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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락산(水落山 637.7m) 불암산(佛巖山 508m)
경기 의정부
서울의 동쪽을 울타리 친 수락산은 경기도 의정부시와 남양주시에 걸쳐 있다.
수락산은 백두대간의 식개산(북한 지역, 세포군)에서 솔가하여 남서쪽으로 휘어 돌아 오두산(파주)에서 발길을 멈추는 한북정맥의 가지줄기에 맺힌 산이다.
도봉산과 마주하여 그 사이에 중랑천을 품고, 뒤로는 왕숙천을 풀어 한강을 살찌운다.
한북정맥이 죽엽산을 지나 남쪽으로 가지를 뻗어 아차산에서 발길을 멈추는 수락산 줄기는, 도봉산?북한산 줄기와 함께 서울 북부의 주된 산줄기다.
수락산은 한북정맥의 다랑고개(98번 지방도로) 남쪽 능선분기점에서 왼쪽(남쪽)으로 갈라진 지능선 산줄기가 용암산(476.9m)과 깃대봉(288.3m)을 들어올리고 숫돌고개로 내려섰다가 용틀임하듯이 불쑥 솟구친 산이다. 수락산에서 이어지는 산줄기는 불암산, 망우리고개, 아차산 등으로 이어지고 한강에서 끝을 맺는다.
산이 전부 석각으로 돼 있어서 물이 스며들지 않고 흘러내린다고 하여 수락산이라고 부른다.
수락산 안내판에는
<서울, 의정부, 남양주시의 경계를 이룬다. 사암으로 된 산이어서 나무는 울창하지 않으나 산중에 金流洞, 銀流洞, 玉流洞의 세 폭포, 연못이 있어 물이 떨어지는 산, 수락산이라 한다. 태조 이성계는 수락산의 모든 봉우리가 서울을 향하여 고개 숙이고 있다고 하면서 서울의 수호산이라 했다.>
조선조 세조는 한양을 중심으로서 東 佛巖寺, 西 津寬사, 南 三幕사, 北 僧伽사, 원찰을 세웠다.
그 중 불암사를 첫째로 꼽았다고 한다. 수락산은 폭포가 많은데 옥류폭, 금류폭, 은류폭 등의 대표적인 폭포가 서울을 등지고 남양주시 방향 수락산유원지 쪽에 있다. 내원암 일대의 계곡에 바위가 벽을 둘러치고 있어 물이 굴러 떨어진다 하여 水落, 산봉우리가 마치 목이 떨어져 나간 형상이라 首落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수락산의 별칭으로 동봉(東峰), 압봉산(鴨峰山), 奉天山, 反骨山(김시습이 은거하면서 주민들이 부른 말) 등이 있다.
유림들은 의정부시 장암동 석림사계곡에 청절사를 지어 김시습을 기리고 동봉서원이라 불렀다.
김시습은 ‘鴨峰로화‘라는 漢詩를 썼는데 산 정상 오리처럼 생긴 바위가 세종 즉위년 8월 28일 무너져 내렸다(인조실록)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수락사는 수락산에 있다는 기록이 있고, 서거정의 시에도 水落山中水落寺라는 구절이 있지만 소동파의 적벽부에 山高月小 水落石出이란 구절에서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화성거사(정갑성 처사)는 ‘수락산 동쪽의 절경은 내원암 계곡에 몰려 있고, 서쪽의 절경은 碧雲洞天에 있다’ 라고 수락8경을 읊었다. 벽운동천은 이병직이 글씨를 새겨 알려졌는데 백운동으로 와전되어 부르고 있다. 영조 때 영의정 홍봉한이 이곳에서 友于堂을 짓고 관료들과 정치를 논하였는데 혜경궁 홍씨도 어린 시절 이곳에서 지냈으나 현재 덕성여대 생활관으로 변했다.
<간폭정기> 라는 옛날 책에 '수락산 옥류동에 있는 옥류폭포 옆에 간폭정을 지었는데 그 위 5리쯤에 매월당 김시습의 옛 살던 터가 있다'는 기록이 있다. 김시습이 삼각산 중흥사에서 글을 읽다가 수양대군(세조)이 단종을 폐위했다는 소식을 듣고, 책을 모두 불사르고 머리를 깎은 뒤 세상을 피해 처음 숨어든 곳이 수락산이다.
석림사로 들어가는 길가에 청풍정 터가 있는데, 청풍정은 서계 박세당선생이 매월당 김시습을 추모배향하기 위해 총렬사를 짓고 그 앞에 정자를 지어 유생들과 함께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다.
조선 숙종 때 박태보가 김시습의 명복을 빌기 위해 청절사를 세우면서 그 옆에 그 당시 홍수로 유실된 석림암(지금의 석림사)을 축원당으로 이용하기 위해 복원하였다. 김시습이 수락산에 은거할 때 수락산의 봉우리와 기암 등의 이름을 지은 내용이 내원암에 있다.
수락산의 대표적인 암릉 구간은 정상의 장바위에서 서쪽 석림사 방향으로 갈리는 암릉과, 남쪽 250m 지점에서 서쪽으로 갈리는 바위 능선과 여기서 수락계곡으로 연결된 암릉을 산꾼들이 주로 찾는다.
폭포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정상의 장바위에서 의정부 방향의 수락산 유원지 계곡길을 택해야한다.
기암이 뛰어난 능선길. 정상 아래 620봉에서 서쪽인 463봉까지 경치가 단연 일품이다.
수락산 정상에서 동쪽 내원암을 거치면 수락산 유원지에 닿고, 관리인이 없는 무인 산장, 수락산장에서 서쪽으로 내려가면 석림사가 나온다. 이 사찰을 지나면 망월사 역으로 하산이 가능하다.
수락산 정상에서 북쪽 608봉을 지나 계속 북쪽으로 진행하면 명물 홈통바위가 있다.
홈통바위에서 회룡역까지 2시간30분소요.
수락유원지 입구에서 마당바위를 지나 옥류폭 위까지 음식점 상점이 즐비하다.
덕릉고개
노원구 상계동에서 남양주 별내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는 동신굿을 하던 당집이 있어 당고개, 또는 덕릉고개라 부른다.
조선 중종 7번째 아들 덕흥대원군은 생전에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아들이 왕위에 오르니 선조다. 선조는 아버지 묘소를 능으로 추존하려 했으나 신하들의 명분론에 밀려 실패하자 꾀를 내었다. 즉 동문 밖 상인들이 덕흥대원군의 묘를 지나면서 덕릉을 넘어왔다고 말하면 술을 대접하게 하였다.
수락산을 종주하려면 전철 4호선 종착역(당고개역)에 내려 상계4동 복지관과 파출소가 있는 골목을 따라 오르면 길이 이내 급경사로 바뀌고 마을이 끝난다. 샘터가 있다. 고구려 성터가 있는 귀임봉에서 도솔봉과 정상의 석문을 지나 홈통바위 난코스를 통과하고 의정부시 도정봉까지 주파한 뒤 만가대나 장암동 동막골로 하산하면 된다. (6시간 소요) 장암아파트지구에 노선버스가 많다.
석림사 코스
구간 : 장암역-(20분)-석림사-(55분)-홈통바위(기차바위)-15분)-수락산(정상)-(20분)-하강바위-(15분)-도솔봉-(25분)-용굴암-(25분)-학림사(약사전)-(20분)-당고개역
매월당 김시습 숨결 담긴 산
들머리는 장암역(지하철 7호선 종점), 날머리는 당고개역(지하철 4호선 종점)을 이용하면 된다.
장암역을 들머리로 산행을 시작한다. 육교를 건너고 나서 6차선 도로를 횡단하면 석림사계곡으로 들어가는 넓은 길이 이어진다. 노강서원을 지나고 석림사에 이르면 산길은 오솔길로 바뀐다.
옛날 신선들이 놀았던 선유곡의 와폭을 지나고 합수지점에서 오른쪽 계곡을 막 건너고 나면 세갈래 길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왼쪽 길로 들어서서 계곡을 건넌 다음 이 계곡을 따라 한동안 들어가다가 왼쪽(동북쪽)의 지능선 끝자락을 붙잡고 가파르게 올라간다. 능선마루의 삼거리에서 오른쪽(남동쪽)의 완만한 오르막 능선길로 들어선다.
오른쪽 사면길에 금속파이프 난간이 설치된 갈림길이 나타나면 이곳에서 왼쪽의 가파른 오르막 능선길로 들어선다. 곧이어 밧줄이 설치된 오르막 세미클라이밍지대를 통과하면 바위전망대에 올라서게 된다. 남쪽으로는 홈통바위의 슬랩지대가 빤히 올려다 보인다. 서쪽으로는 석림사계곡이 내려다보이고 그 뒤로 도봉산이 보이는 등 사방으로 조망이 아주 좋다.
오른쪽 사면으로 우회해온 길을 만나고 나서 작은 봉우리를 지난 다음 얕은 안부에 내려서면 갈림길이 있다. 이곳의 왼쪽(동쪽) 사면길은 홈통바위를 우회하는 길이다. 오르막 능선길로 들어선 다음 밧줄이 연이어 설치된 오르막 세미클라이밍지대를 통과하면 대슬랩지대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이곳엔 커다란 기암이 수호신처럼 버티고 서있다.
이곳 슬랩지대에 세로로 홈통이 패여 있는데 기차처럼 길게 패여 있어서 홈통바위 또는 기차바위라고 한다. 밧줄이 설치되어 있어 별로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지만, 쉬지 않고 단번에 오르면 숨이 턱에까지 찬다. 이어서 폐벙커를 지나고 나면 608m봉(능선분기점)이다. 삼거리를 이루고 있고 앞쪽(남쪽)으로 수락산 주봉이 보인다. 왼쪽(동쪽)에서 올라오는 능선길은 홈통바위를 우회해온 길과 숫돌고개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안부(네거리)를 지나고 나서 가파른 오르막길을 한차례 치고 올라가면 수락산(640.6m) 정상이다. 기암 밑에 '수락산 주봉 637m' 라고 새긴 조그만 표지석이 있고 이 기암 위에는 태극기가 게양되어 있다. 종전의 지형도에는 수락산의 고도가 '해발 637.7m'로 표기되어 있었으나 2004년에 수정하고 2005년에 인쇄된 현재의 지형도에는 '해발 640.6m'로 표기되어 있다.
이곳 수락산 정상에서 시계방향으로 한바퀴 삥 돌면서 차례로 조망을 하면 북북서쪽에 있는 불곡산에서부터 수리봉(536.8m), 철마산, 천마산, 백봉, 예봉산, 검단산, 불암산, 용마산, 청계산, 관악산, 북악산, 북한산, 도봉산, 사패산 등 서울 근교의 산들이 대부분 가늠된다. 북북서쪽으로는 의정부시가지 건물들이 보이고, 남남서쪽으로는 서울의 일부 시가지 건물들이 가까운 데서부터 멀리까지 보인다. 동북동쪽으로는 별내면 청학리의 아파트들이 내려다보이고 남남동쪽으로는 구리시의 건물들이 멀리 보이는 등 사방으로 조망이 기막히게 좋다.
남쪽 방향의 가파른 내리막길로 내려가고 바위사면을 지나면 삼거리다. 왼쪽 길은 청학리 사기막으로 가는 길이다. 직진하는 능선길로 들어서면 잠시 후에 능선분기점(삼거리)에 도착한다. 막걸리 등을 파는 가판대가 있고 바로 앞에 철모바위가 있다. 이곳의 오른쪽(서쪽) 지능선 길은 깔딱고개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이곳에서부터 도솔봉(541m)을 지날 때까지의 주능선은 단애를 이루고 있는 암릉구간이 많고 아기자기한 기암지대가 즐비하다. 이 구간은 암릉길과 암릉을 우회하는 사면길이 나뉘어졌다가 다시 만나기를 반복한다.
철모바위를 지나고 얕은 안부를 지난 다음 남쪽이 천길 낭떠러지를 이루고 있는 암봉에 올라서면 경관이 기막히게 좋다. 코끼리바위가 얹혀 있는 기암(암봉)과 그 오른쪽(서쪽) 바로 옆에 있는 기암전망대, 그리고 젖꼭지바위가 얹혀 있고 태극기가 게양되어 있는 하강바위(암봉) 등이 남쪽으로 바로 앞에 건너다 보이는데 아주 절경을 이루고 있다.
또 그 뒤에 있는 도솔봉(541m)의 기암지대와 맨 뒤에 있는 불암산(509.7m)의 모습까지 한데 어우러진 경관은 가히 선경이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올라왔던 길로 되돌아 내려가서 동쪽의 사면길을 따라 내려가고 안부에서 오른쪽 사면길로 들어선다. 코끼리바위(암봉), 하강바위(암봉), 남근석, 치마바위 등을 차례로 지나고 안부에 이르면 삼거리다.
오른쪽의 가파른 내리막길은 절터샘을 거쳐 수락계곡으로 하산하는 길이다.
직진하는 능선길로 들어서서 1분 정도 더 가면 갈림길이 있다. 이곳의 오른쪽 사면길은 도솔봉을 우회하여 노원골, 수락산역 또는 당고개역으로 가는 길이다. 직진하는 오르막 능선길로 들어서면 곧바로 또 갈림길이 있다. 이곳의 왼쪽 사면길은 수암사, 동막골, 덕능고개, 불암산 등으로 가는 길이다.
오른쪽의 오르막 능선길로 들어선 다음 잠시 후에 오르막 암릉을 지나면 도솔봉(541m) 정상이다. 사방으로 전망이 아주 좋다. 정상에 있는 기암을 넘어가거나 이 기암을 넘어가지 않고 올라왔던 길로 짧게 되돌아 내려간 다음 남동쪽 사면길로 우회를 하면 내리막 암릉이 이어진다. 세미클라이밍지대를 통과하며 내려가거나 오른쪽(서쪽)의 나무숲을 따라 내려간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웅장한 탱크바위(암봉)가 앞에 나타난다. 세미클라이밍지대를 통해 이 탱크바위에 올라갈 수 있다.
탱크바위(암봉)에 올라서면 당고개역이 내려다보이는 등 조망이 아주 좋다. 올라왔던 세미클라이밍지대로 되돌아 내려가고 왼쪽(서쪽) 방향의 사면길로 들어서면 곧바로 도솔봉을 우회해온 내리막 능선길과 만난다. 와이어줄을 가드레일처럼 설치한 곳을 지나는 등 2~3분 정도 내려가면 갈림길(소나무 밑에 삼각점이 박혀 있는 곳)이 있다. 이곳에서 왼쪽(남쪽) 사면의 가파른 내리막길로 들어서서 2분 정도 내려가면 신라 법흥왕 때(526년) 창건한 용굴암이 있다.
미륵불과 종각을 지나고 나서 돌계단을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사면길이 이어진다. 장군약수터를 지나고 3분 정도 더 가면 '용굴암' 표지석이 있는 삼거리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왼쪽(남쪽)의 내리막 지능선길로 들어선다. 이동통신공용기지국(안테나)을 지나고 난 다음 곧 이은 갈림길에서 왼쪽의 지능선길로 들어서면 마지막 기암전망대를 만난다.
북동쪽으로 도솔봉이 뾰족하게 보이고 그 왼쪽 뒤로 하강바위(젖꼭지바위) 등이 보인다. 남동쪽으로는 불암산이 가깝게 건너다보이고 남쪽 저 아래로 당고개역이 빤히 보이며 남서쪽으로는 학림사가 내려다보이는 등 조망이 시원스럽다.
내리막 암릉을 짧게 지나고 갈림길에서 오른쪽의 내리막 능선길로 들어서면 잠시 후에 운동기구가 조금 있는 덕천약수터에 도착한다. 오른쪽 사면길을 따라 1분 정도 더 가면 학림사에 속하는 약사전과 학림사로 들어오는 도로를 만난다.
오른편 두쪽으로 60~70m 거리에 학림사 일주문이 있고, 일주문에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청학루, 대웅전 등 천년고찰 학림사의 사우들이 있다. 약사전 앞에서 왼쪽(남쪽)으로 도로를 따라 20분 정도 내려가면 지하철 4호선 종점인 당고개역에 도착한다.
석림사계곡 입구 동원가든(031-876-3022), 출청도할머니집(872-6026), 느티나무집(876-3090),
녹가원산장(878-5220), 밤나무집(872-8549), 수락산장(873-4089), 호남집(872-8049),
노강산장(872-9845), 대우산장(873-2793), 산골산장(829-7737) 등의 식당이 있다.
불암사 코스 불암산(508m)~수락산(637.7m)
불암동-(20분)-불암사-(30분)-석천암-(30분)-불암산-(40분)-덕릉고개-(1시간)-치마바위, 하강바위-(25분)-수락산 주봉-(1시간)-수락계곡 갈림길, 이정표-(1시간)-7호선 수락산역
남양주시 별내면 화접리 불암동 들머리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과 함께 '불수도북' 종주산행의 출발지로 많이 알려져 있는 불암산은, 이들 세 산에 비해 수려함과 규모가 이에 미치지 못하지만, 불암산만으로도 암릉산행의 묘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이에 더해 들머리가 지하철역과 근접하여 접근이 용이하고 한적하다.
불암산은 이름에서 쉽게 알 수 있듯이 바위로 이루어진 산이다. 화강암봉으로 봉긋 솟은 불암산 정상에는 태극기가 세워져 있으며, 이 바윗덩이는 위용을 자랑하기에 여념 없다.
산행 들머리는 불암동 버스정류장이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대각선으로 불암사 이정표를 따라 임도를 오른다. 음식점들이 즐비한 도로를 따라 약 10분을 가면 천보사와 불암사가 나뉘는 길을 만나는데 불암사 방면으로 들어서서 곧장 포장도를 오른다. 임도는 불암사 입구까지 이어진다. 버스정류장에서 '천보산 불암사' 입구까지는 20분 정도 걸린다.
본격적인 등산로는 불암사 식수대에서부터 시작된다. 경내에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어 등산로는 쉽게 알 수 있다. '석천암' 방면으로 오르다보면 금세 주능선으로 곧장 이어지는 길과 석천암으로 오르는 갈림길을 만난다. 불암사에서 석천암까지는 약 500m 거리다. 석천암 바위 아래에는 '불암산 호랑이 은거 제1동굴'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이곳 동굴을 기점으로 등산로가 나뉘는데 좌측의 내리막길로 가는 등산로는 약간 우회하여 주능선으로 붙는 능선길이고, 동굴 위쪽으로 난 길은 전망 좋은 바위지대를 올라 곧장 거북산장(거북바위 이정표)으로 붙는 코스다. 거북산장에서부터 15분이면 불암산 정상에 올라설 수 있다.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은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정상 북쪽으로 바로 이웃한 다람쥐광장에서부터 덕릉고개까지는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수락산과 불암산의 연결고리인 덕릉고개는 의정부시와 남양주시의 경계점이기도 하다.
수락산 자락에 들어서자마자 철조망을 따라 진행하게 되며 수락산 정상까지 크게 숨 가쁜 곳 없이 완경사의 오름길이 이어진다.
수락산 주봉의 통과문인 치마바위 틈새를 거쳐 쇠난간이 설치된 바위를 오르면 하강바위에 당도한다. 하강바위는 암벽등산 시 하강 연습을 하는 곳으로서 하강바위 정수리에는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수락산 주봉에도 태극기가 세워져 있으며 굳이 주봉 바위를 오르지 않더라도 주봉에서 내려다보이는 주변 경관이 압권이다.
주봉에서 내려서는 길은 여러 갈래다. 먼저 계속 북쪽으로 진행하여 홈통바위(기차바위)를 거쳐 의정부시 동막골을 따라 화룡역으로 가거나, 동쪽의 수락산유원지(마당바위)로 내려가는 길, 또 하나는 수랅산장 갈림길에서 서쪽의 장암역으로 냐려서는 방법, 마지막으로 주봉에서 치마바위 방향으로 되내려와 수락산역(노원골) 또는 마들(7호선), 당고개역(4호선)으로 하산하는 방법이 있다.
홈통바위 코스는 수락산장 갈림길에서 약 2시간30분 정도 소요되며, 마당바위로 내려갈 경우에는 1시간 정도 걸린다. 장암역 방면 역시 1시간 정도 걸리고 가파른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수락산역 코스는 좋은 길을 따라 능선을 따르면 큰 어려움 없이 날머리에 닿을 수 있다. 소요시간 약 1시간. 노원구청에서는 오는 6월까지 수락산역의 노원골 진입부에 노면포장, 목재 데크, 안전난간, 천상병산길 문화담기 사업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 교통
불암동을 들머리로 할 경우, 중화동~7호선 중화역~7호선 먹골역을 경유하는 1225번 버스와 1.6호선의 석계역(4번 출구), 6호선 태릉입구역, 화랑대역에서 1155번 버스를 타고 불암동 불암사 입구에서 내리거나, 6,7호선이 경유하는 태릉입구역에서 202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려 도보로 이동하면 된다. 날머리에는 지하철 7호선이 다닌다. 1155번은 수락산 입구인 청학리까지 다닌다.
* 먹을 데
불암동에는 안진루(031-529-0608), 불암숯불갈비(527-8231), 담터해장국(528-1164), 불암무지개송어장(527-3600), 불암가든(527-9626) 등 불암사 입구까지 먹을 데가 즐비하다.
노원골로 내려서면 바로 수락산 먹자골목이 나온다. 황금오리참숯구이(02-951-5171), 정읍한우마을(3392-9999), 남도팥칼국수(933-5993), 굴사랑(3391-8844), 한밭진(952-0226)
수락산(水落山 638m)산행기
가는길 : 서대구요금소(07:02)-칠곡휴게소(07:12-42)-김천분기점(07:58)-여주분기점(09:20)
-여주휴게소(09:21-36)-동서울요금소(10:06)-구리요금소(10:13)-불암가든(10:27)
구리요금소를 나온 버스는 태릉방향으로 우회전한다. 4거리에서 직진하여 별내방향으로 우회전한다. 천보사, 불암사표지판을 만나 좌회전한다.
다리 앞에서 좌회전하여 중앙선이 없는 포장도로로 진행하니 불암가든을 만나 하차한다.
산행구간 : 불암가든→봉화대→불암산→덕능고개→도솔봉→수락산→암반사면→수락산유원지
소요시간:6시간20분(10:30-16:50)
불암가든 왼쪽으로 가다가 갈림길에서 왼쪽 길로 올라 오른쪽으로 산길에 올라선다.
소나무 아래로 마사토 길이다. 바위가 나타나고 암반사면을 가파르게 오르니 오른쪽으로 거대한 암괴가 산을 이루고 그 아래에 천보암이다.
멀리 연무에 덮인 암봉의 불암산이 다가온다. 봉에 올라서니 주능선은 앞에서 기다린다(10:58).
몇 걸음 내려섰다가 밋밋하게 오르니 능선을 만난다.
시야가 트이는 너른 공터에 올라서니 사람들이 북적인다(11:16).
지도상으로는 봉화대인데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음료를 파는 상인도 있다.
오른쪽 나무에 걸려있는 "불암산성의 이름을 찾아주세요"라는 현수막이 있다.
<이곳은 고구려 때 축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佛岩山城址입니다. 임진왜란 때 양주목사 고언백 장군이 산성을 개축하여 네 차례나 왜군을 맞아 승전한 자랑스러운 유적지입니다. 우측 아래부터 봉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석축이 바로 산성성벽입니다. 좌측 웅덩이는 고구려산성의 특징을 보여주는 성내 저수시설입니다. 이곳의 이름을 헬기장이 아닌 불암산성이라고 불러주세요. -불암산사람들->
길은 아래로 내려간다. 눈높이보다 약간 높게 보였던 불암산이 태산으로 변하며 앞을 막아선다.
오가는 사람, 길옆 바위에서 휴식하는 사람들로 시끌벅적하다. 바위와 암반을 만나며 가파르게 치솟는다. 줄도 당기며 올라간다. 왼쪽으로 펼쳐지는 바위와 나무들이 멋진 그림을 연출한다.
숨차게 오르니 태극기가 펄럭이는 불암산 정상이다(11:45-52).
내려가는 길은 왼쪽이다. 네발로 바위를 짚으면서 미끄럼도 타면서 조심조심 쏟아져 내려간다.
왼쪽에서 오는 길과 합쳐지며 공터에 들어서니 여기서도 음료를 팔고 있다.
여기서 보는 불암산이 더 멋지다.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졌다. 비단길이 이어진다.
여기서는 인적이 드문 조용한 길이다. 안부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내려가니 또 비단길이다.
생태통로를 만난다(12:28). 지도상의 덕능고개다. 통로 아래로는 차량들이 오간다.
오른쪽에 경기도 표지판이 보인다. 통로를 지나서 식사를 한다(12:30-45).
불암산 당고개 갈림을 만나 오른쪽으로 내려가니 군부대철망을 만난다. 철망을 오른쪽에 끼고 진행한다. 바위를 만나 오른쪽으로 가서 왼쪽으로 휘어져 올라간다. 철망과 헤어져 오르니 밋밋한 솔길이다. 오른쪽과 왼쪽에서 올라오는 길이 합쳐지며 경사가 커진다(13:10).
통나무계단을 잠시 만나고 철탑을 지나서 가파르게 올라가니 바위들이 봉을 이룬 도솔봉이다(14:00).
어떻게 올라갔는지 바위마다 사람이다. 내려와서 진행하니 또 바위를 만난다.
가지를 친 길이 많아 주위를 살핀 후 진행방향을 정한다. 왼쪽 바위로 오르니 남근석이다(14:30).
전망바위에 오르니 조망이 트이며 바람도 시원하다. 되돌아 내려와서 바위사이로 돌며 내려가서 올라가니 왼쪽에서 오는 길이 합쳐진다. 사람들과 부딪치며 올라가다보니 철모바위다(15:05).
1분쯤 진행하니 나무사이로 태극기가 펄럭이는 수락산이 건너에 와 있다.
내려가서 난간 줄을 당기며 오르니 수락산 정상이다(15:13-17).
내려서기가 힘들다는 정상의 바위에 올라가다. 오른쪽으로 돌아가니 사진촬영이 용이한 자리도 있다.
10분쯤 내려가니 기차바위(홈통바위)갈림길 이정표다. 홈통바위는 20분 거리란다.
오른쪽은 수락산장으로 하산하는 길이다. 기차바위방향으로 올라가니 갈림길이다.
왼쪽이 홈통바위행 길이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니 헬기장을 만나고 왼쪽으로 꺾어 내려간다. 희미한 능선길로 내려가니 바위절벽에 막혀 왼쪽으로 쏟아진다. 약수터를 만나 찔끔 흐르는 물을 받아 마신다(15:45).
능선에 올라 밋밋하게 봉을 넘고 오른쪽으로 돌며 봉에 오르니 갈림길이다(16:00).
수락산 정상이 정면이다. 그 아래로 내원암이다. 암자 아래로 금류폭포도 드러났다. 암반사면이 길게 이어지는 내림길이다. 미끄럽지 않아 다행이다. 기다란 밧줄도 2번 잡으며 내려가니 옆으로 구멍이 움푹 파인 괴상한 모습의 바위를 만난다. 가까이서 보니 구멍은 잡고 올라가기 위해 일부러 판 것이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니 암반이 끝나고 내원사에서 내려오는 길에 내려선다.
은류폭포도 만나며 3분간 왼쪽으로 내려가니 수락산유원지쉼터다(16:25).
옥류폭포와 상가를 지나서 청운가든에서 산행을 마감한다(16:45).
석림사
조선 현종 12년(1671년)에 석현화상과 그의 제자 치흠이 창건하였고, 절 이름은 당시 통진 현감을 지낸 서계 박세당 선생이 '석림암' 이라고 지었다. 숙종 24년(1698년) 대홍수로 사우가 모두 유실되었고, 그 뒤 조정에서 매월당 김시습의 명복을 빌기 위해 청절사(淸節祠)를 세우면서 그 옆에 축원당으로 석림암을 복원하였다. 영조 21년(1745년)에 홍수로 또 유실된 것을 익명의 스님이 복원하여 석림사로 개칭하였다. 1950년 6.25전란 때 전소된 것을 1963~1965년 비구니 상인 스님이 상좌보각과 함께 중창하였다. 큰법당, 적묵당, 진영각, 칠성각, 범종각, 지장단, 오층석탑 등이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봉선사의 말사다.
학림사
신라 문무왕 때(671년) 원효대사가 창건하였고, 고려 공민왕 때 나옹화상이 중수하였다. 조선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인조 2년(1624) 무공화상이 중수하였고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중수하였다. 절터의 지세가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학지포란 형국이어서 학림사라 하였다. 대웅전, 설법전, 청학루, 오백나한전, 약사전, 삼성각, 범종각, 미륵불 등이 있다. 조계종 직할본사인 조계사의 말사다.
수락산 종바위
흥국사
흥국사는 수락산의 동쪽 자락에 자리한 절로 행정구역상으로는 남양주군 별내면에 속한다.
따라서 서울에서 이 절을 가기 위해서는 서울 상계동 당고개를 지나 덕릉고개를 넘어야 한다.
상계동은 1987년 4월 14일 재개발이 끝남으로써 한국 최대의 아파트 밀집지로 변모했다.
덕릉고개 너머 덕릉 마을에서 500미터쯤 언덕을 오르면, 의구(依舊)한 산천에 기댄 아담한 절이다.
학이 날개를 편 듯한 모습의 흥국사 대방. 건물 앞에 긴 주초석을 세워 산기슭의 기울기를 누그러뜨리면서 안정된 가운뎃 마당을 얻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H자 형태로 비범한 외양을 한 이 건물은 대방(大房)으로 불리는데, 불전(佛典)은 아니지만 이 절의 역사적 배경과 조선시대 자연주의 미학을 이해하게 하는 건물이다. 조선 후기 자연주의 미학을 보여주는 흥국사의 얼굴 같은 건물이다.
영산전 뒤에 자리한 독성전은 기단의 다듬은 장대석에서 왕실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절 마당을 굽어보고 있는 400살 된 상수리나무는 절의 오랜 연원을 알게 한다.
흥국사가 처음 세워진 때는 599년(신라 진평왕 21)으로 창건주는 세속오계로 널리 알려진 원광법사.
창건 당시의 이름은 수락사(水落寺)였는데, 1568년(조선 선조 1) 선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아버지인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원당으로 삼으면서부터 흥덕사(興德寺)로 이름이 바뀌었다.
선조의 아버지 덕흥대원군은 중종의 8번째 아들로 소실 태생이었다. 선조가 왕위에 오를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명종대에 이르러 정실 태생의 왕손이 끊어짐으로써 선조가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이다. 왕위에 오른 선조는 아버지의 무덤이 능이 아니라 묘로 불리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그래서 궁리 끝에 당시 궁중에서 쓰던 땔감을 흥덕사 근처에서 가져온다는 것을 알고는 궁중 관리에게 시키기를, 덕릉(德陵)에서 왔다고 하면 후한 값을 쳐 주되 덕흥군 묘에서 왔다고 하면 사지 말라고 했다. 이에 사람들은 덕릉으로 부르게 됐고, 절 또한 덕절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626년(인조 4)에 덕흥사는 다시 이름이 흥국사(興國寺)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선조와 관련된 특별한 인연이 왕실과 인연으로 자리바꿈을 한 것이다.
전형적인 산지형 가람인 흥국사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영산전, 왼쪽에 시왕전, 맞은편에 대방을 두어 네모꼴의 가운데 마당을 이룬다. 대웅전 뒤편의 산기슭에는 독성전과 만월보전, 그리고 단하각이 다소곳이 앉아 있다. 주불전인 대웅보전은 1793년(정조 17)에 중수됐다가 1818년(순조 18)에 불에 타 3년 후 중건된 건물로, 조선 후기의 건축 양식이 잘 드러나는 건물이다.
추녀마루에 놓인 잡상(雜像)은 흥국사에 대한 왕실의 보살핌이 각별했음을 보여준다.
사람을 시작으로 동물 형상의 토우를 일렬로 세워 놓은 잡상은 일종의 장식 기와로, 건물의 위엄을 더하고 화재나 액을 막아 준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주로 궁궐 건축에 사용된다.
조선시대 화승 배출 사찰답게 벽화가 화려하다.(시왕전)
산기슭에 터를 얻는 가장 쉬운 방법은 산을 허무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찰 건물은 이런 방법을 쓰지 않는다. 대웅보전 앞에서 보면 마당과 주초석이 평면을 이루고 있다. 산을 허물지 않고 안정된 마당을 얻는 효과를 거둔 것이다.
조선시대의 영조법식(건축 법규)은 궁궐 건축이 아니면 주초석이든 기단이나 계단의 장대석이든 다듬은 돌은 일체 사용이 금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