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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 평전] 인터넷 독자 독후감 모음
독후감을 올리신 독자들게 깊은 마음으로 감사드립니다.
주변 사람들이, 혹은 제자들이 인터넷 사이트에서 발견해 알려 주어 모아 놓았습니다. 기고한 분의 권리이지만 제가 저자로서 그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려받기가 가능하게 첨부파일을 올리니 기고한 분들이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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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 평전] 인터넷 독자 독후감 1
김산 평전 2006.11.08 21:16
호연지기http://blog.daum.net/hydj2002/9907755
나이 좀 들고 살이가 쉽지 않음을 자꾸 느껴서 눈물이 많아진 걸까. 김산 평전. 500여 페이지 두툼한 책을 한 사흘 만에 읽었는데 여러 번 눈물이 났다. 하긴 눈물샘이 약간 고장 난 것 같기도 하다. 산행할 때 바람만 좀 불면 눈물 닦느라 정신이 없으니까. 그렇다 해도 책이 감동을 주니까, 내 감성을 건드리니까 눈물이 난 거겠지.
책은 십몇 년 전 감동적으로 읽은 김산의 아리랑(님 웨일즈 공저)의 후속편인 셈이다. 그동안에도 '아리랑 그 후'라든가 무슨 계간지 같은 데 간간이 관련 글을 보았다. 김산 장지락에 반했던 셈이다.
1905년 평안도 용천 출신으로 일본을 거쳐 열다섯살에 만주 중국으로 가서 서른넷에 배신자로 몰려 처형되기까지 조선의 독립을 위하고 인민을 위해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로서 치열하고 순일한 삶을 산 인물이다.
김산 평전의 작가는 이원규씨. 약산 김원봉 평전을 쓴 교수 겸 소설가. 되도록이면 기록과 증언에 밑바탕했다고 하지만 필경 작가로서 각색이 있었을 터인데, 워낙 주인공이 그런 삶을 살았기 때문일까.
열다섯 나이에 700리 만주 땅을 한겨울에 걸어갔다든가 두 번이나 체포당해서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도 끝까지 절조를 지켰다든가 중국어 일본어에 능통하고 영어 해석과 대화 정도 가능한 수준에 사회 인문과학에 의학 법학에 이르기까지 박식하다. 거기다 인물이 잘생겼다니 작품의 주인공으로 나무랄 데가 없다.
님 웨일즈(중국의 붉은별을 쓴 에드가 스노우의 부인, 후에 이혼)가 쓴 아리랑에서는 건조하게 요점만 쓰인 그의 비극적인 생애에 감명 받았다. 이번 책에서는 그가 세 여인과 만난 이야기 등이 담겨 더욱 실감나는 재미를 맛봤다고 할 것이다.
한동안 김산 장지락...(가명이 많다) 이야기가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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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 평전] 인터넷 독자 독후감 2
정민 | 2006·11·19 00:35 | HIT : 7 | VOTE : 0 |
김산은 혁명에 실패한 혁명가이지만, 동시에 행운아이기도 하다. 열일곱 나이에 만주벌판 700리길을 걸어 독립운동에 투신할 때부터 그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님 웨일즈라는 서양 여성작가를 만나 후세의 수많은 독자들에게 그의 인생역정을 들려줄 수 있었다. 그렇게 보면, 무엇이 성공이고 무엇이 실패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김산 평전은 근대 격변기를 살아간 진보적 인물들을 주로 다루는 실천문학사의 역사 인물 찾기 시리즈 중 가장 최근작이다. 열린 책들에서 나오는 소설류와 함께 작은 배판으로 나오는 책들 중에서는 가장 눈길을 끄는 시리즈이기도 하다. 하지만 책을 직접 구입해 읽어본 것은 대학교 1학년 때 샀던 체게바라 평전 이후로 처음이다. 서점에서 책을 집어들고 셈을 치를 때 체게바라로 시작해 김산으로 내 대학생활 독서를 끝맺는 셈이라는 생각이 들어 슬쩍 웃음이 나왔다.
소설가 이원규가 새로 재구성해 쓴 김산 평전은 논픽션이지만 소설적 요소가 상당부분 가미되어 있어 독자가 읽기 편한 형태로 씌어져 있다. 마치 한편의 장편소설을 읽고 있는 듯 해서 기타의 평전들 보다 쉽게 읽힌다. 똑같은 주제를 다뤘고 이 책의 기본 뼈대가 된 님 웨일즈의 '아리랑'도 두 번이나 읽어봤지만 이원규의 글이 훨씬 머리에 잘 들어오는 것 보면 동녘의 번역이 문제이던가 아님 님 웨일즈의 필력이 문제이리라. (남탓은...)
책을 읽으며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던 단어는 '운명' 이었다. 20세기 초, 뜻있는 지식인이라면 모두가 독립운동에 몸바쳤을 때 김산, 아니 장지락은 역시 민족주의자, 무정부주의자, 공산주의자를 거치며 조국의 독립에 헌신했다. 어찌보면 시대가 그의 삶을 규정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운명이고 팔자라면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21세기, 1905년생인 김산보다 77년 늦게 태어난 내 삶의 주제는 과연 무엇이 될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김산의 시대에 모두의 화두가 '독립'이었다면, 그리고 수십 년 전에는 그것이 '민주화'와 '개발'이었다면, 내가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가게 될 인생의 화두는 과연 무엇일런지 궁금해진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과거의 선배에게 배우고 싶은 것은 배워서 내가 헤처나가야 할 미래와 당당히 맞서고 싶다. 실패했지만 꿈을 잃지 않았던 혁명가 김산의 말 한마디는 그래서 가슴속에 오래 고이 간직하련다.
"내 전 생애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단 하나에 대해서는, 내 자신에 대해서는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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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 평전] 인터넷 독자 독후감 3
이원규 선생의 "김산 평전"을 읽고... | 2006.11.23 17:07
President_Kim http://blog.daum.net/k-net/8907792
김산이라면 아리랑이 떠오르고 아리랑하면 김산이 떠오릅니다. 잘 알지 못하던 김산... 오늘 김산이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그 분은 장지락 의사이시며 조국독립을 위해 한 평생 초개처럼 살다 가신 우리 한국의 영원한 투사이십니다.
그런데 이 책 참 재미있게 봤습니다. 저자이신 이원규 선생이 사학자가 아니신 작가라 그러신지 한 편의 재미있는 소설을 읽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소설이라고 다 재미있지는 않겠지요? 허나 이원규선생의 필력이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정말 흥미진지하게 앉은 자리서 자세만 고치며 다 읽었습니다. 600p가 넘는 분량인데도 불과 6시간 만에 다 읽었네요.
김산 열사, 정말 열사요, 의사요 투사입니다. 그분의 일생은 생사가 늘 함께 하였으나 늘 학문과 교양에 힘쓰시며 오직 조국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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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 평전] 인터넷 독자 독후감 4
김산평전, 이원규 | 느낌이 있는 서가 2006/11/21 16:41
http://blog.naver.com/pes7272/110011165454
잎 넓은 백양나무들이 줄지어 있는 거리에서 김산은 이륜마차를 불러, 귀공자처럼 거만하게 마부에게 임시정부 주소를 말한다. 그는 3ㆍ1운동을 주동하고 민족의 독립을 염원하며 혹독한 추위를 견뎠으며, 명문대에서 의학을 공부했지만 다양한 지식에 능통하고, 그 지식을 조국 해방을 위해 실천했던 촉망받던 혁명가였다. 중국공산당이 그를 일제간첩으로 지목해 그의 나이 34세에 전선으로 가는 도중 사형당할 때까지 그는 오로지 조국을 위한 투사로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이틀간의 독서 끝에 나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 찾기는 어디에서부터 발원되어져야 하는가, 수많은 외세의 침략들과 식민지의 굴욕, 분단이라는 현실은 지금 우리들에게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며 발전시켜야 하는가에 대한 묵직한 화두를 꺼내어보았다.
문명의 이기와 시대가 주는 안락을 선사 받은 우리들은 습관의 궤도에 따라 저마다의 방법으로 현재의 삶을 그저 즐기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김산처럼 아파하지 않아도 되고 절망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은 작가 이원규 씨의 말처럼 김산과, 그 등 뒤에 선,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죽어간 수많은 ‘김산들’에 의한 것이므로…….
이 책을 통해 작가는 역사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고자 했던 한 남자의 시련과 고독, 절망과 사랑을 얘기한다. 책장을 열면 의식이 팽팽하게 당겨진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지금의 안주는 누구에 의한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그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한, 느낌표와 물음표를 동시에 던져 줄 것이다. 일독을 권한다.
/data20/2006/11/21/36/8939205545_1_1-pes7272.jpg@nhn@24675@nhn@1@nhn@171@nhn@303<nhn> 박은실 김산평전, 이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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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 평전] 인터넷 독자 독후감 5
다시 김산을 만나다 | leemik1004 | 2006-11-15 | | 추천:0
아리랑의 감동이후 15년만에 다시 만난 김산! 아니 장지락! 그의 삶은 늘 내 가슴을 뛰게 하고 한없는 부끄러움과 연민을 자아낸다. 조국 잃은 망명자의 고단한 삶속에서도 늘 정의와 인간에 대한 따뜻함과 변혁(조선 독립)에 대한 희망을 잃지않았던 그럼에도 먼 타국에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해야 했던 그를 통해 역사의 비극성과 내 조국의 긍지를 같이 느낀다. 그러나 만약 지금의 조국 현실을 그가 살아 본다면 또 뭐라 할 지..... 얼마나 피울음을 삼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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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 평전] 인터넷 독자 독후감 6
김산평전 | 글벗 2006/11/26 17:58
http://blog.naver.com/zzangdoyazi/40031350678
최근 잘못된 과거에 대한 청산작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나 그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은 힘을 발휘하고 있다. 몇몇 수구언론이 앞장서서 국론분열을 명분으로 과거사 청산 반대론자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이런 언론의 무찰별적 반대여론조작은 일반시민사회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쳐 현정부가 국론분열의 원인제공을 한 것처럼 여론이 흘러가고 있다.
유럽 특히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부역했던 매국노들을 아직까지도 추적해서 처벌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견주어 볼때 우리의 과거사 청산작업은 이미 그 역사적 의미를 잃은지 오래다. 잘못된 과거의 토대 위에서 어떻게 새로운 역사를 시작할 수 있는지...잘못된 과거 부와 권력의 향수를 누리고 있는 자들이 아직도 소위 사회 지도층을 형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진보는 도덕적 한계에 부닥칠 수 밖에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더더욱 안타까운 것은 과거사 청산에 반대하는 수구언론이나 시민단체들이 왜곡된 과거의 주역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들의 공세가 워낙 파상적이고 세뇌적이라 일반시민들의 눈과 귀를 멀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산(장지락)은 님 웨일즈의 [아리랑]을 통해서 역사의 수면 위로 떠오른 비운의 독립운동가이다. 치열하게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서 젊은 생을 헌신했음에도 왜 우리는 지금까지 그를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너무도 단순하다. 그가 사회주의자였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사가 이데올로기에 갖혀 조국의 해방을 위해 젊음을 불태웠던 그들을 우리는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면 과연 역사앞에 떳떳하다 할 수 있을지....
일본 제국주의 당시 독립운동가들에게는 조국해방이라는 하나의 목표에 방법론적으로는 사회주의 운동과 민족주의 운동이라는 크게 두갈래로 분열되어 있었다. 즉 사회주의자들에게도 그들의 이데올로기는 독립된 조국에 대한 열망의 표현이자 해방된 조국에 대한 유토피아였던 것이다.
김산 또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민족주의자에서 무정부주의자로 결국엔 사회주의자로 그 방법을 찾을 뿐이었다. 짧은 생을 통해 그가 살아온 치열함은 그의 이념적 논쟁을 떠나 되돌아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을 통해서 그동안 우리의 기억속에 묻혀졌던, 결국에는 끄집어 내야될 수많은 사회주의적 독립운동가들을 찾을 수 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그의 열정에 옷깃이 여미어질 뿐이다.
/data19/2006/11/26/5/1-zzangdoyazi.jpg@nhn@14106@nhn@1@nhn@150@nhn@248<nhn>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블로그 김산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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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 평전] 인터넷 독자 독후감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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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eOn21.com [공개] 고우
cafe.daum.net/moveon21 날짜 : 2006.12.01 17:03
[우리 역사의 보통명사, 김산]
국정교과서의 고정된 인식의 틀을 거부하는 사람에게만 역사는 제 몸의 속살을 드러낸다. 물론 ‘뉴라이트’처럼 또 하나의 고정되고 편벽한 세계관을 ‘학문적 진보’라고 주장하는 집단도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역사는 ‘진리’가 아닌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런 점에서 역사와 문학은 동일한 색채를 지닌다. 문학 또한 진리를 외치는 것이 아닌, 진실을 노래하는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이원규의 새 책, <김산 평전>을 읽는다. 김산, 미국의 저명한 저널리스트인 님 웨일즈의 책 <아리랑>을 통해 비로소 우리 곁에 돌아와 누운 사람이다. 본명인 ‘장지락’보다, 금강산에서 따왔다는 ‘김산(金山)’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진 그는 남과 북 모두로부터 제대로 된 대접을 받아보지 못한 이들을 상징하는 우리 역사의 ‘보통명사’다.
세상은 그를 일러 ‘비운의 조선혁명가’라고들 한다. 그의 일생의 단면만을 놓고 본다면, ‘비운’이라는 표현은 썩 어울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김산의 일생이 그 누구에 의해 강제된 것이 아닌, 스스로가 선택한 ‘고난의 행군’임을 생각한다면, 그의 삶은 결코 ‘비운’했던 것이 아니다.
당대를 견디고 살아간 많은 조선혁명가들은 대부분 ‘망명자’였다. 특히 중국 관내에서 활동하던 조선혁명가들은 이방인인 동시에, 조선혁명의 전초 단계로 여겨졌던 중국혁명에 복무하는 ‘경계에 선 사람들’이었다.
김산 역시 그러했다. 그는 현재의 우리에게 ‘용천역 폭발 사고’로 남은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났지만, 조선반도에서의 그의 삶은 17년에 불과했다. 1938년 ‘일제 특무’라는 누명을 쓰고 처형되기까지 김산은 낯선 땅 중국에서 17년이라는 조선반도에서의 그것과 같은 세월을 살았다. 어찌 보면 우연일 수도 있지만, 그의 일생에서 조선의 운명과 중국의 운명이 똑같은 비중으로 남았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하다.
그는 혈연적으로는 조선인이되, 정치적으로는 중국공산당 소속이었다. 또 중국 여인과 결혼해 아들을 낳았지만, 그 아들은 ‘백의민족’으로 키우기를 희망했다. 김산은 중국혁명에 복무했지만, 그것은 조선혁명의 그날을 위한 방편이었다. 수구 보수 인사들은 말한다. “우리가 일제에 협력했던 것은 민족의 장구한 이익을 위해서였다”고. 그런데 왜 그들은 ‘역사 바로 세우기’에 그토록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일까. 차라리 미당 서정주처럼 “나는 그때 일본이 200년은 갈 줄 알았다”고 고백하는 게 더 아름다울 지경이다.
[지푸라기로 다가와 어느덧 섬이 된 그대]
김산을 비롯한 조선혁명가들의 일생은 그 동안 제대로 알려진 게 변변치 못하다. 고작해야 님 웨일즈의 <아리랑>과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에서의 언급이 전부일 뿐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원규의 책 <김산 평전>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이원규는 작년에 의열단을 조직했던 약산 김원봉의 삶을 담은 책을 내기도 했다.
작가는 말한다. “김산의 등 뒤에 선,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죽어간 수많은 ‘김산들’이 어른거린다”고. 우리 현대사에 드리워진 ‘레드콤플렉스’의 망령은 아직 유효한 모양이다. 예를 들어, 김익상, 오성륜, 이종암, 김지섭, 나석주 등과 김성숙, 오성륜, 장건상, 박건웅, 이영, 양림, 박진, 장일진, 한위건, 서휘, 정률성, 김찬 등의 의열단원들은 그들이 분명 ‘빨갱이’가 아닌 ‘아나키스트’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역사에서 다분히 ‘의도적으로’ 지워져 있다.
왜일까. 과거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은 ‘아나키스트’를 ‘공산주의자’보다 훨씬 위험한 존재로 봤다. 우리 현대사를 ‘지도’하고 ‘지배’해왔던 전직 친일파와 그 후손들 역시 그러할 것이다.
김산은 분명 자신을 일러 ‘공산주의자’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정치적 신념은 무슨 ‘주의’에 방점을 찍고 있기보다는 ‘민족’이라는 것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원규는 이 점에 주목하고 있다.
[반동과 저항, 그리고]
하기야 요즘도 민족화해 문제를 논하려 들면, 가장 먼저 날아오는 대답 중 하나가 ‘친북좌파 빨갱이’라는 말이다. 수구보수 진영의 언어적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는 이 말은 그들 시야의 협소함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발언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이따금 되묻는다. ‘우리의 역사에 희망이 있는가’하고. 여러 가지 논의가 있을 수 있겠지만, 단언하건데 이원규 같은 이들이 존재하는 한, 그리고 김산과 같은 사람들이 ‘우리 역사의 빛나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별’들이 있는 한, 역사와 그 역사를 증거하는 작업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뉴라이트’ 진영에 속한 교수집단의 역사교과서 수정 움직임이 마침내 한나라당으로 하여금 “역사 기술의 좌편향도 문제지만 우편향 역시 문제”라는 일종의 ‘항복선언’을 하게끔 만들었다.
역사에 대한 반동이 거세질수록 그것에 저항하는 진실의 힘 역시 강해지는 법이다. 길가에 호젓이 피어 있는 들꽃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그 자리에 피어나지 않듯, 우리 현대사에서 가려진 이들의 이름 또한 반드시 우리 곁으로 돌아와야 한다.
초겨울 바람이 여의도를 몰아치고 있다. 그러나 그 바람 사이로 우리 현대사를 바로잡으려는 이들의 외침이 들리고 있다. 어제가 아닌 바로 지금의 시점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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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 평전] 인터넷 독자 독후감 8
김산 평전을 읽고
번호 : 5131 글쓴이 : 바라마
조회 : 141 스크랩 : 0 날짜 : 2006.12.29 09:47
밀려 놓았던 <김산 평전>을 읽고 있습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인을 들라하면 '김산과 이미륵 입니다' 하고 말하는데......그 대답을 들은 사람들이 보통 고개를 갸우뚱 합니다.
소설이라면 문학 소설만 알고 있었던 이십대 초에 역사 전기 소설은 큰 충격이였고. 그것이 비단 소설이 아닌 실화라는 사실과 광활한 무대와 거침없는 전개. 무엇보다 김산과 님웨일즈의 만남의 인연 과정이 궁금했고 그것이 영문서적 100권 정도 있는 초라한 도서관에서 대출기록부 때문이라는 것.
김산은 어떻게, 언제 처형 당하여 죽었는가도 궁금 했습니다. 전선을 지원하였고, 전선에 나가라고 당이 지시 하였는데 그 때 전선으로 옮기는 도중에 그를 처형하라는 비밀지시문을 내렸고.
불세출의 혁명가는 내 상상컨데. 자다가 도끼에 맞아 죽었든지. 한 밤에 끌려나가 영문도 모른 체 총알 맞고 죽은 것 같습니다. 그가 자기의 일생을 구술하고 난 이후 정확히 일년 이후 였습니다.
김산평전을 읽다가, 내 인식속의 시간대가 어긋났는지...... 김산이 피츠 제럴드의 <위대한 게츠비>를 언급할 때 이상한 느낌이 들더군요. 중국에 "이하"가 있다고 하면 조선에 "이상"이 있었다. 그럼 김산은. 이상과 동일한 시간대에 존재한 인간이였습니다.
이상은 향기로운 MJB 커피 미각과 페퍼민트 츄잉껌, 파라마운트사와 세실 데밀 영화를 말하고 있을 때. 김산은 혹독한 고문과 전쟁 속에 마르크스와 볼세비키와 무정부주의를 넘나들고 있었으며. 한 사람은 자아가 망가지고 피폐해져 '날개야 돋아라'하고 폐병으로 병사 했을 때. 또 한 사람은 '나는 오로지 나에게 승리하였을 뿐이다'라는 부처와 예수의 결론을 얻게 되고 터무니 없는 죽음을 당했습니다. 야~~~ 동일한 시대에 Zeitgeist가 이렇게 다를 수도 있구나. 연애하는 한량과 목숨을 건 독립 혁명이 그 시대에 공존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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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 평전] 인터넷 독자 독후감 9
醉中雜談(취중잡담) : 양산여고 교사독서모임에서 이루어진 토론/ 개인적인 관심사 등등
나의 리뷰 총 방문자수 : 295
http://blog.yes24.com/nadog
김산, 장지락으로 기억되길.... 2007-01-10 오전 10:10:43
김산 평전 이원규 저 실천문학사
일제강점기 공산주의자의 삶이 오늘을 사는 나의 안일함을 질타한다. 그의 삶을 통해 인간의 의지에 대한 진정성이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생각한다.목숨을 걸지 않은 진정성이란 있을 수 있는가. 현재도 진정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그때와 마찬가지이지 않나 싶다.
지율 스님을 생각했다. 단식 100일을 하고도 그 진정성을 조중동찌라시로부터 의심 받았고, 지금도 유언비어 속에서 꿋굿이 당신의 생각을 퍼뜨리기에 여념이 없는...
김산은 40년이 훨 지나서야 복권되었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지난해에서야 건국훈장을 수여했다. 진정성을 가진 이들이 살아생전에 빛을 보고 그들의 삶이 평안해질 수는 없는 것일까. 왜 진정성을 가진 이들은 항상 마지막까지 힘들고 어렵게만 살아야 하는지..
역사가 과연 정의의 편이라면, 그렇게 정의롭게 결국 흘러갈 역사라면 진정성을 가진 그들의 살아생전의 삶에 역사의 정의로움을 발현하면 안되는 것인가.. 소설보다도 훨씬 소설같은 이야기. 김산, 아니 장지락을 만나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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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 평전] 인터넷 독자 독후감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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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 나무 방문자 : 10 / 3760 2005/06/08 개설
책 | 2007/01/10 (수) 08:59 공감 (0) 스크랩 (0)
지은이: 이원규 / 실천문학사
지은이: 장 코르미에, 옮긴이: 김미선 / 실천문학사
님 웨일스의 '아리랑의 노래' 와 '김산평전'을 읽으면서 느껴졌던 감동을 다시 느껴보기 위해 들었던 책이다.김산, 체 게바라 모두 제국주의의 지배에 대항하여 각기 시기는 다르지만 대륙의 끝과 끝에서 목숨을 바쳐 항거했던 사람들이다.
김산...15살 어린나이에 조국독립을 위해 뛰어들어 34세 젊은 나이에 중국공산당에 의해서 처형당한오직 조국의 독립만을 생각한 혁명가.체 게바라를 읽으면서 김산을 생각헀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신념을 끝까지 지켜 혁명을 성공시킨 두 사람의 평전은 2006와 끝과 2007년의 시작을 큰 감동으로 물들였다.김산, 체 게바라...두 분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김으로써, 내부로부터의 혁명에 성공하신 분이라 생각한다. 솔직히 체 게바라 평전은 우리나라의 얘기가 아니어서인지 김산평전 만큼은 많이 와 닿지는 않았지만 진정한 인류애를 실천한 그의 혁명기간은 아직도 큰 감동으로 남아있다.김산의 일대기를 그린 '아리랑의 노래'와 '김산평전' 은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오직 조국의 독립만을 생각한 한 공산주의 독립운동가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자기 자신에게 승리할 수 있었던 김산...그리고 그가 꿈꿔왔던 독립...그의 일대기를 읽음으로써 우리 근대사의 아픔과 발자취를 느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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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 평전] 인터넷 독자 독후감 11
김산 평전
bo+OK 2006/12/14 23:42
『김산 평전』은 김산을 ‘조국의 해방과 공산주의 혁명을 위한 확고한 신념을 가졌지만 억울하게 죽은 비운의 혁명가’로 그리고 있다. 10대 중반에 독립 운동을 위해 만주로 가고, 20대 중반에 중국공산당에서도 다양한 경험과 철학과 의학에 대한 지식과 문학적 소질로 주목을 받았지만, 30대 중반에 중국공산당 내에서 일본 간첩으로 몰려 처형당했다는 짧은 소개로도 그의 삶이 얼마나 역동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작가 이원규는 최근 발견된 사료들을 시기별로 정리하여 평전을 써나간다. 그래서 우여곡절이 많았던 김산의 삶의 궤적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쉽기도 하다. 『김산 평전』에서는 김산이 중요한 삶의 고비 때마다, 전세계 혁명 운동사에서도 중요하게 기록되는 지점마다 어떤 고민들을 했는지를 알고 느끼기에는 너무 ‘완벽한 영웅’으로 그려져 있다. 그는 국공 합작의 실패와 ‘광주 코뮨’에 실패로 좌절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다시 혁명 활동에 매진한다. 하지만 그가 이 상황에서 어떤 고민을 했는지, 그래서 어떻게 자신의 삶 속에서 혁명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는지를 책에서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민족주의적 독립운동만이 ‘올바른’ 것으로 알려지고 교육되어진 상황에서 아나키즘에도 관심이 있으며 공산주의에 자신의 사상의 터를 두고 활동한 독립운동가의 삶을 그려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평전 인물의 사상과 고민보다 그는 언제나 투철한 투사였다는 것만을 강조하는 것은 그를 박물관에 박제된 전시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김산 평전』은 김산을 역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인물로 그리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그가 목숨 걸고 싸웠던 신념, 사상의 세밀한 형상을 구현하는 데는 불충분한 듯 하다. 그래서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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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 평전] 인터넷 독자 독후감 12
김산 평전
창고 | 2007/01/13 16:40 가는 비 오는 날
작년 이태의 남부군을 시작으로 간간히... 빨치산(파르티잔)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한 다큐를 알게 되었고, 거기에 이 책이 자주 언급되었던 게 동기다. 그러다 얼마전 정지아의 '빨치산의 딸'이란 책이 다시 나왔다길래 보고 있다. 1권 읽기를 마친 후 이래저래 바빠 2권 읽기는 아직이다. 어제 좋아라하는 선배가 오랫만에 찾아왔다. 대학 1학년 때 만났으니, 벌써 열 두해가 되는군. 내 가치관 형성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선배이자, 친구같은...
가까운 식당에 가서 뼈다귀탕을 먹는데 불쑥 넘겨주던 책. "너 이책 봤냐? 기다리다 한권 샀다." 김산 평전이다. 대학시절 아리랑을 보게 된 것도 이 선배의 추천이었는데... 다시금 김산을 만나게 된다. 본명 장지학. 평안북도 용천 하장동 출생... 이 겨울 가슴이 혁명으로 불나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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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 평전] 인터넷 독자 독후감 13
다시 읽는 <아리랑> | jccho64 | 2007-01-16 | | 추천:3
金山, 본명은 張志樂이며, 1905년 평북 용천에서 나서 1938년 중국 연안 인근에서 처형당한 조선인 혁명가였습니다. 처형 당시 그의 나이 34세, 님 웨일즈의 <아리랑>에서도 그가 말했듯이 책 읽는 내내 ‘그의 어린 시절은 없었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15세에 시작된 그의 투쟁적인 삶의 궤적이 그러했으며, 당시 많은 조선인의 삶이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의 연보를 보면 1919년, 삼일운동이 있었던 그 해, 그가 15세, 지금으로 보면 중학교 2학년, 되던 해 3월 만세시위 참가로 구금되고 제적된 이후 가출하여 모스크바 유학을 위해 압록강을 건넜고, 그때부터 조국독립을 열망하는 민족주의자로서의 뜻을 키우기 시작했다 합니다. 17세 되던 해 의열단에 가입하고 톨스토이의 사상을 접하면서 민족주의자에서 아나키스트로 변모하였고 19세 되던 해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합니다.
反共이 國是였을 때 감히 출판의 엄두도 내지 못했을 <아리랑>, 그 이유는 <아리랑>의 주인공인 김산이 공산주의자였기 때문입니다. <아리랑>이나 <김산 평전>을 보면 중국을 무대로 항일 독립운동에 헌신한 많은 애국지사들이 왜 공산주의에 기치 아래 모일 수 밖에 없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김산이 13세 되던 해인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소련은 그 영향력을 동방으로 확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면서 중국에도 지부를 두게 되었고, 당시 세계정세 속에서 공산주의는 일본과 같은 제국주의 열강을 타도의 대상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의 많은 조선 독립 운동가들은 공산주의를 선택해야 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아울러 당시 중국은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지만 중국이 혁명을 통해 자국의 문제를 해결하는 순간 곧 조국 조선의 독립도 이루어 질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합니다. 김산 역시 중국 공산당원으로서 중국의 혁명을 위해 그의 굵고 짧은 생애를 모두 희생하였지만 그 길이 궁극적으로는 조국의 독립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었음을 그는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뛰어난 투쟁경력과 탁월한 이론가로서 그가 중국 공산당 태동에 기여한 중요한 역할에도 불구하고 그가 두 차례 일경에 체포되었다 다시 중국으로 복귀한 것이 일제의 공작에 넘어갔을 것이라는 의심을 초래했고 결국 공산당으로부터 제명을 당하게 됩니다.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중국 공산당 대장정의 기착지인 연안에서 당적을 회복을 위한 노력 중에 중국공산당으로부터 처형을 당하는 것으로 허무한 최후를 맞습니다. 이때가 1938년.
처형 된지 45년만인 1983년 김산은 중국공산당에 의해 복권되고 그의 출생 100주년이 된 2005년에는 우리 정부로부터 건국훈장을 받는 것으로 그의 명예는 회복되었지만 조국 독립 하나만을 위하여 투쟁했던 김산과 같은 수많은 사회주의 항일투쟁가의 생애와 이야기를 오랫동안 금기시될 수밖에 없게 했던 시대적 상황, 그 이념적 갈등과 분단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이 못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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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 평전] 인터넷 독자 독후감 14
김산 평전 소개
2007/03/28 16:25
http://blog.naver.com/suk7018/35941998
대학시절 교양수업에 과제로 읽었던 님웨일즈의 <아리랑>은 당시 아무것도 모르던 내게는 충격이었다... 나라를 읽은 중국내 조선인들의 투쟁이 그랬고, 젊은 나이에 자신을 조국해방투쟁에 바친 김산이 그랬다.
헬렌 스노우라는 이방인에 의해 우리에게 전해진 아리랑(Song of Arirang)이라는 책을 통해 잊혀질 뻔 했던 한 혁명가의 일생을 보았다. 그이후 다시 읽어보지 않아 내용이 가물가물하였다. 김산이라는 인물에 대한 강렬한 인상이 내내 남아있었다.
김산평전이라는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이제야 읽어보았다. 아리랑을 읽을때와 다른 느낌이었다. 일단 책이 두꺼워 자세한 그의 일생을 엿볼수 있겠구나 했는데, 그나마 작은 크기에 책은 소설 읽드시 잘 읽혀졌다.
우리 역사의 한편인 중국공산주의 혁명시기 조선공산주의자에 대한 투쟁은 잘 알려지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던 것 같은데 이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알게되었다. 그전까지의 나는 조국해방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왜 중국공산주의혁명을 해야 했는지 이해하지 못하였었다.(분문중 김성숙이 토론에서 했던 말이 그이유가 아닐까?) 그속에 가장 핵심적으로 활동했던 김산(본명 장지락)을 아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역사속에서 조국을 위해 생애를 바친 이름모를 이들이 그 뿐이겠냐만은... 대부분은 이승만은 알아도 여운형은 모르고 이광수는 알아도 장지락은 모를 것이다.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연안으로 가 끝내 누명을 쓰고 죽어간 김산.타협하지 않고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조국해방을 위해 생애를 바친 그를 보며...나는 누구를 위해 살고 있는가? 반문해보길 바란다... 나부터도...
"내 전 생애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단 하나에 대해서는, 내 자신에 대해서는 승리했다"_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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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 평전] 인터넷 독자 독후감 15
지난 해 읽은 <아리랑>은 리영희 선생의 <대화>로, 다시 앙드레 말로의 <인간의 조건>으로 이어져 나의 독서 영역을 넓혀주었다. 그리고 이번 <김산 평전>까지. 김산은 그 동안 고이 간직해 두었던 <체 게바라 평전>과 <닥터 노먼 베쑨>, <중국의 붉은 별> 그리고 <닥터 지바고>를 뒤적이게 만들었다. 이 책들이 날실과 씨실로 엮여 김산을, 그리고 격동의 20세기를 어렴풋하게 그려볼 수 있게 되었다. <아리랑>을 읽고 난 후라 <김산 평전>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국내 연구가들의 연구성과와 작가의 현장답사, 자료탐색 등의 노력을 알게 되었고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츨판사에 대한 신뢰도 한몫했다. 실천문학사의 역사인물찾기 시리즈는 구입후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체 게바라와 노먼 베쑨, 프란츠 파농과 함께 김산은 책장에 나란히 꽂혀 있다.
<김산 평전>은 분명 <아리랑>의 한계를 넘어서는 책이다. 구술기록만을 의존하여 쓰여진 <아리랑>과는 달리 학자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시대 상황을 고증하고, 현장 답사를 통해 공간적 배경의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 보여준다. 또 하나의 장점은 김산의 일대기를 한권의 소설 읽듯이 편하게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약간의 소설적 요소가 가미된 탓이리라. 주변 인물들의 특징도 이 책에서 더 뚜렷하게 느껴졌다. 김약산이나 김성숙, 오성륜 같은 인물들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그렇지만 <아리랑>과 <김산 평전> 중 한권을 택하라면 주저없이 <아리랑>을 택할 것이다. 책 자체의 역사적 가치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김산의 육성을 직접 듣는 듯한 느낌은 객관적인 역사의 고증을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많은 부분 <아리랑>에 빚을 지고 있다. 그건 불가피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 책의 가치는 분명히 있다. <아리랑>이 김산의 내적 독백 형식을 빌어 인물의 내면을 아주 강렬한 느낌으로 전달하고 있다면, <김산 평전>은 역사 속의 김산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김산은 2005년 이후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독립운동가이다. 그해 8월 15일 <아리랑>의 개정3판이 발간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김산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 이전부터 비밀리에 돌려 읽는 책이기도 했다. 2005년 우리나라는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들의 공로를 인정하여 훈장을 수여했는데, 그 때 여운형 선생과 김산도 훈장을 받게 되었다. 일제 시대 나라를 되찾으려는 움직임은 크게 두 계열로 나누어진다.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이 그것이다. 임시정부로 상징되는 민족주의 계열은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그 정통성이 계승되고 독립의 공도 인정을 받아왔다. 그러나 사회주의 무장 투쟁 세력은 그동안 북한 정권으로 계승되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들의 항일운동은 공산주의 혁명이 목적이지 나라의 독립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그 공로를 인정받지 못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친일보다 더 나쁜 건 친북"이라며 친일파보다 그들을 더 깎아내리기도 했다. 김산을 알게 되면서 그동안 우리는 독립운동사의 반쪽밖에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쩌면 반쪽이 아니라 그 이상을 모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라도 우리는 그분들을 알아야 하고 감사해야 한다. 지금의 우리는 미국의 원자탄 투하 때문이 아니라 그분들의 빛나는 투쟁 때문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산은 12세에 가출하여 바깥생활을 시작한다. 15세에 만세 시위에 가담하여 학교에서 제적당하고 작은 형의 돈을 훔쳐 압록강을 건너 신흥무관학교로 가기 위해 만주벌판의 혹독한 겨울추위를 이겨내며 7백 리를 걷는다. 어린 나이, 영웅심리의 발로였다고 볼 수도 있는 사건이지만 어린 아이의 치기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초인적인 인내심과 끈기를 보여주는 일이다. 16세에는 독립신문의 식자공으로 일하며 도산, 춘원, 이동휘 등 소년 시절의 영웅들을 곁에서 지켜보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17세 김산의 인생행로에 큰 영향을 주게 된 오성륜을 만나 아나키스트로 변모하게 된다. 그는 민족주의에서 아나키스트로 다시 공산주의자로 거듭나게 되는데 어린 시절이라 주변인들의 영향을 쉽게 받게 된 탓도 있지만 당시로서는 공산주의야말로 우리 민족을 구원해 줄 튼튼한 동아줄이라 여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는 의열단원으로 활동을 하면서 의학 공부를 해나가고 각종 사상 서적에 심취한다. 그의 정신 세계는 그에게 이론적 지평을 넓혀준 김성숙을 넘어서고 있는 듯 했다. 의열단의 단장이었던 약산 김원봉은 김산에게 한번도 폭탄 테러의 지령을 내리지 않았다. 아마도 약산이 그를 너무도 아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이론가, 사상가로서 그가 해야할 일들이 더 막중했기 때문이었으리라. 혁명가들의 끈끈한 동지애가 사선에서 살아가는 그들을 지탱하는 버팀목이었을 것이다.
김산도 피비린내 나는 혁명의 과정 속에서 끊임 없이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단테, 톨스토이, 마르크스, 포이어바흐,레닌,투르게네프, 괴테, 테니슨, 키츠, 잭 런던, 발자크 등 그의 지적 호기심은 투쟁 속에서도 계속 되었다. 어쩌면 그것이 그의 투쟁 무기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죽기 전 연안 회의에 참석하면서도 <위대한 개츠비>를 읽는다. 그리고 수시로 시를 쓰고 일본어 사상서적을 번역한다. 그가 만약 광복 이후 태어나 학문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면 걸출한 학자가 되었을 것이다. 피비린내나는 투쟁을 해나가던 혁명가들의 공통점은 예민한 감수성이 아닐까? 트로츠키, 체 게바라, 김산. 그들은 총칼을 든 혁명가들이었지만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까지도 사랑할 줄 알았던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들이었다. 어쩌면 이런 사람들만이 자신의 영혼을 지키기 위한 순결한 투쟁을 해 나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김산을 읽으며 이 땅을 위하여 피흘리며 투쟁하신 그 분들의 숭고한 삶을 잠시나마 돌아보게 되었다. 지금은 잊혀져 가고 있는 그 분들의 생애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를 위한 투쟁의 삶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런 분들의 피와 뼈로 만들어진 나라. 이 나라에 사는 우리는 누구나 그분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그것을 깨닫는 것이 그분들께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의 독립투쟁의 진정성을 의심하며 공산주의 혁명을 위해 항일 운동을 한 것이니 독립운동으로 볼 수 없고, 친북은 친일보다 더 나쁘다는, 심지어 일본의 식민지배는 우리에게 축복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는 말을 내뱉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그들이 무정부주의자로, 공산주의자로 무장하여 목숨을 내건 투쟁을 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똑바로 보라고 말이다. 그들의 투쟁은 바로 나를, 그리고 당신을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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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 평전] 인터넷 독자 독후감 16
김산 평전을 읽고
2007/05/15 오후 11:51 | 가슴
http://cfs9.blog.daum.net/original/34/blog/2007/05/15/23/43
나는 이글을 민족해방과 조국의 독립을 위해 저 머너먼 땅의 중국에서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온몸으로 투쟁하다가 산화한 독립유공자들에게 바치고 싶다. 그리고 지금 조선족이라는 명칭으로 중국에서 살아가는 우리 질곡의 역사를 살아온 한 많은 우리 동포들에게 바치고 싶다.
일본의 첩자라는 누명을 쓰고 중국공산당으로부터 제명을 당하고 서른네 살의 젊은 나이로 처형당한 비운의 혁명가 김 산(본명 장지락 1905∼1938). 그의 중국 공산주의 혁명의 성국이 조국의 해방을 도울수 있다는 신념으로 불꽃같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혁명운동가 장 지락의 짧은 생애에 머리숙이면서 ...
사회주의 항일투쟁사와 공개되지 않은 자료를 찾아내고, 혁명가 장 지락의 발자취를 찾아 중국의 그 넓은 대륙을 여러 차례 방문하여 혁명가이자 공산주의의 이론가이자 작가, 조직 활동가인 장 지락의 생애를 투철한 작가정신으로 찾아내 나의 역사관을 넓혀준 이 원규님에게 또한 감사를 드린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지도하는 상해 임시정부에 의해 민족주의자로 민족해방운동에 뛰어들어 의열단에 입단하고 아나키스트 에서 공산주의 혁명가로 변모해 가는 장 지락의 이념적 변화 발전되는 과정에서 “공산주의가 인간의 가장 고귀한 감정의 항거에서 태어난 것” 이란 믿음이 일본제국주의에 핍박받는 민족의 해방을 가져올 수 있다는 신념으로 중국공산주의 혁명의 중심에서 불꽃처럼 서른셋의 나이를 살아간 것이다.
1905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평양숭실학원을 나와 열다섯의 나이로 러시아의 유학길이 막히자 한겨울 하얼빈에서 서간도 까지 만주의 추운 겨울 700키로를 걸어 신흥무관학교에 최연소로 입학하고 졸업한 김 산(장 지락). 광주 코뮌에 참가해 국민당군벌의 소탕작전에 코뮌에 참가한 조국광복을 위해 참가한 조선청년 2~300명의 참가자 중에 포위망을 뚫고 10여명과 살아남아 다시 상해에서 공산당의 중요한 포스트를 맡아 상해 공산당원들의 우상이 되고 북경에서는 북경시당 조직부장으로 초기 중국공산당 간부의 핵심으로 자리를 한다.
그 뒤 만주에 중앙당의 밀사로 파견되어 중국공산당과 조선인 공산당 조직의 유기적 연대의 끈을 잇는 탁월한 조직력을 발휘하다가 만주로 가서 일본이 세운 꼭두각시 만주국에 대항하는 김 일성도 참여 했다는 파르티잔 투쟁이 장 지락의 공작은 공로로 중국공산당사에 기록 될 정도이다.
그의 중국공산당 내부에서의 정적인 한 위건은 그를 뛰어난 선동가이자 비밀조직의 명수이지만 명문대학을 다닌 공산주의 이론가이고 일본어도 능통해 일본사상서를 번역한 번역가이기도 한 학자이기도 하다고 했다.
1937년 연안의 항일군정대학에서 전체학생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장 지락은 제2 국공합작을 소련보다 더 갈망하는 나라가 어딘 줄 아느냐고 학생들에게 물었다. 그리고 말했다. “아시아에서 가장 슬프고 불행한 나라, 봉건적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고 우물우물하다가 일본의 노예가 되어버린 조선입니다. 저는 조선인입니다. 여러분 조선을 잊지 마십시오. ”
이렇게 조국을 사랑하고 중국사회주의 혁명이 조국의 독립을 가져올 수 있다는 신념이 있었던 것이다.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중간의 입장에서 갈팡질팡하면서 인테리겐차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독립운동을 한 여 운형과 대비되는 공산주의 혁명가 장 지락. 그는 일본제국주의자들과 기회 적으로 협조하면서 중국의 민중들을 짓밟고 정치적 우위에 군림한 장개석 국민당 정부에 손을 벌려 독립을 구걸한 상해 임시정부의 민족주의자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일본제국주의자와 어떤 타협도 없이 치열하게 대항하는 중국사회주의자들 만이 진정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욕심 없이 함께 싸울 수 있다는 신념으로 "하얀 칼날이 눈앞에서 교차해도, 죽음을 삶처럼 보는 것이 열사의 용기라네!"라며 자신이 가입했던 의열단의 좌우명을 곱씹으며 민족해방을 위해 조국의 해방을 위해 서른 넷의 짧은 생을 살아 불꽃 같이 살아간 것이다.
현실을 본다. 조국 광복을 위해 저 북만주에서부터 남쪽 광주 서안에 이르기까지 우리 조선의 청년들은 목숨을 아까지 않고 민족해방을 인간해방을 위해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했다. 반세기가 지나 조국을 찾은 그 자손들은 돈에 눈이 어두워 피 말려야 하는 자본주의사회 조국 대한민국에서 이방인으로 대접받으며 양지도 아닌 그늘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 그이들을 새롭게 보아야 한다.
그들에게 쥐꼬리만 한 양심으로 선처하는 자세가 아니라 그 이들의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들이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피 흘리며 조국 해방을 위해 투쟁한 헌신을 잊지 말아야 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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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 평전] 인터넷 독자 독후감 17
secondbook [공개] 바구스 cafe.daum.net/utobook
김산 평전 (이원규/실천문학사) 2007.05.08 17:19
을사년(1905년) 5월 12일 평안북도 용천군에서 태어났고, 본명은 장지락(가명 김산)이다.
님 웨일즈의 "아리랑"의 주인공이며, 일제 강점기에 대한독립과 피박받는 민족을 위하여 한 몸 바치신 독립투사이다.
홀홀 단신 일본으로 유학갔다가, 귀국하여 다시 1000리 길을 홀로 걸어서 도착한 중국, 국공합작과 인민의 인민을 위한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공산주의에 투신한 김산은 독립도 공산주의를 위한 허망함을 깨달었을까?
무단점령과 폭악에 대항하여 민족주의자로 독립을 쟁취하는 방법에서 의열단의 아나키스트로 변신하고 공산주의자로 살아온 순수한 사회주의자이고 맑스-레닌주의자로 철저한 사회주의지로 살다가 두번의 투옥과 석방으로 인하여 중국 공산주의자의 오해로 총살되고 자신의 삶을 당적 회복을 위해 연안에서 미국인 여성의 취재수첩에 자신의 기록과 공산주의 활동을 남겼다.
죽음을 예감했음인가 구두로 남긴 기록들은 후에 "아리랑"이라는 공동저서로 출간이 되고 묻혀졌을 뻔 한 조선의 독립과 공산주의 행적과 기록으로 후대에 전하였다. 후에 후손에 의하여 당적복권과 명예회복을 1987년에 들어서야 이루어졌다.
민족진영과 공산주의 진영, 공산주의 진영에서도 소련파, 연안파, 중공파, 국내파...어지럽다
일제강점기나 현재나 분당과 분파, 파벌은 여전하고 대의를 위한다는 소위 지식인들의 오만에 염증을 느끼는 많은 국민들은 김산이 살아오기를 간절히 원하고 지급도 활발히 평가를 하는 이유는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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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 평전] 인터넷 독자 독후감 18
http://blog.yes24.com/soyunja
나 만의 향기를 느끼고 싶을때...^^
2007 / 05
[도서]김산 평전 이원규 저 | 실천문학사 | 2006년 10월
님 웨일즈의 '아리랑의 노래' 이후에 다시 씌여진 독립운동가 장지락의 일대기이다.
사실 꼭 한번 읽어보고 싶었지만 얼마전에야 비로소 읽게 되었다.
무엇이 내 민족과 동포들을 그렇게 억울한 죽음으로 몰고 갔는가를 한번쯤은 생각해 보게 된다.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도 생각하게 된다. 점차 퇴색되어 가는 민족애와 동포애를 위하여 또한 이름없이 죽어간
독립투사들을 다시 한번 기억하면서 읽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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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 평전] 인터넷 블로그 독자 독후감 19.
Dreamw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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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나를 울린 청년, 김산 평전을 읽고
2,000원 | 등록일 : 2007.06.12 PM 04:46 | 저작시기 : 2007.5
저작자정보 pinky782
김산 평전을 읽으며 눈물이 나고 가슴이 먹먹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네요.
예전에 수업시간에 어떤 학우가 질문한 `김산의 독립투쟁이 중국 공산당을 위한 것이 아니었나?`라는 말에 찬반이 나뉘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때의 기억으로 김산 평전을 읽었습니다.
님 웨일즈의 아리랑을 읽다가 두 번 포기하고 이젠 정말 한 인물의 생애에 대해 알아보고 진지하게 고민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김산 평전을 들고 며칠을 읽었습니다.
혹시나 레프토 때문에 책을 읽지 않고 사시는 분들, 혹은 앞의 몇 장 뒷부분 몇 장만 읽고 레프트 사시려는 분들은 늦게나마 꼭 정독하시기 바랍니다. 정말 잊을 수 없는 책이고 잊을 수 없는 사람을 만나게 될 겁니다.
나는 작년에 한국 근현대사를 배우면서 우리 역사에 대한 기록이 반쪽짜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일제 강점 하에서의 우리 역사를 일제에 의한 수탈과 억압의 시기로만 가르치지는 않는지, 독립투쟁에 대한 부분도 민족주의 노선만 강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우리는 근대사에서 우리 민족 내에서의 국망의 책임을 비롯한 친일의 노선을 걸었던 사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하고 민족해방 운동에 대한 교육에서 사회주의 무장투쟁 노선을 걸었던 독립운동가에 대해서도 다루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히 사회주의 무장투쟁을 전개했던 독립 운동가들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그 공로에 대한 인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몽양 여운형 선생의 경우도 다른 독립 운동가들에 비해 늦게나마 그 공로를 인정받았고 지금은 많은 이들에게 ‘아리랑’을 통해 알려져 있지만 그 동안 국내에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김산의 경우도 그러하다. 그러한 관점에서 작년에는 마저 다 읽어보지 못했던 김산의 일대기를 다룬 ‘김산 평전’을 다시 읽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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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 평전] 인터넷 블로그 독자 독후감 20
김산, 그의 생이 옳다
http://blog.aladdin.co.kr/andrew1975/1421516 더불룩숲() 2007-07-18 00:18
"당신은 처음 체포당해 천진으로 이송될 때 감방 벽에 '나는 여기서 다시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고 썼다고 했으며 그게 조선의 대표적인 민요라고 했지요? 친절을 베푼 호송 경관에게 그 노래를 불러주었다고도 했지요?"
지락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건 조선을 대표하는 노래이지요. 조금 전 중국과 일본의 전쟁에 대한 전망을 말했지만 우리 조선은 아리랑고개를 넘어가고 있는 거지요."
"그걸 불러주세요. 가사도 가르쳐주시고요."
헬렌의 푸른 눈이 간청하듯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고즈넉한 음성으로 아리랑을 불렀다.
<김산평전>(이원규, 2006, 실천문학사) 570쪽
톨스토이의 소설을 사랑한 혁명가, 조선의 순결한 혁명가 로베스피에르, 그 김산을 지는 해와 뜨는 해의 사이에 평전을 통해서 만났다. 우리는 많은 영웅들을 만나왔다. 물론 김산처럼 운 좋게 이름과 행적이 알려진 사람도 만났지만 이름없이 져버린 젊은 날 툭하고 져버린 동백꽃 같은 영웅들이 많다. 그들이 흘린 피 위에 지금 내가 숨을 쉬고 살고 있다.
삶은 긍정이어야 한다. 김산이 헬렌에게 불러준 아리랑은 슬프지만 희망을 담은 노래이다. 15살에 시작한 독립운동을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보고 달려온 젊은 혁명가의 순결함을 생각하며 그의 아리랑을 떠올려본다.
그는 자신을 제거한 중국공산당을 원망했을까. 분열된 독립운동 단체 지도자들을 미워했을까. 이 모든 설움을 안고 아리랑을 넘어간 김산을 숙연히 마음으로부터 추모한다. 그의 길이 옳다. 그의 생이 옳다.
2007. 1. 2 이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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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 평전] 인터넷 독자 독후감 21
민족주의자에서 아나키스트, 그리고 이어 공산주의자로 나라의 독립을 위해머나먼 중국땅에서 활동을 하던 우리의 영웅.너무나 아름다운 사람을 알게 되었다.온갖 고난을 겪고도 꿈을 버리지 않고 자존심을 꺾지 않았던 사람.오해와 아집들에 허망하게 희생되어야 했던 사람.조국독립이라는 꿈을 품고 그렇게 그는 우리의 역사에 살아남아 있다.그는 서른넷이라는 젊은 나이에 육신을 잃었지만.그가 죽은지 70년이 지난 지금도 독립에 대한 그의 정열은 우리를 일깨운다.우리의 삶을 옥죄는 모든 부조리로 부터의 독립.그것이 정의가 바로 서고 민중이 주인되는 삶이다.이 시대.휴머니스트들의 부활을 꿈꾼다.
# by MetalnoM | 2008/04/29 21:05 | 책 얘기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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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 평전] 인터넷 독자 독후감 22
2008. 5. '김산 평전' 모임 후기 독서모임-네오클
2008/05/27 10:27
http://blog.naver.com/careerpoint/20051152210
네오클 5월 김산 평전 모임에는 총 12명의 회원들이 참석해 주셨습니다. 이번에는 총 3가지의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먼저, 경험이 인간 본질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졌습니다.
곽규홍 회원께서는 똑같은 경험을 한다고 하여 비슷한 정신을 형성하지는 않을 것이고, 인간 본질은 그 깊이 때문에 쉽게 변화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정구용 회원께서는 경험이라는 것은 생각의 재료로 작용하는 것이고 그것은 인간의 지향에 따라서 재구성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첫 번째 주제에 관한 토론 중 인간 본질을 어떻게 규정하여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잠시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고 이는 자연스럼게 두 번째 세미나 주제인 ‘시대가 인물을 만드는가 아니면 개인적 역량 그 자체가 더 비중있는가’에 관한 논의로 이어졌습니다.
만약 김산이 지금 태어났다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라는 물음에서 시작된 이 주제는 다소 의견이 엇갈리는 형태로 진행되어 흥미를 더했습니다. 개인적 역량 그 자체가 더욱 크게 작용하기에 여러 위인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어 나갔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IMF를 겪고 나서 안정적인 직업군이 선망의 대상으로 떠올랐다는 현상을 들며 반론이 제기되기도 하였습니다. 세 번째 주제인 ‘민족주의는 인간이 살아가기에 필수적인 요소인가’에 대한 토론에서는 개인적으로 민족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거대하게 다가왔고 결코 우리와 불가분의 존재라고 느꼈던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는 순서를 먼저 가졌습니다.
김용주 회원께서는 민족과 나라라는 개념을 구분해서 사용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우리 모두는 민족이란 개념으로부터 떨어져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고, 다만 더 큰 인류애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습니다. 비록 세미나에 참여한 회원수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알찬 토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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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 평전] 인터넷 독자 독후감 23
「김산 평전」을 읽고
2008/05/27 10:32
http://blog.naver.com/careerpoint/20051152307
「김산 평전」을 읽고 2008. 5
영웅은 ‘시대를 잘 타고난 사람’이라고 말이 있다. 이 말을 뒤집어 말하면 ‘시대를 잘 타고나지 못한 사람’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부류에 해당되는 사람으로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장지락)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김산 평전’을 읽으며 조국의 독립을 꿈꾸던 한 청년이 맞는 타국에서의 분사憤死는 내내 안타까운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구한말 일제日帝가 그 발톱을 드러내던 시기인 1905년에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난 장지락은 3.1운동에 참가한 것이 계기가 되어 조국을 떠나 일본을 거쳐 중국에서 조국 독립을 위한 고난의 길을 선택한다. 당시 의협심 큰 많은 젊은이들이 그랬듯이 그는 아나키즘(無政府主義)과 사회주의 사상을 접하게 되고 조국 독립을 위하여 중국 공산당에 입당한다. 도저히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모진 역경에서도 그는 굴하지 않는 강철 같은 의지로 조국 독립을 행한 정열을 불태운다. 비록 그 말로末路가 바람과 같이 허무하게 끝이 나지만...
자신의 안위安危만을 생각했다면 그는 그렇게 험난한 길을 걸을 이유가 없었다. 비록 일제하라고는 해도 그에겐 얼마든지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도 있었고 또한 그럴만한 능력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포기했다. 왜? ‘멸사봉공滅私奉公’, 즉 조국을 위해 자신을 바치기로 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였고, 아무리 험난한 역경에서도 자신의 믿음에 대해 회의懷疑하지 않았다. ‘쉽지 않을 길’의 선택, 그의 용기와 믿음에 저절로 숙연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중국의 공산화 과정은 많은 부분이 우리나라와 매우 흡사했던 것 같다. 양국 공히 당시 민중이 겪는 ‘최악의 삶’에서 가질 수 있었던 ‘희망의 등불’이 공산주의(Communism)일 수 있었다고 본다. 장지락이 공산주의 혁명투사로 변하는 모습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님 웨일즈와의 인터뷰(569쪽)에서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맞아요. 나는 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에서 일할 때까지는 민족주의자였고, 1921년 오성륜 동지를 만나 의열단에 들어갈 무렵부터는 아나키스트였어요. 그리고 두 해 뒤인 1923년에 김성숙 동지를 만난 뒤에는 공산주의자로 살았어요. 스노 부인, 당신은 잘 모르겠지만 조선인 혁명투사들은 대부분 그런 길을 걸었어요. 노선을 위해 내가 있는 게 아니라 조국 독립을 위해 그런 길이 필요했던 거지요.”
이즘에 따른 민족 내부의 반목反目과 대립 역시 중국과 우리나라 공히 끔찍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던 것 같다. 하나로 합쳐도 어려웠던 시기에 두 갈래 아니 그 이상의 분파로 찢어져 서로를 해치는 광경은 너무나 끔찍하게 느껴졌다. 당시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고 보기에는 너무 아픈 장면이라 생각된다. 톨스토이와 그의 작품을 좋아했던 한 청년의 덧없는, 너무나 덧없는 주검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우리는 어떠했던가? 대학 4년 기간 중에 12.12사태와 80년 봄, 그리고 광주의거 - 광주사태라고 불렸으며, 오랜 기간 동안 그 진상을 알 수 없었다 - 등을 거치면서 많은 의식 있는 우리의 친구들이 마르크스-레닌에 심취하여 좌경화左傾化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가? 그리고 또한 얼마나 많은 인사들이 정권에 반대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의문사疑問死를 당하였던가?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나타났던 아픈 모습들이다.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 김산(장지락) 역시 질곡桎梏의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자신을 태우고 사라진 하나의 별똥별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