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란 본인이 이 세상에 태어난 날이다. 생일은 결혼하기 전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는 유일한 본인만의 기념일이다. 생일날이면 의례히 떠오르는 단골 메뉴가 있다. 어머니 표 미역국과 고봉으로 담은 흰 쌀밥이다. 보통 때는 특별한 반찬이 상에 오르는 날이면 형제자매간 밥상머리 반찬 쟁탈전이 펼쳐진다. 요즈음 흔히 보는 이리 달래고 저리 어르며 밥을 먹이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어린 날 기억에 흰 쌀밥을 먹는 날은 정해져 있다. 설과 추석 그리고 생일과 제삿날 이다. 식구들 생일이라도 생일을 맞은 본인 그릇만 고봉의 흰 쌀밥이다. 지금은 건강식이니 뭐니 해서 흰 쌀밥을 꺼리고 있지만 늘 까끌까끌한 보리밥만 먹다가 흰 쌀밥을 먹는 날이면 식감도 식감이지만 윤기가 자르르 하고 찰기가 흐르며 고봉으로 난들 하게 담은 흰 쌀밥의 고운 자태를 잊을 수가 없다. 고봉의 흰 쌀밥은 생일상이 유일하다. 세상의 어느 밥상과도 비교할 수 없는 생일상의 유일한 행복은 밥상머리 전쟁이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무엇일까? 어쩌면 이별이 아닐까? 남녀간 이별이야 다반사라지만 혈육 간의 생이별은 슬픔의 정도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죽음보다 더 슬픈 건 이별이란 말이 생겨났을까? 죽음은 단절에서 오는 절망감으로 모든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지만 이별은 놓을 수 없는 가느다란 희망의 끈 때문에 더한 슬픔이 이어지는지도 모른다.
장모님은 친정 일에 많은 정성을 쏟았다. 그 가운데는 보호를 받아야 살아갈 수 있는 친정 오빠 내외에 대한 속정 이 숨어있었다. 누가하나 돌보지 않는 친정 오빠 내외는 아픈 손가락 이었다. 아내를 만나고 아들에게서 조차 눈치를 보는듯한 처 외갓집 돌보는 일 때문에 고민이 많으신 장모님의 손과 발이 되어 작은 힘이라도 되어 주고 싶었다. 피 붙이인 처외삼촌이 돌아가시면서 소원해 질 것 같던 친정 돌봄은 홀로 남은 외숙모가 불쌍하다고 더욱 심해지는 듯 했다.
한번은 장모님께서 외숙모의 생일을 물었다. 발음이 온전치 않아 정확한 날짜를 기억하고 있어도 알아들을 수 없을 터인데 입속으로 우물거리듯 하는 말을 몇 번이고 되물으며 자세히 들어보니 “비가 오고 바람 부는 날”이라고 하는 듯 했다. “유월 스무 이례”처럼 몇 번을 날짜를 말하라며 실랑이를 하다가 장모님도 포기를 하였다. 물론 호적상의 생일을 생일날로 지킬 수 있었으나 시집을 오기 위해 급조한 호적이고 보니 장모님 마음에 들지 않음은 당연했다. 그렇게 외숙은모님 생일상 한번 받아보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 장모님도 세상을 떠났다. 장모님은 돌아가시면서도 자식과 손주들에 대한 유언은 없으면서 집사람 손을 꼭 잡고 부탁을 했다. “느그 외숙모 불쌍한 사람이니 니가 잘 보살펴 드리도록 해라” 사실 그 일은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기초생활수급자에 지급되는 지원금을 계획을 세워 매일 먹는 반찬을 비롯하여 철따라 의복을 구매하고 미장원과 목욕탕을 모시고 가야 했다. 더욱 난감한 일은 6개월마다 영수증을 모두 모아 1원짜리 착오 없이 결산을 하는 일이었다. 시스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수작업으로 6개월 동안의 모든 영수증을 모아 수입과 지출을 맞춘다는 것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시간이 허락지 않아 도저히 할 수가 없는 일 이었다. 모두들 손사래를 쳤다. 행정복지센터 복지 팀 직원이 1개월여 돌보미 역할을 했다. 멀리 떨어져 생활하던 작은 외숙부님이 보름을 채우지 못하고 백기를 들고 말았다. 문제는 같이 다니면서 손짓 발짓 해가며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지출도 지출이려니와 180일간 영수증을 일자별로 맞추어 정산하는 일은 한글도 완전히 깨우치지 못한 장모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그런 가운데서도 그 부족한 지원금을 어떻게 사용하였는지 2000여 만 원이 든 통장을 도장과 비밀 번호를 적은 쪽지와 함께 집사람 손에 꼭 쥐어 주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집사람도 처음엔 거절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엄마에게 잘 못한 일들이 새록새록 생각난다며 그 일을 지금껏 해 오고 있다.
대형 마트에서 좋아 하는 반찬을 고르며 지팡이에 의존하여 걷는 외숙모님 뒷모습에서 장모님 모습이 겹쳐졌다. 아내는 외숙모님이 참으로 인복이 많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 했다. 올해는 호적상 생일이지만 외숙모님 생일상을 꼭 한번 차려 드리고 싶다. ‘처삼촌 벌초하듯’이가 아닌 소고기 미역국에 고봉의 흰 쌀밥을 정성껏 차려드리고 싶다.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