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팔 길이
정주용
2020년 봄, 세상은 멈춘 듯 고요했다. 사람들의 눈빛만이 서로의 안부를 대신하였다. 인사 대신 눈으로 웃고 미소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일이 익숙해졌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보지만, 보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거리두기”라는 이름 아래, 세상은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가까웠던 카페의 창가 자리, 자주 가던 공원의 벤치, 친구의 어깨 위에서 터져 나오던 웃음소리, 그 모든 것이 투명한 벽 너머로 물러난 듯했다. 나는 그 벽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우리는 정말 멀어진 걸까? 대구 경북 중심으로 코로나 19 확진자가 급증했었다. 사람들의 걸음이 줄어들었고 대화 온도가 낮아졌었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쪽 팔 길이”쯤 떨어져 서 있었고 그 거리 가 낯설었다. 처음에는 그저 불편한 사회적 규칙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나는 그 “한쪽 팔 길이”가 사람 사이의 거리만이 아니라 마음의 거리이기도 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수산물도매시장에 근무하고 있다. 그 당시 사무실 전 직원 아니, 시장 전체 직원들이 감염되었다. 시장에 오는 손님들은 전부 마스크를 착용했고 식당에 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전부 물건만 사서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신기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감사하다고 해야 할까? 나 혼자는 감염되지 않았다. 감사한 일이다.
벚꽃이 피었지만, 그 아래서 함께 서는 사람은 없었다. 바람이 꽃잎을 흩날릴 때마다 나는 누군가의 빈자리를 손끝으로 더듬듯 느꼈다.
답답한 공기 속에서 나는 새벽마다 신천둔지를 걸었다. 사람이 없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했다. 신천둔지의 새벽바람 온도는 너무 좋았다. 금호강과 합류하는 신이 준 산책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대구“신천”이란 명칭은 “건천”에서 “신천”으로 잘못 번역되었다고 한다. 조선 정조 때 대구 판관 이서가 물길을 돌려서 대구 신천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안개가 피어오르는 물 위로 햇살이 스며들 때면, 세상은 잠시 맑은 숨을 쉬는 듯했다. 그 길에서 나는 “거리 두기” 대신 “숨결 두기”라는 말을 떠올렸다. 서로의 숨이 닿지 않기 위해 멀어졌지만 그 덕분에 바람의 숨결이 내 곁을 지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강물 위로 지나가는 바람이 내 뺨을 스칠 때 그 온도는 사람의 체온처럼 따뜻했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바람은 잡히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마음의 팔 길이란, 닿을 수 없기에 더 느껴지는 거리라는 것을 말이다. 창가에 서서 창문 앞의 나무 한 그루를 바라보았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였다.
봄이면 새순이 돋고, 여름엔 푸르게 자랐다가, 가을이 되면 붉게 물들고, 겨울이면 잎을 모두 내려놓았다. 나는 그 나무를 보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 나무는 언제나 제자리에 있었다. 바람이 불면 몸을 흔들고, 비가 오면 잠잠히 비를 맞았다.
그 모습이 어쩐지 사람 같았다. “저 나무는 외롭지 않을까? ”
그렇게 생각하던 어느 날, 나는 문득 알았다. 나무는 거리를 두지 않고도 세상과 함께 숨 쉬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람과 빛과 하늘이 늘 곁에 있으니 나무는 늘 연결되어 있었다.
사람과 사람의 거리는 멀어졌지만 자연은 언제나 한쪽 팔 길이 안쪽에 있었다. 창문을 열면 공기가 들어왔고 그 공기 속에 누군가의 마음이 실려 있는 듯했었다.
여름이 되면서 마스크 속 공기가 무거워졌다.
습한 숨결이 입안에 고여 답답했다. 수도권 종교시설에서는 코로나 19가 확산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걱정이 앞선다. 여름이 깊어지던 어느 오후, 나는 사무실의 작은 화분을 옮기려다 멈췄다. 그 안의 흙이 건조했고, 잎은 축 늘어져 있었다.
물뿌리개를 들고 흙 위에 천천히 물을 흘렸다. 그 순간, 흙이 물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건 마치 오랜만에 누군가의 안부를 듣는 소리 같았다. 나는 손끝으로 흙을 만졌다. 촉촉한 감촉이 내 마음을 적셨다. 자연의 온기가 내 손끝을 채워주었다. 멀어진 사람들 대신, 내 주변의 자연이 나를 다독였다. 칠곡3지구에 시골길 같은 길이 있다. 저녁에 그 길을 걸었다. 논 사이를 스치는 바람 속에 흙냄새, 풀냄새, 그리고 오래된 기억의 냄새가 섞여 있었다. 어린 시절 비 온 뒤 맨발로 뛰놀던 골목, 서로의 웃음이 공기처럼 가벼웠던 그 시간들. 그리움은 냄새로 다가왔다. 그건 어떤 장벽으로도 막을 수 없는 기억의 숨결이었다. 나는 마스크를 잠시 벗고 깊게 들이켰다. 그 한 호흡 속에서 잃어버린 시간과 얼굴들이 되살아났다.
가을이 오자 거리는 더욱 고요해졌다. 코로나 19가 전국적으로 확산하였다. 계절 탓인지 단풍잎은 떨어지며 세상을 붉게 물들였다.
가까이서 보면 낙엽마다 찢긴 흔적이 있었지만, 멀리서 보면 그것들은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그 모습이 사람의 관계와 닮아 있었다. 멀어져야 보이는 온전한 현실을 나는 생각했다. 거리는 잃음이 아니라, 다른 시선의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이다. 바람이 낙엽을 데려가듯 시간도 사람을 데려갔다. 하지만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낙엽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남아 있는 “마음의 팔 길이”였다.
겨울이 오자 세상은 다시 닫혔다. 2021년 1월 대구에 첫 눈이 내렸다. 눈이 내리면서 모든 것이 잠시 멈췄다. 팔공산의 하얀 눈길을 걸으며 나는 발자국을 남겼다. 눈 위의 발자국은 금세 사라졌다. 설니홍조(雪泥鴻趙)처럼 자국이 남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는 생존의 흔적은 있는 듯했었다. 집으로 돌아와 창가에 앉았다. 손끝이 시렸지만 그 시림조차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거리는 이제 두려움이 아닌, 사색의 공간이 되었다. 그 속에서 나는 나를 돌아보았고, 세상과의 관계를 새롭게 느꼈다.
1년이 지나 다시 봄이 왔다. 벚꽃은 어김없이 피었다. 사람들은 조심스레 거리로 나왔다. 서로의 눈빛이 닿을 때마다 작은 미소가 피어났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거리가 멀어졌던 그 시간은 결국 마음을 되돌아보게 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나는 누군가를 향해 다가갈 때 그 사람의 마음의 팔 길이를 헤아린다. 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도 안 되는 그 미묘한 거리 속에서 관계는 숨을 쉰다. 그리고 나는 배웠다. 사람과 사람의 거리는 손끝이 아니라, 마음으로 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팔 길이를 지닌 채 살아간다.
누군가에게 다가갈 만큼만, 또 상처받지 않을 만큼만. 하지만 그 팔 길이 안에는 바람이 있고, 빛이 있고, 그리움이 있다.
(20251101)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