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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자본은 어느 발전원을 선택하는가
― 금융경제학으로 본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경쟁력
김대경 (에너지 컨설턴트, 전 아시아개발은행(ADB) 선임에너지전문가)
들어가며
원자력은 안전한가. 재생에너지는 경제적인가. 수십 년 동안 이 질문은 에너지 정책과 산업계에서 가장 치열한 논쟁거리였다. 원전은 높은 이용률과 안정적인 전력공급 능력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재생에너지는 무탄소 전원과 낮은 한계비용을 강조한다. 한쪽은 에너지 안보를 이야기하고 다른 한쪽은 탄소중립을 이야기한다. 기술도 환경도 정책도 서로 다른 논리를 제시하며 논쟁은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그러나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기술 논쟁은 계속되고 있지만 세계의 자본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수년간 세계 에너지 투자 흐름을 살펴보면, 민간자본은 특정 기술에 대한 철학적 선호가 아니라 투자수익률과 위험, 자본 회전 속도, 금융비용,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며 투자 대상을 선택하고 있다. 기술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금융시장은 기술 그 자체보다 그 기술이 어떤 투자 프로젝트인가를 먼저 평가한다.
여기서 물음이 하나 나온다. 자본은 왜 어떤 발전원에는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어떤 발전원에는 신중하게 접근하는가.
이 물음은 원전과 재생에너지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우수한지를 묻는 것이 아니다. 기술적 성능이나 발전비용을 넘어, 투자자의 관점에서 어떤 프로젝트가 자본을 더 쉽게 끌어들일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발전원의 비용 경쟁력은 균등화발전비용(LCOE)을 중심으로 비교되어 왔다. 발전단가는 중요한 지표이며 앞으로도 계속 쓰일 것이다. 그러나 프로젝트의 경제성은 발전비용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투자자는 건설기간과 자본조달 비용, 현금흐름의 안정성, 정책 위험, 투자 회수기간, 사업의 유연성까지 함께 고려한다.
특히 원전은 발전설비인 동시에 수십 년 동안 막대한 자본을 운용하는 초장기 투자 프로젝트다. 따라서 원전의 경쟁력은 원자로의 성능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자본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지, 건설과 운영 과정의 위험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미래의 불확실성에 얼마나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지가 경제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재생에너지도 마찬가지다. 그 경쟁력은 연료비가 없다는 사실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프로젝트 규모와 투자 회수기간, 단계적 투자 가능성, 금융시장 접근성이 자본의 관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이 글은 그 답을 찾기 위해 기술적 평가에 더해 투자와 금융의 언어를 쓴다. 발전효율과 발전단가에 더해 현금흐름과 자본비용을, 설비 규모와 함께 투자 유연성과 장기 위험을 중심에 놓고 에너지 산업을 다시 바라보려 한다.
오늘날의 에너지전환은 기술혁신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자본 배분의 결과다. 어떤 기술이 더 많은 자본을 끌어들이는지, 어떤 프로젝트가 더 낮은 금융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하는지, 어떤 사업이 더 높은 위험조정수익률을 제공하는지가 미래 에너지 시스템의 방향을 결정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한다. 정책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그러나 자본은 언제나 위험과 수익을 냉정하게 평가하며 움직인다. 이 글은 바로 그 자본의 시선으로 에너지의 미래를 읽어보려는 시도다.
1. 발전원을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1) 발전원은 어떻게 평가되어 왔는가
에너지 산업은 오랫동안 기술의 발전과 함께 성장해 왔다. 더 높은 효율, 더 큰 출력, 더 낮은 연료비가 발전원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기준이었다. 실제로 발전소를 설계하고 건설하는 과정에서는 열효율과 이용률, 설비 신뢰도, 연료 소비량 같은 기술적 지표가 매우 중요하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같은 연료로 더 많은 전력을 생산할 수 있고 운영비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에너지 산업은 오랫동안 기술 중심 산업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발전소가 아무리 우수한 기술을 갖추었더라도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면 건설될 수 없다. 반대로 기술이 다소 평범하더라도 안정적인 자금조달이 가능하다면 프로젝트는 현실이 된다. 기술은 발전소를 설계하지만 자본은 발전소를 현실로 만든다.
(2) 발전비용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기술만으로는 서로 다른 발전원을 비교하기 어렵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경제성 평가이고, 그 대표 지표가 균등화발전비용이다. LCOE는 발전소의 건설비와 운영비, 연료비를 모두 현재가치로 환산한 뒤 총발전량으로 나누어 평균 발전단가를 계산한다.2·4·6 서로 다른 발전원을 같은 기준으로 비교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활용된다.
그러나 LCOE는 어디까지나 발전비용을 설명하는 지표다. 발전사업의 투자 가치까지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3) 왜 금융이라는 관점이 필요한가
여기서 하나의 물음이 생긴다. 같은 LCOE를 가진 두 발전사업이 있다면 투자자도 같은 평가를 할 것인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두 프로젝트의 LCOE가 모두 킬로와트시당 70원이라고 하자. 한 프로젝트는 3년 만에 상업운전을 시작해 현금흐름이 발생하고, 다른 프로젝트는 10년이 지나야 첫 전기를 생산한다. 발전단가는 같지만 투자자의 판단은 달라진다. 건설기간이 길어질수록 금융비용은 늘고 투자금 회수는 늦어지며 미래 현금흐름은 더 크게 할인되기 때문이다.
즉 발전단가가 같다고 해서 투자 가치까지 같은 것은 아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발전비용 중심의 평가를 투자와 금융의 관점까지 넓힐 필요가 생긴다.
(4) 자본은 무엇을 평가하는가
금융시장은 발전소를 기술 설비로만 보지 않는다. 하나의 투자 프로젝트로 평가한다. 투자자가 던지는 물음은 이렇다. 언제부터 현금이 들어오는가. 투자금은 얼마나 오래 묶이는가. 위험은 얼마나 되는가. 금융비용은 얼마인가. 투자금은 얼마나 빨리 회수되는가.
이 물음들은 발전설비의 기술적 성능과는 별도로 프로젝트의 투자 가치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여기서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20세기의 에너지 산업은 발전소를 얼마나 잘 만드는가의 경쟁이었다. 더 큰 발전소를 짓고 더 높은 효율을 달성하며 더 낮은 연료비를 확보하는 것이 핵심 경쟁력이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 에너지 산업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탈탄소화와 전력망 확대, 에너지저장장치, AI 데이터센터, 전력시장 개편으로 막대한 자본이 지속적으로 필요한 산업이 된 것이다.
이제는 발전소를 잘 설계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얼마나 낮은 비용으로 자본을 조달할 수 있는가, 얼마나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만들 수 있는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가가 프로젝트의 성패를 좌우한다. 에너지 산업은 기술 중심 산업에서 기술과 금융이 결합된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표 1 발전원 평가 관점의 확장
이 글은 특정 발전원을 지지하거나 반대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의 물음에서 출발한다. 세계의 자본은 왜 이러한 선택을 하고 있는가.
2. 세계의 자본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1) 세계 에너지 투자 흐름의 변화
에너지 산업의 미래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발전량도 발전설비 용량도 아니다. 자본의 흐름이다. 발전량은 과거의 선택을 보여주지만, 투자의 흐름은 시장이 각 기술의 미래 경쟁력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선행지표다.
최근 세계 에너지 투자는 뚜렷한 구조적 변화를 보이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세계 에너지 투자」에 따르면 청정에너지 투자는 화석연료 투자를 크게 웃돌고 있으며, 특히 태양광과 풍력, 전력망, 에너지저장장치에 대한 투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1
원전에 대한 투자도 늘고 있지만 투자 구조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대형 원전 프로젝트에서는 정부와 공기업, 정책금융기관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서는 민간 금융기관과 기관투자가의 참여가 상대적으로 활발하다.1·2 이 차이는 발전기술의 특성뿐 아니라 프로젝트의 규모와 위험구조, 자금조달 방식의 차이를 함께 반영한다.
(2) 민간자본은 무엇을 먼저 보는가
금융시장의 투자 판단은 발전원의 기술적 특성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투자자는 각 프로젝트가 제공하는 위험 대비 수익률을 함께 평가한다. 먼저 보는 것은 투자 회수기간과 건설기간, 자본 회전율, 현금흐름, 정책 안정성, 투자 유연성이다.
에너지 산업은 정책과 규제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정부는 보조금과 세제, 규제와 시장제도를 통해 투자환경을 바꿀 수 있다. 실제 투자에서는 이러한 정책조건까지 포함해 프로젝트의 위험과 기대수익이 평가된다. 따라서 자본의 흐름은 정책과 시장조건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투자자의 판단을 보여주는 신호라 할 수 있다.
오늘날 금융시장은 발전소를 발전설비인 동시에 투자 프로젝트로 바라본다. 투자자는 발전량뿐 아니라 그 발전량이 얼마나 안정적인 현금흐름으로 전환되는가를 중요하게 평가한다. 또한 사업을 단계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지, 시장 변화에 따라 투자를 조정할 수 있는지, 위험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지도 판단 기준이 된다. 이러한 기준은 태양광과 풍력, 저장장치, 전력망, 데이터센터 등 미래 에너지 산업 전반에 공통으로 적용된다.
그러므로 최근 세계 에너지 투자의 변화는 특정 발전원을 지지하거나 배제한 결과가 아니라, 금융시장이 장기적인 위험과 수익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결과로 보아야 한다.
3. 발전소가 아니라 투자 프로젝트다
(1) 금융시장은 무엇을 먼저 보는가
발전소는 전기를 생산한다. 그러나 금융시장이 투자하는 대상은 발전소의 자산가치가 아니라 미래에 창출될 현금흐름이다.
발전사업자는 발전소를 건설하지만, 프로젝트 파이낸싱에서 금융기관은 그 프로젝트가 만들어낼 미래 현금흐름을 주된 상환재원으로 평가한다. 앞으로 발생할 전력 판매수익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지를 먼저 보는 것이다. 따라서 같은 발전기술이라 하더라도 미래의 현금흐름이 안정적이면 투자 매력이 높아지고, 불확실성이 크면 자본조달 비용도 함께 올라간다.
이런 이유로 금융시장의 시각은 기술자의 시각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기술적 평가는 발전효율과 설비 성능에 초점을 두는 반면, 금융적 평가는 현금흐름과 위험을 함께 중시한다.
(2) 미래의 돈은 지금 얼마인가 — 순현재가치
금융경제학에서는 미래의 돈과 현재의 돈을 같은 가치로 보지 않는다. 오늘 받을 100억 원과 10년 뒤에 받을 100억 원은 같은 금액이지만 같은 가치가 아니다. 현재의 돈은 즉시 투자해 수익을 만들 수 있지만 미래의 돈은 시간과 불확실성을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시간가치를 반영한 지표가 순현재가치(NPV)다.10 미래의 모든 현금흐름을 현재가치로 환산한 뒤 초기 투자비를 뺀 값으로, 양수이면 투자가치를 창출하는 사업이고 음수이면 투자자가 요구하는 수익률을 채우지 못하는 사업으로 판단된다.
원전처럼 건설기간이 긴 프로젝트는 현금흐름이 늦게 발생하므로 할인효과가 크게 나타난다. 반면 건설기간이 짧은 프로젝트는 현금이 빨리 회수되어 순현재가치 측면에서 유리하게 평가될 가능성이 있다.
(3) 이 투자는 얼마나 벌어주는가 — 내부수익률
순현재가치가 절대적인 투자 가치를 나타낸다면, 내부수익률(IRR)은 상대적인 수익성을 보여준다. 순현재가치를 0으로 만드는 할인율로, 프로젝트의 수익성을 수익률 형태로 나타낸다.10 투자자는 이 값을 다른 투자기회와 견주어 자본을 어디에 배분할지 정한다. 다만 내부수익률만으로 판단하지는 않는다. 투자 규모와 위험 수준, 현금흐름의 안정성을 함께 고려한다.
(4) 자본에도 값이 있다 — 가중평균자본비용
자본도 하나의 생산요소이며 비용이 발생한다.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부채와 자기자본의 비용을 각각의 비중으로 가중평균한 것이 가중평균자본비용(WACC)이다.10
프로젝트의 위험이 커질수록 투자자는 더 높은 수익률을 요구하고 금융기관은 더 높은 금리를 적용한다. 결국 위험은 자본비용의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경제성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특히 원전처럼 장기간에 걸쳐 현금을 회수하는 사업은 이 값이 조금만 움직여도 경제성이 크게 달라진다.
(5) 누가 돈을 빌려주는가 — 프로젝트 파이낸싱
발전사업에서는 프로젝트 파이낸싱이 중요한 자금조달 방식의 하나로 쓰인다. 사업주 기업 전체의 신용보다 해당 프로젝트가 창출할 미래 현금흐름과 계약구조를 중심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7·8·9
금융기관은 발전설비의 기술적 특성과 함께 다음을 중요하게 평가한다. 장기 전력판매계약, 현금흐름의 안정성, 정부 보증 여부, 건설 위험의 분담, 운영 위험의 관리, 그리고 부채 상환능력이다.
즉 프로젝트 파이낸싱은 프로젝트의 현금흐름과 위험배분, 계약구조를 중심으로 자금조달 가능성을 평가하는 방식이다.
(6) 위험은 어떻게 금융비용으로 바뀌는가
금융시장에서 위험은 가격이 붙는 대상이다. 건설 지연과 비용 초과, 정책·규제 변화 같은 위험이 커지면 금융기관은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고 자기자본 투자자는 더 높은 기대수익률을 요구한다. 그 결과 프로젝트의 가중평균자본비용이 오르고 미래 현금흐름의 현재가치와 순현재가치는 낮아진다.
공기 지연은 상업운전을 늦추는 동시에 건설기간 중 이자를 누적시킨다. 장기간 건설되는 프로젝트에서는 시간 자체가 중요한 비용 변수인 것이다. 금융시장이 발전설비의 성능과 별도로 현금흐름이 언제 시작되고 투자자본이 얼마나 빨리 회수되는지를 중요하게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발전사업은 발전설비를 건설하는 기술 프로젝트인 동시에 미래의 현금흐름을 설계하는 금융 프로젝트다. 그리고 이 연결관계는 다음 절에서 원전의 금융구조를 이해하는 전제가 된다.
4. 왜 원전은 정부의 금융 지원이 필요한가
(1) 왜 원전은 시작부터 거대한 자본이 필요한가
원전은 대표적인 자본집약 산업이다. 발전소가 전기를 생산하기도 전에 막대한 자본이 먼저 투입되어야 한다. 부지 확보와 설계, 인허가, 원자로와 터빈 제작, 안전설비 구축, 송전설비 연결 등 대부분의 비용이 발전을 시작하기 이전에 발생한다.
일반 제조업에서는 공장을 가동하면서 매출이 생기고 그 수익으로 추가 투자를 이어갈 수 있다. 그러나 원전은 상업운전을 시작하기 전까지 수년 동안 현금 유입이 거의 없다. 매출이 발생하기 전에 대부분의 비용을 먼저 지출해야 하는 산업인 것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원전은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모듈형 발전사업에 비해 초기 투자 규모와 자본조달 조건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2) 시간은 어떻게 비용이 되는가
시간은 금융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비용 요소의 하나다. 원전은 대체로 건설기간이 수년에 이르며 계획보다 길어지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런데 발전소가 완공되지 않았다고 해서 금융비용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건설기간 동안 차입한 자금에는 계속 이자가 붙는다. 이를 건설기간 중 이자(IDC)라 한다.
이 이자는 발전소가 전기를 1킬로와트시도 생산하지 않는 기간에도 계속 늘어난다. 따라서 건설기간이 길어질수록 이자가 누적되어 총사업비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2·8 같은 초기 투자비를 가진 프로젝트라도 건설기간이 4년인 경우와 10년인 경우에는 누적 금융비용이 크게 달라진다. 원전에서 시간은 단순한 일정이 아니라 경제성을 결정하는 비용 변수다.
(3) 위험은 어떻게 금융비용이 되는가
금융시장은 위험을 비용으로 환산한다. 원전 프로젝트에서 발생하는 건설 지연과 비용 초과, 규제 강화, 인허가 지연, 정책 변경은 모두 금융기관 입장에서 프로젝트의 위험으로 평가된다.
위험이 커지면 금융기관은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고 투자자는 더 높은 기대수익률을 요구한다. 결국 위험은 자본비용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자본비용이 오르면 미래 현금흐름의 현재가치는 줄고 순현재가치는 떨어진다. 건설과 운영과 정책상의 위험이 위험 프리미엄과 자본비용에 반영되는 것이다.8·10
(4) 정부는 왜 금융을 지원하는가
원전 사업에서 정부의 역할은 단순한 정책 지원에 그치지 않는다. 실질적으로는 금융 위험을 분담하는 역할을 한다.
정부 보증이 제공되면 금융기관은 부도 위험이 낮다고 판단해 더 낮은 금리로 자금을 공급할 수 있다. 정책금융은 민간 금융보다 낮은 비용으로 장기 자금을 공급하고, 차액계약(CfD)은 미래 수익의 변동성을 줄여 현금흐름을 안정시킨다. 영국이 도입한 RAB 제도는 건설기간에도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게 해 금융 부담을 덜어준다.7·8
이 제도들은 모두 위험을 분담하거나 현금흐름의 불확실성을 낮춤으로써 자본조달 여건을 개선하는 금융장치다.
(5) 원전의 금융구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원전의 금융구조는 단순히 자금을 조달하는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위험을 누구에게 배분할 것인가에 있다. 건설 위험은 시공사가 일부 부담하고, 정책 위험은 정부가 분담하며, 시장가격 위험은 장기 전력판매계약이나 차액계약으로 완화한다. 원전의 금융구조는 자본을 조달하는 구조인 동시에 위험을 배분하는 구조인 것이다.7·8·9
금융경제학의 관점에서 원전 프로젝트의 성패는 기술적 완성도뿐 아니라 건설·시장·정책 위험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배분하고 관리하느냐에 크게 좌우된다.
정리하면 이렇다. 원전은 발전설비인 동시에 초장기 투자 프로젝트다. 막대한 초기 투자와 긴 건설기간, 높은 금융비용, 다양한 정책 위험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금융구조가 경제성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된다. 정부 보증과 정책금융은 정책적 지원수단인 동시에, 금융시장이 부담하기 어려운 위험을 분담해 자본조달 비용을 낮추는 금융적 기능을 수행한다. 결국 원전의 경쟁력은 발전효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5. 왜 민간자본은 재생에너지에 투자하는가
(1) 짧은 건설기간
금융시장에서 시간은 비용이다. 건설기간이 길수록 금융비용은 늘고 현금흐름은 늦어지며 투자 불확실성도 커진다. 반대로 건설기간이 짧을수록 자본은 더 빨리 회수되고, 같은 자본으로 더 많은 프로젝트에 투자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는 기술과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원전에 비해 건설기간이 훨씬 짧다. 투자자는 장기간 자본이 묶이는 부담을 줄일 수 있고 금융기관도 상대적으로 낮은 위험으로 평가한다. 짧은 건설기간은 단순한 일정상의 장점이 아니라 자본 회전율을 높이는 금융적 장점이다.
(2) 빠른 현금흐름
투자자의 수익은 발전소가 아니라 현금흐름에서 나온다. 건설이 끝난 뒤 빠르게 현금이 들어오면 투자자는 자금을 회수해 새로운 사업에 다시 투자할 수 있다. 반대로 현금 유입이 수년 동안 지연되면 금융비용은 늘고 투자 위험도 함께 커진다. 금융기관이 프로젝트의 수익 규모뿐 아니라 현금이 언제 발생하는가를 중요하게 보는 이유다. 같은 총수익을 내는 두 프로젝트라도 현금 유입 시점에 따라 투자 가치는 크게 달라진다.
(3) 단계적 투자
대규모 발전사업은 착수 단계에서 전체 사업규모와 상당한 수준의 자본투입을 사실상 확정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많은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는 사업 규모를 단계적으로 확대할 수 있다. 1기가와트 규모의 발전사업을 한 번에 건설하는 대신 250메가와트씩 네 단계로 나누어 투자할 수도 있다. 이런 방식은 초기 투자 부담을 줄일 뿐 아니라 시장 상황에 따라 투자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4) 기다릴 수 있다는 것도 자산이다 — 실물옵션
금융경제학에서는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응할 수 있는 권리 자체를 가치로 평가하며 이를 실물옵션이라 한다.10 시장 상황이 좋아지면 추가 투자를 하고 나빠지면 투자를 연기하거나 중단할 수 있다면, 그 유연성은 프로젝트의 가치를 높인다.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는 단계적 증설과 투자 시점의 조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실물옵션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난다. 반면 초기부터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프로젝트는 투자 이후 전략을 바꾸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5)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다
금융시장의 기본 원칙 가운데 하나는 위험의 분산이다. 같은 자금을 하나의 프로젝트에 집중하기보다 여러 프로젝트에 나누어 투자하면 개별 사업의 부진이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수 있다.10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는 지역과 기술을 다양하게 구성할 수 있어 투자 포트폴리오를 짜기가 비교적 쉽다. 태양광과 풍력, 저장장치, 전력망 투자를 조합하면 특정 기술이나 지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수 있고, 이는 전체 포트폴리오의 안정성을 높인다. 금융기관은 이러한 분산효과를 중요한 투자 장점으로 평가한다.
미래는 늘 예측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전력수요가 변할 수도 있고 기술이 발전할 수도 있으며 정책이 바뀔 수도 있다.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투자자는 필요할 때 사업을 확대하거나 축소할 수 있는 능력을 중요하게 평가한다. 투자 유연성과 확장성은 불확실성이 큰 시장에서 프로젝트의 금융적 가치를 높이는 요소다.
6. 자본은 어느 발전원을 선택하는가
(1) 자본 회전과 금융비용
투자 회수기간은 금융시장이 프로젝트를 평가할 때 중요하게 보는 요소다. 투자금이 빠르게 회수될수록 자본은 새로운 프로젝트에 다시 투자될 수 있으며 이는 자본의 회전율을 높인다. 반대로 투자금이 오랫동안 회수되지 않으면 자본은 장기간 묶이고 그동안 금융비용과 기회비용이 계속 발생한다.
원전은 대규모 초기 투자 이후 장기간의 건설기간을 거쳐야 상업운전을 시작할 수 있으므로 투자금 회수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반면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는 건설기간이 짧고 상업운전이 빠르게 시작되어 상대적으로 이른 시점부터 현금흐름을 만들어낸다.
자본조달 비용도 마찬가지다. 같은 투자 규모라도 조달 비용이 낮으면 현재가치는 커지고 투자수익률도 개선된다. 반대로 금융비용이 오르면 경제성은 빠르게 나빠진다. 특히 장기간에 걸쳐 투자금을 회수하는 프로젝트는 할인율 변화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
(2) 금융시장은 무엇을 선택하는가
금융시장은 가장 높은 명목수익률만을 좇지 않는다. 금융시장이 추구하는 것은 위험을 고려한 이후의 수익률이다.10 수익률이 아무리 높아도 위험이 지나치게 크면 투자 매력은 낮아진다. 반대로 수익률이 다소 낮아도 위험이 충분히 관리된다면 장기 투자에서는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금융기관은 프로젝트의 기대수익률뿐 아니라 현금흐름의 안정성과 정책 위험, 시장 위험, 건설 위험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표 2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금융적 투자 특성 비교
주: 일반적인 프로젝트 특성을 금융경제학의 관점에서 비교한 것이며, 실제 사업의 특성은 국가와 기술, 시장제도와 금융구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국제기구의 에너지 투자 자료와 금융인프라 투자에 관한 문헌을 종합해 정리하면, 민간자본이 선호하는 프로젝트의 특성은 대체로 여섯 가지다.1·4·8·10·11·12 건설기간이 짧을 것, 현금흐름이 빠르게 발생할 것, 투자 규모를 단계적으로 조정할 수 있을 것, 위험을 분산할 수 있을 것, 정책과 규제 환경의 예측 가능성이 높을 것, 자본 회전율이 높을 것이다.
이 기준은 특정 발전원을 지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금융경제학의 일반적인 투자 원칙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최근 세계 에너지 투자에서 나타나는 변화는 기술의 우열이라기보다 자본이 위험과 수익을 어떻게 평가하는가를 반영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금융시장의 투자 판단은 발전원의 이름이 아니라 그 발전원이 어떤 투자 프로젝트로 구조화되어 있는가에 좌우된다.
맺음말 — 기술 경쟁에서 자본 경쟁으로
기술적으로 우수한 발전원이 반드시 좋은 투자 프로젝트가 되는 것은 아니다. 원전은 높은 이용률과 장기간의 발전능력을 갖지만 대규모 초기 투자와 긴 건설기간, 건설기간 중 이자, 비용 초과와 완공지연 위험을 함께 안는다. 재생에너지는 변동성과 계통통합이라는 별도의 과제를 갖지만, 투자 측면에서는 짧은 건설기간과 모듈화, 단계적 투자와 위험분산이라는 특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경쟁을 발전단가 하나로 판단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누가 자본을 공급하는가, 얼마의 비용으로 조달하는가, 누가 건설·가격·정책 위험을 부담하는가, 현금은 언제부터 발생하는가, 예상과 다른 미래가 왔을 때 투자전략을 수정할 수 있는가를 함께 물어야 한다.
자본은 이념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위험을 가격으로 바꾸고 시간을 할인하며 미래의 현금흐름을 현재가치로 계산한다. 다만 자본의 선택이 사회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에너지 시스템을 자동으로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에너지 안보와 탄소배출, 계통 신뢰도, 환경영향 같은 공공적 가치는 정책이 함께 고려해야 한다.
특히 정부 지원을 받은 원전의 경제성을 평가할 때에는 낮아진 자본비용만 볼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위험이 어디로 이동했는지를 살펴야 한다. 정부 보증은 신용위험의 일부를 공공부문으로 옮기고, 차액계약은 가격위험을 계약 상대방과 나누며, RAB 제도는 건설기간의 비용 일부를 소비자에게 옮길 수 있다. 금융지원은 위험을 없애는 장치라기보다 위험을 재배분하고 자본비용을 낮추는 장치에 가깝다.*
같은 원칙은 재생에너지에도 적용된다. 재생에너지가 민간자본을 상대적으로 쉽게 끌어들인다는 사실이 곧 전력시스템 전체에서 항상 가장 저렴하다는 뜻은 아니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질수록 전력망 확충과 저장장치, 유연성 자원과 계통 안정화에 대한 추가 투자가 필요할 수 있다.2·3 프로젝트 차원의 금융적 경쟁력과 전력시스템 차원의 총비용은 구분해서 보아야 한다.
이 글은 재생에너지가 모든 면에서 원전보다 우수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주목하는 것은 두 발전원의 금융적 특성 차이다. 지금의 금융시장에서는 건설기간이 짧고 초기 투자규모가 작으며 단계적으로 투자할 수 있고 여러 프로젝트로 위험을 분산할 수 있으며 시장 변화에 따라 규모를 조정할 수 있는 사업이 민간자본을 끌어들이는 데 유리하다.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는 대형 원전 프로젝트에 비해 이러한 특성을 더 많이 갖추고 있다.
반대로 원전이 더 많은 민간자본의 선택을 받으려면 기술적 성능 개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건설기간을 단축하고 비용 초과 위험을 낮추며, 표준화와 반복건설을 통해 완공위험을 줄이고, 민간투자자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금융위험을 낮추어야 한다. 결국 원전의 미래 경쟁력 역시 기술혁신과 함께 금융구조 혁신의 문제다.
앞으로 수소와 소형모듈원전, 핵융합, 장주기 에너지저장장치, AI 기반 전력망도 같은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투자할 가치가 있는가. 기술은 가능성을 만들고 정책은 방향을 제시하지만, 그 기술이 대규모로 보급되고 산업이 되기 위해서는 결국 자본이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마지막 물음은 어떤 발전원이 더 좋은가가 아니라 어떤 발전원이 자본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가이다. 이 물음은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논쟁을 기술의 우열에서 자본의 비용과 위험의 배분이라는 더 넓은 차원으로 넓혀 준다.
주
* 사고가 났을 때 사업자가 준비해 둔 배상재원과 국가가 실제로 감당해야 할 피해 사이의 간격은 이 책 5장(이정윤), 폐기물 관리가 국가에 남기는 장기부채는 8장(이정윤)에서 다룬다. 계통 측면의 통합비용은 4장(이정윤)을 함께 참고할 수 있다.
1. International Energy Agency, World Energy Investment 2026, IEA, Paris, 2026.
2. IEA and OECD Nuclear Energy Agency, Projected Costs of Generating Electricity 2020, OECD Publishing, 2020.
3. OECD Nuclear Energy Agency, The Costs of Decarbonisation: System Costs with High Shares of Nuclear and Renewables, OECD Publishing, 2019.
4. International Renewable Energy Agency, Renewable Power Generation Costs in 2025, IRENA, 2026.
5. International Renewable Energy Agency, World Energy Transitions Outlook, 2024.
6. Lazard, Levelized Cost of Energy Analysis, 2026.
7. World Bank Group et al., Public-Private Partnerships Reference Guide, Version 3.0, World Bank, 2017.
8. E. R. Yescombe, Principles of Project Finance, 2nd ed., Academic Press, 2014.
9. J. D. Finnerty, Project Financing: Asset-Based Financial Engineering, 3rd ed., Wiley, 2013.
10. R. A. Brealey, S. C. Myers, F. Allen and A. Edmans, Principles of Corporate Finance, McGraw-Hill, 2025.
11. BloombergNEF, Energy Transition Investment Trends, 2026.
12. BlackRock, Global Infrastructure Outlook,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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