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예술의 도시 통영을 다녀와서 /김영희
통영 동피랑과 서피랑
‘한국의 몽마르트르 언덕’에는 통영동피랑과 서피랑이 있다. 동피랑은 '동쪽 끝에 있는 높은 비탈'이라는 뜻이다. 동피랑 벽화마을은 통영 재래식시장 안쪽을 지나 좁은 골목길을 돌아서 나오면 언덕에 있다. 동피랑은 2007년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였으나 지역민들이 집 담장, 벽에 화를 하나씩 그리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다시 살아났다. 동피랑마을 벽화 중에서 푸른바다를 배경으로, 유명한 날개벽화가 눈에 띄었다.
통영의 바다를 품은 사람들과 동네마다 자유로운 영혼과 예술 등이 표현됐다. 언덕 비탈길과 좁은 집골목들을 올라갈때 숨이 차올랐다. 동포루가 있는 전망대에 도착하여 통영을 내려다 보았다. 젊은 관광객들로 꽉찼으며 인증 사진찍기에 나도 한장 담아 보았다.
서피랑은 뚝지먼당과 99계단이 있다. 박경리작가의 생가와 ‘김약국의 딸들’의 작품배경인 곳이다. 음악가 윤이상이 다녔던 학교길의 계단은 피아노건반이 그려져 있다. 발을 딛는 순간 아름다운 선율이 퍼진다. 서피랑은 뱃사람들이 찾는 술집들의 홍등가 ‘야마골’이 있었다. 박경리, 김춘수, 유치환, 윤이상, 이중섭, 전혁림등 문학의 대가들과 화가, 음악인 등 예술가들이 많은 머물었가 간 통영이다. 바다 특유한 생선비린 냄새, 짭조름한 해음이 통영에 온것을 실감하게 했다.
박경리선생 기념관과 박경리 묘소
박경리선생(1926 - 2008)은 고향 통영에서 대하소설 <토지>를 25년간 집필하였다. 고향 통영을 배경으로 4대에 걸친 인물들을 통해 민중의 삶과 한을 그렸다. 박경리선생의 끊임없는 영감을 제공한 고향 통영은 선생의 문학세계을 빛나게 했다. 박경리 기념관이 통영시 산양읍에 있으며, 기념관 입구 정원에는 그녀의 동상이 있다.
'파시’에 “존엄성은 자기 자신의 가장 숭고한 것을 지키는 것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그녀의 유고시집 ‘버리고 갈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에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공감되는 글귀이다. 기념관은 적갈색 벽돌과 커다란 통유리로되어 있어서 통영의 바다를 바라볼수 있어서 좋았다. 박경리의 본명은 박금이며, 진주여고를 졸업했디. 6.25전쟁때 남편이 납북되고 딸과 함께 살았던 젊은 시절의 그녀의 모습들이 그려져 있다. 고인의 대표작인 ‘토지’ 친필 원고와 여권, 편지 등의 유품이 있었다. 그외에도 전시 및 영상실, 그녀의 집필한 책과 작품등이 있다. 기념관 뒷편에 있는 곳에서 계단과 조그마한 찻길 도보로 10분쯤 가면 박경리선생 묘소와 육각정 등이 있다. 야산에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푸른 바다가 보이는 박경리 공원도 다녀왔다. 미국에서 한국 고국의 통영 바다와 문학관을 돌아보니 감회가 새롭다.
김춘수 유품 전시관
통영 부둣가의 고깃배와 짭조름한 바다 내음이 어울러 내 폐속 깊숙이 스며든다. 김춘수 유품전시관 벽면에 김춘수의 대표시인 ‘꽃’이 새겨져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김춘수 시인(1922-2004)은통영시 동호동에서 태어났다. 김춘수 시인은 청년기에 일본유학하였으며 일본총독정치를 비판하다 7개월간 옥살이했다. 김 시인은 삶의 존재론적 고독과 비극적인 릴케의 영향을 받았다. 1960년대말에 ‘무의미시’를 발표했다. 1999년 아내를 사별하였고 그 후에 ‘무의미’에서‘의미’로 회귀했다. 유품 전시관 1층은 선생의 육필원고와 저작물을 비롯한 시화 패널 등으로 구성하였다. 김시인이 생전에 기거하던 것과 비슷한 형태로 침대와 10폭 산수화 병풍, 액자 등이 있었다. 그 뿐아니라 옷가지와 책, 평소 쓰던 소지품, 사진 등을 전시해 놓았다. 김 시인은 통영 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1947년 첫시집 ‘구름과 장미’를 출간한 이후, 향년 82세로 타계할 때까지 20권이 넘는 시집을 출간하였다. ‘늪(1950)’, ‘기(1951)’, ‘꽃의 소묘(1959)’, ‘처용(1974)’, ‘남천(1977)’, ‘의지와 계단(1999)’ 등이 있다. 솔직히 안읽은 시집들도 많아 내심 부끄러웠다.
윤이상 기념관
윤이상(1917∼1995년)은 통영 태생이며 클래식 작곡가이다. 고국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하며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67년 동백림 사건으로 간첩 누명을 쓰고 고초를 겪은 뒤 서독으로 귀화하여 그곳에서 폐렴으로 타계했다. 대곡으로 오페라의 ‘나비의 꿈’ '심청'등이 있다. 플루트, 하프와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노벨레테'(1980)등 수많은 작곡들이 있다. 그의 고향인 통영에 윤이상 기념전시관과 소공연장이 있으며, 유품 148종 412점이 전시되어 있다. 세계 5대 작곡가로 꼽혔고 150여 곡의 작품을 서양음악과 동양의 철학적 사상과 국악의 음향을 결합시켜 인류 음악사에 업적을 세웠다. 기념관 로비의 에스파체, 각종 공연과 세미나 등을 위한 메모리홀, 야외 행사장인 경사광장 등이 있다. 음악 도서관인 베를린 하우스는 주말은 휴무이다.
기행문을 마치며
안타깝게 다시 느끼는 점은 “아는 만큼 본다”라는 것이다. 그냥 보는것과 혼이 통하여 마음으로 보는 것은 다르다. 통영에 많은 작가와 예술인들의 작품들을 읽고 감상하고 길 떠나기를 다짐해 본다. (글:김영희, 사진: 구글인용)
김영희 작가 약력: 전 시카고 문인회원, 미주시인협회원, 미주문학협회 회원
경사대 10기 졸업(2014년), 경사대학원 7기 석사졸업(2016년)
시카고 문인회에서 시 등단, 한국문학에서 시조 등단(2010년)
재미시인협회 신인 우수상 수상(2014년)
시집: 히말리아시다(201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