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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권 - 대륙풍(大陸風) - 차 례 - 제 10 장 파과(破瓜) 제 11 장 상면(相面) 제 12 장 복수(復讐) 제 13 장 신복(神卜) 제 14 장 애심(愛心) 제 15 장 운우(雲雨) 제 16 장 완성(完成) 제 17 장 기충(奇蟲) 제 18 장 마향(魔香) 제 10 장 파과(破瓜) 혈전을 벌이던 장내의 인물들은 모두 기혈이 들끓어 올라 동작을 멈추었다. 무공이 약한 자들은 모두 가부좌를 튼 채 들끓는 기혈을 추스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괴이했다. 그것은 매화장에 난입한 무림인들에게만 영향을 미칠 뿐 정작 매화장의 가솔들에게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다. 쓰러진 추냉아도 이 창룡음을 들었다. 순간 그녀의 몸에서 괴이한 변화가 일어났다. 창룡음을 듣자 내부를 격탕치던 기혈이 가라앉으며 가슴이 시원해지는 것이 아닌가? 천룡무상접인기(天龍無上接人氣)였다. 바로 음(音)으로 상처를 치료한다는 신기(神技)의 절학이었다. 이때 좌정해 기혈을 추스르는 중인들의 시선 속으로 허공을 하강해 천천히 내려서는 인물이 보였다. 때는 한낮의 오후, 천공에 떠있는 일광을 받으며 내려서는 인물은 필설로는 표현 못할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아…아!" 추냉아의 입에서 알 수 없는 탄성이 새어나왔다. 하얀 백의를 산뜻하게 차려입고 부서져 내리는 황금빛의 태양을 받으며 천천히 하강하는 인물은 도저히 인세의 인물이 아니라 속세를 떠난 선인풍(仙人風)이었다. 더구나 허공에 뜬 상태에서 저렇게 느리게 하강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능… 능공허도(凌空虛渡)!" 누군가가 놀라 외쳤다. 지금 신비한 사내가 펼쳐 보이는 신법은 적어도 내공이 삼갑자 이상은 되어야 시전이 가능한 전설의 경공술 능공허도였다. 무림인들이 염원하는 경지인 답설무흔(踏雪無痕)이나 등평도수(登平渡水)의 경지보다 한 단계 위인 꿈의 경지인 것이다. "하하핫! 창피하지도 않소? 무림의 협사로 자처하는 당신들이 주인도 없는 매화장을 공격함은?" 나이는 십 칠팔 세 정도. 낭랑한 음성은 창공을 울렸다. 바닥에 내려선 청년이 일보(一步) 일보를 옮길 때마다 매화장을 공격하던 사람들은 묵직하게 밀려오는 기도에 주춤 뒤로 물러섰다. 추냉아는 자신의 혼백이 일시에 빨려 나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너… 너무나 신비한 분위기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그녀의 방심이 흔들렸다. 그것은 정말 갑자기 찾아온 변화였다. 지금까지 그녀의 시선을 끈 사내는 단연코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생면부지의 낯선 사내에게 자신의 심장이 두방망이질을 치고 있질 않는가? 매화장에 난입한 모든 사람들은 이 돌연히 출현한 젊은 청년 단궁비를 보고 감히 경솔히 행동하지 못했다. "소협은?" 마은초자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치사한 인간!" 느닷없는 욕설에 마은초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소위 무림의 명숙을 자처하는 인간이 그래 여자를 상대하며 주먹을 쓰쇼? 여자의 주먹 한 방 맞아 주면 어디가 부러지기라도 하오? 하긴 꼴을 보니 한 방 맞으면 이곳 저곳이 수수깡처럼 팍팍 부러지겠구려!" 단궁비의 비아냥거림에 마은초자가 불끈 주먹을 말아 쥐었다. "애송이놈, 터진 입이라고 함부로 놀리는구나." 단궁비는 씩 웃었다. "당신이 당신의 손발을 마음껏 사용하듯 내 입은 내가 사용하는 게 당연하지 않소?" 말을 하면서 어깨를 가볍게 흔들자 단궁비는 마치 유령처럼 마은초자에게 접근했다. "헉!" 마은초자가 경악성을 흘리며 빠르게 뒤로 물러서자 단궁비가 다시 그림자처럼 접근해 가지고는 그의 귓전에 나직하게 속삭였다. "나도 한 번 손발을 사용해 볼 생각인데 각오는 되어 있겠지?" 마은초자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크악!" 단궁비의 강한 일격에 격타당한 마은초자가 붕 나가떨어진 것이다. 귀신에 홀린 듯 고개를 젓던 마은초자는 그제야 단궁비의 경공술이 귀신처럼 무섭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폭갈을 날리며 단궁비를 덮쳤다. 단궁비가 담담하게 웃었다. "그대들이 매화장을 핍박하는 것을 보며 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소. 악인은 악인일 뿐, 절대로 용서 할 필요가 없음을!" 단궁비가 한 걸음 전진하며 가공할 속도로 오른손을 뻗었다. 그 손바닥은 해일처럼 밀려드는 적의 공격을 종잇장처럼 갈가리 찢으며 그대로 마은초자의 심장부위에 작렬했다. "크아아악!" 마은초자는 담벼락에 구겨지듯이 처박혀 버렸다. 한차례 몸을 부르르 떤 마은초자의 움직임이 딱 정지되었다. 장내의 모든 인물들은 기가 질린 듯 숨을 죽인 채 단궁비를 바라보았다. 단궁비는 좌중을 둘러보며 씩 웃었다. "무자천서는 하늘이 내린 비급이외다. 쓸데없는 욕심은 화를 부르는 법, 당장 물러가시오!" 말인즉 살고 싶은 자는 빨리 사라지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미 무자천서에 눈이 뒤집힌 군웅들이 그의 말을 들을 리 없다. 아니나 다를까! 한 인물이 나서며 냉랭히 코웃음쳤다. "그대의 무공이 강하다는 것은 인정하오. 하지만 우리는 무자천서를 노리는 것이 아니라 쓸데없는 살생을 줄이려는 것 뿐이오. 그대야말로 이 일에 상관치 말고 물러서시오." 말을 한 자는 비검강호 백아성이었다. 그는 이곳에 모인 무림인들의 군중심리를 이용한 것이다. 군중심리란 묘해서 한 번 번지면 걷잡을 수 없는 불길이다. 백아성의 그 말은 장내의 인물들에게 불씨를 지폈다. 챙! 차자장! 중인들은 무기를 뽑았다. 단궁비는 좌중을 쓸어 보며 다시 싱긋 웃었다. "귀하는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군. 무자천서는 내 품에 있단 말이외다." 단궁비는 품 안에서 그럴 듯하게 만들어진 가짜 책을 꺼내 흔들었다.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의 안색이 이내 흉흉하게 일그러졌다. 무자천서! 저 책자를 탈취해 수록된 무공을 익히면 천하제일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유혹은 죽음보다 더한 것이었다. 장내는 순식간에 살을 저미는 살기로 가득 찼다. "무자천서는 내 거다. 나서는 놈은 사지를 잘라 버리겠다." 한 인간이 악을 쓰듯 외치며 몸을 날렸다. "나도 마찬가지다." 장내의 모든 인물들이 단궁비를 향해 공세를 발동시켰다. 단 일인을 향해 무림의 내로라 하는 고수들이 공세를 펼치는 모습은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살풍경이었다. "무지한 인간들!" 단궁비가 손을 뻗었다. 그러자 바닥에 뒹굴던 검 하나가 그의 손으로 빨려들었다. 강호 출도 후 단궁비가 처음으로 검을 잡은 것이다. 이미 단궁비의 무위를 직접 본 그들은 자신들의 절기를 펼쳐 일제히 공격했다. 산악도 허물어 버릴 공세가 태풍처럼 몰아쳤다. 그 순간 단궁비가 일섬을 그었다. "귀색혼!" 야마신의 절기, 장법으로도 검법으로도 변환시킬 수 있는 희대의 무공이 마침내 본연의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버번쩍! 눈부신 백선이 수백 수천의 가닥이 되어 유성처럼 사방으로 날았다. "커억!" "컥!" 여기저기서 처절한 비명이 터졌다. 쿵! 한 사람이 무너졌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한 인물이 썩은 짚단처럼 넘어가자 뒤이어 둘! 셋! 중인들의 신형이 썩은 짚단처럼 무너져 내렸다. 다섯…! 열….! 스물 둘! 그리고 마지막 비검강호 백아성의 신형이 무너졌을 때 장내에 서 있는 사람은 단궁비와 매화장의 무사들 뿐이었다. 추냉아를 비롯한 매화장의 모든 사람들은 넋을 놓은 채 할말을 잊었다. 단궁비의 무공은 인간의 무공이 아니었다. 단 일검, 무자천서를 노리던 많은 무림인들이 단궁비의 일검에 모두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것이다. 그들이 모두 무림에서 내로라 하는 고수들인 점을 감안하면 그들의 합공을 물리친 단궁비의 무공은 추측이 불가할 지경이었다. 무림에 이런 가공무쌍할 무공을 지닌 청년고수가 있다는 말은 들어본 기억이 없었다. "아아! 믿을 수 없어!" 탄성인지 경악인지 분간할 수 없는 말이 추냉아의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왔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그녀의 방심을 뒤흔든 사내. 그는 강하고 또 강했다. 그 점이 이상하게도 그녀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부친의 실종 후 그녀는 얼마나 강함을 동경했던가? 단궁비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소생은 단궁비라 하오이다. 낭자께서 무자천서를 지니고 있소?" 단궁비의 물음에 추냉아의 표정이 흠칫했다. "무자천서는 당신이 지니고 있지 않은가요?" 추냉아의 반문에 단궁비는 낭랑한 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하! 이거 말이오? 이건 오는 길에 급히 만든 가짜외다. 소문을 듣자하니 아무래도 매화장이 위기에 처할 것 같아 꾀를 좀 썼소이다." 추냉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 사내, 거침이 없다. 무자천서를 자신이 지니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매화장의 안위를 생각한 것이다. "왜…!" 단궁비는 담담하게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을 본 추냉아는 문득 그의 웃음에 깊이 감추어진 아픔을 보았다. "매화장이 정정당당한 문파라 생각했기 때문이오! 그런 문파가 멸망하는 것을 볼 수 없다면 답이 될는지…!" 가슴이 뛴다. 그를 믿고 싶다. "그럼 무자천서를 원하는 이유는 뭐죠?" "난 어떤 무공비급도 흥미 없소. 그럼에도 무자천서를 원하는 건 그 비급을 없애 차후 일어 날 살육지화를 막기 위함이외다." 말을 마친 단궁비는 마치 할 일을 다 한 사람처럼 돌아섰다. 그의 발자국소리가 멀어질 때마다 왠지 모르게 추냉아는 마음이 초조해졌다. 급기야 그녀는 단궁비를 소리쳐 불렀다. "단공자, 잠깐만요." 단궁비가 걸음을 멈추자 그녀는 그를 향해 뛰어갔다. "이것을 드리겠어요." 그녀는 품 속에서 얇은 부피의 책을 꺼내 단궁비에게 내밀었다. 빛이 바랜 검은 색의 책자. "이것이 무자천서일지는 모르겠어요. 아무 것도 쓰여 있지 않으니까요!" 단궁비는 잠시 책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낭자, 내가 이것을 받을 이유는 없소이다. 낭자의 손으로 스스로 소각하는 게 옳을 것 같소이다." 그의 음성은 지극히 담담했다. 천하인들이 혈안이 되어 찾는 무자천서를 거저 준대도 눈썹 하나 까닥치 않고 거절하는 것이다. "상공 말씀대로 이 한 권의 책 때문에 저희 매화장이 멸문을 당할 순 없어요. 그렇다고 아버지께서 준 물건을 소각시킬 수도 없어요. 이렇게 하는 게 어때요? 공자께서 지니고 계시다가 나중에 저에게 돌려주시는 거예요." "후회하지 않겠소?" "네!" 단궁비는 무자천서를 건네 받았다. 그녀가 무자천서를 맡기기로 결단을 내린 것은 단궁비의 눈빛을 믿었기 때문이다. 다소 장난기는 심하지만 그는 절대로 약속을 어길 인물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또한 단궁비라면 무자천서의 비밀을 알아 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가슴 속에 품은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그녀만이 아는 속내였다. 갑자기 그녀가 총관인 곽량을 향해 눈을 깜빡였다. 일시 그녀의 뜻을 모른 곽량은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피식 웃고 말았다. 그는 단궁비에게 다가가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소협, 날이 저무는데 오늘 하룻밤 유하고 가십시오." 단궁비는 추냉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녀의 얼굴빛도 노을을 닮아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단궁비는 그녀가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 위로 하나의 영상이 투영되었다. 자귀도에서 만난 그 여인! '우령화!' 그것은 바로 우령화의 모습이었다. * * * 한 번 놀란 가슴에 뭐 더 놀랄 것이 있겠느냐만, 단궁비의 주량을 본 매화장의 인물들은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특히 매화장의 주당으로 알려진 총관 곽량의 놀라움은 상상을 불허했다. 열 동이 째! 뱃속에 주충(酒蟲)이 들어 있는지 무한정 마셔대는 단궁비로 인해서 매화장의 보물 중 하나인 백년숙성의 매실주는 팍팍 줄어들고 있었다. 아마 매화장의 역사상 장원 전체가 이렇게 술 냄새로 진동한 건 이 날이 처음일 것이다. 열 다섯 동이를 비우고서야 술이 취한다는 듯 비틀거리며 일어난 단궁비가 곽량에게 한 말이 또 가관이었다. "만땅이거든요. 일단 비우고 다시 호쾌하게 마십시다." 그때까지 근근히 버티던 곽량은 그만 거품을 물고 혼절하고 말았다. 추냉아는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방그레 웃었다. 사내는 술로써 상대를 알고, 지혜로운 여인은 술에 취한 사내의 행실에서 그 사람의 본색을 파악한다고 했다. 매실주 열 다섯 동이를 비우면서도 흐트러짐이 없는 단궁비를 보며 추냉아는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저 사람. 한 번 일을 벌이면 반드시 책임을 질 사람이야. 저 사람을 반드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해!' 밤[夜]. 단궁비는 침상에 누워 있었다. 이곳은 매화장의 깊숙한 심처다. 아마도 여인의 방이었는지 침상과 이불에서는 은은한 단향이 풍기고 있었다. 정신은 말짱했다. 매실주 열 다섯 동이를 마셔 취한 주정(酒精)을 아무도 모르게 적원에게 전이시켜 준 것이다. 술을 좋아하던 적원을 잊지 않았기에, 비록 의식을 잃은 짐승이지만 혼미한 상태에서도 좋아할 것이라 내심 짐작하며! "불패괴옹과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군!" 단궁비는 품 안에서 이제는 공처럼 조그맣게 변한 적원을 꺼내 아픈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녀석!" 단궁비는 적원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적원이 흡수한 흡백충으로 천향루의 음모에 희생된 무림인들을 구한 후 그는 본격적으로 쌍령쌍봉을 찾아 삼봉쌍령금상지체를 완성할 생각이었다. 아마 그렇게 되면 우령화와 설소연을 만나게 될 것이다. 문득 우령화를 생각하자 단궁비는 아련한 그리움에 잠겼다. 큰 눈망울에 은은한 사랑을 담고 그를 바라보던 그녀의 모습이 망막 가득 떠오른 것이다. 젊어서일까? 그녀를 생각하자 피가 끓어올랐다. 아울러 청미와 벌였던 화끈한 정사가 떠오르자 몸 한 곳이 불끈 곤두서 버렸다. "크으! 이 녀석은 시도 때도 없어요!" 건방지게 곤두 선 그놈의 대가리를 쾅 내리친 단궁비가 팔베개를 하며 우령화의 아름다운 모습을 떠올릴 때였다. 똑똑똑!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 때는 매우 늦은 야심한 시각. 누구란 말인가? 조금 벌어진 방문 틈으로 기이한 향이 스며들었다. '여자!' 단궁비의 두 눈이 이채를 발했다. 지금 이 시간에 자신의 처소를 찾을 여인은 없기 때문이다. '혹, 그녀가?' 단궁비는 추냉아의 빙화(氷花) 같은 모습을 떠올렸다. 얼음 속에 꽃피운 한떨기 장미 같은 여인.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문을 살며시 밀치고 들어선 여인은 추냉아였다. 그녀는 두 손으로 쟁반을 받쳐들고 있었다. 향긋한 차의 향기와 추냉아의 체향(體香)이 어우러져 방 안 가득 맴돌았다. "과음을 하셔서 속이 쓰리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요. 차라도 한 잔 하시겠어요?" 방 안에 들어 온 다음에 물을 건 뭔가? 단궁비는 얼른 이불을 들어 하체를 감췄다. 그렇지 않아도 곤두서 있던 놈이 추냉아를 보자 미친 듯이 껄떡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하하! 뭐 이런 것까지 신경을 쓰십니까? 그곳에 두시죠." 단궁비는 일어서지도 못하고 침상에 누워 말했다. 영락없는 축객령인데 추냉아는 모르는 척 흘려 버렸다. "어머? 몸이 심하게 불편하신 모양이죠?" 추냉아가 침상에 걸터앉았다. 풍만한 엉덩이가 묘하게 일그러지는 것을 보며 단궁비는 꿀꺽 침을 삼키고 말았다. 하늘에는 달이, 창문을 통해 스며든 은은한 달빛이 그녀의 몸에서 보석처럼 부서져 흘러내리고 있었다. 삼단같이 치렁한 머리칼을 금빛으로 물들인 그 달빛은 그녀의 눈 깊은 곳에서 영롱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하지만 단궁비의 눈에는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았다. 여자, 그것도 무방비 상태로 그의 처소를 찾아 든 여자. 상상은 무한정 나래를 편다. 유방은 어떨까? 청미보다 클까? 엉덩이는? 배꼽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추냉아는 아직도 처녀일까? '으으…!' 단궁비는 신음을 토했다. 사고 치기 전에 이 여인을 쫓아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시작이 좋았으니 끝 역시 좋아야 할 것이 아닌가! "소저, 소생 지금 몹시 취해 있소이다. 나란 놈은 술에 취하면 심지에 불을 붙인 화약과 같소이다. 어서 돌아가시오!" 단궁비는 그렇게 최후의 인내심을 발하며 권하건만, 추냉아는 물러나기는커녕 오히려 단궁비에게 바짝 다가들었다. "이런! 두통이 심하신 모양이군요. 두통에는 용정차가 최고예요. 제가 마시기 편하도록 도와 드릴께요!" 추냉아는 단궁비의 머리를 받쳐들었다. 여인이 사내의 머리를 안으면 사내의 머리가 닿는 곳은…! 물컹! 기분 좋은 촉감, 탄력적인 물체가 머리를 압박하는 감미로운 기분을 맛보며 단궁비는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난리 났군!' 두 사람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았다. 단궁비는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향긋한 차 맛이 기분을 아늑하고 편안하게 만들었다. 단궁비가 차를 마시는 모습을 추냉아는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들은 한창 나이의 혈기왕성한 젊은 남녀. 사랑의 밀어가 오가고 다정한 속삭임도 있을 만한데 침묵에 잠겨 있었다. 단궁비는 달아오르는 몸을 내색치 않기 위해서, 반면에 추냉아는 부끄러운 내심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그러길 얼마 추냉아의 작고 도톰한 붉은 입술이 살며시 열렸다. "낮에 일은 뭐라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하하하! 괘념치 마시오. 이미 지난 일이오." 단궁비는 손사래를 치며 차를 단숨에 마셨다. 그런 그를 주시하며 추냉아는 고혹한 음성으로 말했다. "소협께는 손쉬운 일이었을지 모르나 소녀에게는 일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상황이었어요." "하하! 왜 자꾸 이러시오? 추낭자가 그러면 내가 몸둘 바를 모른단 말이오. 자, 우리 다른 말을 합시다." 그러나 추냉아는 무슨 이유인지 고집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버님께서 실종된 후 매화장 최대의 위기였어요." 단궁비도 별 수 없이 대화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되도록 솟구치는 탐심을 억제하기 위해 추냉아를 바라보지 않고 대화를 나누었다. "소저의 아버님께서는 어떻게 실종되셨소?" "저도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어요. 누군가의 서신을 받고 급히 나가신 후 소식이 끊겼어요." "나가실 때 아무 말씀도 없었단 말이오?" "간단한 말씀밖에는 없었어요. 세상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말씀밖에는…!" 추냉아는 말 끝을 흐렸다.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실종된 아버지를 걱정하는 것이리라! "변을 당하신 모양이에요! 살아 계시면 소식이라도 주시겠건만…." 급기야 그녀의 두 눈에 습막이 어렸다. 그러나 단궁비는 그녀를 외면하고 한 번도 보지 않았다. "저를 좀 봐 주세요. 소협께… 청이 있어요." 단궁비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정에는 어떤 비장한 결심이 엿보였다. "말씀해 보시오." "꼭 들어주신다고 약속을 해주세요." "소생이 들어줄 수 있는 일이라면 들어주겠소." "소협께서 충분히 마음만 먹으면 들어주실 수 있는 일이에요. 또한 해가 되는 일도 아니고요." "그래요? 그럼 어디 들어봅시다." "전 이대로 무작정 아버님을 기다리고 있을 순 없어요." "아하! 부친을 찾아 달란 말이오?" "아뇨. 제가 직접 강호에 나가 아버님을 찾아 볼 생각이에요." "강호는 여인이 나서기가 험난한 곳인데… 위험하지 않겠소?" "위험하다고 자식의 도리를 망각할 수는 없잖아요!" '아버지!' 단궁비는 아버지 단청운을 생각했다. 추냉아의 결심을 듣자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의 비참한 최후가 떠오른 것이다. 단궁비의 눈빛은 깊이 침잠되었다. '불패괴옹이 단서를 찾아 올 터, 기다려라. 그 날이 너희들의 생이 끝나는 날이다.' 추냉아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늘 쾌활하던 단궁비에게서 무서운 살기가 폭사된 것이다. "단소협…?" 추냉아의 부름에 단궁비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하하! 이런 내 잠시 추태를 보인 모양이외다. 사실 좀 아픈 기억이 있어서…! 그래 부탁이 뭐요?" 추냉아는 막상 하고픈 말을 하지 못한 채 얼굴만 붉혔다. 차마 입이 제대로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어… 어떻게 내 입으로… 하지만 해야 해.' 추냉아는 마음을 모질게 먹었다. 추냉아는 애써 냉담한 표정을 지으려 애썼다. 그러나 그녀의 음성은 자신도 모르게 잔잔하게 떨려 나왔다. "저… 저를… 가져 주세요." 처음 시작은 아주 힘들게, 그러나 마지막 말은 토하듯이 빠르고 단호하게 말했다. 단궁비의 표정이 멍하게 변했다. 무슨 뜻인가? 가져 주세요 라니 무얼 가져 달라는 말인가? 순간 머리를 섬광처럼 가르고 지나는 환영 하나! 바로 청미와의 정사다. '카카카! 가져 달래. 이 여자 점쟁이 아냐? 내가 지금 여자를 간절히 원하는 걸 어떻게 알았지?' 낄낄거리던 단궁비는 그러나 한 여인의 영상이 떠오르자 돌덩이처럼 굳어지고 말았다. 우령화! 능사에게 모진 고난을 당하면서도 꿋꿋이 참고 견뎌낸 그녀! 어찌 그녀를 저버릴 수 있을 것인가? 청미는 정보를 얻으려는 발상 끝에 순결을 취했지만 추냉아의 부탁은 절대로 접수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안돼!"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러나 추냉아의 음성은 더욱 차갑고 냉랭했다. "소협을 좋아한다고 착각하지는 말아요. 소협의 말씀대로 강호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곳이에요. 소녀는 이미 마음을 굳혔어요. 강호행(江湖行)을 하기 전 육신(肉身)의 짐부터 떼어 내리라고…." "육신의 짐?" "여자에게 제일 약점은 순결이에요. 일단 여인은 순결을 위협받으면 약해지는 경우를 저는 몇 차례 목격했어요!" "어이가 없군." 추냉아는 냉정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해하려 하지 말아요. 소협은 저와 저희 가문을 구해 주신 은공이시니 저 또한 후회함이 없이 기쁘게 드릴 수 있어요." 규중심처에서 성장한 장중보옥(掌中寶玉)의 입으로는 차마 할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추냉아는 처음 얘기를 꺼냈을 때보다 더욱 대담하게 자신의 의사를 피력하고 있었다. 단궁비의 눈썹이 역팔자를 그렸다. 짝,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단궁비가 추냉아의 뺨을 거칠게 갈긴 것이다. 그는 추냉아를 노려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제정신이 아니군! 내 말을 명심해라. 어느 여인은 순결을 지키기 위해 해적두목과 목숨을 걸고 싸웠다. 네가 생각하는 순결이 비록 거추장스러울지 몰라도 장차 남편을 위해서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적인 것 중의 하나가 순결임을 명심해라! 알겠나?" 단궁비의 질책에 추냉아는 더욱 냉랭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입꼬리에 흐르는 웃음조차 얼음처럼 차가웠다. "이미 소협께서 거절하실 거라는 짐작을 했어요. 한낱 여인의 미색에 현혹될 분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아보았어요." "무슨 소리야?" 추냉아는 단궁비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 사내는 정말 여인의 내면을 몰라준다. 야속한 생각에 그녀의 눈 가장자리가 촉촉하게 젖어들더니, "흑!" 짧은 오열이 터졌다. 가늘게 떠는 그녀의 가녀린 몸을 보면서 단궁비는 추냉아가 얼마나 힘들게 꺼낸 얘기인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여인을 안을 수는 없었다. 추냉아는 더욱 섧게 울었다. "소협께서 만독불침의 금강지체인 것을 소녀도 알고 있어요. 미약 정도로는 소협을 어쩌지 못한다는 것도요."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세상의 어떤 독이나 최음성분도 그에게는 별무소용인 것이다. "소협이 드신 건 용정차가 아니라 만목수령액(萬木水靈液)이에요." 단궁비의 안색이 홱 변했다. "만목수령액?" 만목수령액(萬木水靈液). 만 년을 자란 영목(靈木)인 만년지령목(萬年地靈木)에서 채취한 수액(水液)이었다. 이 만년지령목의 줄기에서 에서 채취한 만목수령액은 독도 아니고 최음성분이 있는 미약도 아니었다. 다만 이것을 한 방울이라도 마실 경우 체내에 흡수되는 순간 신체를 한 진 동안 전혀 움직일 수 없도록 만드는 중수액(重水液)이었다. 추냉아가 단궁비에게 다가왔다. "우습군. 이 봐 솔직히 나도 여자라면 굳이 마다하지 않아! 그러나 이건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이래 놓고 나중에 나를 볼 수 있겠어?" 추냉아는 슬프게 웃었다. "아마 다시는 당신을 보는 일이 없을 거예요!" 그녀가 한 걸음 다가왔다. '몸을 움직일 수 없다.' 이미 만목수령액은 단궁비의 몸으로 흘러들어 흡수된 뒤였다. 정신도 말짱하고 기운도 그대로였다.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는 사실 하나만 빼고는 지극히 정상적이었다. 추냉아는 단궁비를 가슴에 안았다. 단궁비는 아직 의자에 앉아 있는 자세, 추냉아의 탄탄한 젖가슴 사이로 그의 얼굴이 파묻혔다. 풋풋한 향기가 코 에 물씬 풍겨 왔다. 이런 상황만 아니라면 매우 기분 좋은 향기일 것이다. 단궁비는 몸을 움직일 수 없어 어쩌지도 못하고 있지만 그의 두 눈은 추호의 욕망도 없었다. 그런데 그의 머리 로 무언가 차가운 물체가 떨어져 내렸다. 그것은 눈물이었다. '이 여인 울고 있구나!' 그러나 그의 음성은 여전히 싸늘했다. "추냉아,넌 정말 어리석은 여자다." 그녀의 손길이 단궁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럴지도 몰라요. 이렇게 순결을 취해 달라고 조르는 여자는 저 하나 뿐일 테니까요!" 추냉아는 단궁비를 침상에 눕힌 뒤 그의 옷가지를 하나씩 벗겼다. 그녀의 가늘고 투명한 손가락은 단궁비의 옷가지를 벗길 때마다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고운 아미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상의를 다 벗긴 추냉아는 하의를 벗겼다. 옷을 입고 있을 때는 마른 듯이 보였으나 드러난 상체는 탄탄한 근육질이었다. 고개를 숙인 추냉아는 물씬 풍기는 사내의 강한 체취를 맡았다. 단궁비는 눈을 감은 채 그녀가 하는 대로 몸을 맡길 뿐이었다. '아…!' 추냉아는 자신도 모르게 내심 탄성을 발했다. 사내에게도 아름답다는 말이 통용된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리라! 단궁비의 나신은 아름다웠다. 여인인 추냉아가 보기에도 아름답다고 느낄 정도로 그의 몸은 훌륭한 근육체였다. 그의 중심에 눈길이 머물었을 때 추냉아는 화들짝 놀라며 눈길이 돌아서는 것을 애써 억눌러 참았다. 검은 불거웃 가운데 자리한 그의 남성은 굵고 거대했다. '저렇게 크고 무섭게 생겼다니…!' 추냉아는 숨이 탁 막혔다. 그녀는 자신의 옷가지도 벗어 내렸다. 스르르르-! 그녀의 능라의가 어깨에서 떨어져 내리며 백옥같은 나신이 드러났다. 그녀는 겨우 젖가리개와 고의 한 장만 달랑 걸친 반라였다. 그녀는 그마저도 떼어 내었다. 따뜻하고 보드라운 느낌에 단궁비는 감았던 눈을 떴다. 추냉아가 그의 몸 위에 올라 타 있었다. 그걸 확인하자 단전에서 확 불길이 일었다. '너 이놈! 주인의 허락도 없이 함부로 날뛰면 어떡해?' 그렇게 소리쳐 보지만 애초에 주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움직이는 놈이 '그놈'이다. 더구나 추냉아는 알몸을 포갠 상태였다. 단궁비는 하체에 닿는 까슬한 느낌을 받았다. 매우 미묘한 느낌이었다. 아울러 불덩이처럼 달아오른 그놈에게 기름을 붓는 촉감이었다. 불끈! "아…!" 추냉아가 나직한 신음을 토했다. 그녀의 불두덩이 쪽에서 거대한 용틀임을 느낀 것이다. 마주치는 두 입술! 부드러운 설육의 오감에 따라 점차 고조되는 숨결! 추냉아가 별처럼 빛나는 눈으로 단궁비를 바라보았다. "미안해요." 그것은 성결한 의식과도 같았다. 그녀의 행위는 본능을 자극했으나 행위를 실시하는 추냉아의 표정은 오히려 성스럽게까지 보였다. 전신이 마취된 상태에서 단궁비는 실로 기막힌 애무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우뚝 치솟은 단궁비의 남성을 추냉아가 살며시 잡았다. 그녀가 한 손으로 잡기에는 턱없이 큰 남성이다. 그놈은 우람했다. 시퍼런 힘줄이 툭툭 불거진 그놈은 추냉아가 손으로 쥐고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열기를 뿜었다. 그녀의 보드라운 손이 거머쥐자 그놈이 요동을 쳤다. 그것은 그 무엇인가를 폭발시키고 싶은 강렬한 욕구였다. 추냉아가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여성 상위(上位)의 자세. 그 미묘한 감촉에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묘음(妙音)이 새어나왔다. "으음!" "아… 흐!"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단궁비가 입을 열었다. "파과의 고통은 알아?" 추냉아는 푹 고개를 숙였다. "몰라요!" 짧은 대화, 그러나 그 대화로 인해 추냉아는 갑자기 흥분하는 자신을 느꼈다. 그의 그놈을 품을 생각을 하니 몸이 열기에 확 휩싸이며 주체할 수 없는 욕정이 솟구친 것이다. 추냉아가 천천히 만월 같은 둔부를 지그시 내리눌렀다. "아윽!" 그러나… 실패였다. 처녀지문(處女之門)에 비해 단궁비의 그놈은 너무나 거대했다. "아파요. 어떻게 방법을 좀 찾아 봐요!" 단궁비는 떨떠름하게 웃었다. 이왕 이렇게 된 일! "바보야, 단숨에 하는 거야. 그래야 고통이 덜 해!" 추냉아는 무언가를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후 그대로 힘있게 둔부를 내리 눌렀다. "아악!" 추냉아의 입에서 고통에 찬 뾰족한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파과(破瓜)였다. 생살을 찢는 엄청난 고통이 추냉아의 등골을 타고 하체 깊숙이 밀려들었다. 그녀의 옥문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그놈으로 꽉 메워졌고 옥문벽은 낯선 침입에 바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단궁비는 그놈을 꽉 죄는 뜨겁고 부드러운 이물감에 절묘한 쾌감을 느꼈다. 추냉아의 하체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니건만 그녀의 본능은 스스로 알아서 육체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의 율동은 처음엔 고통을 수반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열락(悅樂)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진한 쾌감이 세포 하나 하나를 일깨우기 시작했다. "묘해요. 점점 기분이 좋아져요!" "크크! 그게 자연의 조화야. 그렇지 않다면 사랑하는 남녀들이 허구한 날 이런 힘든 노동을 할 필요가 없잖아?" 추냉아가 고개를 숙여 단궁비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많은 경험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가요?" 단궁비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추냉아의 얼굴에 실망감이 스쳤다. 그러나 그 실망감은 이내 거칠게 밀려오는 쾌락에 모래성처럼 스러지고 말았다. 그놈이 그 안에서 스스로 움직인 것이다. "아… 아… 아흑!" 추냉아의 풀어진 검은머리가 말갈기처럼 마구 휘날렸다. 한껏 부풀어 오른 가슴의 융기도 덩달아 출렁거렸다. 추냉아의 몸놀림이 점점 극렬해졌다. "하악… 학!" 추냉아의 숨소리가 급격히 거칠어지고 그녀의 몸놀림도 빨라졌다. "으으으으…!" 단궁비의 입술 사이로도 억눌린 신음성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어느 한 순간, "하아악!" 추냉아의 나신이 활처럼 휘어졌다. 때를 맞추어 그녀의 옥문 깊숙한 곳에서 엄청난 분출이 일었다. 엄청난 쾌감이 두 사람의 전신을 휩쓸었다. * * * 방 안엔 아직도 열풍의 흔적이 감돌았다. 단궁비와 추냉아는 격렬한 정사 끝에 찾아오는 노곤함으로 손 끝 하나 까닥거릴 힘이 없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누워 아무 말이 없었다. '묘하군. 정말 묘해!' 진정 사랑하는 여인은 우령화다. 그러나 정작 그녀를 늘 가슴에 두고도 다른 여자와 동침한다. 청미가 그랬고 추냉아도 마찬가지였다. 이 이율배반적인 상황에 단궁비는 고민한다. "고마워요." "뭐가?" "제 부탁을 들어주셔서요." 단궁비는 대답하지 않았다. "걱정… 되시나요? 혹 제가 매달리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고…?" 단궁비는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추냉아는 왠지 알 수 없는 서운함이 치밀어 올랐다. '야속한 사람.' 울컥 화가 난다. 그에게 화를 낼 이유가 없는데도 말이다. "걱정 마세요. 소녀는 육척(六尺) 장신의 사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구이언(一口二言)하는 옹졸한 계집은 아니에요." 그녀는 일부러 목소리를 밝게 꾸몄다. 표정 또한 엷은 홍조를 띠었다. 그래서 단궁비가 보았을 때보다 더욱 성숙미가 풍겼다. 소녀가 사내를 알고 나면 여인으로 성숙해진다고 했던가? 그렇게 설명하기에는 뭔가 설명이 미진하다. "가겠어요." 추냉아는 발딱 일어섰다. 얻을 수 있는 사랑이라면 구걸이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단궁비에겐 구걸한다고 해서 얻어질 사랑이 아님을 추냉아는 알고 있었다. 이 사내를 얻으려면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 그녀가 문을 향해 걸어갈 때였다. "추냉아, 넌 나를 얼마나 아느냐?" 단궁비의 물음에 추냉아가 걸음을 멈췄다. 단궁비가 짧게 말했다. "난 최소한 책임을 회피하지는 않는다. 누가 원했건 상관없이!" 추냉아의 몸이 부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그녀는 내심 '성공이야!' 하고 부르짖었다. 단궁비가 일어났다. 한 번의 정사로 만목수령액의 마취효과가 사라진 것이다. 그는 추냉아에게 다가가 그녀의 검고 윤기 흐르는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비록 사랑으로 맺어진 건 아니다. 허나 그렇다 해도 우리가 부부지연을 맺은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부부지연!" "지금 난 중대지사(重大之事)를 앞두고 있으니 훗날을 기약하겠다. 대신 오늘처럼 아무에게나 몸을 줘 버리는 일은 다시는 없도록 해라!" 추냉아의 교구가 파르르 떨었다. "소… 협…!" 얼굴에 흐르는 두 줄기 눈물의 의미는…! "흐흐흑!" 급기야 그녀는 단궁비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기쁨의 눈물이다. * * * 은밀한 움직임이 있었다. 구월 십 삼 일! 중원 십삼개 성에 뿌리내린 마도 문파의 문주들이 일제히 자파의 대문을 나선 것이다. 그들의 동정은 중원무림 최대 방파이자 최강의 정보망을 지닌 개방( )의 문도들에 발각되어 즉시 개방 총단에 보고되었다. 경악한 개방 방주 궁개(躬 )는 그 사실을 즉각 구대문파에 통보하고 아울러 한 곳으로 비밀리에 보고했다. ---장로께 명하겠어요. 그들의 종적을 파악해 보고해 주세요! 천이통, 천안통의 경지를 넘어선 구대문파의 고수들과 개방의 정보원이 전 중원에 쫙 깔렸다. 어느 것 하나 그들의 이목을 피하지 못했다. 마도문파의 문주들의 행적은 곧 파악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구월 십 오 일, 마도 문파의 문주들은 하남의 모처에 닿자 동시에 연기처럼 증발해 버리고 말았다. 개방의 조직적인 미행도, 구대문파의 고수들의 천이통 천안통도 그들을 파악하지 못했다. 전 무림에 비상이 걸렸다. 정파의 무림인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마도의 문주들의 행적을 쫓았다. 실패였다. 대신 그 날부터 무림에 이례적인 평화가 찾아왔다. 마도의 세력들이 일제히 활동을 중단하고 수면 아래로 사라져 찾아 온 평화였다. * * * 쾌애애액---! 파공음은 무시무시했다. "악!" 여인은 놀라 비명을 지르며 귀를 막았다. 부악! 파육음이 섬뜩하게 울렸다. 그녀가 보는 앞에서 그의 몸에서 피가 분수처럼 튀었다. 오늘 아침까지 그녀를 위해 웃어 주던 남자였다. 그 남자의 가슴을 관통한 암기는 기세가 죽지 않고 그녀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경악한 여인은 피할 생각을 하지 못하는데, 가슴을 관통 당한 사내가 암기를 와락 움켜쥐었다. 사삭! 예리한 파공음이 울리며 사내의 손가락이 토막으로 잘려 나갔다. "사매(師妹), 반드시 살아야 한다. 혈궁의 음모를 반드시 만천하에 알려야 한다!" 여인은 사방을 살폈다. 그녀의 눈빛은 매우 불안해 보였다. 옷은 도검에 베어져 너덜거리고 피부에는 작은 핏방울이 방울방울 맺혀 있었다. 눈매가 날카롭고 몸에 서린 기운은 가히 절정고수의 반열에 든 것으로 보이는데…! 사방을 살피던 그녀의 눈빛이 한순간 암담하게 변했다. 저 멀리서 수많은 인영들이 몸을 날리는 걸 발견한 것이다. 여인은 검을 꽉 움켜쥐었다. "희망이 없다. 대사형의 추적을 도저히 뿌리칠 수 없다. 그러나 이 흑화,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그녀는 흑화(黑花)라고 불렸다. 그녀는 마도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는 미녀 중 하나였다. 그녀의 미모는 탁월하고, 마도 특유의 톡톡 쏘는 말투와 오만한 표정으로 수많은 마도 청년들의 우상이 되어 있었다. 육반회(六反會), 그녀는 그 곳 소속이었다. 정파로 따지면 개방에 비견될 정도로 제자들의 숫자만 십만에 달하는 거대한 문파가 육반회였다. 그녀는 그 육반회에서 여덟 명의 후기지수인 육반팔주(六反八柱)로 뽑혀 당주에 임명되었고, 또한 육반팔주 가운데 셋째 사형과 아름다운 사랑을 엮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그녀는 불행했다. 아니 육반회의 음모를 알고 난 이후부터 그녀는 불행했다는 표현이 옳았다. ---혈궁을 중심으로 마도대연합이 결성된다. 마도대연합이 완성되면 본격적으로 중원제패를 위한 피바람이 불게 된다. 사매, 우리는 비록 마도 소속이지만 중원무림의 파멸만은 막아야 한다. 그녀는 삼사형의 말을 쫓아 육반회를 탈출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안 대사형이 사제들을 이끌고 추적하는 것이다. 그리고 삼사형은 조금 전에 그녀가 보는 앞에서 대사형의 암기에 희생되었다. '틀렸어. 도주는 불가능해!' 푸욱, 흑화는 검을 땅에 꽂았다.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삼사형, 죄송해요. 당신의 유언을 지키지 못하겠군요! 그러나 비굴하게 살지는 않겠어요!' 내공을 일주천하는 그녀의 몸에서 무형의 기운이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조용히 눈을 뜨고 전방을 살폈다. 점으로 보였던 인물들이 이제는 사람의 형상이 되어 그녀를 향해 밀려오고 있었다. "후후! 현명하군. 그래 도주는 피곤한 거야!" 스스슥! 경미한 파공음이 울리며 젊고 준수한 세 청년이 그녀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흑화, 지금이라도 돌아가자." 선두에 선 삼십 중반의 사내. 그녀의 대사형인 좌찬(左贊)이 권고하듯 말했다. 그러나 굵은 저음과 달리 그의 눈빛은 탐욕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챙, 흑화는 검을 뽑았다. "짐승보다 더러운 놈, 네놈의 피로 삼사형의 원수를 갚겠다." 흑화의 몸이 바람처럼 날며 검으로 좌찬의 정수리를 쪼갰다. "네가 분수를 모르는구나!" 채챙! 날카로운 검명이 울렸다. 좌찬이 반격을 가한 것이다. 흑화는 피를 토하며 뒤로 물러서고 그녀의 손에서 빠져나간 검은 쾅 소리를 내며 고목에 박혔다. 일초지적도 되지 않는 것이다. 한순간 좌찬의 신형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샤샤샥! 흑화의 옷이 조각조각 바람에 날렸다. 뽀얀 살결이 드러나더니 이내 그녀의 희고 풍만한 몸이 드러났다. 가늘고 긴 목에 풍만한 유방, 가늘어 한 줌에 쥘 수 없을 정도의 허리와 그 아래 갑자기 확산된 풍만한 둔부! 흑화는 놀라 급히 몸을 움추렸다. 그 모습을 본 좌찬이 음침하게 웃었다. "육반회에서는 이미 너를 제명했다. 사문의 제명은 곧 사형선고!" 시퍼런 검날이 그녀의 연분홍 유두를 툭툭 건드렸다. "지금이라도 돌아간다면 목숨을 구할 것이나 거부한다면…, 여인으로서는 가장 비참한 최후를 당할 것이다." 좌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많은 인영들이 흑화를 향해 다가왔다. 입가에는 음침한 웃음이, 몸 중심은 하늘을 뚫을 듯이 솟구친 상태로! 흑화의 눈빛이 암담하게 변했다. 위기를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죽음을 각오한 몸, 흑화가 웅크린 자세에서 지면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 순간 그녀의 두 손과 발은 비쾌하게 무려 열 다섯 번 공격을 퍼부었는데…! "후후후! 이거 눈이 부실 지경이군!" 그녀의 공격을 뚫고 들어오는 좌찬의 두 손! 한 손은 유방을, 한 손은 그녀의 하복부를 노리고 있었다. "이 추잡스런 작자가!" 수치심에 앙칼지게 외친 흑화가 허공에서 몸을 틀었다. 그러나 채 그녀의 신형이 움직이기도 전에, 스슥 좌찬의 손이 환영처럼 움직이며 그녀의 유방과 하복부를 단숨에 움켜쥐었다. "으윽!" 야릇한 고통에 흑화가 비명을 질렀다. "후후! 묘한 성격이군. 이런 상태로 애무를 해 달라니 말이야. 허나 아직은 일러." 좌찬이 흑화를 쥔 손을 홱 뿌렸다. 흑화가 허공에 떠 있을 때 그의 손가락 끝에서는 푸른 지풍이 쏘아져 그녀의 기해혈을 관통, 내공을 흩어 버렸고, 그녀가 쿵 지면에 추락할 때, 좌찬의 수하들은 벌써 아랫도리를 까내리고 우르르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두 놈은 그녀의 팔을 잡고 그녀의 유방을, 두 놈은 그녀의 다리를 잡고 종아리를, 한 놈이 그녀의 얼굴에 하체를 디밀고, 한 놈은 그녀의 하체에 머리를 묻었다. "으웁…! 이… 천벌을… 받을…!" 흑화는 도리질을 쳤다. 그러나 놈들의 애무는 끈질기고 집요했다. 마음 속에 분심을 품었으나 그녀의 몸은 그렇질 못했다. 미녀로 태어나며 또한 정열적인 성격을 타고났기에, 그녀의 몸은 생각과 다르게 움직이는 별개의 생명체였다. 눈가에서는 피눈물이 흘렀으나, 그녀의 몸 깊은 곳에서는 욕망의 샘이 넘쳐흘렀다. "후후후! 알맞게 데워진 모양이군!" 어느새 하체를 벗어 던진 좌찬이 우뚝 선 양물을 앞세우고 그녀의 하체로 접근했다. 흥건하게 젖은 그녀의 비문을 확인한 그는 느리게, 그러나 강하게 그녀의 몸 속으로 진입했다. "!" 흑화의 두 눈이 충격으로 크게 떠졌다. 엄청난 고통이 그녀의 하문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호오? 아직도 처녀?" 콰악! 단숨에 진입하는 거대한 물체로 인해 흑화는 자신도 모르게 좌찬의 허리를 와락 당겨 안았다. 고통을 잊기 위해서. 좌찬이 허리를 더욱 빠르고 강하게 놀렸다. 장장 한 시진 동안 좌찬이 그녀를 강간하고 난 후 열 다섯 놈이 그녀의 몸에 몸을 실었다. 지금도 한 놈이 그녀의 위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흑화는 몽롱한 상태였다. 그곳이 쓰리고 아팠다. 죽겠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피눈물이 나는 눈으로 그녀는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사형!" 그를 생각해 본다. 질끈 눈을 감고 혀를 물려는 순간, 그녀의 몸 위에서 기승을 부리던 놈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뚝뚝 그녀의 입술에 떨어지는 피! 놀라 눈을 뜬 그녀는 자신을 능욕하던 놈의 미간을 꿰뚫은 솔잎을 보았다. '엄청난 고수가 근방에 있다.' 그녀는 재빨리 시체를 치우며 발딱 일어났다. 그러나 이상한 조짐을 느낀 건 그녀만이 아니었다. 그녀를 능욕한 후 뭔가 생각에 잠겼던 좌찬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것이다. 그는 상황판단이 빨랐다. 흑화, 그녀를 제거하기 위해 재빨리 검을 날린 것이다. 일섬 섬광이 심장을 뚫을 듯 날아들자 흑화는 질끈 눈을 감고 말았다. 그런데 통증이 없다. 슬며시 눈을 뜬 그녀의 눈에 한껏 두 눈을 부릅뜬 좌찬의 모습이 보였다. 심장이 파열된 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죽은 그. 그의 주변에는 검을 뽑지도 못하고 죽은 수하들이 보였다. "누구세요?" 대답대신 붉은 여자의 옷이 날아들었다. 그리고 조용한 음성! "먼저 옷을 입으시오!" 소리난 곳으로 고개를 돌린 흑화는 나무에 몸을 기대고 서 있는 백의청년을 발견했다. 무언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쾌활함을 느끼게 해 주는 청년을! 그의 눈부시게 준수한 용모를 보며 흑화는 그가 자신과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이라 느꼈다. * * * 산책을 나간 사람이 생면부지의 여자를 꿰차고 들어오니 추냉아의 심정이 어떨 것인가? 더욱이 그녀에게는 한 마디 양해도 없이 계집을 데리고 거처로 사라지는 정인의 뒷모습을 보는 심정은 어떨 것인가? 눈에서 불이 튀고 손톱에 바짝 날이 선다. 단번에 저 뻔뻔스런 인간의 얼굴에 다섯 개의 고랑을 파 버리고, 정인의 눈을 현혹시킨 년을 개패듯 패고 싶다. 그러나 생각을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한 이유! 그것은 계집의 몸에서 풍기는 기묘한 기운 때문이다. 생을 포기한 사람의 칙칙한 죽음의 냄새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여간 변태야. 어디서 자살하려는 여잘 데려온 모양이야." 추냉아가 단궁비에게서 연락이 없자 난리가 나버렸다. 안절부절 못하고 방 안을 왔다갔다하며 자신에게 행한 그 짓을 여자에게 그대로 재현하는 광경을 상상하며 이를 갈던 그녀는 단궁비가 부른다는 전갈을 받자 불처럼 노화를 터뜨렸다. "곽람, 관을 두 개 준비해. 두 년놈을 당장에 때려죽이고 말겠어!" "아씨, 내막을 알아 본 후…!" 곽람의 뺨에서 불이 튀었다. "뭘 더 알아 봐? 당장 준비하지 못해?" 앙칼지게 외친 후 단궁비의 방문을 거칠게 열며 들어선 추냉아는 막상 방 안에 벌어진 풍경에 몸을 부르르 떨고 말았다. 그녀의 생각은 여지없었다. 여자는 벌거벗고 있었다. 그녀의 온몸에는 푸른 멍이 수백 개의 도장처럼 찍혀 있었다. 아울러 얼마나 시달림을 받았는지 하체가 짓이겨져 있었다. 추냉아의 머리칼이 올올이 곤두섰다. "이 추접스런 변태. 죽여 버리겠어!" 일장을 날리던 추냉아는 단궁비의 차갑게 굳은 얼굴을 보곤 흠칫 놀라 동작을 멈췄다. 그의 얼굴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차가웠다. 감히 말을 붙일 수 없을 정도로 눈빛은 깊숙이 가라앉아 있고 온몸에서는 극심한 살기가 폭발하듯 뻗치고 있었다. "흑!" 추냉아의 눈에서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곽람에게 관을 준비하라는 말을 들은 단궁비가 선수를 치려 하는 줄 오해한 것이다. 단궁비를 잘 안다고 생각했으나 그녀가 아는 것은 단궁비의 일면에 불과하기에 그런 오해가 빚어진 것이다. 그런데, "잘못 알고 있어요. 이분에게 당한 게 아니에요! 옷은 내 스스로 벗은 것입니다. 내가 당한 상황을 증명하기 위해서요." 흑화의 조용한 음성이다. "예?" 반문하는 그녀에게 단궁비가 한 장의 서찰을 내밀며 말했다. "이 서찰은 이 낭자께서 목숨을 걸고 취한 정보다. 그대는 이 사실을 구파일방에 알려라!" 추냉아가 그 서찰을 받아들자 단궁비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지금 모처에 잠입할 예정이다. 이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니 그대는 오늘 본 일을 누설치 말도록 수하들을 단속하도록. 아울러 이곳에서 별도의 연락이 있을 때까지 기다려라. 그럼!" "잠깐만요? 그럼 이 여자는?" "그대가 잘 보살피도록!" |
첫댓글 잼 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재미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