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의 산
영월 달돋이봉(606.8m)
성황당, 연자방아 아직도 있는 오지 중 오지
충절의 고장 영월의 진산 태화산(1,027.4m)에서 서쪽으로 약 4km거리, 국지산(625.6m) 남쪽 능선으로 약 2km에 해발 606.8m로 영월읍과 남면 경게에 솟은 산이 달돋이봉이다. 영월군 남면 조전리 하촌에서는 정월대보름이나 한가위 때 이 산에서 떠오르는 달을 보며 소원을 빌고 달맞이행사를 하였기에 달돋이봉, 월출봉, 월망등이란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산세는 유순하나 그동안 사람이 자니지 않아 숲이 우거져 길 찾기가 수월치 않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옛 고개도 인적이 끊겨 고개로서 기능을 상실한 지 이미 오래다. 이 산에 등을 기대고 사는 마을에는 마을을 지키는 고목, 성황당, 연자방아 등도 있고, 흙으로 쌓은 담배 건조장들이 아직도 여럿 남아있는 오지 중의 오지다.
'금강수는 양이고 태화산은 음인데/ 월휴촌은 옛부터 수려하고 깊구나' 이조 순조 때 학자 신범이 읊은 시 일부다.
산행은 영월읍 흥월리 장선 마을을 들머리로 택했다. 충북 영춘, 단양으로 가는 옛길이 있던 여기에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의 장승이 서있던 곳이라 하여 장승께, 장승개, 장선이라 부른다. 장선 버스승강장애는 고석균공덕비와 기와집도 있고, 낡은 담배건조장, 주인 잃은 폐가가 기우뚱 산객을 반긴다.
태백 대덕산, 금대봉 생태경관 보전지역 감시대원 장태순씨(54, 011-375-5662), 태백시 황지동에서 일미아구찜 집을 운영하는 길기순씨(54, 033-553- 2959, 010-2832-0626)는 이제 장승이 없는 장선삼거리에서 서쪽으로 훵하니 뚫린 장승개골로 들어선다. 작년에 포장하였다는 시멘트 농로 옆 더덕밭 두렁에는 대추나무에 대추가 총총이 영글어 가고 있다. 대추를 보고 먹지 않으면 빨리 늙는다며 한 알 입속에 넣는다. 비릿한 푸성귀 맛이다.
도랑가에는 으름 덩굴이 진을 쳤다. 핸드폰만한 으름이 탐스럽게 열렸다. "나 어렸을 때 따먹던 으름을 여기서 보네. 참 맛있었는데." 충청도가 고향인 길기순씨가 어린 시절 추억을 되씹는다. 장승개골 끝으로 사자이빨 같은 국지산 정수리가 특이하다.
들머리에서 7~8분즘 걸었는데 삼거리다. 오른쪽 길은 옛날 농기구 등을 벼름질하던 대장산(점터)이 있던 골짜기라고 하여 점골이라 했다. 점골로 들면 문고개에 닿아 국지산으로 갈 수 있다.
그대로 뒷뒤실(뒷실) 가는 길로 직진한다. 길섶에는 물봉선이 흐드러졌다. 옛날에는 여러 가구가 살았다는데, 현재는 몇 집밖에 보이지 않는 뒷뒤실을 지난다. 오른쪽 언덕 아래 붉은 벽돌집을 내려다보며 산모퉁이를 돌아나간다. 돌마타리, 마타리, 뚝깔, 까실쑥부쟁이, 염아자 등이 꽃을 피워 아름다운데 석회암릉 위에 철 늦은 솔체꽃이 군락을 이뤄 이채롭다.
산모둥이를 벗어 버리자 태화산 버섯농장이 나타난다. 주인 이인배씨(033-375-5675, 011-9792-3167)는 한창 표고버섯을 수확하고 있다. 농장을 뒤로하자 뒷뒤실의 마지막 농가 유환조씨 마당을 밟고 지나게 된다. 장승개골로 들어선지 25분쯤 걸렸다.
농가 수수밭 옆에는 유씨 제실과 효자각이 있다. 유용식 효자문은 조상을 섬기고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던 효자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유 효자는 조상을 숭배하는 사상이 남달라 부친인 유용복의 유풍을 받들고 유씨 조상의 훌륭하였던 한폐공 유비 등 영예로운 조상의 위폐를 모신 흥현각을 세워 매년 10월15일에 봉제해 왔었다. 영월 유림에서는 성균관이 올려 표창케 하였다.
유환조씨에게 1962년부터 어려운 여건에 제실을 짓던 이야기를 듣고 수수밭 고랑을 따라가자 이내 수수밭이 끝나며 이후부터는 산길로 접어든다. 복숭아나무가 유난히 많다. 주인이 관리하지 않아 야생화 되어 가는지 열매가 아주 작다. 물렁한 복숭아를 한입 베어무니 벌레가 가득하다. "이런 까칠복상은 밤에 호롱불 밑에서 먹어야 제격인데. 그래야 그 좋은 벌레까지 먹지." 장태순씨의 몸보신에 좋은 벌레 먹은 복숭아에 대한 해설이다.
가을의 전령사 개미취, 개숙부쟁이 꽃들이 하늘거리는 숲길을 잠시 걷다가 왼쪽은 댕댕이골, 오른쪽은 뒷실골 사이의 능선으로 올라선다. 희미한 옛길을 따라 가보지만 사람이 다니지 않았다. 덩굴을 헤쳐 나간다. 사방 멧돼지들이 땅을 파헤친 자국들, 댕댕이덩굴이 많이 서식하고 있다 하여 댕댕이골 이름이 붙은 능선을 구구단 외우는 멧비둘기 소리를 들으며 25분쯤 오름짓을 하여 마루턱에 올라서니 넓은 분지가 나타난다. 굼밭, 또는 긴밭이라 불리는 곳이다. 옛날에는 황소 한 마리가 꼬박 7일 동안 쟁기질을 하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때보다 더 넓어졌다고 봐야겠다.
묵밭이 되어버린 한쪽 귀퉁이에는 약비 탱크가 있고, 중앙에 김장배추를 심었는데 고라니란 놈이 농사를 다 망쳐 놓았다. 고라니가 배추를 먹을 때 속고갱이만 건드려 놓고, 또 배추를 먹으려다 뿌리채 뽑히면 먹지 않고 버린다고 한다. 고라니 한 마리가 하루 저녁에 5톤 트럭 두 대 분을 못 쓰게 만들어 놓는다고 하니 몇 마리만 배추밭에 들어왔다 하면 한해 농사는 끝장나는 거다. 그렇다고 고라니를 잡으면 콩밥을 먹어야 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농부들의 한숨소리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 옆에 있는 콩밭도 매한가지로 피해를 보고 있다.
굼밭을 가로질러 가자 경운기길 삼거리다. 왼쪽은 정상을 다녀온 후 달곶(달골)으로 하산할 길이라 눈여겨 보아둔다. 삼거리에서 그대로 직진하자 농로는 이내 끝나버려 밭둑으로 올라가자 오른쪽 사면 숲속으로 희미한 옛길이 나타난다. 이 길이 소바우재로 가는 길이다.
나무들이 하늘을 가려 어두컴컴한 터널을 허리를 굽혀 빠져나간다. 더덕도 보인다. 굼밭 삼거리를 떠나 시나브로 50분쯤에 산딸기 나무들이 허리까지 빠지는 헬기장 중앙에 깃대가 있는 정상이다. 사방 숲에 가려 조망은 없으나 동쪽으로 웅장한 태화산이 불끈 솟아 방향 감각을 일깨워준다.
하산은 올라오던 길로 되돌아간다. 낙엽이 많이 쌓인 부엽토를 밟으며 25분쯤에 굼밭 삼거리다. 오전에 올라올 때 사람이 없더니 굼밭 주인이 고라니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그물을 설치하고 있다. 장태순씨와 길기순씨는 배낭을 벗어 던지고 부부의 농사일을 거들어준다.
삼거리에서 안달골~달곶으로 내려간다. 마을로 이어지는 경운기 농로에는 시멘트가 깔렸다. 묘지들이 보이고 밭둑에는 누런 호박이 탐스럽게 열렸다. 으름덩굴도 유난히 많다.
약 15분쯤에 달곶 마을 농가가 나타나며 아름드리 고사목과 수령 550년, 수고 25m, 둘레 370cm 되는 굴참나무 보호수 아래 마을의 안녕을 지키는 성황당이 앉아있다. 안달골을 빠져나오자 흥월2리 경로당과 흥월 버스종점이다.
*산행안내
장선버스승강장-(25분)-뒷들-(25분)-굼밭-(50분)-정상-(25분)-굼밭 삼거리-(15분)-달곶 <2시간20분~3시간 소요>
*교통
영월 시내버스정류소(033-374-2373)에서 1일 4회(06:00, 09:30, 13:40, 16:40) 운행하는 달곶행 버스 이용. 흥월리 달곶에서 영월행 버스는 1일 4회(07:00, 10:10, 14:10, 18:00) 운행한다. 요금 900원.
영월시외버스터미널 전화 033-374-2451.
*숙식
달곶 마을에는 식당과 숙소가 없고 영월시내로 가야 한다. 부근에 폐교된 흥월초교 자리에 동강캠프(010-3127-0330), 동아파크(033-373-4248), 낙원장(373-9193), 가든장(373-5794), 대흥식당(373-1776), 우성식당(373-9039)이 있다.
글쓴이:김부래 태백 한마음산악회 강원도에서 나고 자랐으며, 40여 년간 강원도 오지 산골을 누비고 다닌 산꾼이다. 숲해설가.
지도:월간<사람과산>2007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