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생활계획
2025.3.23.
‘춘분’이 지났다. 모처럼 따뜻한 날씨에 아내가 봄맞이 대청소를 같이하자고 제안했다. 별다른 계획도 없어서 “그렇게 하자”라고 하니 속으로 삭혀두었던 말을 했다. “발코니 방 책장에 옛날 학교앨범, 수첩, 일기장 같은 것이 잔뜩 쌓여있다. 버리지 못하고, 모으기만 하는 것도 치매이다. 싹 버려버리자.”라며 속사포처럼 쏟아내고 있었다. 같이 정리를 하지 않으면 집안에 한랭전선이 한동안 드리울 것 같아서 서둘러 책장을 정리했다. 군대 생활을 할 때 썼던 사십 년 전 일기장이 보였다. 거기에는 타자기로 친 일과표 한장이 있었다. 국방부의 목적에 의해 강제되는 일과표였다. 돌이켜보니 60여 년 동안 나의 의지로 관리하는 것이 아닌 누군가의 기준에 따라가는 것이 많았던 계획표와 함께 생활했다. 이제 강요하는 일과표는 없다. 허둥지둥 따라하기에 바빴던 일과표들을 되돌아본다.
초등학교에서도 어김없이 하루 생활계획표를 작성했었다. 선생님은 “계획표에 따라 규칙적인 생활을 해라. 공부시간, 기상 시간과 취침시간이 특히 중요하다.”라며 ‘새 나라 어린이’의 착한 습관형성에 대해 많은 말을 하셨다. 그 시절의 계획표에는 공부시간이 두세 시간 정도 적혀 있었지만, 제대로 지켜본 적이 없었다. 여덟 명의 가족이 생활하는 공간에 호롱불을 켜고, 저녁 시간에 공부한다는 것은 ‘제출용 계획서’에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여름방학 중 계획표에는 ‘소 풀베기’와 ‘소 풀 먹이기’가 주된 활동이었다.
중학교에 들어갔다. 3월 초에 만든 생활계획표에는 저녁 식사 후 공부시간을 적었다. 중학생이 되었으니 공부를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창고로 쓰이는 가운데 작은방을 공부하는 데 사용하겠다고 선언했다. 공부 선언 두 번째 날이었다. 그 방에서 밥상을 편 뒤에 모서리 한쪽에 호롱불을 밝혔다. 한 시간 즈음 지나자 허리도 아프고 잠이 쏟아졌다. 아픈 허리를 잠시 풀어준다는 생각에 잠깐 뒤로 누웠는데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얼마 뒤에, 코끝을 스치는 석유 냄새에 잠을 깼다. 호롱불이 목화솜 이불 위에 뒤집혀 있었다. 성냥불을 잘못 켜면 불이 날 것 같아서,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날이 밝아올 무렵, 헌책을 가져다가 석유를 흡착시키면서 흔적을 지우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석유를 머금은 이불 속 목화솜이 뿜어내는 냄새는 어제의 사건을 항변하듯이 아버지께 전해졌다. 아버지께서는 “집을 다 태울 뻔했다.”라며 꾸중을 하셨다. 내가 생각해도 위험한 실수였다.
생활 계획표 상의 또 하나 중요한 항목 중에 기상 시간과 잠드는 시간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새 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납니다. 잠꾸러기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라는 동요를 즐겨 불렀지만, 겨울이면 아침 일곱 시 이전에는 일어날 수가 없었다. 아침에 호롱불을 켜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다섯 시 이전에 아침이 밝아왔다. 시골의 아침은 닭 울음소리에 맞춰서 기상했다. 누구 집의 닭이 먼저 울었는지도 모른다. 새벽에 닭울음이 시작되면 이웃집 닭까지 경쟁하듯 ‘꼬끼오~’가 울려 퍼진다. 한두 마리가 아니고 경쟁하듯 여기저기서 울어대는 ‘불규칙 합창’이었다. 당시에 닭울음 소리는 “이제 아침이 밝아오고 있다. 이불속에 뒹굴고만 있지 말고 빨리 일어나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해라.”라는 기상나팔이었다. 기계적으로 울리는 ‘알람 시계’는 버튼을 눌러 정지시킬 수가 있지만, 이 소리는 더 게으름이 용납되지 않는 자연의 소리였다. 뒤이어 다른 작은 새들도 이 ‘2차 기상나팔’에 합류한다. 특히 봄날의 작은 새들은 한두 마리가 조잘거리면서 시작한다. 조금 뒤, 요란스러운 지저귐과 날갯짓하는 소리에 바람 소리까지 더해진다. 이 자연의 소리에 아이들은 저항하지 않고 자연스레 일찍 기상했다.
고등학교에 들어왔다. 음악시간에 일생에 처음으로 음악감상을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비발디의 ‘사계’ 음악이었다. “바이올린의 톡톡 튕기는 소리가 봄날 지저귀는 새소리처럼 들리지 않느냐?”라는 선생님의 설명과 함께였다. 고향마을 창문 너머에서 들려오던 그 작은 새들의 노랫소리가 대형스피커를 통해 나오고 있었다.
학창시절에 선생님은 시간을 잘 관리하게 하려고 생활계획표를 쓰게 하셨지만, 그 시간을 관리하지 못하고 끌려다녔다. 남아있는 내 삶의 계획표에는 시간을 명시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먼 곳, 켜켜이 쌓인 산등성이를 바라보는 시간을 많이 가질 것이라고 적을 것이다. 그곳을 타고 넘으며 달려오는 폭풍도 산들바람이라 여기며 두 팔 벌려 맞이할 것이다. 그즈음에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가 있다면 더 많이 귀 기울여 들을 것이다.
이참에 휴대전화의 알림음도 ‘참새 소리’로 바꾸어야겠다.
첫댓글 학창 시절 여름과 겨울방학 일과표가 생각납니다. 내면의 속삭임을 실천하시려는 선생님을 응원합니다^^
하루 계획 일주 계획 한 달 계획 일 년 계획 모여서 일생이 됩니다. 남은 인생 멋진 계획으로 하시기 기대합니다.
학창시절이 그리워집니다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