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구 제4땅굴과 을지전망대 등을 돌아보며>
정시에 방을 나와 12선녀탕을 향했다.
여명은 있었으나 아직 약간 어두운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12선녀탕계곡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이른 아침이라 왕복 2차선도로에는 차량 한 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숙소에서 30분 정도 걸어서 12선녀탕계곡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에는 오늘까지 입산금지라는 팻말과 함께 줄로 막아놓고 있었다. 우리가 가자 입구 옆 초소에 근무하는 군인이 보였다. 이곳에 들어가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괜찮다고 했다.
우리는 12선녀탕계곡 길을 들어가 걷기 시작했다. 지금은 가물어서 물이 많이 흐르지는 않았으나 계곡은 아름다웠다. 백담사계곡 위에는 영시암, 오세암, 봉정암과 함께 소청대피소가 있으나, 12선녀탕계곡에는 오염을 시키는 곳이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백담사계곡은 넓고 큰 물줄기이나, 12선녀탕계곡은 수원이 짧아 좁고 급물살이 흐르는 곳이다.
그 때문인지 이 계곡은 아기자기한 맛이 있으면서도 폭포와 연못이 여러 곳 있었다. 지금은 입산금지구역이긴 했지만 작년 가을까지는 등산객이 많이 다닌 것 같은 등산로가 제법 잘 관리되어있었다. 가능하면 12선녀탕의 핵심인 복숭아탕까지 가려고 했으나 시간이 제동을 걸었다. 우리는 계곡입구에서 1시간정도 올라가다가 추억을 남기고 곧바로 되돌아왔다.
<12선녀탕계곡의 아름다운 풍경 1>
<12선녀탕계곡의 아름다운 풍경 2>
<12선녀탕계곡의 아름다운 풍경 3>
과연 양구 해안면은 고랭지였다. 일행은 양구통일관 전시관에 전시된 북한서적, 북한화폐, 남북한 언어비교, 북한의 행정구역도 등을 돌아보았다. 또한 주차장에 세워진 인사하는 남자(그리팅 맨)을 보고 도솔산 및 펀치볼지구 전승기념탑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양구통일관 전시실 모습>
<전시실에 진열된 북한 서적들>
<전시실에 진열된 북한 화폐 등>
<전시실의 남북 언어비교표>
<전시실의 북한 행정구역도>
<전시실에 진열된 북한의 일상용품들>
<전시실에 진열된 북한의 술>
<양구통일관 주차장에 세워진 인사하는 남자(그리팅맨)>
이어서 중동부전선에 있는 제4땅굴을 찾았다. 일행은 안보전시관 영상관에서 제4땅굴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듣고 땅굴로 향했다. 전시관에서 땅굴로 가는 길옆에“충견 헌트(Hunt)의 묘"가 있었다. 헌트는 셰퍼드 종으로 육군 제21사단에서 활약한 군견이었다. 제4땅굴 소탕작전 당시 탐사 견으로 땅굴소탕작전에 투입되었으나 북한군이 설치한 수중지뢰를 밟고 폭발되어 1게분대원의 생명을 구한 혁혁한 공을 인정받아 군견으로서는 최초로“소위”라는 장교 계급으로 추서된 충견으로 인헌무공훈장을 받았다고 한다.
<안보전시관 앞에 돌에 새긴 제4땅굴 표지판>
<제4땅굴 앞에 있는 "남침분쇄탑">
<제4땅굴 안보전시관 모습>
<충견지묘(헌트)>
제4땅굴은 1990년3월3일 양구 북동쪽 26Km지점에서 발견되었다. 지하145m지점에 넓이1.7m, 높이1.7m, 길이 약2Km에 달하는 암석층 굴진 구조물로 군사분계선에서 무려 1,028m남쪽에서 발견되었다. 제4땅굴은 북한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용 땅굴을 굴착했음을 입증해 주고 있으며, 동부전선에서 최초로 발견된 남침용 땅굴이라는 것이다.
일행은 제4땅굴 입구에 비치된 헬멧을 쓰고 우리나라에서 뚫은 역 갱도를 따라 들어갔다. 비스듬히 뚫은 터널을 한참 들어가자 북한에서 뚫어온 제4땅굴과 만났다. 역 갱도는 넓고 위와 옆이 반드르르했으나, 제4땅굴은 위와 옆이 울퉁불퉁했다. 그곳에는 전동차가 있어 레일을 따라 남방한계선까지 갈 수 있었다. 일행은 그룹별로 전동차를 타고 남방한계선까지 갔으나, 금방 다녀오는 코스였다. 한계선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곧바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에서 남방한계선을 넘어 1,028m를 뚫었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했다.
<제4땅굴의 우리나라에서 뚫은 역갱도 입구>
<헬멧을 쓰고 제4땅굴 역갱도를 걸어가는 일행 모습>
<안보전시관에 전시된 제4땅굴의 구조적 특징>
일행은 다시 버스를 타고 을지전망대로 향했다. 을지전망대는 남방한계선인 철책이 있는 곳으로, 앞에는 북한군 초소와 고지들이 보였다. 오늘은 안개 때문에 어렴풋이 보였으나, 맑은 날은 잘 보인다고 했다. 특히 전망대에 설치된 망원경으로 내다보면 아주 잘 보인다고 했다.
일행이 버스를 내려 전망대로 들어가자 영상물로 하나하나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또한 전망대 앞에는 주위의 지형도를 설치해 놓아 앞에 내다보이는 지형과 비교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안개로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망원경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을지전망대 전경>
<을지전망대 앞에 있는 "해병대 김일성고지작전 전몰영령 진혼제 기념비>
일행은 밖으로 나와 해안분지를 바라보았다. 해안분지(亥安盆地)는 암석의 차별풍화와 침식에 의해 형성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폐쇄형분지였다. 해안이란 지명은 과거 유달리 뱀이 많았던 이 지역에 돼지를 키우면서 피해가 사라졌다고 해서“돼지 해(亥)”와“편안할 안(安)”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한편 이 지역은 펀치 볼(punch-boul)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한국전쟁당시 UN군 종군기자가 분지의 생김새를 보고 마치 “화채그릇”같다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안개가 끼어 어렴풋이 내려다보이는 해안분지>
이곳은 지난해 박근혜대통령이 다녀왔다고 텔레비전에 나오기도 했던 곳이나, 내가 이곳에 오기는 처음이었다. 전방의 전망대에 올 때마다 느꼈던 것이지만, 적을 지척에 두고 캄캄한 한 밤중에 순찰을 도는 군인들과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같은 민족끼리 대치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며, 어서 빨리 통일이 되기를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