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11.00시 킬리만자로 정상 우후루피크(5,895m) 등정을 위해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했다. 내친김에 여행일정을 늘려 탄자니아, 이집트, 에티오피아를 포함하여 23일간의 여행으로 조정했다. 여행이란 미지의 세계를 찾아가는 것이기에 늘 설레게 한다.
여행 일정표를 확인하고 시차적용을 위해 잠을 청한다. 기내식이 나오자 에티오피아 산 와인 한 잔을 곁들여 식사를 한다. 여행은 비행기 안에서 영화 <로마의 휴일>과 함께 시작한다.
자유를 찾고 싶은 공주
. 주인공 앤 공주는 차기 여왕의 자리가 내정된 상태라 권력, 미모, 재력 모든 것을 갖추었다. 계속되는 공식행사로 그녀도 인간이기에 지쳤다. 한 여자로서의 욕망과 공주로서의 의무감에 충돌한다. 쓰레기 차에 몸을 싣고 궁전을 빠져나와 그레조리 기자와 아이스크림도 먹고 스쿠트도 타면서 하루 동안의 사랑을 즐긴다. 공주란 위치가 바라보기에는 좋지만 실제 그자리에 있어보니 새장속의 새와 같은 삶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순간 삶이란 빚인가? 빛인가 하는 점 하나 사이에서 생각이 오간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지루한 일상, 자유의 억압, 반복된 업무로 삶에 대한 회의는 마치 구멍 난 항아리에 물을 채워야 하는 헛수고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공주는 일탈하는 빛을 즐겼다.
지난 해 7월 일본의 마코공주가 지위를 버리고 평민으로 전환한 사례가 증명해 준다. 황족 신분을 버리고 일반인 남자친구와 결혼해 '평민'으로 전환했을 뿐만 아니라 황실에서 품위 유지비로 주는 16억 원을 거절했다고 한다.권력의 무상함을 알고 진정한 자유를 찾고 싶은 연인인 셈이다.
<사진1 로마의 휴일 영화 사진>
장자가 복수에서 낚시를 하고 있을 때에 초나라 왕이 대부 두사람을 그에게 보내 왕의 뜻을 전했다."번거롭지만 나라의 정치를 맡기려 합니다.장자가 낚시대를 든채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내가 듣건대 초나라에는 신령스런 거북이 있는데, 죽은지 3천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왕은 그것을 비단으로 싸서 상자에 넣어 묘당 위에 보관한다고 합니다. 이 거북의 입장이라면 그가 죽어서 뼈만 남겨 존귀하게 되겠소, 아니면 살아서 진흙 속에 꼬리를 끌고 다니겠소?" 두 대부가 대답했다. "살아서 진흙 속에 꼬리를 끌고 다니려 할 것입니다." 장자가 말했다. "가시오. 나는 장차 진흙속에 꼬리를 끌며 살것이오."
莊子釣於濮水 楚王使大夫二人往先焉 曰 願以境內累矣 莊子持竿不顧 曰 吾聞楚有神龜 死已三千歲矣 王巾笥而藏之廟堂之上 此龜者 寧其死爲留骨而貴乎 寧其生而曳尾於塗中乎 二大夫曰 寧生而曳尾塗中 莊子曰 往矣 吾將曳尾於塗中
장자조어복수 초왕사대부이인왕선언 왈 원이경내누의 장자지간불고 왈 오문초유신구 사이3천세의 왕건사이장지묘당지상 차구자 영기사위류골이귀호 영기생이예미어도중호 이대부왈 영생이예미도중 장자왈 왕의 오장예미어도중<추수편>
궁궐에서 권력과 명예와 부를 가지고 살아가는 공주는 태생적 운명이다. 일반 서민이라면 공주가 되는 꿈을 꾸고 때로는 공주병 소리를 듣는 사람도 더러 있다. 그러나 공주는 차기 권력자로서 나라의 안위를 위해서 몸을 불살라야 한다. 그런데 능력이 못 미칠 수 있고 성향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내 한 몸 건사하면서 자유를 누리는 삶이 얼마나 멋있는가? 권력 따위는 죽은 거북이 제단위에 모셔져 있는 것과 같다고 볼 수도 있다. 무슨 자유가 있고 생명이 있는가. 그저 보기 좋게 꾸며 놓은 것 뿐이다. 본질의 나는 죽었고 보여지는 나만 그럴싸하게 포장된 상태로 존재한다. 구중궁궐에 갇혀 사는 공주보다 거리를 활보하며 아이스크림 먹는 소박한 시민의 삶에 자유가 있다. 새장 속에 갇혀 주인이 주는 먹이를 편안하게 꿩보다는 열 걸음 걸어서 한 모금 쪼고 백 걸음 뛰어서 물 한 모금 마시는 참새의 자유를 원하는 것이다.
권력자의 일거수 일투족은 관찰의 대상이고 곱지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공주는 일탈을 선택한 것이다. 일본 공주도 마찬가지다. 거금을 포기하고 시민들과 어울려 시장거리를 옮겨다니며 팝콘도 먹고 호떡 하나 사먹기 위해 길게 줄도 서보고 하는 평이한 가운데 자유로은 삶을 선택한 것이다.
보조 밧데리의 교훈
영화가 끝나고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 공항에 도착을 알리는 방송이 나온다. 13시간 남짓 비행은 6시간의 시차 적용을 위한 노력과 함께 여행도 시작하기 전에 지쳤다. 3시간 정도 휴식을 취하고 킬리만자로 공항으로 떠나기 위해 수속절차를 밟는다. 친구가 지갑을 놓고 와 부랴부랴 찾으러 갔다 오는 사이 불길한 생각이 든다. 우리는 공항 검색대에 섰다. 일행 중 한 명이 불안 해 하는 얼굴로 서 있었다. 무슨 일인가 가까이 가서 사실을 확인하니 휴대폰 보조 밧데리가 문제가 되었다. 사실 나는 보조 밧데리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보조 밧데리를 모른다면 19세기 사람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평소 보조 밧데리를 사용하지 않고 기계에 의존하기 싫어하기에 알 턱이 없고 휴대폰을 사용하지만 최소 기능만 사용하기에 별 관심도 없다. 그런데 무슨 보조 밧데리…. 그 친구는 킬리만자로의 깊은 곳 정상까지 가니 휴대폰 보조 밧데리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매일 매일 충전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해 한꺼번에 많은 용량을 충전할 수 있는 50000짜리 대용량 보조 밧데리를 챙겨왔던 것이다. 산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고산병에 체력소모와 이국음식에 대한 적응 등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다. 걱정거리 하나라도 덜고 사진이라든가 데이터 사용 등 편리성을 고려하여 대용량으로 준비한 것이다. 얼마나 편리한 도구인가. 그러나 공항검색대에서는 규격용량 이상이면 위해물질로 분류하고 기내에 반입을 제한했다. 결국 그 일행은 보조 밧데리를 버려야 했다.
<사진2 휴대폰과 연결된 보조 밧데리 >
공자의 제자 자공이 남쪽으로 초나라를 유람하고 진나라로 돌아오다가 한수 남쪽을 지나가게 되었다. 한 노인이 채소밭에 물을 주는 것을 보았다. 그는 땅에 굴을 파서 만든 우물로 들어가 항아리에 물을 퍼가지고 나와서 밭에 물을 주고 있었다. 끙끙거리면서 힘을 무척 많이 들이지만 효과는 적었다. 자공이 말을 걸었다. “여기에 기계가 있다면 하루에 백 이랑의 밭에 물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힘은 매우 적게 들고 드러나는 효과가 큽니다. 선생께서는 기계를 쓰지 않으시렵니까?” 노인이 머리를 들고 그를 보면서 말했다.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나무에 구멍을 뚫어 만든 기계인데 뒤는 무겁고 앞이 가볍습니다. 손쉽게 물을 푸는데 빠르기가 물이 끓어 넘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물틀이라고 부르지요.” 밭을 손질하던 노인이 성난 듯 얼굴빛이 바뀌었지만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우리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기계를 가진 자는 반드시 기계를 쓸 일이 있게 되고, 기계를 쓴 일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기계에 관한 마음쓰임이 있게 됩니다. 기계에 관한 마음쓰임이 가슴에 차 있으면 순수함과 깨끗함이 갖추어지지 않게 되고 순수함과 깨끗함이 갖추어지지 않게 되면 정신과 성격이 불안정하게 됩니다. 정신과 성격이 불안정한 사람에게는 도가 깃들지 않게 됩니다. 나는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부끄러워서 하지 않는 것입니다.”
有機械者 必有機事 有機事者 必有機心 機心存於胸中 則純白不備 順白不備 則神生不定
神生不定者 道之所不載也 吾非不知 羞而不爲也
유기심자 필유기사 유기사자 필유기심 기심존어흉중즉 순백불비 순백불비 즉신생부정
신생주정자 도지소부재야 오비부지 수위불위야<천지편 11 >
밭에 물을 주는 노인은 문명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기후위기와 기계의 발달로 사람이 기계에 지배당하고, 날이 갈수록 사람이 순박했던 본연의 자세를 잃어가고 있다. 자본주의가 주는 불평등과 극심한 빈부차이를 보면 노인의 말에 일견 일리가 있다.
기계가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것은, 기계는 그 속성인 기사機事와 기심機心으로 인하여 인간을 소외시키기 때문이다. 지하철이나 까페에서 보면 휴대폰에 목을 매고 있다. 기계의 발명과 산업화과정에서 발생되는 기계로 말미암아 인간이 비인간화된다는 사실을 장자는 꿰뚫어보고 있었다.
기계의 기능을 알면 효율성을 생각하고 효율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자리 잡으면 본성을 잃게 된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방식으로 살아가는 노인은 내 삶과도 닮았다. 해마다 봄이 오면 필자는 텃밭을 가꾸기 위해 일을 시작한다. 해묵은 잡풀을 제거하고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는다. 비닐 멀칭이나 비료는 뿌리지 않고 농약을 치지 않는다. 결과는 수확물이 빈약하다. 그러나 맛은 일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