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사과는 왜 수직으로 떨어지는가?
사과가 땅에 떨어지는 지극히 평범한 일에서 우주의 중요한 법칙을 찾아내는 사람은 그야 말로 유례가 드문 비범한 인물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아이작 뉴턴 경은 영국 링컨셔의 울소프에서 1642년 크리스마스날에 태어났다. 뉴턴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3세 때 그의 어머니가 재혼하게 되자 그는 할머니 슬하에서 자라게 되었으며, 울소프에서 약 10키로미터 떨어진 그랜삼의 학교에 보내졌다. 어머니는 뉴턴이 14세 때 또 다시 과부가 되어 울소프의 집으로 돌아왔다. 뉴턴은 지극히 보통 학생으로 학교생활도 평 범하게 하였기 때문에 어머니는 그를 집으로 불러들여서 농업에 종사하도록 했다. 그러나 뉴턴은 농삿일보다도 수학이나 여러 가지 기계 따위를 다루는 일에 흥미가 있었다. 다행히 도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대학 출신인 숙부가 뉴턴의 잠재능력을 인정하여 대학을 들어갈 수 있도록 학교에 다시 보내주었다. 뉴턴은 1661년 18세 때에 케임브리지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3년 동안 수학과 자연과학에서 그의 천재적 재능이 눈을 뜬 것 같다. 같은 무렵 런던에 페스트가 발생하여 이 역병이 더 이상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1665년 여름에 대학은 폐쇄되었다. 그해 초 학사학위를 취득 한 뉴턴은 울소프로 돌아와 그곳에서 2년간 연구와 사색의 시간을 보낸 후, 다시 개강한 케 임브리지로 돌아왔다. 광학, 수학, 인력 운동에 관한 물리학 등 각 분야에서 그가 기념비적 연구의 기초를 이미 대 학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끝내놓았다는 설은 신빙성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사과가 떨어지 는 것을 본 뉴턴이 세렌디피티적인 착상을 한 후 1687년에 출판된 그의 저서 '프린시피아' 에서 만유인력법칙을 완전한 형태로 주창하게 되기까지는 약 20년의 세월이 걸렸던 것이다 (그와 같이 늦은 원인에 관해서는 많은 논쟁이 있다. 이 논쟁의 철저한 고찰에 대해서는 플로리안 카조리의 저서를 참조할 것). 뉴턴이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을 본 것과 그 관찰결과에 관해서는 몇 가지의 사료에 적혀있다. 예를 들면 마틴 포크스(영국 학사원장), 볼테르(뉴턴의 질녀인 캐서린 바톤에게 들었다고 함), 존 콘뒤트(뉴턴의 친구로 후에 그의 질녀와 결혼), 윌리엄 스턱리(물리학자이 면서 뉴턴의 친구)등에 의한 것들이다. 불테르의 일화가 가장 잘 알려져 있으나 스턱리의 '아이작 뉴턴경 생애의 추억'(1752년)에 쓰여진 이야기쪽이 더 신뢰성이 있는 것 같다. 뉴 턴의 말년에 스턱리가 그를 방문했을 때의 모습이 쓰여져 있다. 따뜻한 날 저녁식사 후, 우리는 뜰로 나가 몇 그루의 사과나무 아래서 차를 마셨습니다. 뉴 턴 경과 나, 단 둘이었습니다. 여러 이야기를 하던 중, 그는 옛날에 만유인력에 관해서 생각 하게 된 것도 이런 상황 이었다고 회상하였습니다. 명상에 잠겨 앉아있을 때에 사과 한 개 가 떨어지는 것을 본 것이 계기였다고 합니다. 왜? 어째서? 사과는 대지를 향해서 언제나 수직으로 떨어지는 것일까? 왜, 옆으로나 위쪽으 로 가지 않고 언제나 지구의 중심을 향하는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분 명 지구가 사과를 끌어당기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질에는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반드시 있 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의 총 인력은 지구의 중심으로 향하는 것 이며 옆으로는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사과도 수직으로 즉, 지구의 중심을 향해서 떨어지 는 것입니다. 물질끼리 서로 끌어당긴다면 그 힘은 물질의 양에 비례할 것입니다. 즉, 지구 가 사과를 끌어당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과도 지구를 끌어당깁니다. 우리가 지금 중량이라 고 하는 것처럼 이것은 힘이기 때문에 그 힘은 우주 전체에 전재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서서히 이 인력이라는 특성을 지구나 전체의 운동에 결부시켜 서로의 크기와 거리, 그리고 규칙적인 공전을 검토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이 특성과 최초로 천체 에 주어진 진행 운동을 함께 생각함으로써 이들 순환궤도가 완전히 해결되었던 것입니다. 혹성이 떨어지는 일도 없고 전부가 하나의 중심으로 모아지지 않는 이유를 알았던 것입니 다. 이것이 전 유럽을 놀라게 한 훌륭한 발견의 탄생 이야기입니다. 그는 이 발견으로 튼튼 한 기초 위에서 자연철학을 수립했던 것입니다. '아이작 뉴턴전'(1934년)에서 L.T. 모어는 사과의 에피소드를 좀 더 창의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 거기서 그는 그 사건이 뉴턴의 진리탐구에 대한 '준비된 마음'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 다고 보고 세렌디피티적인 면을 강조해서 쓰고 있다. 그가 마침 대학을 졸업했을 무렵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성적이 좋았다. 소년시절에는 농장 에서 그의 관심을 끈 유치한 문제들을 생각하느라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으나 이제는 완전한 성인이 되어서 돌아왔으므로 이전과 같은 생활로 되돌아간다 하더라도 머릿속은 심원한 문 제로 가득했으며, 그가 생각해 왔던 것은 미래에 있을 모든 사상의 방향을 변경할 정도였다. 여름의 긴 오후에는 옛날부터 있던 오래된 회색돌집 근처의 과수원에서 보냈다. 그 기념할 만한 날, 한 개의 사과가 그의 발 옆에 작은 소리를 내면서 뚝 떨어졌다. 그런 일은 평상시 에도 흔히 있는 일이어서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 아주 사소한 문제였다. 그러나 그 순간, 작은 스위치를 '탁'하고 켜면 커다란 기계가 육중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처럼 그의 두뇌기능에 시동을 거는 자극이 있었던 것이다. 지구의 신비한 인력의 공간을 통해서 나무의 꼭대기나 산꼭대기, 또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새나 구름에까지 작용하고 있다면 그 인력은 달에까지 미칠 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만일 그렇다면 달은 수평으로 던져진 돌처럼 지구를 향하여 낙하하고 있을 것이며, 그런데도 절대로 지표 면에 떨어지지 않는 것은, 달의 고속운동이 수평선을 넘어서 아득히 먼 것으로 자신을 옮겨 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간단한 문제다. 그러나 발사체의 운동(추진력) 문 제를 풀었던 갈릴레오도 달이 지구로 낙하하지 않을 만큼 충분한 고속을 유지하며 움직이고 있는 유일한 발사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또는 원심력과 운동의 법칙을 수식화한 호이겐스(네덜란드 과학자)도 그 비밀을 꿰뚫어보지 못했다. 뉴턴의 재능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인력의 법칙을 고안했을 뿐만 아니라, 달이 그 궤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인력 의 법칙이 작용하는가를 계산하는 일까지 스스로 생각해낸 점이다. 데이비드 브루스터 경의 '아이작 뉴턴 경의 생애, 저술 그리고 발견'이라는 전기에도 사과 이야기의 신빙성을 뒷받침하는 다음과 같은 저술이 있다. "나는 1814년에 그 사과나무를 보 러갔고 그 나무의 뿌리를 한 조각 가지고 돌아왔다. 그 나무는 너무 썩어 1820년에 벌채하 였고, 그 재목은 스토크 로키포드의 터너 씨에 의해 소중하게 보존되었다." 이와 같이 후에 세계 역사상 가장 유명한 과학자 중 하나가 된 23세 젊은이의 머릿속에 만유인력의 법칙이 탄생하게 된 데에는 세렌디피티가 단단히 한몫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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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