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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 대사 색깔: 희서 건 수민 현서 라희 은찬 유찬 / 모두
오늘 드디어 건이보다 일찍 도착했습니다. 알고보니 건이가 어제 데려왔던 친구 은찬이, 유찬이와 함께 오느라 평소보다는 조금 늦게 온 거였습니다. 점심에 짜장면을 먹은 듯 입가에 묻은 검은 자국들이 귀여웠습니다. 어제 낯을 가리던 은찬이와 유찬이는 알아서 포옹인사도 해주고 더 편해진듯 밝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은찬, 유찬이가 바자회를 위해 대형 선글라스와 삼색 포스트잇을 챙겨왔습니다. 작은 물건이지만 고심해서 골라온 것 같아 고마웠습니다. 많이 칭찬해주었습니다.
다음은 희서와 현서가 도착했는데, 쇼핑백 두 개와 인형들을 팔에 끼고 왔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쌤 이거 바자회 물건이에요!" 라며 물건을 하나하나 설명해주었습니다. 은찬이와 유찬이에게 희서와 현서가 가져온 장난감을 보여주자 아이들이 자연스레 같이 장난을 치며 같이 어울렸습니다. 곧이어 라희도 도착했습니다. 라희는 라희 어머님께서 무거운 짐을 들고 와주셨고, 아동기획단 아이들이 함께 나눠먹을 젤리도 사다주셨습니다. 아이들이 "와~"하며 젤리를 하나씩 들었습니다. 라희 어머님 덕분에 달콤한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수민이가 시간이 다 되어가도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새 친구 은찬, 유찬이를 소개시켜주고 싶고, 수민이까지 모이면 역할 분담 회의 후 경로당으로 출발하고 싶었는데, 연락이 되질 않았습니다. 며칠 못 본 터라 오늘까지 갑작스레 못 온다면, 수민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거나 기획단 활동에 흥미가 떨어져서가 이유일 것 같아 불안했습니다. 그러나 회의를 미룰 순 없었기 때문에 우선 수민이 없이 시작했습니다.
어제 경로당 할아버지께 드릴 초대장도 만들었고 잔칫날 놀이까지도 정했으니, 오늘은 경로당에 가서 초대장을 드리고 수박 수영장 당일에 할 역할들을 구체적으로 나누어보기로 했습니다. 또 "오늘 바자회 물건들은 어떻게 할까?"라는 물음에 아이들이 "가격 정해야죠~!"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경로당에 처음 가는 은찬이와 유찬이를 위해 아이들에게 어르신들께 초대장을 드리며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시범을 보여달라고 해보았습니다. 쭉 쭉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아이들이 머뭇거렸습니다. 조금 도와주어야 하나 싶어 질문을 하며 유도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수박 수영장 당일에 뭐하는 거지?"라는 질문에 "어르신들과 시원한 여름을 나는 거요." 라고 대답하고, "바자회는 왜 하는 거지?" "기금 마련을 위해서요." 라고 답했습니다. 물론 맞는 말이긴 하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설레어하며 말했다기보다는 저희(실습생)가 그간 편지 쓰기 등의 활동들을 하며 조금씩 알려주었던 '멘트'를 외워서 대답한 것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아동기획단 아이들만의 생기가 부족한 것 같았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정해진 사업을 홍보하고 설명하는 일들만 잔뜩했지 아이들이 직접 준비하고 기획하는 활동이 부족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 딴엔 해야 할 일들을 순서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이 정말 재밌어하면서도 놀기만 하진 않는 사업을 해내기란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내일부터는 바자회도 하고, 다음주에 소리동화 연습도 하고, 아이들끼리 시범 삼아 게임도 직접 해보며 준비할 예정이니 앞으로의 활동에는 더 즐길 수 있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저도 더 에너지를 모아서 아동기획단 활동에 쓸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아이들이 경로당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오늘은 할아버지들을 뵈러 가는 날이니 2층에 가야했는데 아이들이 습관적으로 할머니가 계신 1층에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나왔습니다. 2층에 들어서니 할아버지 세 분이 장기를 두고 계셨습니다. 아이들이 인사를 하며 우르르 들어가자 처음에는 반겨주시더니 곧 "여기 왜 들어와? 밑(1층)으로 가 밑으로" 라고 말하시며 장기를 이어서 두셨습니다. 라희와 건이에게 초대장을 전달해드리자고 말했습니다. 원래 같으면 초대장을 드리며 조잘조잘 말도 잘 하던 아이들이 편지만 드리고 뒤로 물러섰습니다. 어르신들께서도 초대장을 쓱 보시더니 바로 옆에다 놓으셨습니다. 한 할아버지께서 "우리가 눈이 잘 안보여서 이런 글씨 못 알아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라희와 할아버지 옆에 서서 편지를 크게 읽어드리고 수박 수영장을 설명해드리며 8월 13일에 꼭 오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어르신께서도 라희만한 손자가 3명 있다고 말씀하시며 웃으며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이제야 우리가 생각했던 분위기가 조금 나는 것 같아서 수박 수영장 이야기를 더 했습니다. 아이들이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고, 어제도 회의 했고, 내일은 바자회 할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기특하다고 해주셨습니다. 내일 바자회에 꼭 오시겠다고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곧바로 1층으로 향했습니다. 역시나 들어서자마자 언제나 아이들을 크게 반겨주시던 이종화 어르신께서 아이들을 환영해주셨습니다. 이종화 어르신께서 은찬이와 유찬이를 보고 곧바로 새 친구임을 알아봐주셨습니다. 소개해드리자 유찬이를 꽉 껴안아주셨습니다. 건이는 안마의자에 앉아 계신 어르신께도 가서 인사를 드리고 춤도 췄습니다. 라희는 소파에 앉아 계신 어르신 옆에 앉아 해맑게 웃으며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어르신께서 저를 보시더니 라희 사이에 앉으라고 자리를 조그만하게 만들어주셔서 낑겨 앉아보았습니다. 수민이가 올 때까지 잠시 어르신들께 사랑을 받으며 쉬었습니다.
수민이를 만났습니다. 보라매 공원에서 물에 빠져 옷이 홀딱 젖은 채 뛰어 왔다고 합니다. 오랜만에 만난 수민이의 표정이 너무 밝고 신나 보였습니다. 아이들과도 오랜만에 만났는지 수민이 곁에 옹기종기 모여 다들 반겨주었습니다. 유찬이와 은찬이도 수민이와 아는 사이라서 서로 장난도 치며 인사했습니다. 다시 교회 교실로 돌아가서 오늘의 본격적인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희서 현서 라희가 가져온 바자회 물건의 가격을 정하는 일을 먼저 시작했습니다. "정리해서 적어줄 사람?" 라고 하니 다들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서연 선생님과 아이들이 가위바위보를 한 결과, 현서와 은찬이가 서기를 해주기로 했습니다. 둘 다 "아싸~!" 하며 좋아했습니다. 현서가 이런 기록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조금 수줍음이 있는 친구라 모든 역할에 먼저 나서서 하겠다고 하는 편은 아니지만, 서기를 뽑을 때는 항상 제일 먼저 손을 드는 것 같습니다. 현서의 꼼꼼하고,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고 잘 배려해주는 성격과 참 어울리는 역할입니다. 은찬이는 처음 회의에 참여하는 날임에도 서기를 꼭 하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은찬이가 기록한 종이를 보니 은찬이도 만만치 않은 꼼꼼이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과 정신없이 가격을 정하던 와중에도, 굉장히 집중해서 빠르고 정확하게 결과를 적어두었습니다.
희서와 현서네는 인형, 팔찌, 반지, 책, 팝잇, 필통 등 여러 물건을 가지고 왔습니다. 희서가 하나씩 꺼내 들며 아이들에게 적당한 가격을 물어보았습니다. "일단 이거는 내가 직접 바느질해서 만든 쿠션이야. 얼마 할래?" 아이들이 너도나도 가격을 외쳤습니다. 점점 목소리가 커지고 아이들의 눈빛도 바뀌더니 치열한 경매 현장이 된 것만 같았습니다. 이 가격을 해야 하는 이유도 다들 나름 일리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서로를 향해 이야기 하다가, 서로 대화가 안되면 “선생님!”하며 저희를 불렀는데, 동시에 여기 저기서 부르니 누구의 말을 먼저 들어주어야 하나 굉장히 정신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몇 번 반복되자, 희서가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며 "얘들아 이제부터 손 들고 내가 지목하면 말해"라고 카리스마 있게 상황을 정리했습니다. 아이들이 자리에 다시 앉고 정말 손을 들고 순서를 기다렸습니다. "이거는 솔직히 1,500원" "나도 1,500원" "난 2,000원" "난 1,500원" "난 2,000원" "왜 다들 가격이 내려가는거야? 4,000원은 되야지!" "난 이거 2,000원은 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럼 천오백 원과 이천 원 중에 고르자. 천오백 원 손."
희서의 카리스마가 없었다면, 가격을 끝까지 정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와중에도 현서와 함께 원래 얼마 주고 산 물건인지, 어떤 메리트가 있는 물건인지 자세히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더 비싸게 팔고 싶은 물건이었어도 투표를 통해 낮은 금액이 나왔다면 미련없이 다음 물건으로 넘어가는 모습도 멋있었습니다.
수민이는 바자회에 어울리는 굉장히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가격을 잘 내놓았습니다. 대체로 가격을 낮추는 쪽으로 의견을 냈는데,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생각하는지 정확히 표현하여 의견이 달랐던 아이들이 설득되기도 했습니다. 한편 은찬이는 물건의 히스토리를 열심히 듣고 그것을 반영하여 가격을 제시했습니다. 사용감이 조금 있어보여도 원래보다 개수가 더 들어있다던가, 핸드메이드라던가, 한정판이라던가. 그래서 수민이보다는 아주 조금은 더 높은 금액에 손을 들었습니다. 두 열정적인 친구들의 생각의 차이를 보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라희는 보드게임, 퍼즐, 동화책, 모자 등 어렸을 때 쓰던 물건을 가져왔습니다. 새 제품도 몇 개 있었습니다. 라희는 희서네가 가져온 장난감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선생님, 저 이거 몰래 예약 걸어뒀다가 내일 제일 먼저 가져가면 안돼요?" 라고 인형을 꼭 껴안으며 귓속말로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가격을 정할 때는, 다른 언니 오빠들과는 많이 다른 생각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가격을 내리냐 마냐 할 때 큰 금액을 제시하기도 하고, 가격을 올리냐 마냐 할 때는 500원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재투표를 할 때 라희가 제시한 금액이 나오지 않아 라희가 황당해하기도 했는데, 계속 "왜 그러는거야?" 라고 물어봐서 다들 웃었습니다. 라희 눈엔 귀여운 인형은 때가 타도 영원히 귀여워 보이나 봅니다. 라희가 내일 바자회 현장에서 직접 가져온 물건들이 어떻게 팔리는지 많이 잘 확인하며 바자회를 재미있게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또 수박 수영장 당일 역할과 게임 팀을 정했습니다. 우선 아이들이 막내를 팀 대표로 두자고 이야기 했습니다. 청팀 대표 라희, 백팀 대표 유찬이로 나누었고, 가위바위보를 해서 한명씩 데려갔습니다. 사회자도 아이들이 단체로 하고 싶다고 했다가, 갑자기 단체로 안한다고도 했는데, 희서에게 게임 사회자의 막중한 역할에 대해 설명해주니 "아, 그럼 제가 할게요."라고 했습니다. 그걸 본 수민이가 다시 "저도 사회자 하고싶어요!"라고 해서 소리동화 사회를 현서와 수민이가 같이 보기로 했습니다.
[청팀: 라희, 수민, 은찬] [백팀: 유찬, 현서, 건이] [게임 사회자: 희서] [소리동화 사회자: 현서, 수민]
마지막으로 수료식 때 공개할 마니또를 뽑았습니다. 은찬이 유찬이가 있어 어떻게 해야하나 했는데, 라희가 마니또 뽑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어서 다같이 진행했습니다. 쪽지를 만들어 하나씩 뽑게 만들고, 쪽지에 적힌 친구에게 남은 활동 동안 잘 지켜보고 칭찬할 부분을 편지에 적어 수료식 날 전해주기로 했습니다.
[마니또 결과: 라희 -> 유찬, 유찬 -> 은찬, 은찬, 희서, 희서 -> 수민, 수민 -> 현서, 현서 -> 건, 건 -> 라희]
회의가 끝나고 아이들과 새들 놀이터에 가서 놀았습니다. 현서가 "선생님도 가는거예요?"라고 물어보며 그렇다는 말에 웃었습니다. 드디어 아이들과 노는 시간을 가지게 되어 좋았습니다. 놀이터에 있던 친구들과도 같이 경찰과 도둑을 했습니다. 덥긴 했지만 아이들이 너무 즐겁게 놀아서 재미있었습니다. 또 다른 동네 아이들에게도 바자회에 꼭 오라고 새끼 손가락을 걸었습니다. 꼭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3. 실습 일정 평가
1) 배운 점
오늘 복지요결 시간에 '월평빌라 사례' 중 '실수·실패할 권리'를 함께 읽었습니다. 사회사업가의 기대가 영향을 미친다, 나(사회사업가)의 잣대로 실수인지 아닌지를 파악하지 말 것, 사회사업가의 계획대로, 생각대로, 판단대로 결정하지 말 것. '당신의 기대가 아이의 발달에 심각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로 인해 그가 그 기술을 습득하지 못하게 될 것이 틀림 없다.' - 「뇌성마비 아동의 이해」
작년에 세 달 정도 베이비시팅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이를 다치지 않게 하는 것과 오늘 아이가 해야 할 공부를 빨리 끝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이 있었습니다. 이런 건 이렇게 해야 하는데 아이들이 모르겠다, 못 할 것인다, 실수할 것이다, 그러니 내가 해줘야겠다는 생각들이 자주 들었습니다. 그래서 "안돼, 안돼. 이리 줘봐."라는 말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아이가 커다란 우유를 물 컵에 따르려는데 불안해보여서 또 다시 "아냐, 이리 줘봐"라고 말하며 대신 따라주었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표정이 시무룩했습니다. 그 때 제 모습을 성찰하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더 즐겁고 더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데, 실수해도 치우면 되고 스스로 배우면 되는건데, 그 기회들을 막으려는 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뒤로는 조금 열린 태도를 가지고 마음을 놓고 아이를 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알파벳 철자를 잘못 쓰더라도, 지우개 가루를 카펫에 뿌리며 그림을 그려도, 바이올린 공연곡이 아닌 다른 곡만 연습하더라도 최대한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아동기획단 활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만 하게끔 냅두자니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어제도 초대장을 작성하는데, '안녕하세요' 쓰고 놀고 '할아버지' 쓰고 놀고, 알록달록 꾸미면 좋겠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직접 색연필을 들고 같이 꾸미기도 했고, 편지지를 톡톡 두드리며 집중하자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마음이 조급했던 것 같습니다.
당사자에 대한 기대를 져버리거나 혹은 사업의 성과에 대해 집착하게 되면, 사회사업을 통해 당사자에게 자존감이 아니라 자기 낙인을 심어주는 일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합니다. 가능성을 더 기대해주고 믿고 맡기는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안돼, 이렇게 해야해.' 대신 '실패 하면 어때, 버거우면 내가 옆에서 도와줄게.'라고 말해야겠습니다.
2) 보완점
- 정하고 알려주지 않고 아이들의 의견을 계속 물어보며 결정하도록 하기
-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컨디션 잘 체크하며 활동 진행하기
- 건이가 경로당에 다녀온 후 컨디션이 좋지 않아보였습니다. 건이가 더위에 약해 기력이 떨어졌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과 열심히 가격을 정하다가도 건이가 계속 화장실이나 물 마시러 가겠다고 나갔는데, 한번은 오랜 시간 돌아오지 않아 유찬이와 건이를 찾으러 나갔습니다. 알고 보니 옆 방에 혼자 앉아있었습니다. 워낙 정신없이 바자회 준비를 하고 있었어서 잠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다음에도 이런 상황이 오면 아이 옆에 다가가서 더 세심하게 챙겨줘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그러지 못해서 건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3) 슈퍼비전 요청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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