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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형령주 제1권 제9장 광불화형수를 얻다 ━━━━━━━━━━━━━━━━━━━━━━━━━━━━━━━━━━━ 무림천하가 격변할 만한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다. 황산비무(黃山比武). 천하는 그 일로 인해 발칵 뒤집어졌다. 황산비무란 무림의 패권을 놓고 황산에서 무해성왕 울지엽과 마종 궁주가 벌인 일대격돌을 일컫는 것이었다. 황산비무가 끝난 후 하나의 소문이 강호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 천후성검(天吼聖劍)의 주인(主人)이 바뀌었다. 무해성왕(武海聖王) 울지엽이 쓰러질 줄이야! 그의 신물(信物)이자 무해성궁주(武海聖宮主)의 신표인 천후성검 은 마종궁주(魔宗宮主)의 손으로 들어갔다. 소문에 의하면 무해성왕은 백 초도 버티지 못했다고 전해졌다. 그 일, 그것은 한 사람의 패배로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무해성궁의 주인이 바뀌었다. 그리고 천하각파(天下各派)에 신주인(新主人)이 생기며, 수십 년 간 숨어살던 문파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혼돈(混沌)… 혈풍(血風)……. 천하가 완전히 뒤집어졌다. 무림인(武林人) 치고 해가 지고 나서도 자신이 살아남으리라는 확 신을 가지고 아침해를 보는 사람은 하나도 없게 되었다. 천외대종사(天外大宗士). 그는 거침없이 모든 백도세력을 파괴해 나갔다. 그는 무자비했으 며 누구보다 강했다. 그는 무해성궁의 추종자들을 용납하지 않았 으며, 무해성궁을 짓밟는 것과 함께 천하를 짓밟았다.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혈겁(血劫). 놀랍게도 그 선봉장은 무해성궁의 제자 청의옥룡 곽자옥이었다. 그가 변절(變節)했다는 사실은 무림백도에게 있어서는 조종성(弔 鐘聲)과 같은 것이었다. 마종궁으로 인해 일어나는 피바람. 그것이 극(極)을 넘어 온천하 가 마종궁에 부러지기 바로 직전이었다. 따그닥- 따그닥-. 말발굽 소리. 그 소리 하나로 인해 또 한번 모든 것이 뒤바뀌었 다. 빙차(氷車). 마차 한 대로 인해 마종궁과 무해성궁 잔당들의 싸움이 일거에 흐 지부지될 정도였다. 빙차가 멈추었던 곳에는 피의 바다가 만들어 졌다. 빙차는 천하를 주유했다. 그에 따라 피의 소용돌이도 천하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빙차는 누군가를 찾아다닌다고 했고, 그 앞을 가로막는 자가 아니 면 그 누구도 막지 않는다고 했다. 빙차 근처 십 리 안에서는 싸움이 없다. 피를 부르는 빙차가 싸움을 없애다니… 가히 믿지 못할 일이었다. 풍운이 변색하는 강호와는 달리 시간의 흐름이 잊혀진 곳이 있다. 지하석부(地下石府) 안. 머리카락이 꽤 긴 청년 하나가 합장하고 있었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코웃음을 치는 듯, 세상을 조롱하는 듯……. 우르르- 릉-. 그의 합장된 손바닥 사이에서 붉은 구름이 일어났다. 꽈르르르- 릉-. 그것은 수없이 고리를 만들어 내다가 붉은 무지개 하나로 화했다. 꽈꽝- 꽝-! 벼락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의 눈앞이 검게 변했다. 모든 것이 시꺼멓게 그을려 버린 것이다. 그러나 손을 내리는 청년의 표정은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아직 제 위력이 아니다. 흠- 이 정도는 쇄옥혈겁공 정도다. 나 는 쇄옥혈겁공은 구 성 익혔으나, 광불화형수는 삼 성도 익히지 못했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진법 대사부가 남긴 것을 완전히 익히기 전에는 떠나지 않겠다 고 한 맹세는 꼭 지키리라. 십 년이 걸리더라도…….' 차가운 웃음. 그 웃음 앞에서는 어떠한 꽃도 피어나지 못할 것이 다. 그는 탁몽영인데… 과거의 탁몽영 같지 않았다. 그 이전 서향사의 행허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살기(煞氣)를 뿌리지 않는 순간이 없는 살성(煞星)으로 화신(化身)한 것이다. 그는 벽면을 바라보았다. 그가 새긴 이름이 적혀 있었다. 대소자애승(大笑慈愛僧), 혈미인(血美人), 삼비(三婢), 곽자옥(郭子玉). 그는 그 이름을 보는 것으로 자신의 복수심을 북돋우며 하루하루 를 살아 갔다. 그는 허기를 느낄 때마다 냉옥령지초를 취했다. 그 는 그것을 먹으며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나의 초식은 능란하지 못하다. 결국… 나는 천외마벽에서 외운 마공(魔功)들을 익혀야 한다. 하나, 광불화형수를 익힌 이상… 내 게는 마성(魔性)이 드리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는 천외마벽에서 본 구절들을 외우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 십대절기(十大絶技)라 칭하는 열 가지 무공만을 몸으 로 익힐 계산이었다. 마수라혈공(魔修羅血功), 구하천마장(九河天魔掌), 쇄옥혈겁공(碎 玉血劫功)의 세 가지 장법(掌法), 진천마후(振天魔吼), 귀음신곡(鬼吟神哭)의 두 가지 음공(音功), 무극일광도(無極日光刀), 불패일도식(不敗一刀式)의 두 가지 도초 (刀招), 경공으로는 허허마영보(虛虛魔影步), 지력(指力)으로는 천공구유지력(穿空九幽指力), 마지막 한 가지 수법은 천수마불권법(千手魔佛拳法)이라는 것이었 다.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 곳. 이곳은 바로 강호인들이 꿈에서 조차 찾아 헤멘다는 광불화형전(狂佛火刑殿)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 안에 머물고 있는 탁몽영은 자신이 있는 곳이 광 불화형전인지도 알지 못했다. 그곳이 고금삼전(古今三殿) 중 으뜸가는 곳인지도 물론 몰랐고… …. 냉옥령지초가 몇십 뿌리 남지 않았을 무렵, 탁몽영은 정좌하고 앉 아 목어(木魚)에 적힌 구결대로 운기행공했다. 우르르르- 릉-. 하단전(河丹田)에서 막강한 기운이 일어났다. 그의 임독양맥(任督兩脈)은 타통된 지 이미 오래였다. 천지현관 (天地玄關) 역시 타통된 상태였다. 우르르- 릉- 우르르릉-. 그의 몸 안을 흐르는 진기의 흐름은 하나의 거대한 화산(火山)이 폭발하는 기세와 맞먹었다. 그의 몸빛이 달라졌다. 점점 뜨겁게 달구어진다고나 할까? 그러나 그것은 최상승의 단계가 아니었다. 광불화형수를 완전히 익히면 화광(火光)이 없어진다. 탁몽영은 그런 경지에 이를 때까지 연공(練功)을 계속할 작정이었 다. 냉옥령지초가 모두 사라졌다. 탁몽영은 그래도 광불화형전을 벗어나지 않았다. 어차피, 그는 광불화형수를 팔 성(成) 이상 익혀야만 하는 처지였 다. 그래야만 용암을 뚫고 나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어깨는 긴 머리카락으로 뒤덮였다. 다 타고 난 후 다시 자라 난 머리카락인데, 어린 보리싹마냥 고와 보였다. 그의 얼굴은 아주 희었다. 조금 창백(蒼白)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렇다. 결국 그는 화기(火氣)를 완전히 갈무리하는 단계에 이르 게 된 것이다. 그 경지는 등봉조극(登峰造極), 오기조원지경(五氣 朝元之境) 이상이었다. 따진다면 광불화형지경(狂佛火刑之境)에 들었다 할 수 있었다. 하 나, 그것 역시 완벽한 단계는 아니었다. 완전해진다면 죽어 천 년이 지났는데도 불상(佛像)같이 남아 있는 무진법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무진법의 시신이 천 년간 그대로 보존된 이유 또한 광불화형수 덕 분이었다. 광불화형수! 그것은 불경에 능통한 사람만이 익힐 수 있는 것이었다. 그 이치는 허(虛)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몸 안의 기 운(氣運)을 완전히 끌어내는 것이고, 우주간의 힘을 모조리 일으 키는 수법이기도 했다. 불경을 만 권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 구 결이 무엇을 뜻하는지조차 모를 것이었다. 그것은 탁몽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탁몽영은 긴 눈썹을 천천히 치켜 떴다. 그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봤다. 손바닥 가운데 붉은 점이 동전만 하게 남아 있었다. "수련이 심오해질수록 이 점은 작아진다. 하나- 이제는 더이상 작게 하지 못할 정도이다. 내게 어떤 기연이 없다면… 이것은 영 원히 이 정도 크기로 남아 있을 것이다." 탁몽영은 오랜만에 미소를 지었다. '웃는 법도 잊었다.' 그는 웃으려 하는데도 자꾸 얼굴만 찌푸려지자 쓴웃음을 머금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는 무진법의 시신이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저는 대사부 덕에 고독감을 잊고 지냈습니다!" 탁몽영은 그 앞에서 절을 했다. 그는 오체투지(五體投地)한 자세 그대로 말을 이었다. "저는 제가 살아난 뜻이 세상의 악을 모조리 태워 버리라는 것인 줄 믿고… 이제 수련을 마치고 강호로 나갈까 합니다!" 그는 살아 있는 사람에게 말하는 듯했다. 사실, 그는 무진법이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무진법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무진법의 천 년 만의 전인이 된 것이다. "제자의 사숙 되는 자는 제자를 이용해 천외마전을 열었습니다. 세상이 어지러워진 이유는 모두 저 때문입니다. 저는… 어리석게 도 철저히 이용당했던 것입니다!" 그는 손을 조용히 거머쥐었다. 그 안에 잡히는 것은 무엇이든 산산이 부서지고 말리라. "대소자애승! 그 자를 잡아 처단할 작정입니다. 그리고… 저 때문 에 나타난 마공을 익힌 자를 모두 없앨 작정입니다. 저를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탁몽영은 눈을 감았다. 그는 은은히 들리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 나가라! 천하의 모든 악(惡)을 화형(火刑)하라. 무진법의 목소리일까? 아니면, 그의 복수심이 만들어낸 환청(幻聽)일까! 탁몽영은 무진법의 목소리를 들었다 여기고 절을 올렸다. "제자, 기념으로 사부님의 오목염주(烏木念珠)를 갖고 가는 것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는 무진법이 걸고 있던 백팔염주를 끌러 자신의 목에 걸었다. 그는 아무 것도 입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 후, 그는 위로 향하는 굴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세상을 두려워하던 시절이 있었지. 아주 어렸을 때……." 그는 위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하나-." 그의 눈빛이 매정해졌다. "이제는 세상이 나를 두려워할 것이다!" 그의 목소리가 굴에 메아리를 남겼다. "훗훗, 한때는 세상이 나를 속였었지. 하나- 이제는… 나의 두 손이 세상을 철저히 조롱해 버리리라-!" 우르르- 릉-. 그의 목소리로 인해 굴이 뒤흔들렸다. 흔들리는 광불화형전! 소문과는 달리 쓸쓸하고 귀기 어린 곳에서 훌훌 날아오르는 붉은 구름 덩이 하나가 있었다. "우-!" 탁몽영은 끓어오르는 호기를 이기지 못하고 진천마후(振天魔吼)를 흘려냈다. 고금십대마도고수(古今十大魔道高手) 중 하나였던 진천마제(振天 魔帝)의 절기. 그 소리가 나자, 꽈르르- 릉- 꽈르르릉- 꽝-! 광불화형전이 뒤흔들리며 열풍(熱風)이 소용돌이를 이루기 시작했 다. "핫핫- 내가 간다! 핫핫-!" 탁몽영은 웃으며 강ㅍ을 뚫고 몸을 날렸다. 그가 떠나간 자리에 메아리만이 길게 소용돌이쳤다. - 내가… 내가 간다… 간다……. 처절한 목소리. 이제 강호는 그 목소리의 주인에게 철저히 유린당할 것이다. 완연한 봄날. 청해성(靑海省) 깊은 곳을 걸어가 흑삼청년이 하나 있었다. 그는 옷 밖으로 염주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일백팔 개의 염 주알 하나하나에 번뇌가 드리운 듯, 고독한 모습이었다. 스슥……. 그는 물이 흐르듯 지면 위로 떠서 지나갔다. 그는 백여 장 갈 때 마다 가볍게 땅을 밟았다. 슥-, 재빨리 땅을 차고는 다시 축지성 촌(縮地成寸)의 놀라운 보법을 이용해 몸을 이동시켰다. 봄(春), 어쩐지 시흥(詩興)이 절로 나는 청명한 날이다. 느릅나무 버드나무가 뒤뜰을 덮고(楡柳蔭復 ) 도리(桃李)는 집 안에 늘어졌다(桃李羅堂前) 인가는 어슴프게 멀고(償遠人村) 밥짓는 연기가 멀리서 솔솔 피어 오른다(依依墟里煙) 동네에서는 개 짓는 소리(狗吠深港中) 뽕나무 위에서는 닭울음 소리(鷄嗚桑樹寸願) 다시 자연으로 돌아왔다(復得返自然) 도연명(陶淵明)의 귀전원거(歸田園居)라도 읊고 싶은 날인데, 염 주를 걸고 나는 듯 달리는 자의 몸에서 일어나는 차가운 기운은 좀체 이 화창한 봄날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얼음으로 깎은 사람 같았다. 간간이 주위를 살피는 눈빛이 마치 번개(電光) 같지 않은가! '정신을 잃은 채 갔다가 정신을 잃은 채 되돌아 나와 지형을 알 수 없군. 흠- 삽천진(揷天鎭)에서 살 때에도 마을에서 멀리 가 보지를 못해 근처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데 비류봉(毘流峰)이라 한 것이 기억나니, 사람을 찾아 물어 보는 것이 좋겠군.' 그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더욱 빨리 달렸다. 밥 한 끼 먹을 시간이 지난 후, 그는 왕씨점(王氏店)이라는 마을 을 찾을 수 있었다. 천호(千戶)가 사는 커다란 마을인데, 그 중 칠백호가 왕씨성을 갖 고 있었다. 근처의 산물(産物)이 모이는 곳답게 마차 소리, 흥청 거리는 소리가 삼 리에 걸친 거리를 따라 요란하게 들려 왔다. 흑삼괴인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주기(酒棋)를 보게 되었다. 청해제일루(靑海第一樓) 처마에 연기에 그슬린 자리가 많은 이층 누각인데, 편액(扁額)에 적힌 글귀만은 아주 자랑스러운 것이었다. 겨울 내내 닫혀 있던 주루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흑삼괴인은 거 침없이 그 안으로 들어섰다. 염주를 걸고 다니나 승려는 아닌 듯, 그는 구석진 탁자를 차지하고 앉았다. 점소이가 마른 행주를 들고 다가서자, "이것을 받게!" 그는 한 줌의 옥석(玉石)을 앞으로 내밀었다. 황금보다 십 배 귀한 옥석이 아닌가? 점소이는 눈을 휘둥르래 뜨며 물었다. "은… 은자(銀子)는 없는지요?" "걱정마라. 거슬러 받지는 않을 테니까!" 흑삼괴인의 목소리는 차고 청아(淸雅)했다. 섬뜩한 느낌을 주는 동시에 아주 부드럽게 들리기도 했다. "거… 거슬러 받지 않으시다니요?" 점소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했다. "비류봉이 어디 있는지 말해 주고 한 끼 식사나 갖다 다오. 여기 서 백 리 떨어진 마을에서 옷을 사며 물어 봤는데… 아무도 비류 봉을 모르더군. 그래서 무작정 오게 된 것이네. 어떤가? 아는 것 이 있나?" "비… 비류봉이오? 으으- 여귀(女鬼)가 나오는 곳 말씀입니까?" 점소이는 몸을 으스스 떨었다. "여귀?" 흑의괴인의 눈에서 번갯불 같은 안광이 토해졌다. '무서운 사람이다.' 점소이는 겁먹으며 말을 더듬었다. "비… 비류봉은 여기서 사십 리 떨어진 황계산(黃鷄山)의 한 봉우 리입니다만… 아니 가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흠- 네가 안다니 잘됐다. 이것은 네 것이다!" 흑의괴인은 옥석을 대뜸 점소이에게 전했다. 점소이의 얼굴은 잘익은 대추빛으로 붉어졌다. 그는 웃음을 억지 로 참으며 쎄쎄(謝謝)를 연발했다. "감사합니다요, 대인(大人). 헤헤- 하여간 그곳으로 가지 않는 것이 좋을 줄 압니다!" "이유가 뭐냐? 무슨 여자 귀신이냐?" "저도 소문만 들었을 뿐입니다. 사실… 천하가 아주 소란스럽습니 다!" 점소이는 주위를 슬슬 살피며 조심스레 말했다. "중원(中原) 태산(泰山)의 무해성궁(武海聖宮)이 마종궁에게 무너 진데다가 빙차(氷車)가 구주(九州)를 질타해 세상 꼴이 말이 아닙 니다!" "무… 무해성궁이 무너졌다고?" 흑의괴인은 아주 크게 놀랐다. 순간, 의자가 그를 앉힌 채 주루 바닥으로 한 자나 파고들었다. "흐으… 윽?" 점소이는 너무 놀라 선 채 정신을 잃었다. "으으음- 결국 사숙이 뜻을 이룬 모양이군!" 흑의괴인은 일어나 의자를 빼냈다. 그는 바로 탁몽영이었다. '사숙은 의심할 바 없이 천외대종사다.' 그는 입술을 질겅질겅 씹으며 주루를 나섰다. 황계산(黃鷄山) 비류봉(飛流峰). 매우 아름다운 골짜기가 수십 리에 걸쳐 병풍같이 펼쳐져 있었다. 산은 그리 높지 않고, 물이 아주 맑아 가히 세외선경(世外仙景)이 라 부를 만한 곳이다. 특히 운무(雲霧)가 많아 그 안 어딘가에 신 선이 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휘… 이……. 경미한 바람소리를 내며 비류봉 쪽으로 달려가는 흑의인영이 있었 다. '그 계집들이 아직 머물러 있는지 모르겠군. 소굴의 규모로 보아, 임시로 쓰기 위해 만든 소굴은 아니었다.' 주루를 떠난 탁몽영은 쉬지 않고 비류봉 아래로 달려오는 중이었 다. 하오(下午). 산의 빛은 본디 푸른데, 지금은 붉게 타오르고 있었 다. 핏빛 노을이 산을 태워 버리는 탓이었다. 탁몽영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게만 보였다. '나는 비류봉 꼭대기에만 있었지.' 그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가다가, 두우- 두두-. 요란한 말발굽 소리를 듣게 되었다. 십여기(十餘騎) 천리준구(千里駿駒)기 벼랑 있는 쪽을 향해 질주 하고 있었다. "제길… 빙차의 무서움을 모르고 길을 막다가 모조리 당해, 결국 요녀(妖女)들의 소굴에 몸을 맡기게 되다니!" "헤헤- 진흙에 뒹굴어도 이승이 좋다지 않는가! 헤헤- 구차하게 나마… 중원에서 죽은 형제들보다는 낫지 않는가?" "그 말이 맞네. 옥봉당(玉鳳堂)에서 보름간 쉬며 원기를 찾는다면 … 핫핫- 우리 북천십이룡(北天十二龍)은 화(禍)를 복(福)으로 돌리는 것이 될 걸세!" "무해성궁 패거리들이 중원을 떠나 이 근방을 오락가락 한다니 그 리 좋은 것만도 아니야. 윗분들이 하시는 일에 이러저러한 말을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나… 내 생각으로는 중원총단주(中原總壇 主)의 통솔력이 생각 이하인 듯하네!" "옥룡부인(玉龍婦人)이 너무 어여뻐 옥룡이 그 품을 헤어나지 못 하고 허덕대는 탓이지." 그들은 북천십이룡이라는 자들이었다. 초일류고수(超一流高手)는 아니나, 일류급에 끼이는 자들이었다. 두우- 두두- 따그닥- 딱-. 열두 필의 말은 높은 벼랑 바로 아래 이르러 일제히 멈춰섰다. 건 마들이 말발굽을 높이 세우고 멈춰서는 순간, "호호- 총순찰(總巡察)께 하인(下人)을 몇 명 보내달라고 한 것 이 사흘 전인데 벌써 하인들이 오다니……!" 벼랑 가운데쯤에서 여인의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몸매가 풍성한 홍의여인 하나가 팔짱을 끼고 아래를 굽어보고 있 었다. 북천십이룡과 같은 ㅂ은 옷인데,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녀의 팔소매에는 자삼(慈衫)이 대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완전히 붉은 홍삼을 걸친 북천십이룡의 옷차림보다도 조금 뛰어나 보이는 모습이었다. 열여덟이나 되었을까? 그런데 모습이 지극히 안하무인(眼下無人) 이었다. "우리를 영접하시러 나오셨소?" 북천대룡(北天大龍)이 대표로 묻자, "영접? 너희 같은 패잔병을 누가 영접하냐? 너희들은 유람하러 온 것이 아니다. 이곳 옥봉당의 신축을 위해 뽑힌 것이다. 당주(堂 主)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어서 올라와라!" 홍의여인이 가볍게 발을 흔들자 발 끝에 걸려 있는 밧줄이 흔들거 렸다. 북천십이룡은 하인배 취급을 받자 분노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들 은 감히 불만을 밖으로 드러내지 못했다. 마종(魔宗) 그들의 옷가슴에 두 글자가 선명히 쓰여 있지 않는가! 가슴에 그런 글자가 쓰인 옷을 걸친다는 것은 아주 의미심장한 일 이었다. 마종삼법(魔宗三法)을 지킨다는 맹세의 표시로 옷을 입는 것이니 까! 마종삼법. 기일(其一), 천외대종사의 명에 절대 복종한다! 기이(其二), 죽음의 순간을 만나도 도망가서는 아니 된다. 기삼(其三), 서열(序列)이 낮은 자는 서열이 높은 자의 명에 복종 해야 한다. 그것이 마종궁에 속한 이십여만 명의 흑도인(黑道人)들이 죽어서 도 지켜야 하는 법칙이었다. 윗사람의 말이 법이 되는 곳이 바로 마종궁이었다. 북천십이룡은 밧줄을 타고 절벽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이 절벽 중턱쯤에 오를 때, 탁몽영 그는 절벽 뒤쪽으로 가서 아주 낯익은 장소에 이를 수 있었다. 거기, 우당탕 거리는 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급류가 있었다. 꽈르르르- 릉- 꽈르르릉-! 미친 듯 흘러가는 물살. "흣흣- 이제야 고향을 찾은 기분이군!" 그는 자신이 거기 떨어지며 정신을 잃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이곳은 탁몽영이 죽고 행허가 살아난 곳이다. 하나… 지금 온 사 람은 사미승 행허가 아니고… 탁몽영이다. 탁몽영은 살아 돌아온 것이다.' 그는 승극도허(昇極渡虛)로 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진기를 아래로 뿜어내며 매끄러운 절벽을 타고 날아올랐다. 유리알같이 미끄러운 벼랑 위, 한 채의 거대한 석궁(石宮)이 세워 지고 있었다. 원래 있던 석옥(石屋)은 허물어졌고, 그 자리에 석옥보다 십 배 거대한 석옥이 세워지는 것이었다. 이미 현판이 걸려 있는데, 마종궁(魔宗宮) 옥봉당(玉鳳堂) 여섯 자 글씨가 노을에 빛나고 있었다. 인부(人夫)들이 수백 명 있었다. 어깨에 돌을 메고 걷는 사람, 밧 줄로 서까래를 끌고 가는 사람. 특징이 있다면 고되게 일하는데도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는다는 것과 두 발목이 쇠사슬에 묶인 죄인 (罪人)들이라는 점이었다. 간간이 채찍을 든 여고수들이 보였다. "어서 일해라!" 짜작- 짝-! 채찍이 돌바닥을 후려칠 때마다 모래가 피어났다. 탁몽영이 그런 광경을 우두커니 보고 있을 때, "퉤에- 이제는 중놈까지 버젓이 마종궁에 드는군. 하긴- 소림일 장(少林一藏)도 마종궁의 소두목 중 하나인 형편이니……!" 돌을 멘 죄수 하나가 그를 발견하고 침을 뱉었다. 탁몽영이 그를 바라볼 때, "헤헤- 죽이고 싶으면 죽여 봐라! 어차피 내가 살기 위해 죄수가 되어 구차히 있는 사람은 아니니까! 흐흐- 너희 마종궁이 화산장 문인을 인질로 삼지 않았다면… 으드득- 산공독(散功毒)에 당해 포로가 되느니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었을 것이다!" 나이 오십 정도 되는 자가 성나 말할 때였다. "철매화검(鐵梅花劍), 참으시오!" 머리에 계인(戒印)이 선명한 노승 하나가 다가와 그를 만류했다. 그 역시 죄수의 신세였다. 철매화검은 참을 수 없다는 듯 또다시 침을 뱉으며 말을 이었다. "퉤! 흐흐… 무해성궁과 빙차(氷車)가 손을 잡는 날이면 마종궁은 잿더미가 될 것이다. 흐흐, 여기 끌려오기 전… 흐흐, 무행성궁이 빙차와 힘을 합할 작정인 것을 알게 되었지. 언제고 그 순간은 꼭 올 것이고… 흐흐- 오지 않는다 해도… 태군(太軍)께서 무해정양 경(武海正陽經)을 완전히 터득하시어, 제이의 무해천존(武海天尊) 이 되어 온 정파 사람을 구하실 것이다!" 그는 언성을 높이다가 노승에 의해 가로막혔다. 노승은 매우 씁쓸한 표정이었다. 그는 합장하며 허리를 숙였다. "철매화검의 성급함을 용서해 주시오!" "용서요? 후훗- 나는 이곳 사람이 아니외다!" 탁몽영은 그제서야 입술을 떼었다. "아… 아니라니?" "어어엇……?" 두 사람 모두 크게 놀랐다. 탁몽영은 차분히 말했다. "나는 혈미인(血美人)을 죽이러 온 사람이오!" 순간, "혈… 혈미인? 그… 그녀는 여기 없는데?" 철매화검이 크게 말했다. "없다니?" 탁몽영이 다가가자, "그… 그 계집은 총순찰의 직분에 전념하느라 옥봉당주 지위를 버 렸다고 얼핏 들었소." "으음- 그럼, 현재 이곳의 우두머리는 누구요?" 탁몽영은 쓴웃음 소리를 냈다. "이곳의 당주는 혈부용(血芙蓉)이란 계집이오!" 철매화검의 목소리는 꽤나 공손해졌다. 그것은 그가 탁몽영의 목 소리에 심령을 제압당했기 때문이었다. 광불화형수를 얻은 탁몽영. 그는 자신도 느끼지 못한 사이에 이미 절정 고수자의 풍모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혈부용- 그 계집이 있다면 헛걸음만은 아니다!' 탁몽영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철매화검을 바라봤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어째서 이곳으로 왔소?" "패배했소. 마종궁에 패했던 것이오. 죽을 줄 알았는데… 훗훗- 쓸 데가 있다며 산공독을 먹여 여기로 끌고온 것이다. 나는… 이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오. 나는 화산 아래에서 정신을 잃은 다음 여기서 깨어났소. 여기 있는 사람들은 과거 무해성궁을 정파맹주 로 섬기던 백도 고수들이오!" 그가 말하자, 노승이 거들었다. "대협은 어서 피하도록 하시오. 어떻게 마종궁 비밀당인 옥봉당을 찾았는지 모르나, 방비가 극심해 자객(刺客)의 일은 성공하지 못 할 곳이오!" 그는 속삭이듯 쥐어짜듯 말했다. "스님은 뉘시오?" 탁몽영이 그를 바라보자, "아미타불-." 노승은 차마 자신의 별호를 대지 못했다. 그가 불호성을 외우며 고개를 돌리자 철매화검이 바짝 다가서며 대신 대답했다. "저분은 소림사 장경각주(藏經閣主)셨던 분이오." 그는 누가 살펴보나 조심스러워하며, 탁몽영에게 허리를 숙였다. "정파를 위해 왔다면… 꼭 한 가지 부탁을 들어 주시오!" "그것은… 혈화옥랑군(血花玉郞君)을 잡아 빙차주(氷車主)에게 전 하고 한 가지를 부탁해 달라는 것이오. 그것은… 바로, 빙차주께 서 무해성궁을 도와 마종궁을 몰아내달라는 것이오!" 그의 목소리는 아주 간절했다. 그는 허리를 계속 숙이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다급한 어조로 덧붙였다. "정파를 위해 어서 이곳을 떠나시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탁몽영의 말이 이어졌다. "나는 정파를 위해 온 사람이 아니외다." 탁몽영의 말은 매우 비정(非情)했다. 호의를 갖고 말했던 철매화 검이 도리어 망연자실해 할 때, 탁몽영은 다짜고짜 그의 머리 위 쪽으로 날아올랐다. "어엇-!" 철매화검은 그의 놀라운 속도에 혀를 내둘렀다. 탁몽영은 남이 보 게끔 일부러 높이 날아올랐다. 휘- 익-. 그는 이십 장 위까지 날아올랐다가 아주 천천히 떨어져 내렸다. 그가 떨어져 내릴 때, "적이다-." "잠입자가 나타났다." "무해성궁의 잔당일지 모르니 어서 제압해라!" 휘휙- 휙-! 채찍을 든 여인들이 우루루 몰려들었다. 그 뒤쪽, 막 벼랑 위로 올라왔던 북천십이룡이 장검을 빼들며 다 가서고 있었다. "북천십이룡이 하인 두목 정도가 아님을 잠입자를 통해 밝히자!" "으핫핫- 지위가 낮다고 무공도 낮은 것은 아니다." 휘익- 차창- 창-! 북천십이룡은 가장 빨리 탁몽영 곁으로 다가갔다. 그들이 탁몽영 을 까맣게 덮을 때, "벌레 같은 무리들-." 탁몽영은 차게 말하며 좌수(左手)를 내밀었다. 손바닥 가운데 박 힌 홍점(紅點)이 확대되더니, 꽈르르르- 릉- 우르르르- 릉- 꽝-! 무시무시한 열풍(熱風)이 파도치듯 몰려 나갔다. '나도 주체할 수 없는 힘이다!' 탁몽영은 일장을 가하며 얼굴을 조금 찡그렸다. 우르르- 릉-! 우레 소리가 나며 검은 연기가 피어 올랐다. 반경 삼 장(丈)이 온통 숯덩이로 변했다. 그리고… 열 개의 숯덩 이가 유독 돋보였다. 북천십이룡, 그들은 영광스럽게도 첫번째로 화형(火刑)당한 자들이 된 것이다. 지반(地盤)이 훅훅 달아오르는 가운데 근처는 물뿌린 듯 조용해졌 다. 어느 누가 광불화형수(狂佛火刑手)의 신위(神威)를 보고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탁몽영은 숯 더미 위로 천천히 떨어져 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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