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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十章 검(劍)의 울음소리
뇌우의 시선은 한 곳에 집중되고 있었다.
그는 만보무진궁의 기진천보궁(奇珍千寶宮) 안으로 접어들 때부터 지금까지
시선을 흩트리지 않았다.
금빛 안개가 자욱이 번지고 있었다.
보통의 안개는 흐트러지기 마련이거늘, 그 안개는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귀기(鬼氣)스러운 금빛 안개는 원을 형성하고 있었다.
우우웅……!
뇌우의 마음을 잡아끄는 소리는 그 속에서 흘러 나오고 있었다.
"대체 무엇이기에……."
뇌우는 금빛 안개 초입으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그는 지극히 강한 살기(殺氣)를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매우 미세
한 기운이었으되, 살업(殺業)에 전념하고 있는 뇌우인지라 그 미세한 기운
을 골수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예리한 칼이 피부를 저며 든다 할까?
하여간 뇌우가 느끼는 기운은 지극히 차갑고 예리했다.
눈앞, 실로 엄청난 광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네 개의 금단(金壇)이 세워져 있으며, 금단 위에 놓여 있는 물체에는 가공
스러운 빛줄기가 뿜어지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수직으로 꽂힌 도(刀)였다.
칼자루는 상아(象牙)이며, 도신은 반월(半月)처럼 휘어졌으며,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핏빛이었다.
인혈(人血)을 바르고 있는 듯한 악마도(惡魔刀).
서열(序列) 사좌(四座) 천멸사류흡혈도(天滅死流吸血刀).
도는 가공스러운 내력을 갖고 있었다.
천 년 전 중원마교(中原魔敎)가 득세할 당시, 중원마교주는 사혼(死魂)을
하나의 보도에 주입하였다.
그는 일천(一千) 인(人)을 산 채 죽였으며, 그들의 심장에서 뿜어지는 피로
써 하나의 도를 만들어 냈다.
그것이 바로 천멸사류흡혈도.
천 사람의 원혼이 서리어 있는 마도로서, 그것이 나타나면 황하(黃河)가 핏
빛으로 물든다는 전설이 있다.
그것은 소림고승 백미불(白眉佛)에 의해 꺾여졌다고 병기보에 적혀 있는데,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무사라면 천멸사류흡혈도를 보고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뇌우도 천멸사류흡혈도를 바라봤다.
그는 도신의 예리함, 그리고 핏빛의 찬란한 마광에는 눈길을 빼앗기는 듯하
였으나 차츰차츰 그의 시선은 천멸사류흡혈도에게서 멀어져 갔다.
"저것은 아니다. 나를 부르는 소리는 저것의 소리가 아니었다."
뇌우의 눈길은 두 번째의 금단으로 집중이 되었다. 그 위에도 하나의 기진
이보가 머물러 있었다.
아니, 그것은 한 여인(女人)이었다.
슬픈 눈빛을 허공에 던진 채 손바닥을 살포시 들어 귀밑머리를 매만지고 있
는 아름다운 여인.
나이는 이제 십칠 세 정도 되었을까?
너무나도 천진난만한 표정이며, 눈빛이 사내의 심금을 자극할 만했다. 막
울어 버릴 듯한 얼굴이며, 너무도 처연해 보이는 얼굴이다.
한데 그 얼굴이 기이하게도 동물적인 육욕(肉慾)의 불길을 당기는 것이 아
닌가?
- 나를… 범해요. 무참히 짓밟아 주세요.
슬픈 눈빛의 소녀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 어서… 어서 나를 가져요.
- 망설이지 말아요. 지금 즉시… 나를 취해요.
하소연하는 절세미녀(絶世美女).
대체 어떠한 사내가 그녀의 눈물 서린 하소연을 뿌리칠 수 있을 것인가?
뇌우, 그의 눈빛이 약간 흐트러졌다. 그리고 그의 입매가 조금 일그러지며
마른 웃음이 피어났다.
"천년미인상(千年美人像)이다. 그렇군. 저것은 품고 잠잘 경우, 절세미녀와
정사하는 꿈을 꾸며 내공이 증가된다는 소녀교(素女敎)의 마물(魔物)이다."
여인은 살아 있는 여인이 아니라 하나의 옥상이었다.
그것은 인체와 같은 열기를 흘리는 온옥(溫玉)으로 깎아 만든 미인상이며,
깎은 사람은 귀수괴옹(鬼手怪翁)이었다.
그는 추악한 사람으로, 추악하기에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었다. 해서 그는
상상력을 동원하여 구원의 여인을 온옥으로 깎았으며, 여인의 눈을 깎으면
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 더 이상 완벽한 아름다움은 존재하지 않으리라! 적어도 천 년 안에는…
….
귀수괴옹은 자신의 혼을 미인상 안에 불어넣었다.
하여간 천년미인상은 천 년을 두고 무가지보(無價之寶)로 불렸으며, 특히
무림계의 인물들은 그것을 갖지 못해 혈안이 될 정도였다.
천년미인상을 품고 자면 미인을 품은 듯한 환상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온
옥정(溫玉精)의 기운이 골수로 스미어 들기 때문에 금강불괴지체(金剛不壞
之體)에 차츰차츰 도달하게 된다.
"따스한 기운이 흐른다."
뇌우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나를 유혹하는 기운은 차가운 기운이다. 천년미인상의 따뜻한 기운과는 정
반대되는 기운이다.'
뇌우는 천년미인상의 얼굴을 쓱 바라보다가 또다시 눈길을 돌렸다.
이어 그는 세 번째의 단에 눈길을 주는데, 그 위에도 하나의 물체가 놓여
있었다.
황금빛 나는 금패(金牌), 모양이 둥근데 표면에 천룡(天龍)이 양각되어 있
다.
천룡은 여의주(如意珠)를 입에 물고 있으며, 발톱으로 구름을 헤치며 승천
(昇天)하고 있었다.
천룡천왕패(天龍天王牌).
천축바라문(天감婆羅門)의 보물이다.
천룡천왕패에서는 극강(極强)한 기운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것을 손에
쥔다면 산악을 허물어뜨리고 바다를 메울 천력(天力)이 몸 안으로 쏟아져
드는 기분을 맛볼 것이다.
우르르르릉-!
천룡이 울부짖으며 날아오른다. 천룡의 눈은 뇌우의 눈을 쏘아보고 있었다.
"천룡천왕패를 지닌 자가 천왕탁탑공(天王托塔功)을 시전한다면, 그러할 경
우 그는 천군만마(千軍萬魔)의 저돌적 공격을 백 일 내내 단신으로 버티는
천룡전사(天龍戰士)가 된다는 전설이 있다."
뇌우는 막강한 힘에 휘어감기고 있었다.
천룡천왕패에는 범천백팔불(梵天百八佛)의 내공정화(內功精華)가 고스란히
담기어 있었다. 패는 무적천병(無敵天兵)이며, 아직도 그것의 권위는 천축
바라문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가공스러운 힘이 느끼어지고, 뇌우의 귀에는 뇌성보다도 늠름한 소리가 연
달아 터져 나왔다.
콰르르르릉- 쾅-!
굉렬한 폭음이 잇달을 때.
"저 기운도 아니다."
뇌우의 입가에는 또다시 메마른 웃음꽃이 피어났다.
'그 기운은 강렬하지 않다. 지극히 미세하여 느끼기 힘들 정도이다.'
뇌우는 가차없이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길은 첫 번째의 금단에 집중이 되었다. 그 위에는 한 자루 금검(金
劍)이 놓여 있었다.
길이가 사(四) 척(尺), 무게는 적어도 육십(六十) 근(斤) 이상으로 여겨졌
다.
전국시대(戰國時代)의 명장(明匠) 신철야(神鐵爺)가 만든 최후의 걸작으로,
이름하여 풍운뢰(風雲雷)였다.
풍(風).
검이 뽑힐 경우, 팔방(八方)에 강풍이 일어난다.
운(雲).
검이 떨쳐지면 사방에 자욱한 안개가 일어나면서 만리운해(萬里雲海)가 펼
쳐지는 듯한 환각이 벌어진다.
뇌(雷).
검에서 전광(電光)이 토해지며,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은 전광에 의해 활활
불살라지고 만다.
풍운뢰검은 모든 검사들의 영원한 소망이 되는 물건이었다.
가장 날카로우며 가장 가공할 힘을 지닌 천년신병. 검에서 울음소리가 미미
하게 흘러 나왔다. 그 울음소리는 뇌명(雷鳴)이며, 그 소리는 모든 무사들
을 유혹할 만한 신검의 울음소리였다.
하나, 뇌우는 그 소리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았다.
"저 소리는 고결하다. 저것은 검신(劍身)에 피를 바르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다.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뇌우는 중얼거리며 걸음을 계속 내어디뎠다.
그는 네 개의 단을 지나쳐 버렸다. 그는 너무나도 미세하고 칙칙한 살기를
따라 걷고 있었다.
네 개의 거대한 황금단 뒤쪽이다. 뇌우는 그곳에서 한 노인의 해골을 볼 수
있었다. 눈자위가 휑하니 뚫리어 있는데, 텅 비어 버린 눈이 뇌우가 다가서
는 것을 빤히 바라보는 듯했다.
걸치고 있는 옷은 썩어 버렸으며, 촉루만 남은 시신 또한 거의 무너져 버리
기 직전이었다.
시체 가슴에는 기이한 철물이 안기어져 있었다.
빛이 칙칙하며, 광채는 흘러 나오지 않았다. 검(劍)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
서 도(刀)도 아니다.
칼집에도 담기지 않고 몸체를 고스란히 내보이고 있는 삼(三) 척(尺) 사
(四) 촌(?) 길이의 기형 병기.
우우웅……!
뇌우는 그 물체에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저 소리다."
뇌우의 굳은 얼굴이 처음으로 풀렸다.
'이제까지 나를 부른 소리는 저 녀석의 울음소리였다.'
뇌우는 성큼 걸음을 내어디뎠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형체만 유지하고 있던 해골이 와해되어 버렸으며, 시
커먼 물체는 뇌우 바로 앞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우우웅……!
살명(殺鳴)이 보다 강해진다.
뇌우는 저도 모르게 손을 내어밀며 그것을 받아 내었으며, 그의 손이 시커
먼 쇠막대를 움켜쥐는 찰나 이제까지 그의 심금을 자극하던 울음소리가 사
라져 버렸다.
뇌우는 차갑다는 느낌, 그리고 손이 묵직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천병제일(天兵第一)>
뇌우는 쇳덩어리 표면에 파인 글씨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천 조각이 둘둘
묶여 있음을 보며 그것을 풀었다.
천에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그 내용은 뇌우를 지극히 당혹하게 만들었다.
<우라질! 누군가 이 물체를 손에 쥔다면, 노부의 마지막 재산(財産)은 그자
에게 빼앗겨 버리게 될 것이다.>
처음부터 욕설이었다.
<만에 하나, 여기까지 오는 가운데 어떠한 물체에든 손을 대었더라면… 그
순간 녹아 피고름 덩어리가 되어 죽었을 것이다.
노부 만보조사(萬寶祖師)는 지독한 수전노(守錢奴)이다.
피 말려 가며 모은 재물을 타인에게 양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무사(武士)를 중오하는 노부인지라, 만보무진궁은 무사들을 유혹하
여 죽이는 함정으로 만들어졌다. 하나, 이 물건을 쥔 자는 보물을 알아보는
눈이 있는 자이다. 그자는 천하에서 가장 차가운 가슴을 지니고 있는 자이
리라.>
글을 남긴 자는 만보조사였다. 그는 일천 개의 기진이보에 독을 뿌렸으며,
기진이보에 손을 댄 사람은 모조리 죽어야만 했다.
이백 년 전 만보조사가 죽고 난 후, 그의 제자들이 만보무진궁으로 들어와
기진이보를 훔치려 했었으며… 독에 당해 모조리 죽고 말았다.
그러하기에 만보무진궁의 비밀이 지금까지 비밀로 남게 된 것이다.
<이 물건은 귀혈장왕곡(鬼血匠王谷)에서 흘러 나왔다. 이 물건의 가치는 이
안에 있는 일천 개의 기진이보를 다 합한 것보다도 크다.
이유는 오직 하나, 이 물건은 사람을 알아보기 때문이다. 철은 철이되, 기
이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이 물건의 이름은 뇌우(雷雨)이다.>
너무나도 놀라운 인연이었다.
병기의 전설이며, 강호의 마지막 병기라는 천병제일검(天兵第一劍)의 이름
이 뇌우였다.
- 뇌우를 쥔 자, 강호(江湖)를 얻는다.
그 전설은 네 번에 걸쳐 이루어졌다.
첫 번째 전설은 절정낭객(絶頂浪客)에 의해, 두 번째의 전설은 그 후 삼백
년 지났을 때 중원검호(中原劍護)에 의해, 그리고 세 번째의 전설은 만검신
황(萬劍神皇)에 의해, 네 번째의 전설은 절대무영(絶大無影)에 의해…….
이제 남은 것은 다섯 번째의 신화이다.
뇌우의 주인은 패해서는 아니 된다. 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철저하
게 이기기만 해야 한다.
<뇌우를 알아보고 쥐는 자, 만보무진궁의 이대지존(二代至尊)이다. 그는 보
물을 알아보는 눈이 있기에 노부는 그에게 이곳의 모든 것을 전하고자 한
다. 모두 가져라. 가져다가 장강에 빠뜨리든, 땅에 묻든, 쓰든, 네 자유다.
하여간 뇌우를 쥔 자에게 모든 것을 남긴다.
이제 그대와 더불어 두 가지 신화가 이어지리라.>
만보조사는 괴팍한 노인이었다.
그는 결혼도 하지 않았으며, 재산을 상속할 양자도 두지 않았다. 그는 자신
이 모은 모든 것과 더불어 잠들었으며, 그러하기에 일천 개의 기진이보는
독을 품은 채 이백 개의 성상 내내 주인을 잃고 고독히 머물렀던 것이다.
이제 뇌우는 모든 것의 주인이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 이 순간으로 그
는 천하에서 가장 부유한 자가 된 것이다.
비(雨)가 추슬추슬 내릴 때.
연경의 표향객잔(飄香客棧)은 오백여 무사들에 의해 철저하게 포위되고 있
었다.
객잔 주인들은 괴영들이 속출하자 귀신 떼가 나타났다 여기고 혼절하고 말
았으며, 점소이들은 허둥대다가 모조리 제압당했다.
한 여인, 그녀는 후원 특실에 도달하고 있었다.
화려한 금색 궁장을 걸친 여인인데, 그녀의 뒤쪽에는 큰 우산을 받쳐 든 시
비가 뒤따르고 있었다.
"둘이 머물렀었다. 그중 하나가 뇌우이다. 놈은 황금지존을 독살하고 여기
도착했다가 얼만 전 떠나갔다."
여인은 싸늘한 눈빛으로 특실 안을 살펴봤다.
팔선탁(八仙卓) 위에는 두 개의 찻잔이 놓여 있었다.
"지옥십이월에서 둘이 왔던 것이다. 반시진의 차이로 놓치고 말다니… 애석
하군."
여인은 입술을 잘강잘강 깨물었다.
대천마벌의 총순찰 일지홍(一枝紅), 그녀는 뇌우를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었
다.
어찌 되었든, 그녀는 뇌우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녀가 특실 안을 서성이고 있을 때, 편복이 떠오르듯 흰 그림자 하나가 뜨
락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는 귀무(鬼霧)의 무사이며, 추종술의 대가였다.
그는 무릎을 꿇은 채 이렇게 말했다.
"하나의 흔적을 찾아 냈습니다."
"찾았다고?"
"서남쪽으로 뻗어 나가고 있는 흔적이 있었습니다. 비가 오고 있어 찾기 힘
들었으나, 결국 찾아 냈습니다."
"으음, 오직 하나의 흔적이냐?"
"그렇습니다."
"흠, 그렇다면… 뇌우의 흔적이 아니다."
"예?"
"뇌우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그를 뒤쫓는 가운데 그의 습성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 그라면 절대 흔적을 남기지 않을 것이다."
일지홍은 입술을 잘강잘강 물며 말을 이었다.
그녀는 면사(面紗)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데, 한순간 면사가 환하게 밝아질
정도로 강한 안광이 폭출되었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그 흔적을 추적하다 보면 언제고 뇌우를 만
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는 뇌우와 한패일 테니까."
일지홍의 입매에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는 그 아름답고 사악한 미소 덕에 대천마벌주의 품에 안길 수 있었고,
오늘의 지위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가자."
일지홍은 싸늘히 외치며 몸을 날렸다.
우산을 든 시비도 함께 몸을 날렸으며, 오마위 소속의 추적자들 또한 그네
들을 뒤따라 자취를 감췄다.
다만 비가 뜨락 가득히 남았다. 비 가운데 칠월(七月)은 깊어 가고 있었다.
이 비가 그치면 하늘이 투명할 정도로 맑아지리라.
천목산(天目山).
도가에서는 그곳을 태미원개동천(太微元蓋洞天)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삼십
사동천(三十四洞天)이라 부르고 있다.
천목산은 일명 부옥산(浮玉山)이라 불리며, 동천목산과 서천목산 두 개의
거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천목산의 정상은 용왕정(龍王井)이라 불리고 있다.
팔월(八月)이 시작되는 날, 서천목산의 능선(陵線)으로 하나의 흰 그림자가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평지에서 솟아오르는 유성(流星)처럼, 백의인영은 아스라한 흰 궤적을 끌면
서 서천목산의 정상을 향해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거의 다 왔다."
죽립을 내리쓴 청년의 얼굴은 묘한 불균형감을 느끼게 했다.
완전히 뭉그러졌다가는 신의에 의해 회생이 된 얼굴. 기이한 백치미(白痴
美)를 느끼게 하는데, 그의 얼굴 가운데 박힌 두 눈에서는 신비한 매력(魅
力)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이월을 위해… 악마가 되겠다! 오늘은……."
차가운 눈빛이 반짝거린다.
뇌우, 그가 드디어 대천마벌의 신비쌍궁(神秘雙宮) 가운데 하나를 향해 다
가선 것이다.
같은 시각이었다.
철사자(鐵獅子)는 뇌우와 헤어진 지 나흘 만에 향운산(香雲山)이라는 명산
근처의 청사진(靑沙鎭)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는 뇌우에게서 경신술을 전수받은 이후, 몸놀림이 그 전에 비할 수 없이
경쾌해지고 있었다.
그는 주루에 머물렀으며, 술을 마시는 중이었다.
그는 자음자작을 하고 있는데, 얼핏 보면 강호를 떠도는 낭인(浪人)으로 보
였다.
철사자는 등에 큰 상자를 하나 떠메고 있었다. 보통 사람은 지기 힘든 큰
짐이었는데, 철사자는 행낭 하나를 꿰어찬 듯이 간단히 떠메고 있는 것이
다.
그는 술을 마셨으며, 소매로 입가를 닦아 내는 척하면서 창(窓) 아래 구석
진 자리에 머물러 있는 사람에게 전음입밀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죽었습니다. 구월 대형에 의해!"
"으음, 결국……."
창 아래, 호호백발의 노파 하나가 쪼그리고 앉아서 궁상을 떨고 있었다.
그녀는 바로 칠월의 화신이었다.
칠월, 그녀는 황금지존 전유가 죽었다는 말에 눈빛이 여지없이 흐트러지고
말았다.
"그는… 악마지. 악마는 죽어야만 했다."
칠월은 애써 싸늘하게 말을 하는데, 그녀의 손매무새가 경련을 일으키고 있
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암, 죽어야만 했다. 가장 잔혹하게……."
남녀 사이에 살을 섞었다는 것은 지극히 큰 의미를 갖는 일이다.
칠월은 황금지존 전유가 죽는 것을 평생 소원으로 여기는 여인이었으되, 그
가 정작 죽었다는 말을 듣자 착잡해 하는 것이다.
"구월 대형은… 비밀 서적을 몇 권 입수했습니다. 그것을 전하라고 해서 여
기에 오게 되었습니다."
"으음……!"
"저는 곧 돌아갈 것입니다. 훗훗… 대형은 제게 절기를 전수해 주고 있습니
다. 나는 그분과 합류하여 그분의 절기를 전수받을 것입니다."
철사자는 이월과 칠월 사이의 연관을 전혀 알지 못한다.
같은 시각.
폭우(暴雨)를 뚫고 오백여 인이 치달리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가공할 속도로 경공술을 시전하였으며, 일행을 선도하고
있는 것은 한 대의 금빛 가마였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마는 네 명의 대한
(大漢)에 의해 떠메어진 상태였다.
거한들은 두 손을 번쩍 쳐든 채 가슴을 쫙 펴고 준마가 치달리듯이 폭우 속
을 치달려갔다.
가마 위, 아름다운 주렴(珠簾)이 사면에 모두 드리워져 있다. 주렴을 통해
가마 위의 사람 모습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지극히 섬세한 그림자이다. 몸매로 보아 그는 여인이었으며,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다가서고 있다. 구월뇌우를 향해!"
차가운 목소리, 섬세하기 이를 데 없는 여인의 몸에서는 가을의 무서리와
같은 한기(寒氣)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지금 추적되고 있는 자는 지옥십이월에서 말석(末席)인 십이월몽(十二月
夢)이라는 자이다. 호호… 그자는 표적이 된 것이며, 그자는 우리들을 구월
뇌우 쪽으로 안내하게 될 것이다."
대천마벌의 총순찰 일지홍.
그녀는 연경에서부터 철사자를 추적하고 있었다.
그녀는 지옥십이월에 속한 무사들의 실력을 아는지라, 철사자에게서 오(五)
리(里) 안으로 접근하는 누를 범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철사자를 추적하고 있었다.
야수(野獸)의 감각을 지니고 있는 철사자가 자신이 추적당하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일지홍은 지금 밀지 하나를 펴 보고 있다. 그것은 그녀가 신(神)으로 섬기
고 있는 인간이 보낸 것이다.
바로 대천마벌주 천마제황(天魔帝皇). 그가 보낸 밀지에는 이러한 글이 적
혀 있었다.
<구월뇌우를 비롯한 지옥십이월의 암살자들을 척살하는 일을 팔월 안에 마
무리짓지 못한다면, 본좌가 네게 전한 모든 것을 회수하겠다.
감정이 배제된 차디찬 필체이다.
그는 보이지 않는 가운데 천하를 지배하는 자이며,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
하지 않는 철저한 인물이었다.
당세에 있어, 살아서 신의 권좌에 오른 인물은 오직 셋에 불과하다.
첫째는 황제(皇帝)이고, 둘째는 무림의 패웅 풍운검호, 그리고 세 번째의
인물이 천마제황이었다.
<구룡무문(九龍武門)도 지옥십이월을 추적하고 있다. 그들을 조심해야 한
다. 그들은 하나같이 백립(白笠)을 썼다. 그 이상 밝혀진 것은 없다!>
쏴아아… 쏴아……!
비 뿌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일지홍은 밀지를 거듭 읽으면서 입술을 잘강 씹었다.
"구월뇌우를 추적하는 일은 처음에는 명령에 따라 하게 된 일이었다. 하나,
차츰차츰 그 일은 나의 숙명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일지홍은 언제부터인가 구월뇌우의 이름과 영상을 가슴 가득히 새기게 되었
다.
사실 구월뇌우는 그녀도 모르는 사이, 그녀의 가슴 가운데 거대한 우상(偶
像)으로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를 죽인다면… 내가 희생한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를 독
으로 제압하리라. 그 다음, 나의 수하로 쓰리라. 호호호…
모든 것은 완성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바보 같은 십이월몽이 나를 안내하
는 한, 나는 며칠 안에 구ㄴ뇌우를 잡게 될 것이다."
쓰으으… 쓰으으……!
검은 안개가 뭉클뭉클 피어 오르고 있다.
마기(魔氣)가 자욱한 곳, 가히 백골산(白骨山)이라 할 정도로 도처에 백골
이 널리어 있다. 부러진 병장기가 널리어 있으며, 너덜너덜한
옷자락이 썩은 채 해골더미 위에 널리어 있다.
그곳, 두 줄기 흐릿한 눈빛이 일어나고 있었다.
팔짱을 낀 채 백골산 속으로 접어든 자,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뺨에 경련을
일으켰다.
"이곳은 마관(魔關)을 견디다 못해 죽은 자가 버려지는 곳이다. 대천마벌은
인간을 금수보다도 못하게 취급하고 있다."
고독한 표정을 지닌 청년, 그는 흐릿한 눈빛 가운데에 서서 묘한 분노의 불
을 일으키고 있었다.
"나는 무림인을 혐오하였으며, 나를 구한 지옥십이월이나 대천마벌이 비슷
한 집단이라 여겼었다. 하나, 대천마벌은 가장 잔혹한 악마의 집단이다. 이
제 그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뇌우, 그는 평상시에는 지극히 무기력해 보이는 청년이다.
그는 살수가 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성격이며, 절정자(絶頂者)의 길을 추
구하는 야망의 무사와는 거리가 먼 청년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의 가슴 깊은 곳에서는 그 자신도 꺼뜨리지 못할 야
망의 불길이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좋아. 대천마벌… 이제 너희들과 나 사이의 싸움은 정식으로 시작이 되는
것이다."
뇌우의 입가에 차갑고 아름다운 미소가 떠올랐다. 일순 그는 하나의 호선을
끌면서 흑무 속으로 감추어졌다.
그의 내공은 지난 봄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가 되었다.
어쩌면 그는 운명으로 이어지고 있는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의 여정을 비
로소 시작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잼 납니다
감사합니다
재미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