한 말을 건데고,
생존하려면 이 정도 조건은 만족을 해야 하는데 너는 대체 왜 못하냐,
남들 다하는 거 왜 그렇게 한심하게 그러냐고 다그치는
‘상전’과 대면하는 시간이었습니다.
00님
스님께서 뇌의 작용과 자율신경계의 원리를 알기 쉽게 설명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호흡에 집중하며 제 안의 불안과 두려움이
결국 스스로 만들어낸 것임을 명료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고,
만트라를 통해 차크라를 활성화하니 평소보다 숙고의 깊이가 깊어졌습니다.
특히 스님께서 이끌어주신 질문들 덕분에
제 내면의 세밀한 움직임까지도 놓치지 않고 살필 수 있었습니다.
불교의 육도윤회와 관련해
‘지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상태에 따라 결정된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예전에는 저 자신을 미워하고 타인의 시선에 전전긍긍하느라 늘 에너지를 소진하며 녹초가 되곤 했습니다.
고통스러운 관계를 피해 스스로 단절을 선택하기도 했지만,
사실 저는 늘 사랑 속에 머물러 있었으며 그 자체로 온전한 존재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덕분에 마음은 전보다 고요해졌고,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즐기며 살아갈 여유도 생겼습니다.
소중한 가르침으로 제 내면을 비추어 주신 효록 스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 시작하는 단계이지만, 배운 내용을 토대로 일상에서도 이 평온한 마음을 정성껏 가꾸어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00님
7주간의 JOA(Joy of Awakening), 깨어남의 여정을 마쳤습니다.
이 명상과 심리상담을 융합한 프로그램의 주제는
육도윤회의 불교적, 심리학적 의미와
그로부터 어떻게 깨어나
보다 나은 삶을 향해 갈 수 있을 것인가입니다.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아수라, 천신, 그리고 그것들을 넘어 도달한 공(空).
심리적인 육도윤회를 넘어
진정한 자기 자신에게 도달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방향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깨어남의 여정’은 몸과 에너지의 차원을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불교의 사념처는 신수심법, 네 가지 차원의 통찰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우리 존재의 일부분만 변화시킴으로써 깊은 통찰을 가져오기가 어렵다는 걸 반증합니다.
정말로 마음이 달라지려면 마음과 맞닿은 몸과 에너지, 느낌, 불법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모두 공부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7일간의 여정에서 효록 스님은
오랜 동안 쌓아온 명상과 심리치료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참가자들이 이전의 상태를 벗어나
새로운 관점으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도록
다양한 기법을 깊이 있게 적용하고 친절하게 안내해주셨습니다.
명상과 심리치료는 동양과 서양의,
또 고대와 현대의 치유의 방식으로 각각 그만의 장점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을 함께 버무린다면
아마 마음공부의 또 다른 차원이 열린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7주 동안 함께해주신 참가자분들과 효록 스님께 감사드립니다.
00님
여러 가지의 내 모습이
하나씩 하나씩 편안하게 내려앉는 기분이 듭니다.
단단해지는 편안함이 있는 시간이였습니다.
00님
저는 한번도 제대로 명상을 해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명상을 하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참여를 했는데
겁이 나서 울고있는 내면의 아이를 발견하고
위로해주고 안아주는 너무나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앞으로의 시간을 진짜 나로 살수 있을것 같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왔다가
제 인생에서 너무나 큰 보물을 발견한 감사한 시간들이 였습니다.
이끌어주신 효록스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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