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9장 32절 – 35절
교회안에는 오중직분이 있습니다. 사도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직분이 있고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들과 예언의 말씀을 증거하는 선지자들 그리고 목사와 교사들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들 오중사역이 세분화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사도이면서 선지자이고 목사인 사도바울이 있는가 하면 사도이면서 복음전도자이고 목사인 사도베드로가 있었습니다. 이 복음전도자들은 순회전도자들입니다. 사도요한이 요한서신을 쓸 때에도 이 순회전도자들이 있었는데 어떤 자들은 이 순회전도자들을 박대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오중 직분은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제자들을 데리고 다녔지만 사역의 위임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세례를 행할 때에도 세례요한이 세례를 행하고 다른 제자들은 보조의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례를 직접 행하실 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 위임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세례를 행한 것보다 예수님이 세례를 행하신 것이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많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례뿌만 아니라 말씀을 전하는 것과 성령의 사역도 제자들에게 위임하셨습니다.. 이를 위해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하시고 가르치시고 훈련시키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사역의 방법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방법은 요한복음 5장 19절이하에서 잘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사역을 스스로 행하지 아니하시고 언제나 하나님아버지와의 사랑의 관계안에서 하나님아버지께서 먼저 보이시는 그 일을 보시고 참예하시며 성취하셔서 하나님아버지께 영광돌리시길 기뻐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사역의 방법은 칠십제자들을 파송하실 때도 마찬가지 셨습니다. 그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것처럼 자신들을 위해 음식이나 잠잘 곳을 준비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므로 공급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성령의 사역을 행하게 하셨는데 그 때 귀신들이 떠나가고 놀라운 치유의 역사가 이루어 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놀라운 치유의 역사로 인해서 기뻐하지 말고 하나님나라에 그들의 이름이 기록되어졌음을 인해서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바로 사역의 결과는 사람들로부터 받는 댓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과 하나님의 상급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사도베드로가 순회전도자로서 룻다지역을 방문하게 된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룻다는 이스라엘의 지중해쪽 샤론평야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거기서 베드로는 에니아라고 하는 중풍병자를 만납니다. 그 에니아는 팔년동안 중풍병자로 있었습니다. 에니아의 상황은 룻다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상황같습니다. 그 때 사도베드로는 예수님께 배운 바를 따라 사역을 행합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앞서 행하시고 보이시는 그 일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의 시작은 보는 것입니다. 보는 것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사도베드로는 예수님의 행하심을 에니아에게 말하고 치유합니다. 사도베드로는 에니아를 치유할 뿐만 아니라 자리를 정돈하게 합니다. 이것은 그동안 에니아를 주장했던 절망의 자리, 스스로를 제한했던 낙심의 자리 그리고 자신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고 하는 방종의 자리를 정리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