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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第 十 章 英雄과 英雄 깊은 어둠 속에 잠긴 산.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수림 사이로 은가루를 뿌려 놓은 듯한 달빛이 쏟아져 내렸다. 사위는 쥐죽은듯이 조용했고 이따금씩 풀벌레 소리만 들려올 뿐이다. 이때 수림 속 허공 중에 나타나는 네 개의 점이 있었다. 슈슈슈슈슈! 무서운 속도로 날아오는 네 개의 점은 점차 사람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들이 허연 대낮에 저잣거리에 나타났다면, 사람들은 우선 피하고 보았을 것이다. 하나같이 흉측한 얼굴에, 커다란 솥뚜껑을 양손에 움켜쥔 꼽추, 쌍검을 양 옆구리에 찬 맹인, 검은 관을 등에 멘 외다리, 톱날이 박혀 있는 기다란 쇠줄을 하나뿐인 오른팔에 칭칭 휘감은 외팔이. 모두가 하나같이 불구의 몸에 괴상한 무기를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모습이 또한 지독한 사기(邪氣)를 동시에 뿜어내고 있었다. 이들은 바로 흑도(黑道)에서도 흉명이 자자한 잔결사흉(殘缺四凶)이었다. 꼽추는 바로 원반신타(圓槃身駝)였고, 맹인은 쌍검자(雙劍者), 관을 맨 외다리는 관노(棺老), 그리고 외팔이는 일결수(一決手)였다. 이들의 잔혹함은 동류(同類)인 흑도인들도 고개를 내저을 정도로 흉폭했다. 잔결사흉은 허공을 평지처럼 밟으며 전속으로 날아왔다. 불구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펼치는 경공술은 초절정의 상승 경공이었다. 처처처척! 이윽고 잔결사흉은 가볍게 지면에 내려섰다. 원반신타는 눈알을 굴리며 주위를 살폈다. "이 정도 왔으면 보일 때도 됐는데……." 주위를 세심히 살펴보던 원반신타가 일순 흠칫했다. 저쪽 수림 속 공지에 누군가 모닥불을 피워놓은 것이 눈에 띈 것이다. "저쪽이다!" 파파파파팟! 잔결사흉의 신형이 호선을 그리며 일제히 수림 위로 날아올랐다. 부챗살처럼 사방으로 흩어지며 허공에서 회전을 한 잔결사흉은 모닥불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제각기 자리를 잡고 내려섰다. 원반신타는 나뭇가지에, 쌍검자는 수풀더미 위에, 외다리 관노는 뾰족한 바위 위에 앉았고 일결수는 지면에 착지했다. 그들은 은연중 모닥불을 중심으로 사방을 점한 상태였다. 모닥불 앞에는 위지강이 무심한 표정으로 불을 쬐고 앉아 있었다. 그는 잔결사흉의 출현에도 아랑곳없이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지그시 응시하고 있었다. 일결수가 위지강을 가리키며 원반신타를 보고 말했다. "어떻게 된 거야? 점박이 황가 녀석이 말한 놈이 저 애송이가 맞긴 맞는 건가?" 원반신타가 음침한 눈빛으로 위지강을 내려다보았다. "복장이나 인상착의로 봐선 틀림없어." 관노가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음산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이건 좀 뜻밖이군! 소금가마니 같은 그 황가 놈이 선뜻 십만 냥이란 거금을 내놓기에 염라대왕의 목이라도 따오라는 줄 알았더니만 이건 애송이잖아!"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관노가 검은 관과 함께 수직강하 하였다. 쾅! 가공할 속도로 내리 찍힌 관. 산산이 부서져야 하건만, 관은 땅속에 삼분지 일쯤 박혔을 뿐 그 형태는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있던 것처럼 아무런 힘도 받지 않은 듯했다. 관노의 가공할 내공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그야말로 살벌한 기세로 내려선 관노, 뒤를 이어 한 명씩 위지강 앞에 내려선 잔결사흉이 기세 등등하게 물었다. "한마디로 대답해라, 애송이!" 관을 한 손으로 짚은 채로 위지강을 바라보며 소리치는 관노의 음성은 스산하기 그지없었다. "스스로 이 속에 들어갈 테냐? 아니면 노부가 도와줄까?" "아직 관에 들어갈 나이는 아니라 생각하오만!" 위지강은 무심한 음성으로 말했다. "뭐?" 관노의 반문에 위지강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나보다 오래 산 당신들도 들어가지 않은 곳을 내가 어찌 들어갈 수 있겠소?" "호, 그으래?" 일결수가 쇠줄이 칭칭 휘감긴 손을 맹렬히 내뻗으면서 싸늘하게 회쳤다. "그렇다면 나도 거들어주어야겠구먼." 촤촤촤촤촤! 일결수의 팔뚝에서 풀어져 나온 톱날 달린 쇠줄이 허공을 휘돌면서 위지강을 향해 뱀처럼 날아갔다. 츄아아아악! 휘리리리릭! 쇠줄은 미동도 하지 않는 위지강의 몸을 사정없이 휘어 감았다. 부아아악! 일결수는 쇠줄을 맹렬히 잡아당겼다.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택한 대가다, 어린놈!" 그러나 쇠줄을 잡아당기며 회심을 미소를 짓던 일결수의 표정이 이내 굳어졌다. 퓨류류류류! 무서운 속도로 위지강의 신형이 선풍처럼 휘돌더니 위지강의 몸에 감겼던 쇠줄은 이미 풀어졌고, 세차게 퉁겨진 쇠줄이 이내 자신을 향해 덮쳐오고 있었던 것이다. 일결수는 두 눈을 부릅뜬 채 기겁을 했다. "이건……!" 차르륵! 일결수가 쇠줄을 피하기가 무섭게, 어느새 천룡신검을 뽑아든 위지강이 눈을 부릅뜬 일결수의 머리 위를 덮쳤다. 번쩍! 눈부시게 작렬하는 검광에 원반신타, 쌍검자, 관노는 대경실색하고 말았다. 그런 그들의 눈에 엿가락처럼 늘어진 쇠줄을 움켜쥔 채 눈을 부릅뜨고 서 있는 일결수와 검을 비스듬히 내리그은 자세로 서 있는 위지강이 보였다. 툭! 일결수의 신형이 앞뒤로 흔들리며 손에든 쇠줄이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의 신형은 힘없이 앞으로 기울어졌다. "이런… 말도 안돼는……." 일결수는 앞으로 푹 고꾸라져 버렸다. 눈을 부릅뜬 채 엎어져 죽어 있는 일결수와 검을 늘어뜨린 채 우뚝 서 있는 위지강을 번갈아 쳐다보며 원반신타는 불신과 경악이 뒤범벅이 된 음성을 토했다. "일결수가 당했단 말인가?" 관노 또한 불신이 가득한 음성으로 말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저따위 애송이한테 당해?" 위지강은 그들을 바라보며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누구든 나를 건드리면 이렇게 될 거요." 원반신타가 살벌한 눈빛으로 위지강을 쏘아보았다. "어쩐지 황가 놈이 거금을 선뜻 내놓더니 제법 재간이 있는 놈이로구나! 그렇다면 인정사정 볼 것 없지." 그는 양손에 들고 있던 솥뚜껑같이 생긴 원반을 하나로 합쳤다. 그러자 콰앙! 하는 굉음이 울리는 가운데 원반에서 칼날보다 날카로운 톱날이 불쑥 튀어나왔다. "뒈져라, 어린놈!" 파앗! 폭갈을 내지르며 원반신타가 위지강을 향해 쏘아져왔다. 그와 때를 같이해 쌍검자도 쌍검을 치켜든 채 허공에서 위지강을 향해 내리 덮쳤다. 잔결사흉의 공세가 흉살스럽게 위지강을 향해 쇄도해 드는데, 위지강은 차가운 시선으로 그들의 무지막지한 공세를 우뚝 선 채로 지켜보았다. 그의 뇌리에 할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랐다. ― 열 명이든 백 명이든 그 자리에서 모조리 죽일 수 없을 바에는 어떠한 고통과 시련도 참아야한다. 안 그러면 우리는 죽어! 검을 잡은 위지강의 손에 강한 힘이 가해졌다. '한 명도 살려둘 수 없다. 모조리 죽인다!' 스스스슷! 이어 두 발을 이리저리 움직여 잔결사흉의 간악한 공세를 피해내는데, 그 모습이 춤을 추듯 유연하였다. 유연하면서도 빠름은 가히 사람의 눈이 쫓아가기 힘들 만큼의 속도였다. 잔결사흉의 눈에도 위지강의 움직임이 정확히 보이지 않았다. 맹인인 쌍검자는 위지강의 가공할 살기를 제일 먼저 몸으로 느꼈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앉아서 죽는다. 선제공격을 하는 수밖에.' 슈아아악! 흐릿하게 흐려진 위지강의 환영을 쌍검자의 쌍검이 연속으로 내리찍었다. 콰콰콰콰쾅! 그러나 쌍검이 내리 찍히는 속도는 위지강을 따라잡지 못했다. 쌍검이 강타한 땅거죽이 폭발하듯 뒤집혀졌다. "이놈이……?" 쌍검자는 자신의 몇 차례의 공격이 빗나가자 자욱한 낙진 속에서 대경하고 말았다. 풍차처럼 허공을 휘돌면서 허공으로 솟아오른 위지강의 발 밑으로 원반신타의 회전톱날이 파공음을 내며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 위지강은 솟아오른 여세를 몰아 옆으로 비스듬히 날아 나뭇가지 위에 사뿐히 내려섰다. 원반신타는 폭갈을 내지르며 회전톱날 원반을 위지강에게 힘차게 날렸다. 섬뜩한 파공음과 함께 원반은 위지강을 향해 무섭게 날아갔다. "신타(神駝)의 일월쌍륜(日月雙輪)은 대라신선도 피하지 못한다." 쩌쩌쩡! 위지강을 향해 날아오던 일월쌍륜이 돌연 두 개로 분리되어 무서운 속도로 위지강을 향해 쇄도했다. 순간 위지강이 나뭇가지를 박차고 허공으로 치솟았다. 슈카칵! 일월쌍륜이 스친 나무의 중간 부분이 두 군데로 나눠지며 뭉텅 베어졌다. 그러자 중심을 잃은 나무둥지는 우지직거리며 쓰러져 버렸다. 패애애애앵! 허공에서 신형을 뒤집어 일월쌍륜의 공격을 간신히 피한 위지강. 허나, 일월쌍륜은 뒤에 흡사 눈이 달린 것처럼 귀청이 찢어질 듯한 파공음을 내며 방향을 바꾸어 위지강을 향해 날아가는 것이었다. 위지강은 몸을 삼백육십도로 회전하면서 손에 잡고 있던 검으로 진력을 다해 일월쌍륜을 내리쳤다. 카캉! 일월쌍륜과 검이 부딪히자 불꽃이 튀었다. 위지강이 후려친 검에 일월쌍륜 중 하나가 퉁겨져 나갔다. 이어진 위지강의 동작은 실로 원반신타도 믿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쿠아아아아! 머리를 축으로 빙글 몸을 뒤집으며 돌아선 위지강은 회전하는 원반 위에 척! 올라섰다. 그의 두 다리는 날카로운 돌기가 회전하고 있는 원반 위에 올려졌으나 아무런 부상을 입지 않았을 뿐더러, 원반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원반신타와 쌍검자를 향해 쏘아져 갔다. "저… 저놈이……!" 위지강을 바라보던 원반신타와 쌍검자는 질겁을 했다. 원반 위에서 검을 빼어든 위지강은 검을 두 사람에게 겨누었다. 파앗! 원반을 박차고 두 사람을 향해 솟아오르는 그의 입에서 천둥과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천마대구식 제일초 용형뢰!" 쩌쩡쩌쩡! 위지강의 검에서 눈부신 광채가 작렬했다. 순간 수백 개의 검영이 부챗살 형태로 폭발하듯 퍼져 나왔다. 콰아아아아! 원반신타와 쌍검자는 눈을 있는 대로 부릅뜨고 아연실색하며 일제히 부르짖었다. "맙소사, 저건 바로……!" 그러나 그들은 말을 채 끝내지 못했다. 쿠콰콰콰쾅! 위지강이 뿌려낸 검광에 원반신타와 쌍검자의 전신이 벌집처럼 터지면서 퉁겨져 나갔다. 그들은 피를 뿌리며 수림 쪽으로 날아갔다. 우지직! 우직! 두 사람의 몸에 부딪힌 나무들이 거석에 부딪힌 것같이 무참히 꺾였다. 쾅! 원반신타가 바위에 부딪혀 튀어 오르는 돌 조각과 함께 나가떨어지고 쌍검자도 마찬가지로 처참한 모습으로 땅바닥으로 떨어져 곤두박질쳤다. 허공에서 한바퀴 회전을 한 뒤 가볍게 지면에 내려서는 위지강을 원반신타는 숨이 끊어지기 직전 바라보았다. 원반신타의 만신창이가 된 몸이 부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처… 천마… 대구식…….!" 쌍검자의 입에서도 탄식 소리가 바람소리처럼 새어 나왔다. "황가 놈… 그… 찢어 죽일……." 허나, 그 둘은 이내 축 늘어졌다. 숨이 끊어진 것이다. 지금까지 이들의 격전을 믿어지지 않는 듯 지켜보고 있던 관노가 망연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천마대구식……!" 그의 눈에 멀찌감치 등을 보이고 서 있는 위지강이 보였다. 이 순간을 놓칠 관노가 아니었다. 그의 눈이 희번덕였다. "그렇다면 위지백의 자식놈이 지금 내 눈앞에 있다는 얘기 아닌가? 천마비록을 차지할 수 있는 기회다." 그는 이빨을 부드득! 갈았다. "이제 보니 그래서 황가 놈이 거액을 제시했군!" 이때 고개만 약간 돌린 위지강이 그의 중얼거림을 잘랐다. "언제까지 구경만 하고 있을 건가?" 관노는 야릇한 흥분에 휩싸였다. "흐흐흐. 요컨대, 잘만하면 천마비록이 내 손에 굴러들어 올 수도 있겠군그래." 그는 앞에 관을 박아둔 채 두 손을 합장했다. "그렇다면 이런 기회를 놓칠 내가 아니지!" 우우우우웅! 그의 몸에서 음산한 기운이 파동 쳤다. 동시에 땅에 꽈악 박혀 있던 관도 진동을 하기 시작했다. 위지강은 신형을 천천히 돌려세웠다. "무슨 요사한 짓을 하려는지 몰라도 되도록 단번에 지닌 재간을 모두 발휘하는 게 좋을 거요." 우우우우웅! 관노는 더욱 강한 기운을 전신으로 뿜어내며 음산무비하게 말했다. "어린놈이 몇 수 재간을 믿고 하늘 높은 줄 모르는구나!" 그는 양손을 떠받쳐 뭔가 강력하게 끌어올리듯 무서운 힘을 쏟았다. "오냐, 단번에 네놈의 숨통을 끊어주마." 푸확! 관이 지면에서 뽑혀지며 흙가루와 함께 허공으로 솟구쳤다. 허공에서 빙글 한바퀴 돈 흑관은 척 수평으로 뉘어졌다. 관노는 양손을 앞으로 맹렬히 내뻗었다. "용기 있으면 받아봐라, 애송이!" 후아아아앙! 관은 풍차처럼 맹렬하게 휘돌면서 위지강을 향해 빠르게 날아왔다. 그러나 위지강의 시선은 무심하게 그 관을 바라볼 뿐이었다. 다음 위지강은 검을 중단세로 겨누었다. "당신들은 처음부터 나를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소." 팟! 그의 신형이 지면을 박차고 솟아올랐다. 그대로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흑관을 향해 검을 마주쳐갔다. 관노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번졌다. 그의 뜻대로 위지강이 움직여준 것이다. '끝났어! 천마비록은 내 차지다.' 그의 얼굴에 떠올랐던 흐뭇한 미소가 채 가시기도 전에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패애애애앵! 돌연 어디선가 회전섭선 하나가 비쾌한 속도로 날아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낭랑한 음성이 이어졌다. "함정이오! 멀찌감치 물러나시오." 위지강은 뒤쪽 지척지간에서 들려오는 파공음에 흠칫 눈빛을 빛냈다. '빠르다!' 순간 그의 오른발이 왼 발등을 찍었다. 퓨퓨퓨퓨퓨! 그 힘을 빌어 위지강의 신형은 휘돌아가면서 허공으로 잽싸게 솟구쳤다. 파앙! 회전하는 관과 부딪친 섭선이 퉁겨져 올랐다. 그러나 섭선을 날려보낸 인물의 내공은 가공스러웠다. 섭선에 부딪친 관이 방향을 정반대로 바꾸어 되돌아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쿠쿠쿠쿠쿠쿠! "헉……!" 튀어 올라 날아오는 자신의 관을 쳐다보며 관노는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그는 다급히 외다리로 지면을 박차며 허공으로 솟구쳤다. "아… 안돼!" 그러나 때는 이미 늦고 말았다. 무섭게 회전하며 날아온 관이 그의 가슴을 사정없이 강타한 것이다. 쾅! 콰콰콰쾅!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관과 관노의 몸통은 산산조각이 난 채 허공 중에 흩뿌려졌다. 순간 매캐한 화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땅에 내려서면서 그 광경을 돌아보는 위지강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관 속에 화약이……?' 후두두두둑, 후두둑! 허공 가득 부서진 관 조각과 관노의 육편들이 소나기처럼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휘류류류류! 회전하며 날아온 섭선은 그제야 주인의 손으로 되돌아왔다. 날아온 섭선을 여인보다 더 희고 고운 손으로 움켜잡은 인물은 바로 다름아닌 남궁사였다. 그는 얼굴 가득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남궁사를 쳐다보는 위지강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저 친구는 낮에 배에서 본 자가 아닌가!' 남궁사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위지강에게 다가왔다. "형씨는 강호가 초행인 모양이구려. 잔결사흉의 첫째인 관노가 관 속에 자전뇌구(紫電雷球)를 담고 다니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무림의 공공연한 비밀이오." 위지강은 빙긋 웃으며 포권을 해보였다. "초면에 신세를 졌소." 남궁사 역시 포권을 마주했다. "남궁사라 하오. 외람되게 끼여든 것을 용서하시오." "지나친 겸손이오. 위지강이라 하외다." 남궁사는 뒤쪽 나무 밑에 놓여 있는 두 개의 술병을 가리켰다. "행선지가 같아 보여 길동무나 삼을까 했는데, 저놈의 술을 사느라 그만 형씨를 놓쳐버렸지 뭡니까?" 그는 위지강을 바라보며 우호적인 미소를 띠었다. "웃돈까지 얹어주고 어렵게 산 술인데 같이 한잔하지 않겠소?" 남궁사의 말에 위지강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있다면 그건 공술을 마다하는 사람일 거요." "하하하하!" "핫하하하!" 두 사람은 유쾌하게 동시에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밤하늘엔 보석처럼 영롱한 별들이 무수히 빛나고 있었고 만월에 가까운 달은 월광을 산하에 쏟아내었다. ― 명조(明朝) 십오년(十五年) 오월(五月) 초아흐레(九日). 무림의 천하제일 보좌를 놓고 네 명의 웅주(雄主)가 숙명처럼 대치해 있는 난세의 절정 그 한가운데……. 훗날 하나의 전설이 되어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게 되고, 정사(正邪)를 초월한 시대 최고의 양대 산맥으로 무림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게 되는 두 거인. 그 첫번째 운명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절벽 밑으로는 맑은 강물이 도도히 흐르고 있었다. 태양 빛이 반사되는 강의 수면은 매우 눈이 부셨다. 드넓은 강 건너 저쪽, 희미하게나마 거대한 고을의 윤곽이 보였다. 지금 절벽 위에선 위지강과 남궁사가 강 건너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궁사가 강 건너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강을 건너 백여 리 가량 가면 바로 북경이오." 위지강은 말없이 강물을 바라보았다. 남궁사 역시 도도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조용한 음성을 발했다. "북경은 천하의 중심이오. 지금은 무림조차 북경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소이다. 북파무림맹이 북경에 본거지를 두고 있기 때문이지요." 잠자코 남궁사의 설명을 듣고 있던 위지강이 문득 남궁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참, 남궁형은 아내를 맞이하기 위해 북경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었소?" 위지강의 질문에 남궁사는 멋쩍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말도 마시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지난 십여 개월 동안 가슴 졸인 걸 생각하면 지금도 머리가 빠개질 지경이외다." 남궁사는 다소 과장된 몸짓으로 말했다. 두 사람은 지난밤 날이 새도록 대작을 하며 흉금 없는 대화를 가졌었다. 그래서 서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이다. "헌데, 위형은 무슨 일로 북경에 가시오?" 이번에는 위지강이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다소 잠시 망설이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실은 나도 만나볼 여자가 있어서 가오." "여자? 사랑하는 여자요?" 위지강은 우수 어린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내 인생의 전부나 다름없는 여자요. 나를 이끄는 그 여자가 없었다면 난 도중에 무너졌을지도 모르오." 남궁사는 대단히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 여자도 위형을 사랑하고 있소?" 위지강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최소한 나보다 덜하진 않을 거라고 믿고 있소." 남궁사는 위지강의 어깨를 툭 쳤다. "하긴 이렇게 잘생기고 멋진 남자를 사랑하지 않을 여자가 어디 있겠소." 그는 다시 한 번 위지강의 어깨를 쳤다. "아무튼 볼일이 끝나면 꼭 혼인식에 들러주시오. 여자분과 함께라면 더욱 환영이오." 위지강은 남궁사의 요청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도록 해보겠소." 이윽고 남궁사는 포권을 하며 작별을 고했다. "기다리고 있겠소. 그럼……." 위지강도 마주 포권을 해보였다. "덕분에 즐거웠소." 미소를 머금고 바라보는 위지강을 뒤로하고 남궁사는 발걸음을 옮겼다. 서너 걸음 앞으로 나아가던 남궁사는 무언가 갑자기 생각난 듯 우뚝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보기 좋은 웃음을 안면 가득 띠며 위지강에게 물었다. "무정유는 누구에게 배우셨소? 우리 또래에 그 곡을 알고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은데 말이오." 위지강은 남궁사의 질문에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무정유를 아시오?" "알다마다!" 그는 자신의 가슴을 쳐 보였다. "왕년의 전설적인 명기로 이름을 날렸던 추서옥이 가장 즐겨 불렀던 노래를 어찌 나 같은 백수건달이 모를 수 있겠소?" 말을 마친 그는 다시 뒤돌아 서서 손을 흔들었다. "자, 그럼 먼저 가겠소." 위지강은 저만치 멀어지는 남궁사를 우울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품속에서 피리를 꺼내들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옥소였다. 위지강은 손가락으로 옥소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어머니가 가장 즐겨 부르던 노래가 무정유였다고……?' 그러나 그의 뇌리에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하나도 없었다. 위지강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우울한 미소를 머금은 채 옥소를 쓰다듬고 있었다. * * * 둥둥둥둥둥! 웅장한 북소리가 거리를 온통 휘감았다. 여섯 마리의 말들이 이끄는 수레의 중간에 커다란 북이 놓여 있었다. 장정 서넛이 팔을 벌려야 겨우 둘러쌀 수 있을 정도로 대단히 큰북이었다. 그 큰북을 좌우 양쪽에서 건장한 체격의 사내 둘이 두들겨대고 있었다. 수레의 뒤쪽으로는 수십 개의 화려한 깃발을 나부끼며 질서 있게 뒤따르는 수십 명의 깃발대가 선두였고, 그들 뒤쪽에는 무장을 한 수십 필의 기마대의 호위를 받으며 위풍당당하게 달려오는 엄청나게 크고 화려한 팔두마차가 있었다. 둥둥둥둥둥! 고을의 한복판을 통과하는 이 화려하고 용맹스런 행렬을 보기 위해 길 양쪽에는 수많은 구경꾼들이 늘어서 있었다. ― 황하칠십이수로맹(黃河七十二水路盟). 구경꾼들의 눈에 무엇보다 눈에 띈 것은 펄럭이는 깃발들 중 바로 이런 글귀가 새겨진 노란색 깃발이었다. 노란 바탕에 검은 색으로 새겨진 글귀는 매우 웅후한 느낌을 주었다. 고을을 통과하는 행렬을 보면서 구경꾼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쑥덕거렸다. "황하칠십이수로맹의 행렬인가?" "대륙의 젖줄인 황하일대를 관장하는 패주답게 정말 위풍당당하군그래!" 지나가는 팔두마차를 보면서 또 다른 사람들이 떠들어댔다. "헌데, 저놈의 마차는 뭐 저렇게 화려한 거야? 도대체 눈이 부셔서 못 봐주겠구먼!" "이런 멍청이! 아무리 강호 초출이기로서니 나후공공(那侯空空)의 비천거(飛天車)도 못 알아본단 말인가?" 계속 떠들어대는 사내들의 뒤쪽에 죽립을 깊숙이 눌러쓴 위지강의 모습이 보였다. 그도 이 화려한 행렬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후공공이라면 여간해선 강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해서 장막 속의 거인으로 통하는 황하칠십이수로맹의 총맹주 말인가?" "혹자는 물위에 군림하는 또 하나의 황제라고 하지!" 군마의 행렬은 이미 고을을 벗어나 사라지고 있었다. "들리는 말로는 총맹주가 여자라는 말도 있던데 사실일까?"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가서 확인해보지 그래?" "내가 미쳤냐? 그런 사소한 일에 목숨까지 걸게!" "그럼 주둥이 닥치고 있어. 우리 같은 피라미는 그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게 만수무강의 지름길이라구!" "허기사 자네의 말이 맞는 말이지." 두두두두두! 사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번에는 마을 입구에 자욱한 먼지구름이 일었다. 그와 함께 지축을 뒤흔드는 말발굽 소리가 점차 다가왔다. 빠르게 다가오는 말발굽 소리를 들으며 구경꾼들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두두두두두! 먼지는 점점 가까워졌다. 그러나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달려오고 있는 것은 말들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눈을 크게 뜬 채 의아해했다. "이봐, 저기 몰려오고 있는 것들이 뭔지 알아보겠나?" "글쎄, 뭔가 떼거지로 오고 있는 건 틀림없는데……." 여기저기서 구경꾼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의 뒤에 서 있던 위지강은 이미 그들의 정체를 간파하고 있었다. "보나마나 저건 말들이 몰려오고 있는 거라고! 벌써 지축을 뒤흔드는 소리를 들으면 모르겠나?" "미친놈들, 벌건 대낮에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을 저런 식으로 말을 몰고 오면……." 말을 하던 사내가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헉!" 그는 넋이 나간 듯이 중얼거리며 전면을 바라보았다. 두두두두두두! 지축을 뒤흔들며 육중한 기세로 달려온 것은 말들이 아닌 우람한 체격의 거한들이었다. 그들은 체구가 얼마나 큰지 팔뚝 하나가 보통 어린아이의 허리 굵기만 했다. 더구나 발의 크기도 보통사람의 두 배는 됨직했다. 키는 무려 구척에 달했고 두 눈에선 연신 신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들의 뒤쪽으론 이십여 명의 거한들이 두 줄로 나뉘어서 폭풍처럼 치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바로 뒤에는 거대한 가마를 짊어진 십여 명의 또 다른 거한들이 맹렬히 달려오고 있었다. 가마는 검은빛이 반지르르 흐르는 만년금강철(萬年金剛鐵)로 만들어진 가마였다. 콰두두두두두! 어마어마한 기세로 치달려오는 가마에는 산더미 같은 체격의 중년인이 태산처럼 버티고 앉아 있었다. 그의 모습은 한마디로 작은 산이었다. 그 모습에 구경꾼들은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맙소사……!" "말도 아닌 사람들이 달려오는 소리에 지축이 흔들릴 지경이란 말인가?" 콰콰콰콰콰! 어마어마한 기세로 치달려온 행렬은 이미 구경꾼들의 지척지간에 이르렀다. 구경꾼들은 기겁을 해서 메뚜기처럼 사방으로 튀었다. "위험하다, 피해랏!" "짓밟히면 뼈도 못 추린다. 빨리 피해!" 엄청난 굉음과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길 한복판을 폭풍처럼 치달려 가는 거한들과 가마의 중년인을 사람들은 경이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때 그들 중 누군가가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철산철왕가의 무적금강대(無敵金剛隊)와 가주인 관후겸(關厚兼)이다!" "뭐 철산철왕가? 그들이 타고난 신력을 바탕으로 패천의 무공을 수련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저렇게까지 가공할 위세일 줄은 몰랐는걸." 쿠쿠쿠쿠쿠쿠! 지축을 흔들며 맹렬히 치달려온 철산철왕가의 행렬은 순식간에 마을을 지나쳐 자욱한 먼지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사람들은 망연한 표정으로 그들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누군가 거한들이 달려가면서 남겨놓은 지면의 깊숙한 발자국들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이건 마치 한차례 폭풍이 휩쓸고 간 자리 같군그래." "도대체가 괴물들이라고 표현할 수밖에는 없지 않은가!" 이때 위지강이 서 있는 곳의 구경꾼들 앞에서 그럴듯한 풍채의 무림인들이 의미심장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조금 전에는 황하칠십이수로맹이 소주 바닥을 뒤집고 가더니 이젠 철산철왕가인가?" "그들뿐만이 아니야. 구사보(九獅堡), 비응방(飛鷹 ), 십혈루(十血樓), 혈곡(血谷) 등등 지난 며칠 사이에 이곳을 통과한 내로라하는 문파의 숫자를 합하면 벌써 백여 개도 넘었을 것이네." 위지강은 이들의 대화를 뒤로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들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거기다 이름 깨나 날리는 무림의 거물명숙들은 모조리 줄지어 나타나고 있으니 누가 보면 북경에서 무림대회라도 벌어진 줄 알겠군." "그럴 수밖에, 천하사세의 하나인 북파무림맹 성주의 딸과 남궁세가의 후계자가 혼례를 올린다는데 뉘라서 감히 모른 척할 수 있겠나?" 순간 걸음을 옮기던 위지강의 신형이 흠칫하더니 벼락을 맞은 듯 우뚝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북파무림맹의 딸이라면 설마……?' 길 양편에 늘어서 있던 구경꾼들은 더 이상의 볼거리가 없어지자 하나 둘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위지강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멈추어 선 채 두 눈이 커다랗게 확대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위지강을 뒤로한 채 계속 이야기꽃을 피웠다. "소문에 의하면 남궁세가 쪽에서 거의 구걸하다시피 해서 이루어진 혼사라며?" "여자 쪽에서 질기게 버티는 통에 단단히 애를 먹은 모양이야. 나중에 남궁세가의 문주가 직접 적극적으로 개입한 덕분에 혼담이 성사되긴 했다는군." "말하자면 강호제일의 개망나니가 제대로 임자를 만났다는 얘긴데……. 남궁세가의 문주까지 끌어낼 정도면 정말 대단한 여자로군!" "얼굴도 천하일색이라지 아마!" "그나저나 사마성주는 딸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서 불쑥 나타난 거야?" "없던 딸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걸 봐선 다른 배에서 만들어진 서출이 틀림없을 테고……. 아무튼 양귀비도 질투할 정도로 절색 중의 절색이라니 그 망나니는 복이 터진 거지." 위지강은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었다. 그의 신형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가는 경련을 일으켰다. "실수로 심어놓은 씨앗 덕분에 중원무림의 저울추나 다름없는 남궁세가와 손을 잡았으니 사마성주만 횡재했군!" "바람도 한번씩 피워 볼 만하다는 얘기지, 안 그런가? 핫하하하!" 한 사내가 소매를 걷어붙이며 다소 과장된 행동을 보였다. "혹시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다면 말해주게! 나도 바람 피울 기회가 있으면 무조건 그 이름을 써먹어야겠네!" "글쎄… 언뜻 들어서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연해월이라든가?" 위지강의 신형이 휘청 흔들렸다. '아니다. 이건 아니다.' 위지강은 부인하듯이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대화는 한결같았다. 어디를 가나 북파무림맹의 연해월과 남궁세가의 남궁사의 혼례로 떠들썩했다. '그녀를 만나야 한다. 진실을 알아야 한다.' ⊙ 2권으로 이어집니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