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4일 ~ 7월 7일 : 귀국 및 사역 후기
7월 4일 ~ 6일 : 무사히 귀국하다
어제 마지막 일정이었던 산 루이스는 거리상으로 멀지 않은 곳이었기에
비교적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녀올 수 있을 것이라 여겼는데,
피할 곳 없던 한 낮의 강렬한 더위는 저희들의 체력을 바닥나게 하였습니다.
숙소로 돌아오니 역시 정전인 상태였고,
샤워 후 간단히 식사를 하고 가방을 꾸리기 시작했습니다.
통상 귀국 가방은 중간 크기로 4개였는데,
이번에는 짐을 대폭 줄여 대형 2개로 정했습니다.
다 꾸리고 보니 무게도 제한치인 23Kg입니다.
가방 수량이 줄어드니 마음도 가벼운 느낌입니다.
귀국 비행기의 출발 시간은 토요일 밤 10시 35분 (11시 55분에서 변경)입니다.
피나르 터미널로 아침 10시 반쯤 느긋하게 나갔습니다.
아바나로 올라가는 차량은 많은데 이동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더운 날씨에 3시간을 기다렸다가 출발했습니다.
아바나 외곽에서 내려 다시 전기 삼륜차를 2번이나 갈아타고 공항에 도착하니
6시 가까이 되었습니다.
마드리드로 향하는 승객들이 많아서
이른 시각에 이미 티케팅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항공유를 쿠바에서 넣을 수 없는 까닭인지
이전에 없었던 경유지인 나쏘 (Nassau)에서 1시간 정도 머물다 갔습니다.
마드리드까지는 대부분 쿠바 사람들이었고
그곳에서 북경까지는 중국인과 여러나라의 외국인들로 채워졌습니다.
쿠바 공항에서 한국인은 저희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였습니다.
북경을 거쳐 인천공항까지 매우 순조로운 비행이었고
걱정되었던 번개와 폭우 없이 집으로 편히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항상 그렇듯이 하나님의 섭리하심이었고 보호하심이었습니다.
이번에도 하나님께서는 다음 사역에 대한 감동도 빠뜨리지 않고 전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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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일이기도 하지만, 터미널에 이동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 쿠바 공항에서는 출국하는 내 • 외국인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 오달리스가 헌금을 나누어 구제하였다는 내용과 산 루이스 사모님이 교인 동정을 보내오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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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로 이민간 줄 알았던 기드온 성경보급팀의 카를로스와 디아넬리를 우연히 터미널에서 만났습니다. 딸을 방문하고 오래전에 귀국했다고 합니다. | 공항을 삼륜차로 방문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 지난 5월 19일자 쿠바 대사관의 공문입니다 |
7월 7일 : 사역 후기
이번 7차 사역은 철저히 정수기 A/S에 역점을 두었습니다.
신형을 구형으로 다운그레이드하는 것을 비롯해,
기존에 설치된 정수기의 필터 거름망을 개선된 부품으로 바꾸는 일정이었습니다.
거기에 추가로 4대를 설치해야 하는
(가방 내용물이 너무 많아 2대 설치로 하향 조정)
매우 빡빡한 한달간의 일정이었습니다.
지난 사역 때, 충분히 준비했다고 여겼던 의약품이
다소 부족했다고 느꼈기에 이번에는 2배 가까이 챙겨 갔습니다.
그런데도 역시 약품을 나누어 주면 줄수록
점점 더 모자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역지가 늘어난 이유도 있지만,
‘국가적인 의약품 부족’이 개개인에게도 한없이 부족함을 전가(轉嫁)하는 것 같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면서 이번 선교부터 연 2회 사역으로
다시 늘리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여름에 방문하는 것이 처음이었고
저도 3년만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여름을 잘 타는 아내에게 쿠바의 여름은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라며
‘긴장하게 하는’ 말을 자주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쿠바의 이번 더위는 10년도 넘은 오랜만에 찾아온 더위라고 합니다.
우기 기간이라 습한 공기로 인해 내내 무더위가 심했고,
6월 일정 중에는 비가 한번도 오지 않아 더욱 덥게 느껴졌으며,
정전으로 인한 냉방 불가는 더위를 더욱 가중시켰습니다.
일정을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저희들의 체력은 이미 고갈되다시피했습니다.
대한민국 외교부에서 5월 19일자로
쿠바를 ‘특별여행주의 국가 (2.5단계)’로 격상시켰습니다.
국가 경제난과 사회적 혼란 그리고 미국과의 군사적 갈등 때문입니다.
지난 사역 때는 귀국 전날 쿠바 정부가 ‘유류 파동으로 인한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었습니다.
이번 “2.5단계 특별여행주의 국가 선포”로 저희들의 사역은
계획을 세우기가 다소 불안정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한편, 귀국 후 이어지는 선교 교육과 목사 고시 및 안수,
교회 개척와 운영 등의 여러 일정도
쿠바 선교에 대해 음과 양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합니다.
어느덧 제 나이도 건강과 부상을 걱정해야할 60세가 되었고
저보다 연상인 아내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좁게 보면 진퇴양난의 환경인데 넓고 길게 보면
이런 날을 위해 ‘10여년 전부터 저를 준비시키신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쿠바 선교의 소명을 받을 당시,
누군가가 제게 "유명 관광지로 놀러가는게 아니냐”라고 말할 정도로
세계적으로 선망(羨望) 받았던 쿠바가,
현재는 코로나 사태로 촉발된 심각한 경제난과
미국과의 마찰로 인한 ‘국가적 존폐 위기’에 처할 줄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 내•외부적 환경은 너무나도 불리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쿠바에 필요한 선교는 그야말로 ‘바로 지금’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