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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괴의 성모님! 천주교감곡성당’ 에 대한 얘기는 종종 들었고, 가끔 옆으로 지나칠 기회는 있었어도 직접 가 볼 기회가 없던 중, 우연히 가락2동성당 레지오 Pr. 4간부 피정이 잡혀 있어 지난 주일날(2009년 7월 19일) 그 곳을 찾게 되었다.
주일 오전이라 그런지 차가 막히지 않아 생각보다 일찍 성당에 도착하였다.
성당 뒷산길에 가파르게 새겨진 십자가의 길 코스에서 십자가의 길을 마치고 미사를 보게 되었는데, 감곡성당 신자들은 물론이고 전국에서 모여든 순례자들이 함께 어울려 미사를 보게 되니 무엇보다도 의미가 깊었다.
아직은 마룻바닥에 장의자를 놓고 미사를 보는 상태였지만, 외향과 내향은 명동성당과 비슷한 모습이었고, 무언가 시골본당 냄새가 물씬 풍기는 아름다운 성전(聖殿)이었다.
특히 가족들이 함께 오순도순 미사를 보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는데, 부모를 따라온 초등학교 4~5학년쯤 되어보이는 남자아이들이 때론 장난을 치기도 했지만 손을 꼭잡고 목청껏 성가를 따라부르면서 미사를 보는 모습이 내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해 잠시 마음이 뭉쿨해지기도 했다.
나도 그 시절에 시골의 조그만 본당에서 복사를 같이 서던 친구가 있었는데, 한시도 떨어져선 못 살정도로 친하게 지냈던 친구였다.
주일이면 늘 성당에 같이 갔고, 함께 복사를 서고, 미사가 끝나고 나면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탁구도 치고 공도차면서 하루의 절반이상을 성당에서 보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제는 오십을 훌쩍 넘긴 채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살아가던 그 친구와는 얼마전에 사소한 오해로 요즘 소원하게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미안한 마음과 섭섭한 마음이 공존하고 있어 선뜻 다가서질 못하니 內心 바윗덩어리 하나를 가슴에 턱 얹어 놓은듯한 느낌이었는데, 오늘 그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에서 어린시절의 나를 떠올리니, “참으로 세월은 빠르구나. 내가 어릴적 그 친구와 성당에 나란히 앉아 정답게 지내던 일들이 엊그제 같은데, 속절없는 세월은 어느새 흰머리가 가득한 하훼탈같은 세상으로 나를 이끌었구나!!!” 하는 아쉬움에 가슴이 메어질 듯 한 느낌을 받기도 하였다.
초대 본당 임가밀로 신부는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으로 1893년 서품 후 바로 입국하여 그 다음해인 1894년 첫 본당으로 유서 깊은 교우촌,신학당이 있었던 여주 부엉골에 부임하게 된다.
하지만 본당 사목지가 북쪽끝에 위치해 있을 뿐 아니라 산지부락 이어서 본당 이전을 생각 하던중 사목 방문차 여주를 지나 장호원에 이르러 산 밑에 대궐같은 집을 보고 이곳이 본당 사목지로서 가장 적합 하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그 즉시 임가밀로 신부는 "성모님 만일 저 대궐같은 집과 산을 저의 소유로 주신다면 저는 당신의 비천한 종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주보가 매괴 성모님이 되실 것입니다."라고 기도 하였으며, 부엉골로 돌아가서 매괴 성모님께 끊임없이 청하였다.
당시 대궐같은 집은 명성황후의 육촌 오빠인 민응식의 집이었고, 1882년 임오군란때 명성황후가 피신왔던 곳이기도 하다.
1896년 5월 성모성월에 그 모든 집터와 산을 매입, 매괴성월인 10월7일 본당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결국 임가밀로 신부가 처음에 기도한대로 감곡본당을 성모님께 봉헌하여 이곳이 감곡 매괴성모순례지성당이 된 것이다.
성모님 사랑의 선교사 임 가밀로 신부는 51년동안 감곡본당에서 사목생활을 하시다가 1947년 10월 25일 “성모여, 저를 구하소서.” 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이세상을 떠났다.
그는 평소에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였다. 이는 이 민족과 신자들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잘 말해준다.
임 가밀로 신부는 프랑스 타르브교구 빌레아드루 라는 지방에서 태어났다. 그 곳은 루르드에서 20㎞ 떨어진 곳으로 어렸을 때부터 엄마손을 잡고 정기적으로 루르드를 방문하여 루르드의 성모님께 자신을 봉헌하며 성장했다는 것이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두 분의 어머니가 계시다. 한 분은 우리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어머니시고 또 한 분의 어머니는 성모마리아이시다.
요한복음 19장 25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 중에 운명하시면서 어머니의 앞날을 걱정하시고 십자가 아래 서있던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를 맡기시며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그리고 예수님은 어머니이신 마리아께 말씀하셨다.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때부터 그 제자는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라고 요한복음 27절에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시면서 어머니 마리아를 사랑하는 제자에게 주셨으며 동시에 믿는 우리들에게 마리아를 어머니로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구세주이신 예수님의 어머니일 뿐만 아니라 믿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 이시다. 마리아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시기에 어느 누구보다도 우리를 더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어머니기에 우리의 행복을 간절히 원하신다. 어머니이신 마리아는 누구보다도 우리의 일을 걱정하시고 특히 우리 구원을 염려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어머니이신 마리아는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중재자로 누구보다도 우리의 행복과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필요한 은혜를 청하여 얻어주시는 분이시다.
무엇보다 구원에 필요한 은혜를 간절히 얻어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의 사령관이신 성모 마리아 이시다.
그 날,피정에 참여해 주신 모든 형제님들, 즐거웠습니다. 피정도 의미가 있었지만, 비하인드 스토리도 의미가 있던 하루였지요.
'감곡성당의 종탑의 아련하게 보인다'
'잔뜩 흐린 날씨...성당 전경!'
'도착하자마자 성당앞에서 기념사진촬영하는 단원들'
'성당앞에서 기념사진 촬영!'
'매괴의성모순례지성당을 설립하신 임 가밀로 신부님'
'성당 마당 옆에 지어진 건물...아마도 피정동인가보다...식당도 있고'
'십자가의 길' 코스를 살펴보는 단원들
'모자상 앞에서 기도하는 단원들'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
성야외 십자가의 길 기도 시작하는 곳
'성십자가의 길' 기도를 올리면서 가파른 도로를 타고 올라가는 단원들!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는 단원들!' 제4처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는 단원들!' 제9처
야외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는 단원들! 제 12처
성당을 설립하신 임 가밀로 신부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성저 높은 곳에 달리신 예수님을 향해 간구하는...
단아한 성모님의 저 모습!
'성십자가의 길' 기도를 마치고 내려가는 단원들!
'십자가의 길' 기도를 마치고 나서 내려오는 길에 카메라에 걸려든 고추잠자리!
시골성당치고는 꽤나 잘 지어진 건물...성당을 꽉메운 순례자와 본당신자들.
성당의 내부도 명동성당 처럼 꾸며져 있었다. 꽉찬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영성체를 영하고 들어오는 저 두녀석들이 내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하던 아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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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꾸리아 간부 피정인데 행사 사진에 옮겨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런 기록을 남겨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카페지기 직권으로 옮기려니 게시판 성질이 달라 못 옮기는 군요. (일반 게시판과 사진첩의 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