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성공하기 위한 10가지 쉬운 단계’ 같은 빠른 지름길을 제시하는 데에 흥미가 없다. 그러나 전쟁터에서 배워야 할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지혜를 적용하는 10가지 원칙을 따라가 보자.
1. 삶을 누려라!
예언, 중보기도, 그리고 영적 전쟁의 사역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사역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일상 생활 속에서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삶을 누리라고 말하고 싶다. 산책을 하라. 그러면 당신의 영혼에 유익이 될 것이다. 취미가 될만한 것들을 찾아보라. 그러면 그것이 유익이 될 것이다. 운동을 즐기고 긴장을 풀어라, 그러면 당신 몸에 좋을 뿐 아니라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좋아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당신은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될지도 모른다. 잘 먹고, 잘 쉬고, 적절히 운동함으로써 당신 스스로를 돌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그리고 우정과 재미를 소홀히 여기지 말라. 휴식을 취하라. 예수님과 당신 자신, 당신의 가족들을 위해 삶을 누려라.
2.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비난을 피하라.
무엇이 중보기도 모임을 망치는지 아는가? 비전이나 리더십이 부족해서 공공연한 영적 전쟁에서 패배해서 모임을 망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문제를 드러내고 비난하는 미성숙함이 중보기도 모임을 망친다. 서로를 공격하며 회개없이 모임이 끝나면 사탄이 승리를 거두게 된다. 만일 당신에게 상대방을 비난하는 마음이 있다면 함께 기도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3. 용서는 필수적이다.
고린도후서 2장 10~11절에는 중보 기도자들과 리더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 즉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할 수 있는 위대한 지혜가 있다. “너희가 무슨 일이든지 뉘게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 궤계를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만일 비난하는 마음이 남아있다면 쓴뿌리와 용서하지 못함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영적 전쟁에서 최고의 무기 중 하나는 용서를 주고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용서하라, 당신이 용서할 때 다른 이에게 은혜를 끼치는 것이다. 사실상, 용서는 거룩하건 세상적이건 당신 자신과 친구, 가족, 교회, 리더쉽에 은혜를 끼친다.
나는 용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말했다. 그것이 영적 전쟁의 최고의 무기 중의 하나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4. 최상의 무기를 사용하라.
팻은 “하나님께서는 당신과 미첼 앤을 예배와 찬양의 영적 전쟁을 위해 기름부으셨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최상의 무기를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참으로 지혜로운 말이었다. 팻의 말은 하나님의 음성과도 같았다. 실제 전쟁에서 일어나는 일이 영적 전쟁에서도 일어난다. 일대일로 싸우도록 보병들을 파병하기 전에 공중전을 위한 요격기를 보낸다. 현명해지도록 하자.
우선 찬양의 무기를 가지고 적의 요새를 폭파하라, 평안과 지식, 확신이라는 성령의 증거하심을 얻을 때까지 충분히 찬양의 무기를 사용하라. 성령의 증거하심을 얻을 때까지 충분히 찬양의 무기를 사용하라. 그 후 확실히 정해진 목표물을 사격하도록 보병들을 파병하라. 기도와 마찬가지로 찬양도 무기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찬양으로 적을 결박하고 가둔다는 것을 기억하라. 시편149편 5~9절은 이것을 힘있게 표현하고 있다.
(시 149:5) 성도들은 영광 중에 즐거워하며 그들의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할지어다
(시 149:6) 그들의 입에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있고 그들의 손에는 두 날 가진 칼이 있도다
(시 149:7) 이것으로 뭇 나라에 보수하며 민족들을 벌하며
(시 149:8) 그들의 왕들은 사슬로, 그들의 귀인은 철고랑으로 결박하고
(시 149:9) 기록한 판결대로 그들에게 시행할지로다 이런 영광은 그의 모든 성도에게 있도다 할렐루야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처럼 나도 이 구절을 사랑한다. 왕과 귀인들을 결박하는 데 사용되었던 찬양 사역은 특수 엘리트 집단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찬양 사역은 그분의 모든 거룩한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영광이다. 그렇다면 ‘모든’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추측해 보라. 우리는 두 날 가진 검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미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 이미 성취되었다고 선포함으로써, 주님을 열정적으로 찬양함으로써 대적의 역사를 막게 된다. 찬양과 감사의 능력이 가진 성경적 특징 몇 가지를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찬양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장소이다(시22:3).
2) 찬양은 하나님의 임재로 통하는 길이다(시100:4, 사60:18).
3) 찬양은 성령의 옷이다(사61:1-3).
4) 찬양은 구원의 강력한 무기이다(시50:23, 행16:25-26).
5) 찬양은 사탄을 잠잠하게 하는 수단이다(시8:2, 마21:16).
6) 찬양은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통하는 길이다(시106:47, 고후2:14).
7) 찬양은 제사이다(렘33:11, 히13:15).
그렇다. 찬양은 우리가 가진 최상의 무기 중 하나이다. 당신은 최상의 무기를 인식하고 그것을 힘있게 사용하라.
5. 보혈을 의지하라.
성경 전체에 통틀어 적용되는 한 가지 원칙이 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다”(레17:11). 단지 피에 생명이 있을 뿐만 아니라 무죄한 피가 흘려졌을 때 그것에는 특별함이 있다. 바로 그 피가 호소한다는 것이다. 땅에 쏟아진 아벨의 피가 하나님께 호소했다. 하나님께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기 위해 달려오셨다. 아마도 아벨의 피는 날카로운 소리로 이렇게 외쳤을 것이다. “복수다! 나는 복수를 원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의 심판관이 임재하시기 전에 아벨의 피보다 더 강렬하게 호소하는 피가 있다. 이 피는 무엇을 호소하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하나님 아버지께 계속적으로 그의 죄없는 아들의 희생을 상기시킨다. 예수님의 보혈은 “자비! 자비! 자비를 내리소서!”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에 관련하여 많은 은혜를 생각나게 한다. 요한계시록 12장 11절은 성도들을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형제들을 고소하는 자)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다”라고 표현하였다. 그러면 예수님의 보혈이 주는 은혜를 성경에서 찾아보기로 하자.
1)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해 나는 용서함을 받았다(히9:22-28).
2) 예수님의 보혈이 나를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하셨다(요일 1:7).
3) 어린양의 피로 나는 구속함을 입었다(엡1:7).
4) 예수님의 피로 인하여 나는 의로워졌다 - “마치 원래 그랬던 것처럼” 결코 정죄받지 않는다(롬 5:9).
5) 예수님의 피로 인하여 나는 거룩한 부르심을 위해 구별되었다(히13:12).
6)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화평을 이루셨다(골1:20).
7) 나는 십자가의 보혈에 의지하여 지성소에 담대히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히10:19).
가장 안전한 장소를 당신은 아는가? 보혈로 가까이 가라. 성경의 명백한 사실과 함께 하라. 보혈을 의지하라.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이 이미 이루어 놓으신 것을 선포함으로써 사탄을 이겼다. 어둠의 권세에 대한 그분의 승리는 우리로 그 귀하신 보혈의 은혜에 동의하고 또 그것을 선포하도록 이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이미 이루신 것을 의지하고 가까이 하며, 보혈의 능력을 증거해야 한다.
6. 상대편을 긍휼히 여겨라.
만일 당신이 죄를 범한다면, 스스로를 긍휼히 여겨야 한다. 어떤 일에 지나치게 잘못할 수도 있지만 예언하는 중보 기도자들이라면, 판단하기를 버리고 지나칠 정도의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가능하다면 성숙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말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무엇이 긍휼히 여김인가? 그리스도의 사역의 필수 요소인 ‘긍휼히 여김’은 웹스터 사전에서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덜어줄 열망을 가지고 남을 의식적으로 동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켄 블루(Ken Blue)는 ‘치유하는 권능’(The Authority to Heal)에서 이렇게 말한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가리라고 했던 긍휼히 여김은, 단순히 그분의 뜻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그분의 존재 깊은 곳에서 솟아나오는 것이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긍휼히 여김으로부터 그분의 능력있는 구원과 치유, 구속이 나온다.”
다음에 나온 성경 구절을 묵상하면서 긍휼에 대한 마음을 새롭게 하자.
“(시 78:38) 오직 하나님은 긍휼하시므로 죄악을 덮어 주시어 멸망시키지 아니하시고 그의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 그의 모든 분을 다 쏟아 내지 아니하셨으니
(시 78:39) 그들은 육체이며 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라”
공동번역
(시 78:38) 그래도 하느님의 사랑은 지극하시어 저들을 멸하는 대신 그 죄를 없애주셨다. 분통을 터뜨리지 아니하시고 화를 참고 또 참으셨다.
(시 78:39) 사람은 한낱 고깃덩어리, 한번 가면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생각하셨다.
(애 3:21)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애 3:22)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애 3:23)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공동번역
(애 3:21) 이것을 마음에 새기며 두고두고 기다리겠습니다.
(애 3:22) 주 야훼의 사랑 다함 없고 그 자비 가실 줄 몰라라.
(애 3:23) 그 사랑, 그 자비 아침마다 새롭고 그 신실하심 그지없어라.
이해가 되었는가?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성품은 사랑과 인내, 자비와 긍휼히 여김 같은 것이다. 긍휼히 여김을 배우라. 그리고 긍휼을 배풀라. 자비를 구하는 기도를 하라.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은혜와 자비를 베푸시기를 원하시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다른 사람과 나누기 전에 그분의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을 경험해야만 한다.
7. 공통 지점을 허용하지 말라.
이 주제는 이번 장뿐 아니라 이 책 전체에서도 중요하다. 요한복음 14장30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사탄에게 대항하는 그분의 능력에 대해 말씀하신다. “이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엠플리파이드 성경(Amplified Bible)은 마지막 구절에 대해 번역의 방법을 약간 달리함으로써 우리는 약간의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그는 나를 어떻게 할 아무런 권한이 없다. 그는 나와 공통된 부분이 없다. 그에게 속한 것이 내 안에는 전혀 없다. 그는 나를 제어할 권한이 없다.”
당신은 위의 두 구절이 서로 어떻게 관계되었는지 알겠는가? 테리 크리스트(Terry Crist)는 그의 책 ‘어둠의 권세를 대항해 중보하라’(Interceding against the Power of Darkness)라는 책에서 이 주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이유와 사탄을 아주 효과적으로 물리치실 수 있는 이유는 실제 교전에서 그분은 정결케하는 법을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그러한 능력과 힘을 가지고 악한 대적을 성공적으로 물리치는 이유는 그분과 대적 사이에 공통된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사탄이 예수님을 공격할 때, 사탄에게 공격당할 만한 여지가 그분 안에는 없다. 사탄이 그분을 시험할 때, 시험할 것이 그분 안에는 없다. 예수님과 사탄은 서로에게 관계성, 즉 공통의 측면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 안에는 어둠의 사역에 관계했다고 증거할 만한 여지가 없다. 많은 중보 기도자들과 사역자들이 적의 날카로운 영적인 공격을 당하는 한 가지 이유는 그들이 정결케하는 법에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회개와 깨끗하게 됨, 구원의 사역을 통해 성결의 도와 연합하는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하나님께 당신의 속 사람에 있는 개인적인 적을 정복하시도록 맡겨드려야 한다. 그때에 하늘에서 악한 영에 대항해 일어나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될 것이다.
8. 미끼를 피하라.
주위에 있는 미끼를 따라다니지 말라. 미끼는 주의를 산만하게 할 뿐이다. 사탄이 공격하려 할 때 당신의 시각을 예수님께로 고정하라. 우리의 대적은 때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끄시는 쪽의 목표물에서 측면 공격하기 위해 스스로를 목표물처럼 꾸미기도 한다. 때때로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그리고 오래된 대적을 뒤쫓는 것에 순수하게 헌신하려는 우리의 시도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그의 존재를 의도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사탄이 문을 두드릴 때 예수 그리스도를 내세워라. 이 말이 진부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의미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내세울 수 있는 방법은 단순히 사탄에게 시간을 내어주지 않음으로써 가능하다. 사탄을 따라가지 말라.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도록 부르심을 입었다. 안타깝게도 많은 기도모임이 사탄을 따라가는 쪽으로 변하곤 한다. 우리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아야만 한다(히12:2). 이것은 단순하지만 강력한 지혜의 말씀이다.
우리의 시각을 예수님께 고정시킬 때, 그분의 존재는 드러날 것이며 적은 제어될 것이다. 나는 지금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탄을 대적하거나 직면하는 권세있는 기도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가능하다면 언제라도 우리가 쳐들어갈 싸움을 선택할 것을 단순히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미끼로 당신을 유혹하는 것을 피하라. 당신의 눈을 예수님께 고정시켜라.
9. 죄의 형벌을 깨뜨려라.
죄의 형벌을 깨뜨린다는 것은 “영적 전쟁에서의 공격에 대비해 문을 닫는 것”을 의미한다.
영적 전쟁의 전문가들 중 몇몇은 전문 심령술사들이 그들의 영역을 위협한 사람들에게 특별히 저주(또는 형벌)를 내리는 말을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드온의 삶에서 볼 수 있는 구약의 그림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어두움에 직면하였을 때 대적 마귀가 하나님의 사람들을 억누르기 위해 노력하는 어떤 저주나 죄의 형벌을 깨뜨리고 우리 자신과 가족의 보호장벽을 구하는 기도를 드릴 필요성을 보도록 우리에게 통찰력을 주고 있다. 또한 그분의 용감한 용사들을 위한 하나님의 상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나의 여러 여행과 모임 가운데 대적 마귀와 영적 전쟁을 치른 후에 나 자신과 가족, 건강과 소망, 미래, 부르심, 재정, 소유물, 자동차, 애완동물 등등에 대항해 오는 모든 악한 저주나 공격, 즉 대적 마귀의 저주를 깨뜨리는 기도를 드렸다. 그 기도는 다음과 같다.
예수 그리스도의이름과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분의 보혈의 능력에 의지하여 대적 마귀의 악한 것과 나를 향한 모든 악한 말, 나와 나의 가족을 향한 사탄의 궤계는 파괴 될지어다. 사탄의 영향력을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의 이름으로 파기하노니 대적은 형통치 못할 것이다.
나는 현재의 나, 앞으로의 희망하는 나에 축복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나의 삶과 건강, 가정, 재정, 사역, 가족에 속하는 모든 것에 내 손을 얹고 축복이 임하길 소원합니다. 주께서 주시는 힘과 열정, 보호와 공급하심이 내게 넘칠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에 영광과 존귀가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10. 안전망 – 다른 이들과 함께 가는 것
이것은 지혜의 중요한 부분이다. 전도서 4장 9~12은 이것을 적절하게 언급하고 있다.
(전 4: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전 4:10)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전 4:11)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전 4: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이 구절을 좀 더 자세히 보라. 우리 모두는 공격당한 경험이 있다. 우리가 공격으로 쓰러졌을 때, 우리를 도울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보내주신다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안전망의 또 다른 측면을 살펴보자.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이 말씀은 기억하고 주장하고 선포하며 무릎 꿇을 가치가 있는 약속이다. “너희 다섯이 백을 쫓고 너희 백이 만을 쫓으리니 너희 대적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레26:8). 배가의 효과는 우리가 이웃들과 합력하여 사탄에 대해 우리의 힘으로 대적할 때 일어난다.
당신은 기도의 동역자가 있는가? 당신을 위해 뒤에서 기도할 사람은 누구인가? 하나님의 무기가 우리의 정면을 보호하듯이 우리는 다른 사람의 후방을 보호해야 한다. 거룩한 만남과 교제, 기도로 서로를 감싸 안아야 한다. 지도자들 역시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의 기도에 의한 돌봄과 보호가 필요하다. 이 일은 중보기도 안에서 서로가 지도자들을 위하여 “믿음의 방패”(엡6:16)를 연합하여 높이 치켜들 때에 일어난다.
“찰스 피니가 아버지 내쉬 피니를 필요로 하듯이 모든 설교자들은 중보자를 필요로 한다”라고 딕 이스트만은 말했다.나는 이 사실을 믿는다. 그리고 지난 몇 년 간 다른 선교단체의 손을 드는 아론과 훌이 되려고 헌신해 왔다. 그리고 오늘날 ‘열방을 향한 선교 사역’ 단체에서 함께 서 있는 동역자들이 있음을 감사한다. 내 가족과 사역을 위해 기도의 방패가 되어준 소중한 동역자 부부가 있다. 우리가 이러한 기도의 방패를 얻은 이래로 어떤 공격이나 질병이 우리 아이들을 괴롭힌 적이 없다. 우리와 동역하며 우리를 지켜보고 규칙적으로 기도해 주신 분들은 우리 삶에 안전망이 되어주신 분들이다.
당신의 모든 사역에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는 기도의 방패가 있기를 바란다.
누구의 전쟁인가?
중보 기도자들을 위한 지혜 적용지침 한 가지를 더 강조하고자 한다. 모든 전쟁은 당신의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은 당신의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것은 다른 사람들의 것이다. 어떤 전쟁은 오늘의 몫이다. 그러나 어떤 것은 다른 날의 몫이다. 어떤 것은 당신의 것이 아니므로 전혀 개입할 필요가 없다. 결과적으로 사탄은 당신이 싸워야 할 때를 가르쳐주는 존재가 아니다. 고린도후서 2장 14절은 이것을 당당하게 선포한다.
(고후 2: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분이 이끄시는 곳에서 그분은 우리에게 승리를 주신다. 그분이 이끄시지 않은 곳에서, 즉 우리 멋대로 가는 곳에서는 전과 같은 보호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승리하리란 법도 없다.
지혜를 구하라. 하나님의 음성을 민감하게 들어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라. 확신을 가지고 대단한 소식을 가지고 있음을 상기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라. 이 대단한 소식이란 무엇인가? 바로 그분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곳에서 우리에게 은혜와 보호, 승리를 허락하실 것이라는 소식이다.
(짐 고울 『약속 위에 무릎 꿇고』 석창훈 옮김. 도서출판 바울, 2002. pp. 266-2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