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8번째 금강경 8장
8.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若人이 滿三千大千世界七寶로 以用布施하면
是人의 所得福德이 寧爲多不아
須菩提言하사대 甚多니이다 世尊이시여
何以故오 是福德은 卽非福德性일새
是故로 如來說福德多니이다
若復有人이 於此經中에
受持乃至四句偈等하야 爲他人說하면
其福이 勝彼하리니 何以故오
須菩提야 一切諸佛과 及諸佛의
阿耨多羅三藐三菩提法이 皆從此經出이니라
須菩提야 所謂佛法者는 卽非佛法이니라
* 낱자 공부
寧편안할 녕, 어찌 녕, 滿찰 만, 寶보배 보, 布베 포, 베풀 포, 施베풀 시, 甚심할 심,
不 -ㄷㅈ 앞에서는 부로 발음, 아닐 불
復돌아올 복, 다시 부, 持가질 지, 等등급 등, 무리 등
* 福德과 福德性
복덕 - 滿三千大千世界七寶로 以用布施 - 호수 - 現象
복덕성 - 此經中에 受持乃至四句偈等하야 爲他人說 - 샘 - 微分前
감 100접과 감나무 한그루
복덕성이란 복덕이 나오는 성품
* 해설
옛날에 미국에서 우리나라를 원조해 준 적이 있습니다.
밀가루, 옥수수, 우유 등을 보내 주었습니다. 무척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굶주림에 고통을 달래 주었으니 은혜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때 자동차 만드는 기술과 공장, 배 만드는 기술과 공장을 지어주었더라면
우리는 좀 더 쉽게 자립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우리 아이들을 분가시킬 때에
많은 재산을 물려주는 것이 더 잘한 것인가?
아니면 돈 버는 기술을 익혀주는 것이 더 잘한 것인가?
우리는 재산을 물려주기도 하지만 교육해줍니다.
학교 교육은 기술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복덕성은 복덕을 짓는 원천입니다.
복덕성을 가지고 있으면 공장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아서
많은 복덕이 생산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복덕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사구게의 내용을 보면
모든 상 있는 바가 허망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타난 현상의 모든 것은 허망하다는 것입니다.
현상세계는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백년 탐한 물건은 하루 아침 이슬이요
사흘 닦은마음은 영생의 보배라 하였는데
마음이 복덕성이요
복덕성이 더 승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생을 삽니다.
우리의 재산은 현재 많은 것 같아도
한번 취사를 잘못하면 순간입니다.
불에도 물에도 바람에도 취약하며
투자를 한번 잘못해도 보증을 한번 잘못 서 주어도
인연을 잘못 맺어도 재산을 보증할 수 없습니다.
이생에 많이 받아 가지고 있다가 숨 한번 끊어지면 모두 반납하게 됩니다.
그러나 복덕성은 전문 기술과 같아서
어느 곳에 처하더라도
복덕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마음을 아는 공부 마음을 사용하는 공부
사구게를 수지독송하는 그것이 더 승하다는 말입니다.
四句偈 -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2023년 11월 7일
경계 : 조급함
요즘 뒤죽박죽이다.
뭐가 뭔지 머릿속에서 정리도 안 되고 그냥 닥치는 대로 살아가고 있다.
뭔가 개운치 않은 느낌~
왜 그럴까? 생각해본다.
무슨 일이 생기면 그 일이 해결이 나고 마무리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불편한 마음이다.
내 성격이 그렇구나~ 인정을 해본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그때그때 해결할 수 있지만
나와 관련되어있기는 하지만
시간이 흘러야 해결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성격은 마음먹은 일은 해치워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고
다른 사람들은 천천히 하면서 여유가 있는데
나는 급한 마음에 바로 하지 않으면 불편하다.
이번 기회에 나도 느긋함을 공부해 본다.
어떤 일들은 기다림 속에서 해결이 되는 것도 있구나~
큰애 일이 6월 말 발생했고 4개월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4개월 동안 마음고생을 해보면서
그 긴 시간이 지나고 나니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날들도 찾아온다.
그리고 버틸 수 있었던 건
마음을 보면서 감사함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매사가 다 은혜 아님이 없는데
시댁 일도 마찬가지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상속일이 아직 해결이 돼지 않았는데
조바심을 내지 않고 그냥 기다려진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되겠지~
오히려 기다림이 즐겁다.
기대되는 순간도 있어진다.
시간이 지나면서 매듭이 풀리고 해결이 된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든 원하지 않았던 대로 되든 결과는 나온다.
어떤 결과든 그냥 받아들여질 수 있다.
어떤 원인이 있으니 어떤 결과도 있겠지~
이젠 시간을 길게 두고 기다릴 수 있겠다.
어차피 어떤 결과로든 나오게 되어있다.
나오는 결과 따라 헤쳐나가면 된다.
교무의 의견
무슨 일을 할 때 완전히 처리되지 않으면 머릿속에서 맴돌지요
다른 일을 할 때도 그 일이 생각나곤 하지요
그 경계에서 떨어지지 않는 마음이 주착심입니다.
일을 하는데 여유 있게 하는 사람도 일고
빨리하지 않으면 참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느긋한 사람 가운데는 원래 게을러서 그러는 사람도 있고
순서를 알고 기다리며 풀어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이가 아팠을 때 빨리 낫게 하고 싶지만
낫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조바심을 내고 애태워도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버님의 유산을 상속받을 때도
빨리빨리 처리하면 좋을 것 같지만
서로 오해가 없고 불편하지 않으려면
시간적 여유를 갖고 순서를 밟고 협의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물론 일을 미루지 않고 바로바로 처리하는 것은 권장할 일이지만
일에 따라 많은 준비가 필요하기도 하고
숙성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밥을 할 때 밥솥이 끓는다고 바로 풀 수는 없습니다.
뜸이 들도록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가 지은 업도
짓자마자 바로 오는 게 아니라 시절 인연을 만나야 합니다.
인연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지
조급한 마음에 서두르면 일을 그르칠 수 있습니다.
주어진 일을 보고
바로 해야 할 일인지 시간을 두고 기다려야 할 일인지
판단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2023년 11월 7일
경계 : 자기주장
어머니를 모시고 남편과 시외삼촌 종재에 다녀왔다
설법 중에 외삼촌에 대하여 발씀하신다.
외삼촌께서는 좋게 표현을 하면 한 번 원을 세우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뜻을 이루셨다고 할 수 있고 안 좋게 말하면 자기주장이 세다고 표현을 하신다.
재가 끝나고 점심을 먹는데 남편이 생김치를 리필해 왔다. 마침 옆에 계신 어머니께서 김치를 나에게 더 가져오라고 하신다. 남편은 자기가 가져온 김치를 어머니에게 드린다. 그래도 어머니는 나에게 김치를 더 가져오라고 하신다. 다른 반찬과 식사를 하시면 얼추 김치가 남을 거 같은데 어머니는 굳이 김치를 다시 더 가져오라고 하신다.
나는 어머니께 다른 반찬이랑 드시면 김치가 남을 거 같아요 라고 말씀을 드리고 끝내 가져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옆에 이모님이랑 이모부님이 계시니 김치가 부족할 거 같아서 말씀하신 거 같은데 나는 음식이 남을 거 같아서 가져오지 않았고 남편도 충분하다고 안 가져와도 된다고 한다. 나는 남편의 말에 힘을 얻어 의기양양 했다.
평소 어머니와 음식에 관해 관점이 달라 음식은 먹을 만큼 적당히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고 어머니는 끊임없이 음식을 내놓으셔야 직성이 풀리시는 경향이 있으셔서 어머니의 그런 행동이 항상 마음속에 걸려 있었다. 그것이 자식 사랑의 표현 방법이라고 생각을 하여 나도 따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인정이 다 되지는 않는다.
이번 김치리필로 인해 나도 내 주장이 강하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옳다고 생각을 하면 상대방의 말을 잘 듣지 않는 고집이 있다는 것을
지금 생각해보면 양을 적게 하여 어머니에게 갖다 드렸다면 어머니 마음도 편안하고 나도 편안했을 터인데 내 고집으로 어머니를 꺾으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마음을 보면 법도 생기고 은혜도 생겨난다.
교무의 의견
일을 보면 나름으로 생각들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그 생각이 같지 않습니다.
똑같은 일을 보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이유는
분별성과 주착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경험이 남아있거나 자기도 모르게 배여 버린 습관
그리고 문화와 관습으로 고정관념이 생긴 것들입니다.
부산에서 대전이 어느 방향에 있느냐고 하면 북쪽에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라본 장소는 빼고 대전은 북쪽에 있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다면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같은 경계라도 바라본 관점이 다르면 해석을 달리할 수 있습니다.
관점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다른 사람의 말을 틀렸다고 하기 보다는 나와 다르다고 하여야 할 것입니다.
또한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이라도
내가 알기로는 그렇다고 표현을 하여야 합니다.
다른 사람은 다른 방향에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익산에 가면 배산이 있습니다.
배산의 봉우리가 어느 쪽에서 보면 하나요 어느 쪽에서 보면 둘입니다.
하나도 맞고 둘도 맞습니다. 단지 본 방향이 다를 뿐입니다.
또한 과거에 본 것과 현재의 본 것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무조건 자기의 주장만 관철하려하기 보다는
나의 생각을 이야기 하고 상대방은 어디서 보았는지 살펴야
서로 소통이 될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나름으로 김치를 가져오라는 생각이 있으시고
나는 나의 생각이 있습니다.
서로 상대방의 생각을 존중하며 서로 소통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