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4강 이끈 히딩크의 애정어린 인터뷰
본선 팀 수준 비슷비슷 미세한 데서 승패 갈려
긴장 이길 훈련 중요… 나는 아직도 배가 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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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딩크 감독은“미세한 차이가 월드컵에서 승패를 결정하는 만큼, 철저하게 준비한다 면 좋은 결과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최우석 기자
3일 오전 숙소인 서울 그랜드 하얏트호텔에서 만난 거스 히딩크(63) 러시아 축구대표팀 감독은 약간 피곤해 보였다. 시각장애인 축구장인 '히딩크 드림필드' 조성식 참가차 지난달 28일 방한한 그는 2002년 월드컵 한국 대표팀 제자인 홍명보·박지성 등과 축구협회 관계자들을 만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축구 얘기가 나오자 그의 눈빛은 살아났고 목소리는 높아졌다. 히딩크 감독은 지난 시즌 성적부진에 시달리던 프로축구 잉글랜드 첼시를 맡아 챔피언스리그 4강으로 이끌었고, 지금은 러시아 대표팀을 이끌고 있다. 러시아는 월드컵 유럽예선 4조에서 독일(16점)에 이어 2위(15점)로 선전하고 있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 7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을 달성한 한국 대표팀에 축하와 함께 다음 몇 가지를 당부했다.
그는
▲벌처럼 쏘는 능력을 키워 상대를 두려워하게 만들 것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조직력을 키워 기(氣)싸움에서 밀리지 말 것
▲신인들이 월드컵의 압박감을 잘 이기도록 철저히 준비시킬 것 등을 주문했다.
히딩크의 주문은 2002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을 4강에 올려놓을 때의 바로 그 노하우였다.
히딩크 감독은 "만약 남아공월드컵 본선에서 한국과 러시아가 붙으면 두 팀 모두 기회만 생기면 공격에 나서는 일대 장관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대표팀 감독이란 어떤 자리이고 어떤 일을 해야 하나.
"감독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다. 단원들의 미세한 움직임을 감각적으로 포착하고 그들이 자기 능력을 최고로 발휘할 수 있도록 조율해야 한다. 선수뿐 아니라 관중들의 마음까지 꿰뚫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언제나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지만 성취감도 크다."
―월드컵 본선은 다른 경기와 다르지 않나.
"월드컵 본선은 엄청난 압박감을 준다. 그러나 본선에 오른 팀들의 경기 수준은 모두 비슷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승패는 아주 미세한 부분에서 갈린다. 예컨대 신인들을 훈련시키는 방법이 중요하다. 그들은 월드컵 초반에 매우 긴장한다. 그러면 실수가 나오는 법이고, 이후에는 수습하기 어려워진다. 신인들이 중압감을 이길 수 있도록 많은 경기를 통해 육체적·정신적으로 대비시켜야 한다. 한국 대표팀에는 국제무대의 노하우를 가진 박지성, 이영표가 있다. 이들이 후배들을 잘 이끌어줄 것이다."
―한국이 세계적 팀들과 대등하게 경기할 수 있을까.
"한국은 강인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벌처럼 쏘는 팀이다. 벌에게 쏘이면 아프다. 한국은 얼마든지 상대를 매섭게 몰아붙일 능력이 있다. 이전과 달리 세계 축구계도 한국을 까다롭게 생각하고 있다. 허정무 감독은 한국적 스타일에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벌처럼 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상대 선수들의 성품과 성향까지 분석해 기(氣)싸움에서 이겨내야 한다.
만약 한국팀이 스피드에서 뒤진다면, 조직력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체력을 키우는 일이 필수적이다. 또 신장에서 열세라면 점프할 때 몸싸움하는 법도 익혀야 한다. 유럽 선수들은 이런 식의 경기 운영 노하우가 몸에 배 있다. 한국 선수들도 이에 충분히 대비해야 하며, 허 감독은 이미 이런 것들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부진에 빠진 잉글랜드 첼시를 바꾼 비결은?
"프로 선수들 수준은 비슷하다. 선수들의 정신력을 끌어올리는 게 중요했다. 첼시 감독을 맡자마자 몇몇 스타급 선수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면서 분발을 촉구했다. 한국에서 했던 방식 그대로다. 경기에서 이기며 선수들 눈빛이 달라졌고, 그들은 나를 믿고 따르기 시작했다." (히딩크 감독은 손목시계를 풀어 보여줬다. 뒷면에는 '당신의 모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첼시 선수 일동'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월드컵 4강, 유럽선수권 4강 등 히딩크에겐 '4강 전문가'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결승전에 올라 우승하는 건 모든 감독의 꿈이다. 난 아직도 그 꿈을 꾸고 있다. 지난 10여년 동안 결승 문턱에서 막힌 경우가 있었지만, 나는 끝까지 간다. 난 아직 배가 고프고 할 일도 많이 남아 있다. 만약 러시아 '곰'과 한국 '벌'이 월드컵 본선에서 한판 승부를 벌인다면 아주 흥미진진한 게임이 될 것이다."
■ 거스 히딩크 감독 주요 성적
1988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네덜란드 에인트호벤), 1998 프랑스월드컵 4강(네덜란드 대표팀), 2002 한·일월드컵 4강(한국 대표팀), 2005 유럽 챔피언스리그 4강(에인트호벤), 2006 독일월드컵 16강(호주 대표팀), 2008 유럽선수권 4강(러시아 대표팀), 2009 챔피언스리그 4강(잉글랜드 첼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