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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월-신불-영취산(1,092m ; 영남알프스, 울산광역시)
*일 시 : 2005. 11. 19~20(주말무박), 제54차(16명), 날씨(쾌청)
*코 스 : 배내 고개-배내봉-간월산-간월재-신불산-신불재(대피소)-신불평원-영축산
(=영취산=취서산)함박등-함박재-삼거리갈림길-백운암-극락암-반야암
-세심교-서축암-통도사-매표소-주차장
*소 시 : 오전 5시 25분~ 오후 1시 15분 종료(총 15Km, 7시간 50분간 소요)
간월-신불-영취산으로 연결하는 영남알프스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2002년 11월 16~17일 무박산행(한솔산악회)이었으니 만 4년만의 해후다. 당시코스는 배내 고개에서 간월산-신불산-영취산-한피기 고개(시살등)에서 능선 우측인 백련마을로 하산한 코스였다. 오전 5시 등정해 오후 12시 30분 종료, 7시간 30분간이 소요됐던 산행이었다.
‘영남알프스’는 울산 울주군 상북면과 경남 밀양군 산내면, 경북 청도군 운문면 등 3개 시도에 모여 있는 해발 1천m 이상의 7개 산군(山群)인 문복산(1013m)-고헌산(1032m)-가지산(1240m)-운문산(1180m)-천황산(1189m)-간월산(1083m)-신불산(1208m) 등을 지칭하는데, 유럽의 알프스와 풍광이 버금간다는 뜻에서 영남알프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산릉의 동쪽은 암벽이 많고 경사가 급한 반면 서쪽은 완만한 경사를 이룬 동급서완의 지형이다. 알프스는 계곡의 여름이 좋을 뿐 아니라, 2월과 3월초의 설경산행은 억새산행 못지않은 환희를 맛본다.
누가 뭐라고 해도 영남알프스의 명물은 8∼9분 능선 곳곳에 펼쳐진 광활한 억새밭이다. 그 중 재약산 사자평원 억새밭은 무려 1백여만 평에 이르는 장엄한 풍광은 단연 백미다. 가을 사자평원의 억새가 빚은 흰색물결은 금방이라도 숨이 막힐 듯 환상적이다.
거찰 통도사가 있으며 동래온천이 지척에 있어 좋다.
通度寺는 신라 선덕여왕 14년 ( 645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하고 금강계단의 사리탑에 석가여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삼보사찰중의 불보사찰로 유명하고 50여동의 건물로 된 대가람이다. 일주문에 靈鷲山 通度寺란 현판은 취서산의 모습이 부처가 설법하던 인도 영취산과 흡사한데서 부르게 된 또 하나의 산명이다.
11월 19일 밤 9시.
지난 10월 15~16일 사량도 이은 1개원만의 주말무박산행이다.
11월 중순부터 12월 초순까진 김장철이라 회원참여가 상당히 저조하다.
명년엔 이를 감안한 산의 선택과 일정의 조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밤 1시.
경부고속도로 북대구 부근을 지난다.
1974~75년 침산동 제3공단 시절이 아련하다. 비록 30년의 세월의 그쪽과 이쪽이 서로를 바라보며 마주하는 시간은 분명 부시(浮時)이며 부월(浮月)이다. 지난 세원의 무상함에 구독점을 찍기가 두렵다. 모든 과거는 대부분 아름다움으로 윤색되건만, 당시의 시간들은 세월의 이편에서 음미할수록 아리고, 생존의 통증을 벗어나지 못하는 회한은 업장(業障)이며 업보(業報)일런가? 분명 참담(慘憺)하고 남루(襤樓)했던 이승의 형벌이리라.
2시 15분.
고속도로 언양IC 직전 들머리에 진입하는 시간조절과 새벽식사를 위해 언양휴게소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약 1시간 40분 버스에서 선잠을 보내고 식사를 마친 후 4시 30분에 자리를 떠 새벽 5시에 산행을 시작하기로 작정했다. 남녘의 기온은 예상보다 훈훈했다.
새벽 3시 50분.
식사준비를 위해 휴게소 화장실로 가던 중 평생 만나고 싶지 않을 사람을 만났다.
장다름 산악회를 떠났던 2000년 말에서 2001년 초 약 3개월 동안 심한 마음앓이를 했다.
수치스럽고 자존심이 참담하게 찢겼던 기억은 아직도 선연하다. 털어버리려 하면 할수록 찰거머리처럼 악착같이 따라다니던 마음앓이는 많은 인생학습을 안겼다.
김영식씨, 김창돈씨 부부, 그리고 부천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000씨, 충암고교의 윤상천 선생님과의 해후도 분노의 마음이 삭아지지 않은 새벽 때문에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산행직전에 이런 혼란한 마음은 오히려 산행리드를 그르칠 수 있다는 판단에 애써 태연하려 했지만 무의식의 심저에 깔렸던 격한 분노를 참아내기엔 인간적으로 역부족이었다.
오늘따라 괴롭던 업장의 연속이다. 시혜(施惠)치곤 어려운 부처님의 시험이다.
준비한 새벽 배식(配食)이다.
따뜻한 된장국물이 목젖을 타고 내장 깊숙이 파고든다.
모래알을 씹는 무덤덤한 밥맛이다. 산행을 위한 의례적 식사다.
울주군 언양IC(새벽 4시 5분)를 이탈한 새벽버스는 24번 도로를 타고 서북향, ‘행정’ 삼거리에서 손경남기사가 차머리를 정 북향으로 돌린 시행착오로 운문령을 넘어가는 시행착오로 약 25분간을 허비했다. 착잡한 마음을 정리하느라 운행에 신경을 덜한 사이에 빚은 불찰이었다. 회차하여 다시 ‘행정’ 삼거리로 나왔다.
‘살터’를 통과, 24번 도로가 69번 도로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구절양장의 아스팔트 포장도로 5Km를 숨 가쁘게 오르는 새벽버스의 거친 호흡소리가 격노(激怒)를 삭임질하는 소리처럼 메마르다. 배내고개 마루로 향하는 새벽은 늘 이렇게 우보(牛步)다.
새벽 5시 23분.
해발 700m 11월 새벽 배내고개 마루턱은 선착한 5대의 버스와 몇 대의 승용차들이 뱉어놓은 승객들로 波市다. 각종 안내도 입간판이 새벽어둠에 번득거린다.
4년 전의 기억을 더듬으며 주변상황을 읽어내기에 바빴다.
금새 정수리에 떨어질 것 같은 밝고 맑은 별들이 너무도 가까운 하늘에 달려있다.
사방은 검은 장막을 두른 듯 검은 먹칠의 새벽시간이다.
우측아래 양천천의 산록마을의 새벽불빛과 폐견(吠犬) 소리와 함께 산촌의 야경도 도시야경에 못지않게 휘황하다. 좌측 언양 시가지와 그 너머 울산광역시 시가지 새벽불빛이 장관이다. 天上을 향한 행보다.
2분 후 배내봉을 향해 올라가는 완만한 너른 오르막에 섰다.
배내봉을 향해 능선을 호시우보(虎示牛步)의 마음이다.
호랑이처럼 넓고 날카로운 눈을 갖되, 여유를 가지고 소처럼 걸으라는 의미다.
애써 다잡아보는 가슴 깊숙이 새벽공기가 서늘하다.
한창 때가 지난 억새꽃밭 사이 길은 옛 어머니들의 가르마와 같이 깊이 파인 도랑이다.
알프스란 이름을 그냥 빌린 게 아니다. 연중 불어오는 강하고 차가운 서북풍이 큰키나무의 서식을 불가능하게 했다. 듬성듬성 관목들이 보이는 완만한 능선을 밟고 오르는 새벽의 산소는 생각보다 신선하다는 생각이다.
5시 50분.
잠시 쉬어가기 좋은 무명봉이다.
동편 언양시가지 야경불빛과 하늘의 별빛은 문자 그대로 “불바다, 별 바다”다.
음력 19일 원형에 가까운 밝은 새벽달은 보조랜턴 역할이다.
30여명의 00등산회원들이 선점하고 있었다.
후미와 합류, 발 빠른 이동이다.
6시 03분.
<배내봉 966m, 울산 그대로 산악회>
랜턴에 빨려든 표지석 내용이다.
사방은 새벽어둠이지만 머릿속에 그려진 사방은 일망무제다.
산행 직전 참담했던 기억의 일부가 작은 포말(泡沫)을 일으키며 사그라지고 있다.
산은 사철 어느 때라도 신선한 만남을 주어 고맙다. 마음껏 맡을 수 있는 산 냄새를 흠향하는 새벽산행은 인생의 여유이자 축복이다. 계절불문, 명암불문, 시간불문, 장소불문, 노소불문, 일기불문의 원칙을 준수하는 산행에서 자유인으로서의 풍요함을 만끽한다.
山形이 좌측은 급박한 절벽이나 단애로, 우측은 좌측에 비해 상대적으로 완만한 사면이다. 새벽어둠에 비친 리본을 식별하며 재촉하는 행보다.
암석과 교목림 지대를 오른다.
간월산이 전면에 무대처럼 실루엣을 이룬다. 울산시 하늘, 동해 위에 금성 별빛이 너무나 선명하고 아름답다. 홀로 자신을 지키는 별빛의 고고한 자존심에 경외감이 든다.
멀리 어둠속에 보이는 시커먼 부분이 동해냐고 묻는다.
“그러지요. 동쪽에서 해가 뜬다고 해서 동해지요.”
희떠운 객담이라도 쏟아야 직성이 풀리리란 생각이다.
간월산 봉우리가 새벽미명을 타고 아슴푸레 닻을 내린다.
‘간월’의 ‘肝’은 산의 형체가 인체의 肝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간월산이란 이름을 붙였던가?
현재 하늘에 걸린 달이 영락없이 간모양이다.
간월산을 비치는 간월(肝月 )이 딱 들어맞는 새벽이다.
6시 15분.
진달래 나목이 들어찬 능선내림이다.
고치 속에서 누에잠을 자는 언양시가지가 영영 깨어나지 않으리라는 불안한 생각이다.
우측 5부 사면쯤을 뚫고 만든 임도가 허연 뱃바닥처럼 뒤집혀있다.
억새길은 계속 이어진다.
능선은 잠시 오르는가 싶더니 평탄해 진다.
6시 30분.
페이드인(Fade in)이 되는 무대처럼 차츰 새벽이 걷어지고 있다.
진달래 나목이 무성한 오르막이다. 동해안은 일출직전 좌우로 선홍색 홍평선(紅平線?)을 그어놓았다. 하늘을 바라보았다. 장엄한 일출장면을 맞을 시간이 다가온다. 억새꽃이 지고 남은 앙상한 줄기가 흔적으로 남아 11월 초겨울을 빗겨간다. 신갈나무, 물푸레나무, 진달래 관목아래 조릿대(산죽) 밭이 언듯 보인다. 사방이 무상한 관망이다.
간월산을 향한 오르막이다.
가능하면 간월산 정상에서 달과 함께 해맞이를 동시에 접하기를 고대하며 일행들과 함께 부지런히 올라갔다. 우리들 보다 약 40여 분 먼저 올라갔던 장다름산악회 윤상천 선생님께서 휴식을 취하다가 지나가던 내게 인사를 건넨다. 간월산 정상 5분 거리 아래 쉼터에 멎었다. 일출을 맞기에 손색없는 자리다. 아침 7시를 전후한 일출시간이다.
장다름회원 김영식씨가 지나가며 눈인사를 남긴다.
5시 4분.
쉼터에 오른 16명의 일행 과 서서히 붉어지는 동해하늘을 조용히 응시했다.
풍선처럼 둥근 머리 부분부터 부양하는 日出이다.
내장 깊숙한 곳에서 차츰 뱉어내는 붉은 빛의 태양을 바라보는 일행들은 일체의 호흡소리도 내지 않고 응시하고 있다. 일행들마다 동상(銅像)처럼 경직된 자세에서 나름대로의 생각들에 골몰하는 모습들이다. 몇몇 일행들은 일출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기에 바쁘다. 동해 한 가운데에서 검은 무인도처럼 생긴 암벽을 우측에 두고 떠오르는 태양은 장엄함 그대로다.
시공 일체가 멎은 상태다.
찰나(刹那)와 찰나 사이가, 공간과 공간의 간극(間隙)마다 확연하게 정지한 현재가 더욱 거룩하다. 이는 아름다운 눈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자연의 보상이다.
하늘은 텅 비어있지만 공간마다 가득한 환희를 저마다 가슴에 담기에 바쁘다.
태초의 고독이 이러하거늘 사람의 마음도 모든 것을 허락하는 仙人으로 돌아가고 있다.
1겁파(劫簸)는 하나의 찰나다. 1찰나는 하나의 겁(=겁파)이다.
겁과 찰나는 시차를 상쇄한 제3의 시공에 머물러 있다.
부산(浮山)이 이러하거늘……
포아(包兒)의 머무름이 이러하거늘……
연신 셔터를 눌렀다. 오늘의 축복이며, 엄청난 행운이다. 누군가 함성과 탄성을 쏟는다.
이제 대지는 햇살을 받으며 새로운 탄생과 함께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자연의 베풀음은 이렇게 언제나 풍요하다.
처음 대하는 일출장면이 아니건만 일출을 맞을 때마다 새로운 감격과 흥분에 싸인다.
태양은 이렇게 감흥과 환희를 안겨주는 마력을 지녔나보다.
일출장면이 지난 한참 후 기념사진을 넣자는 제의다.
우리 일행과는 반대방향에 짐짓 서있는 장다름회원 박형록씨를 발견하고 그의 손을 찾았다.
상당히 경직된 표정이다. 보이고 싶지 않은 그의 얼굴에 거북하고 힘든 기미가 묻어 있었다. 시간을 찾거들랑 연락을 하라는 말을 남기고 일행과 함께 렌즈 앞에 섰다. 그와 관련된 세속의 인연 때문만은 결코 아니다. 산행을 하면서 잊혔던 우울이 되살아나고 있다.
하늘을 쳐다보며 심호흡을 했다.
좋아하는 것엔 이유가 없지만, 미워하는 것엔 분명 이유가 있다는 말이 생각났다.
오늘도 다른 날처럼 영광이 같이하기를 빌면서 말이다.
7시 17분.
주성철-최백호-공계성씨 일행이 선등한 간월산 정수리에 올라섰다.
<肝月山 해발1,083m, 동양나일론 언양공장 등산회, 1991.5.12>
<간월산 1,083m, 고현산우회, 2000. 4.12>
간월산 정수리 바위에 박힌 두 개의 오석으로 만든 한글과 한자로 새긴 정상표지석이 천상 다감한 쌍둥이 형제다.
한자와 한글로 표기한 烏石으로 만든 두 개의 비석이 나란히 정수리에 박혀있다.
우측 산록 아래로 허옇게 굽이쳐 꿈틀대는 임도가 양의 내장처럼 굽이쳐 흐른다.
역광의 햇살 에 반사하는 은빛 억새가 화려하다.
우리는 흰 억새를 꽃으로 알고 있으나, 실제로는 열매다.
초가을부터 꽃줄기에 피어난 꽃송이는 씨앗을 맺는다. 그 씨앗이 우리가 보고 환호하는 억새다. 씨앗이 맺으면 그 끝에 솜털이 생긴다. 솜털장치를 이용하여 바람을 타고 머리 날아가 종족을 번식하는 다년생초본인 억새는 뿌리로도 번식한다. 종족번식 본성이 강한 생존방식에 신비함과 외경심이 솟는다.
동쪽 언양과 울산광역시의 너른 시가지 사이에 군데군데 박혀있는 작은 초록색 구릉들이 마치 도시의 <山섬>이다. 간월재로 내려가는 일행들의 행보가 경쟁적이다. 적당한 호승지벽(好勝之癖)도 때론 인생의 보약이 되겠다 싶었다.
멀리 양산과 언양 벌이, 그 뒤로 정족산-천성산 줄기가 아침 이내에 묻혀 있다.
7시 30분.
간월재 정상과 간월재 중간지점에 설치한 모재로 만든 정방형 테크(5m×5m)다.
소형텐트 두 개를 쳐놓고 야영을 하던 젊은 친구가 텐트 밖으로 나와 지나가던 나와 일행들에게 휴지(화장지)가 있으면 달라는 간청이다. 주머니에 있던 휴지 몇 장과, 일행 중 누군가 배낭에 준비했던 휴대용화장지를 건네며 30m 지점에서 내려오고 있던 정재근 감사님을 가리키며 덧붙였다.
“저기 내려오는 사람한테 부탁하세요. 김포에서 휴지공장하고 있으니까 아마 트럭으로 갖다 줄 겁니다.”
일행들과 배낭을 내리고 휴식을 가졌다.
들머리 이후 처음 나누는 행동식이다. 데크 동쪽 아래 30m 지점에 원형돌탑 하나와 작은 추모비석 하나가 보였다. 100여 m 북쪽 암벽 위에 검은 염소한마리가 서 있다. 자연생이냐, 사육이냐를 두고 설왕설래다. 누군가 소주를 꺼내며 훌륭한 안주를 만났다며 익살이다.
한참을 그렇게 노닥거렸다.
간월재를 향한 판목으로 만든 계단내리막이다.
중간에 설치한 3개의 계층을 둔 테크에서 김영주씨가 서있다.
‘새벽공연 준비무대’냐고 했더니 ‘독무대 준비’라고 재치를 부린다.
7시 46분.
낮은 키의 억새가 좌우로 깔린 간월재 사거리다.
그 중앙통엔 왕래하가 편하게 바닥에 목판을 깔아두고 좌측엔 높이 5m 가량의 원뿔형 돌탑과 표지석이 목책으로 둘러져 있다. 의자와 함께 식탁을 겸한 테이블이 여러 개다. 과거보단 다른 세팅이다. 공연장처럼 널찍한 갈색의 목제 데크가 마련돼 있다.
과거 간이매점이 있던 자리였다.
여러 가지로 산행객들을 위해 신경을 쓴 울산광역시의 배려다.
<간 월 재>
<홍류폭포 ← 신불산↑ 간월산↓ 신불자연휴양림, 파래소폭포 → >
좌측으로는 구절양장의 임도를 따르거나 관통하여 홍류폭포와 홍류산장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우측 길은 활처럼 남쪽으로 굽어진 임간도로를 타던지 아니면 등산로를 따라 ‘파레소 폭포’를 지나 백련계곡으로 빠지게 된다. 간월재에서 1.5Km 아래지점에 있는 파레소 폭포는 옛날 기우제를 지내던 장소다. 이곳에서 제를 올리면 바라던 대로 비가 내렸다하여 ‘바래소’에서 유래된 이름이 ‘파래소’로 變音되었는데 그 주변은 선경이다. 소와 폭포가 연이어 격렬하게 흐르는 폭류와 와폭, 거대한 바위사이로 흐르는 한 여름 계곡은 비경으로 남아있다. 지금도 간절한 소망을 비는 사람들의 내왕이 잦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파래소 주변에 조성된 ‘신불산 폭포자연휴양림’과 전망대 등이 이곳 사람들의 휴식처로 이용된다.
수천 평 간월재 너른 평지는 헬기장도 있고, 무엇보다 장관인 것은 무릎높이의 억새밭이다. 노랗게 변색한 억새는 가을이 지났지만 겨울을 맞이하면서도 제 색깔을 잃지 않고 고고한 자태다. 목책과 판목계단을 이용한 신불재를 향한 오르막은 한 땀을 쏟아야 하는 된비알이다.
8시 16분.
<119-305지점, 울산광역시소방소>
다목적 표지기둥이다.
역광의 신불재정상이 매춘부의 눈짓보다 더 강열하고 노골적인 몸짓으로 유혹한다.
<신불산0.3Km ← 홍류폭포 2.8Km↑(신불재) → 간월산1.5Km>
진달래 신갈나무 나목 군락지대를 지난다.
강력한 서북풍에 견딜만한 것은 관목과 억새뿐이다. 그들은 나름대로의 생존 방법에 익숙한 형태로 발달했다. 연중 불어오는 북서풍으로 억새는 모두들 동쪽으로 누워있다. 새로운 식물학 명칭으로 ‘눈 억새’(누운 억새)란 이름 하나를 붙여주고 싶다. 수십 종이나 되는 바람의 종류 중 ‘군자지덕풍(君子之德風)’이란 다소 뜨악한 이름의 바람이 있다. 소인의 덕은 군자의 덕(바람)에 따른다는 의미일 것인데, 우리 선조들은 바람 하나에도 이와 같은 갸륵한 이름을 붙인 여유와 낭만에 머리가 숙여진다. 풀은 바람 부는 방향으로 눕게 되는데 이때의 풀 위로 부는 바람을 이른다. ‘눈 억새’는 ‘군자의 덕풍’으로 이뤄진 것이다.
평탄한 능선을 디디는 가슴에 ‘산 절로 나 절로 바람 절로다.’
삼거리 갈림길이다.
<신불산정상 강월재↘ ↗파래소 폭포>
동남쪽 신불산 정상이 지척이다.
삼거리에서 좌측은 수평능선으로 이동이다.
영취산이 같은 높이로 들어온다.
그 뒤로 10여 개의 봉우리들이 도토리 키재기 하듯 일렬종대로 솟아있다.
7시 24분.
<신불산 1,092m>
글자 위 부분에 태극기를 넣은 직사각형(35X50) 대리석에 새겨진 신불산 정상표지를 암석 위에 평면으로 붙여 놓았다.
<영취산 2.95Km ↔ 간월산 2.3Km>
<신불산 119 구조신고 번호 10, 울산중구소방서장>
거대한 원형돌탑이 있다.
선착한 일행들이 무인산불감시탑 옆구리에 기생식물처럼 콘셋형 포장을 두른 상설(?) 판매점에서 판매하는 어묵을 즐긴다. 그 외에 커피-막걸리 등을 판매한다. 따끈한 어묵국물로 목을 축이고 배낭에서 준비한 정상주를 꺼냈다. 정상을 떠나기 전 먹었던 25개의 꼬치 값이 25,000원이라는 말에 놀라는 주성철씨다. 예상보다 많다는 뜻이다. 맛있게 먹었던 어묵이 기절하는 순간이다.
비록 영하의 기온이만 따끈한 날씨다.
게다가 특유의 강풍이 없는 오늘은 분명 행운이다.
신불산에는 공룡능선을 닮은 이름난 암릉이 있다.
간월 산장을 지나 홍류폭포까지 올라가면 그 아래쪽에 간월재 방향과 공룡릉선이 갈라진다. 좌측 길로 접어든 뒤부터는 급경사 길이고 이어 바위지대가 나타난다. 1Km 남짓한 이 암릉을 ‘아리랑리치’라는 이름을 붙여놓았는데 영남인들의 한 아름 사랑을 받는 코스다.
4년 전 이곳을 지나며 남긴 후기 일부다.
「서쪽으로는 같은 영남 알프스군인 천황산-재약산 줄기가 산평선(?)을 이루고, 배내고개 너머 능동산과 석남고개로 내려간 줄기가 다시 운문-가지산 줄기로 끝 간 데 없이 뻗은 능선 겨울 아침에 선명하게 들어온다. 황홀하게 바라보는 눈과 입은 어느새 벌려있다. 화려한 능선은 화려한 가슴을 약속한다. 역 Y자형으로 연결된 영암알프스 능선은 굴곡이 원만한 성숙한 여체처럼 곡선미가 뚜렷하다. 연상만으로도 신비함을 안긴다. 겨울철 눈이 쌓였을 때 바라보이는 이곳 전경이 유럽의 알프스와 흡사하다는데서 ‘영남 알프스’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영남알프스는 경북 청도, 경남 울산, 밀양, 양산 등 2개 道와 4郡에 걸쳐있는 山群으로 1,000m급 이상 봉우리가 10여(취서-신불-운문-가지-간월-천황-재약-고헌산 등) 峻峰들을 거느렸을 뿐 아니라 국내 명찰(표충사-석남사-운문사-통도사)들을 보유하고 있다. 불교문화의 정수가 몰려있는 영남알프스는 일단 한 봉우리에 올라서면 같은 높이의 산들을 한꺼번에 주파한다는 매력이 있는 산이다. 가을철의 억새군락, 겨울철의 설경은 누구라도 쉽게 매혹되는 마력의 산이다. 우리 일행들이 오늘 주파하는 코스에도 1천m급 山群 5개(간월-신불-취서산과 체이등-죽바우등)가 몰려있다.」
바위(유치환)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물들지 않고
비와 바람에 꺾이는 대로
억년(億年)비정의 함묵(緘黙)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칙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먼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트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
군자는 화합하나 뇌동하지 않고, 소인은 뇌동하나 화합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여러 사람과 화목하게 지내는 것을 和라고 한다면, 주관없이 남이 하는 일에 휩쓸려 쫓는 것을 同이라 한다. 바위에서 화이부동의 정신을 배우는 기회다. 간월산에서 바위슬랩지대를 타고 내려오며 생각한 사념이다.
멀리 영축산 정상이 독수리 부리처럼 솟구쳐있다.
내리막길은 2m 노폭 좌우로 길게 드리운 가드 라인 로프를 ‘신불평원’까지 쳐 놓았다.
‘억새풀 보호구역’이라는 표지가 로프에 걸려있다.
8시 48분.
신불평원 신불재 4거리에 내려섰다.
<영취산 2.3Km← 가천마을 4.15Km↑(신불평원) 백련암↓, →신불산 0.65Km>
억새의 백미 억새평전이다.
이십만 평 억새밭은 오전의 맑은 태양빛과 서북풍에 동일한 동작의 율동은 지휘자 없는 매스게임이다. 그 작은 몸짓 하나에서 생존과 자연을 배운다. 이곳에선 누구든 자신이 왜소한 나그네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잠깐이라도 겸손해질 것이다.
샘을 보고 하늘을 본다는 얘기인가?
환상과 황홀의 극치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오히려 침묵이 가장 현명한 표현인지도 모를 일이다. 언어의 극치는 침묵이라고 하지 않던가.
나 하나와 억새밭 하나가 일체가 된다. 구름에 묻힌 달처럼, 거룻배에 실려 어디론가 흘러가는 나그네처럼 수수로운 마음에 잠시라도 흔들렸다면 행운으로 알아야한다.
영남알프스 능선은 어디서건 막영이 자유롭다.
초원 한 가운데에서 밤을 지새는 원초적 낭만을 즐기는 영남알프스는 산꾼들에겐 매우 희귀한 ‘자유의 땅’이자 ‘축복의 땅’이다. 순수한 시간을 깨우고 좌우의 억새군락을 껴안으며 영취산 정상을 향한 마지막 경사를 오른다. 서쪽 하늘에 새벽에 봤던 달이 그대로 떠있다.
낮달이다. 높낮이가 수더분한 능선은 평화의 능선이다.
9시 30분.
영취산(=鷲捿山) 정상에 올랐다.
<영축산 鷲鷲山 1059m>
<영취산(취서산) 1075m>
<1978년 언양>
간월산 정상처럼 오석으로 세운 형제표지석이다.
영취산 정상 표지석은 두 개. 이름도 높이가 다르게 되어있다. ‘취서산, 영취산, 영축산’이며, 높이는 1,059m, 1,075m 두 가지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나 통일이 필요하다.
봉우리 마다 만나는 두 개의 표지석은 색다른 의미를 일궈준다.
암석으로 된 정상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독수리(鷲)가 서식(棲)한다는 의미의 취서산 정상은 암벽과 암석으로 이룬 테라스형 암봉이다.
영축산은 이명(異名)으로 영취산-취서산-축서산 등으로 혼용하다가 영축산으로 부르기로 했단다. 부처님 당시 마가다국 왕사성 동쪽의 그라드라라는 산에서 법화경을 설하고 신선과 독수리들이 많이 살았다는 산으로 알려졌는데, 자장율사께서 통도사를 창건할 때 본뜬 것으로 전한다.
<신불산 2.95Km ← 영취산(취서산)→ 극락암 2.1Km, 시살등 3.0Km>
사방이 탁 트인 정상에서 바라보는 세상의 광활함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깊은 호흡을 몇 차례 반복했다.
‘천지는 나와 더불어 뿌리가 같고, 만물은 나와 더불어 하나다.’
청화스님이 중생을 향한 덕담이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은 하나라는 의미일성 싶다.
‘일체중생 개유불성(一切衆生 皆有佛性)’
모든 생명은 불성(佛性)이라는 유전인자를 갖고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마음이다.
모든 자연이 우리들에게 공평하듯이 천지만물을 내 몸과 똑같이 바라보라는 메시지다.
세상을 조금만 깊이 있게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열려있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간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속물의 어리석음은 미련스럽게 알려들기조차 거부한다.
영취산 정상에 온갖 것들이 응축되어있다는 생각이다.
티 하나 없는 하늘이다.
산겹을 이룬 주름이 살찐 동물의 멱살이다.
오늘은 통도사로 직접 하산하지 않고 대신 서남쪽에 있는 함박재에서 정법교를 거쳐 우회할 계획이다. 등산객 90%가 정남향인 예서 통도사로 곧장 하산한다.
영축산 동남쪽은 기암절벽으로, 남서쪽은 청수좌우골 등 깊게 패인 골짜기와 시살등으로 뻗은 남서릉의 남성미와, 북릉은 억새평원으로 고원평전을 이루고 있는데 사방의 얼굴이 이렇게 다양하다는 사실이 이채롭다.
그동안 밟았던 긴 능선을 잠시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 어느 육체적 쾌감과 대비할 수 없는 열락(悅樂)이다. 同根異相이다. 영축산 정상을 경계로 남과 북의 능선 풍광은 원천적으로 다르다. 같은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도 이와 같은 경우를 수없이 보아왔던 우리들이다.
9시 45분.
영취산 정상에서 시살등 방향으로의 이동이다.
산죽 사이로 뚫린 능선이다.
그 능선은 곱게 빗은 어머니의 가르마를 연상되듯 확연하게 내려다보인다.
9시 52분.
정상아래 억새밭 삼거리다.
<통도사← 시살등↑(삼거리) →영취산 정상>
정상에서 얕은 산죽이 무성한 소로를 따라 경사로를 내려오면 산불감시초소 전망대다.
지난 주 민둥-지억산 산행도중 지억산 아래 4거리에서 박스는 달아나고 변기 밑둥이만 남았던 간이화장실처럼, 산불감시초소 역시 윗부분을 없어지고 기초부분 철기둥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피식 웃고 말일이지만 아무튼 희극적이다.
남쪽 산 아래 통도사 전경이 한눈에 밟히는 곳이다.
가천지-삼천지-장제 등 청동빛깔 저수지의 몽골반점이 산뜻하다.
체이등 정수리에 작은 비문 하나가 박혀있다.
<고 김성국 추모비 ……, 롯데칠성음료(주) 직원일동>
2002년 당시엔 글씨가 햇빛에 반사되어 희미해져 판독을 못했지만 눈이 밝은 정영애씨가 그 내용을 판독했다. 패러글라이더 비행을 하다가 사망했다는 내용으로 동료들이 세워둔 모양이다. 가끔 이런 추모비를 볼 때마다 씁쓸한 마음이다.
50m 아래 대소 30여 개의 돌탑군락지다.
추모비에 나타난 영혼의 천도(薦度)를 비는 산자의 염원이 실린 돌탑인가.
오르막이다. 좌급우완(左急右緩) 지형이다. 암벽 내리막에 3~4m 로프가 걸려있다.
‘해병대’를 찾지 말라는 익살이 터졌다.
암릉과 암벽에 약점을 보이는 정재근 감사께 던지는 애교섞인 조크다.
무성한 산죽지대다.
능선과 봉우리를 몇 차례 오르내림의 반복이다.
갈잎이 수북하게 깔린 능선과 함께하는 산죽지대를 지나는 즐거움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쾌락이며 평화다. 오르고 내려가는 능선은 그다지 힘들지 않는 평범한 분위기가 일행들로 하여금 잡담을 나눌 기회다. 맑은 표정의 일행들의 마음도 증류수처럼 순수하다.
10시 24분.
함박재다. 후미가 닿기를 한참 기다렸다.
< 시살등← 통도사 ․ 백운암↓(삼거리) →영취산 정상 >
<자장암 3.2Km ← 배내골↓ (삼거리) →정상 3.0Km, 통도사 4.5Km>
<양산시 6-2(한피기고개), 055-119>
한피기고개까지 가려던 월별계획의 수정이다.
눈앞에 있는 체이등-죽바우등-시살등을 바라보는 일행들의 시선과 표정들이 곤혹하다.
직각으로 좌회전이다. 급박한 내리막이다.
오늘따라 좌측 무릎에 통증이 심하다.
조심스런 관리와 진단이 필요하다.
너덜길이다. 돌조심을 당부했다.
김영실씨 소개로 참여한 신입회원인 조일환(29세)씨와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눴다.
<055-119 긴급구조요청 양산시 501(백운암 갈림길)>
백운암입구를 지났다.
‘晩秋와 初冬이 교차하는 서정이 가득한 낙엽길’은 떠나가는 가을과, 맞이하는 겨울의 마지막 유혹이자 선물이다.
10시 45분
지루했던 너덜내리막이 끝났지만, 여전히 급박한 산죽 내리막길이다.
중간에 한 차례 기다리는 시간을 가졌다.
오늘따라 유달리 통증을 더하는 무릎의 안정을 위해선 다행이었다.
11시 25분.
계곡에 내렸다. 건천에 가까운 계류에서 머리를 묻고 소금에 절인 땀을 대강 씻었다.
지금까지 내려온 길보다 상대적으로 완만한 너른 폭의 내리막길이다.
마지막 단풍잎들이 보이는 고즈넉한 길이다. 가끔 삼삼오오 올라오는 등산객들과 교차했다.
수북하게 쌓인 낙엽밟는 재미도 흔치않은 쾌감이다.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가련한 낙엽이리라
가까이 오라, 벌써 밤이 되었다
바람이 몸에 스며든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 ’
프랑스의 시인이자 평론가였던 레미 드 구르몽의 시 ‘낙엽’의 한 구절이다.
발표된 지 100년이 넘지만 낙엽을 밟을 때마다 그의 목소리는 되살아나며 문학지망생은 아니더라도 회자(膾炙)되었던 낭만의 시를 만나면 작은 마음의 동요가 일어난다. 小雪(11월 22일)을 앞둔 요즘 도시의 길은 물론 전국이 자연의 마법인 단풍과 낙엽에 취해 오는 겨울의 길목에서 서있다.
청계산에서 ‘숲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시인 김남숙(41)님의 낙엽예찬론이다.
「낙엽이 아름다운 이유.
예쁘거나 그렇지 않거나, 크거나 작거나, 곱거나 그렇지 않거나 10월의 낙엽보다 감동적인 11월의 낙엽을 바라본다. 낙엽이란 떨어진 잎을 말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시사철 떨어지는 잎이 없지 않건만 유독 가을의 낙엽에 관심이 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빛을 이용하여 스스로 양분을 만들어 나무의 생존을 책임졌던, 그야말로 위풍당당했던 잎이 추락하는 장면이 극적이기 때문이다.
낙엽이 지는 이유는 겨울에는 나무의 뿌리가 수분을 흡수하는 힘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잎을 통한 증산작용으로 수분이 빠져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또 잎이 해야 할 역할이 끝났기 때문이다. 가야 할 때가 됐기 때문에 떨어진다는 뜻으로,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와 마찬가지다.
잎은 지혜롭다. 그는 떨어지기 전 잎자루에 ‘떨켜’라는 것을 만들며 잎이 떨어진 자리에 병균이 침입하지 못하고, 나무의 수분이나 양분이 빠져 나가지 않도록 보호막(코르크층)을 만든다. 낙엽이 아름다운 것은 제 할 일을 한 뒤 다른 것에 폐를 끼치지 않는, 기꺼이 떨어지는 추락에 있다. 」
11시 35분.
비로암에 내렸다.
어재 저녁부터 불편했던 속이 뚫렸나보다.
방분(放糞)의 시간은 인생의 3대 쾌감이라 했던가? 그것도 재래식 해우소에서 말이다.
암자 앞과 뒤뜰의 감나무에 포도송아처럼 달린 황금색 감이 사람의 손때가 닿지 않은 상태다. 조류들의 한겨울식량으로 남긴 부처님의 보시일러라.
감나무 아래 단풍나무 붉은 색깔이 눈이 시리도록 곱디곱다.
강송이 터널을 이룬 아스팔트 소로 내림이다.
11시 44분
活水橋(석조)를 지났다.
삼거리다. 한피기고개에서 하산하는 코스와 합류하는 지점이다.
<비로암← 통도사↓ 영축산정상→ >
논스톱 행보다.
11시 49분.
극락암 앞이다. 아래에서부터 위로 솟아오르는 돌확에 고인 단 맛의 샘물이 그만이다.
극락안 본당과 요사채는 약속처럼 모두 맞배지붕의 건축물들이다.
母刹과 그 격을 구분하기 위한 예의인가.
초겨울 햇살이 아름답게 내려앉은 정오가 가까운 시각이다.
효학반(斅學半)아란 말이 있다.
가르치면서 반 이상을 배운다는 의미다.
산에서 자연과 인간을 익히며 모든 것을 학습한다.
극락이 어드메냐?
사람의 가슴에 머문 이곳에서 얻은 마음이 극락이 아닌가.
이승에서 극락을 다녀왔으니 신새벽의 헐었던 온갖 아픔이 씻어지기를 기대했다.
오후 12시 07분.
세심교(洗心橋)를 건넜다.
이름 그대로 ‘마음을 씻는 다리’라는 세심교를 건너며 잠시라도 숙연해 보려 했으나 계류의 색깔이 시커멓게 변해 ‘탁심교(濁心橋)‘라고 개명했으면 싶다.
12시 12분.
정법교(석교)를 지나 포장도로오르막을 향한 고된 행보다.
지름길은 사찰림이란 이유로 폐쇄됐으니 일반 승용차들이 무상하게 질주하는 위험하고 힘든 2차선 도로를 걸어갈 수밖에 없다. 좁은 통로라도 만들어 일반인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부처님의 보시가 아쉽다. 인간의 마음과 부처의 마음은 다른가? 종교는 일반인들의 신심으로 이뤄진 것이고, 사찰소유의 토지도 그러하거늘 ……
12시 27분.
안양암입구와 반야암을 차례로 통과했다.
작은 암자지만 부처님은 세상 어느 곳이라도 가림없이 내림한다고 한다.
‘지혜’라는 의미의 ‘반야(般若)’
반야(般若)’라는 말은 범어로 ‘프라즈냐(Prajna)’, 팔리 어로는 ‘판냐(panna)’라고 한다. 반야는 바로 팔리 어 ‘판냐’의 음역어다.
반야를 굳이 번역한다면 ‘지혜(智慧)’라고 옮길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지혜가 아니라, ‘최고의 지혜, 즉 깨달음에 이르신 부처님의 밝은 지혜’를 의미한다.
‘반야’의 힘은 참으로 위대하다.
그 힘은 평등, 절대, 무념(無念), 무분별(無分別), 비움의 경지일 뿐 아니라, 반드시 상대의 차별 현상을 관조(觀照)하여 중생을 교화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단순히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의 현명함이나 지식이 높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참모습에 대한 ‘눈뜸’이다. 아울러 ‘반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다.
반야의 지혜는 사회의 모든 현상을, 선입견, 편견, 고정된 관념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통찰하는 안목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야’의 성취는 인생과 우주의 참다운 실상을 깨닫는 일이며,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며, 행복을 성취하는 길이고, 사회의 제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이며, 해탈을 성취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반야’를 통해,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께서 정각(正覺)을 이루고, 보살은 열반을 얻으며, 중생은 당면한 문제와, 나아가서는 삶과 죽음의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
반야암을 지나며 반야에 대한 횡설수설을 묶어본 것이다.
12시 29분.
수도암 입구 통과했다.
어렵고 지루한 행보다.
12시 33분.
취운선원 앞을 통과했다.
각종 사찰 부속건물시설이 지나치게 우람하다.
성서에 나타난 호화사원에 들어선 예수님의 일갈(一喝)이 지금 아쉽다.
12시 36분.
우측 보타암을 지났다.
머리 나뿐 주지께서 암자이름 외우기에도 힘겹겠다는 생각이다.
암자를 가리키는 안내표지판만해도 수십 개소는 되겠다.
12시 40분.
힘들게 내린 통도사 앞이다.
佛寶宗刹 통도사는 신라 선덕여왕15년(646년) 때 자장율사가 당에서 가져온 석가여래의 진신사리를 대웅전 뒤 금강계단 사리탑에 봉안한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의 하나이며, 우리나라의 삼보사찰중의 불보사찰로 유명하고 50여동의 건물로 된 대가람이다.
대웅전은 불단만을 마련해놓고 있는데,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신 ‘법등(法燈)’은 1,300년 동안 단 한 번도 꺼지지 않았다고 전한다. 현존하는 건물은 임란으로 소실, 파괴되어 다시 건립한 것이라고 한다. 경내에는 건물 35동과 주변에 17개의 암자를 거느리고 있는데, 대웅전(보물 제144호), 국장생석표(동 제75호), 은입사동제향로(동 334호), 봉발탑(동 471호) 등 다수의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사찰 입구에서 일주문까지 1Km 계류에는 우거진 老송림이 하늘을 가린 채 법문에 들어서려는 중생들의 마음을 안정시켜준다. 일주문에 걸린 영취산 통도사(靈鷲山通道寺) 현판은 취서산 모습이 부처께서 설법하던 인도의 영취산과 흡사하여 부르게 된 또 하나의 이름이다. 부처가 되려는 모든 사람은 모두 이 통도사의 금강계단을 거쳐야 한다는 데서 ‘通道’란 이름이 나왔다고 한다. 기암괴석과 고사목 그리고 노송들이 어우러진 석벽이 빼어난 경관을 연출하는 취서산이 병풍처럼 통도사를 품고 있다. 마치 어미새(독수리)의 抱卵 모습이다.
19개 암자를 거느린 통도사는 보물 제144호인 대웅전-제444호인 은사입향로를 비롯해 불교문화재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사찰이다. 1999년 4월에 개관한 통도사 성보박물관은 가장 풍부한 불교유물한 곳으로 국내 유일의 불교회화전문 박물관으로 알려졌다.
1052번 도로 통도천을 따라 주차장이 지척인 모양이다.
많은 사찰탐방객들과 관광객들의 복장과 표정들이 그러하고, 그들 속에 묻혀 매표소로 향하는 행보가 피로에 지쳤는지 다소 뒤뚱거린다.
통도천 맑은 물을 따라 동향이다. 극락천이 저러하리라는 짐작이다.
12시 45분.
일주문을 지나 매표소를 통과했다.
불계(佛界)를 등지고 속계(俗界)로의 환속인양 잠시 발길을 멎었다.
중생의 체바퀴 삶이 모두 이러하지 않던가?
분주하게 오가는 탐승객들의 발길이 자꾸 무상하게 느껴짐은 혼자만의 생각일까?
일주문에 걸린 현판을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靈鷲山 通度寺>(영취신 통도사)
취서산의 모습이 부처가 설법하던 인도 영취산과 흡사한데서 부르게 된 또 하나의 산 이름이다.
12시 48분.
청류교 앞 갈림길이다.
우측은 차로이고, 좌측은 보행로다.
강송림(剛松林)이 자욱한 보행로를 따라 내려가는 행보다.
오후 1시 4분.
무풍교 앞 매표소에 닿다.
매표소 건물도 3대사찰답게 위압적이다.
종교는 무릇 중생을 건축물로 위압해야 직성이 풀리나보다.
주객이 전도된 각종 종교에 대한 이율배반적인 심리 때문에 信心을 거부한다.
학문적인 접근과 종교적인 신심은 근원적으로 다르다. 언젠가 얘기했듯이 논리적-합리적 사고의 성격은 종교인이 되기 힘들다. 하기야 요즘은 종교를 무슨 훈장이나 치장, 또는 개인의 정치적-경제적 동반자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를 숱하게 만난다.
일행들 모두가 산행을 완료했다.
새벽 5시 25분 배내 고개를 출발, 배내고개-배내봉-간월산-간월재-신불산-신불재(대피소)-신불평원-영축산(=영취산=취서산)함박등-함박재-(체이등-죽바우등-한피기고개-00계곡)-삼거리갈림길-백운암-극락암-반야암-세심교-서축암-통도사-매표소를 거쳐 통도사 주차장에 이르는 장장 15Km 코스를 7시간 50분에 걸쳐 완료했다.
1시 25분.
오복식당(055-381-0707, 011-866-8004)에서 만난 식사시간이다.
풍성한 반찬과 푸짐한 식당인심이 훌륭한 덤이었다.
주차장을 출발하기 직전 이혜명씨와 이춘옥씨와의 조우가 있었다.
명과 암, 그리고 참과 거짓의 상대성을 구분하는 시간이다.
인간은 언제까지, 그리고 얼마만큼 처참해야 하는가?
‘가라.
뿌리쳐라.
너의 정조(情操)까지도.
후회란
역시
뒤에 오나니‘
우수(憂愁)의 실존주의 철인 키엘케골이 <이것이냐 저것이냐>에서 남긴 말이다.
정직과 부정직은 손등과 손바닥의 관계인가?
동전의 앞과 뒤처럼 인간은 영원히, 그리고 쉼없이 갈등하는 존재인가 보다.
오후 2시 15분.
귀로에 올랐다. 원만한 차량의 흐름이다.
소인수 참가자들이라 식구같은 분위기다.
손경남기사와 차량운행에 대해 몇 가지 의견을 나눴다.
김신흠씨 휴대폰을 통해 ‘한솔산악회’ 서점숙 총무의 전화가 있었다.
도봉산 그룹산행을 마치고 하산하며 연락한다고 했다.
무선에 실려 전달되는 홀로여인의 불편하고 아릿한 삶이 귀청에 울린다.
몇 가지 약속을 하고 통화를 마쳤다.
추풍령을 넘어선 황간휴게소에서 잠시 머물렀던 버스는 대전을 향한 성난 질주다.
밤 8시 20분 화곡시장 앞에 내렸다.
생고기집에 들려 식당주인에게 새벽음식에 대한 불편함을 알리고 일부 화곡동거주 회원들과 식사시간을 가졌다. 얼큰한 반주가 뒤따랐다. 치통으로 고생했던 정감사님께서 먼저 자리를 떴다. 한 차례 산행을 쉬고 싶었지만 의무적으로 참여한 그의 고마운 마음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정성이었다. 박혜진씨가 퇴근하며 뒤늦게 합류했다.
밤 11시 30분 늦은 귀가다.
*교통 :
-승용차[경부고속도로 西울산(舊언양)IC-언양읍~24번국도~석남사입구 갈림길에서
우회전, 69번 지방도로 남진~배내고개]
-고속버스[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서울~울산 운행, 울산~신평행 직행버스]
[동서울종합터미널~양산 행(1일 6회 운행) 버스로 언양하차, 언양
시외버스터미널(052-262-1007)에서 목적지방향버스 승차]
-산행 시종점인 양산시 원동면 장선리 경로회관 옆 버스종점-통도골 입구-원동면으로
나가는 버스가 1일 5회(08:00, 12:00, 16:00, 18:00, 20:00)운행.
*숙식 :
-언양 시내[수성장 여관(052-263-1202), 파레스 여관(-263-1033)]
-통도사입구[파크장 호텔(055-383-0067), 통도사관광호텔(-382-7117~9),
신라호텔(-381-4700), 영취산 유스호스텔(-383-6462),
문호장 여관(-382-6684), 덕림장 여관(-382-7049)]
-백운마을<산돼지 마을>[대표 정연찬,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 배내골 분교밑,
052-264-3508, 9454. 011-837-5308, 아마추어 무선 DS5ANF,
자연 풀장, 민박, 야영장, 대형주차장, 연회석완비]
-청석골 입구[청수골 산장 도착(052-254-875~6), 파레소 폭포농원(-254-5822)]
-표충사 입구[향토음식점 겸 민박 다수, 펜션 자연풍광(352-1103, 011-865-1104),
원두막 민박(-352-1653), 약산여관(-351-1184), 알프스산장(-352-1104)]
-경로회관 옆 물바실집민박 055-388-6333, 017-856-6333.
-원동면 대리 금천 마을 대추나무집은 황토방 민박으로 인기. (전화 055-387-5312).
-통도골 등산로 입구에 내외장이 멋진 통도골펜션민박(011-831-1102)
-그외 장선리 배내천변을 따라 많은 업소가 있다.
느티나무가든 387-4100, 사과나무집 387-4537, 자연한마당 388-7547,
마당넓은집 388-4713. 배내고개 밑 먹돌산장 264-1615, 가마솥폭포산장 264-2574.
-샘물상회 : 능동산~천황산 중간에 있는 매점으로, 간단한 도토리묵 판매.
예약할 경우 매식 가능. 장작 때는 방(3인실. 4명이 자면 조금 좁다) 25,000원. 전화 055-356-7664.
*기타 : 신불산 폭포자연휴양림(052-383-6492)], 간월산자연휴양림(-262-3770)
간월산 자연휴양림[052-262-3770]
*언양장(2-7일장, 고추 마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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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양산 통도사 비빔밥집 | 경남울산의 맛거리 2005/08/05 14:05
우리나라 3대사찰 중 하나인 양산시 하북면 순지리 통도사를 찾는 사람들은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청정한 분위기속에서 자연의 풍취를 느끼고 싶어 한다.
그런 점에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당연히 음식도 거의 매일 먹는 외국식 인스턴트식품이 아닌 우리고유의 맛을 음미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인지 유명사찰 부근에는 산채정식과 비빔밥집 등 절 음식을 닮은 음식을 내놓는 식당을 흔히 볼 수 있다. 그 맛 또한 독특해 절 주변 유명 음식점의 경우 주말과 휴일이면 손님들로 붐벼 한참동안 차례를 기다려서야 음식을 먹는 경우가 허다하다.
통도사 산문 부근에는 이같은 비빔밥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10여개의 음식점이 성업 중에 있다. 부산식당 통도식당 창녕식당 오복식당 대가식당 경기식당 파크식당 향촌식당 등이 그런 곳이다.
이들 음식점은 대부분 20년 이상 오래된 업소들로 나름대로의 독특한 조리법으로 비빔밥을 만들어 손님들의 입맛을 돋우고 있다.
요리법을 소개하면 꼬들꼬들한 밥에 직접 담근 고추장과 간장에 버무린 콩나물과 숙주나물, 무나물 양배추나물 그리고 속데기나물(돌김의 일종)을 넣고 참기름을 듬뿍 넣는다. 나물은 호박나물이나 미나리나물 등 계절에 많이 나는 나물을 더넣어 적절히 배합한다.
특히 비빔밥에 얇고 가늘게 썬 야들야들한 쇠고기 육회도 별미로 내놓는데 담백하고 정갈한 모습이 눈맛까지 더해준다. 비빔밥과 함께 나오는 된장국과 선지국도 일품이다.
선지국은 쇠고기를 가늘게 썬 살코기와 선지, 허파 내장을 푼 국물에 자그마하고 도톰하게 썬 무와 콩나물, 그리고 파를 넣어 고추장 때문에 얼얼해진 입안을 어느 정도 씻어줘 특유의 얼큰한 맛을 느낄 수 있게 한다.
통도사 산문 앞에서 20여 년간 산채 비빔밥집을 운영하고 있는 부산식당 주인 김혜숙씨는 “비빔밥은 밥과 나물, 간장 고추장을 넣어 비빌 때의 손맛이 맛을 좌우한다”며 “통도사 부근 비빔밥집들은 나름대로 오랜 경험을 통해 조리법이 몸에 배어 다른 지역 식당들은 따를 수 없는 독특한 음식맛을 느낄 수 있다”고 자랑했다.
통도사 일대 비빔밥집들은 통도사 절 음식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때문에 화학조미료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주인들이 직접 울산과 언양 재래시장 등을 찾아 신선한 나물을 사오고 봄이면 직접 야산으로 가 나물을 캐와 맛을 내는 정성이 대단하다. 밥도 비빔밥에 맞도록 고슬고슬하게 지어서 보기 좋은 대접에 담아주고 있다.
통도사 산문일대에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20여개업소가 성업 중이었으나 여러 곳에 관광지가 생겨나면서 관광객이 감소해 지금은 절반으로 줄었다.
그래서 이들 업소는 매달 한번 정례모임을 갖고 조리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는 등 전통의 비빔밥집 명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이런 노력이 헛되지 않은듯 통도사를 찾는 외국인들 대부분이 비빔밥을 찾는다고 한다. 무공해 음식이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외국인들이 우리 고유음식을 맛보는 데는 통도사 비빔밥이 최고라고 여기기 때문이라는 것.
통도사는 우리나라 사찰중 유형 불교 문화재를 가장 많이 보유(43종)하고 있으며 1999년 4월 신축 개관한 통도사 성보박물관은 세계 박물관을 통틀어 가장 풍부한 불교유물을 자랑하는 국내 유일의 불교회화 전문 박물관이다.
이외 절주위 영축산 기슭 울창한 숲속에 20개 암자가 자리잡고 있고 기암괴석의 절벽이 어우러진 수려한 경관의 산자락이 있어 비빔밥을 맛보면서 관광도 같이 즐길 수 있다.
/ 양산 / 김성룡기자/국제신문
첫댓글 회장님 후기 재밌게 읽고 갑니다 사진보고 후기 일고나니 영남알프스의 아름다움... 감히 짐작이갑니다 헌데 그 좋은 산행길이 심기가 편치 않으셨나봅니다..저도 찔리걸랑요.. 죄송.. 안좋았던일은 싹싹~~ 지우시고 늘 건강하오시길 기도드리며...다음 산행길에 함께 할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가져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