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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史覽 즉 역사를 보는 존재라고 하거나 인간이 사이존재 (zwishen-wesen) 라고 하듯이 자신의 내면에 골몰할수록 자신의 존재의 이유는 실종된다. 키에르케고르식으로 말하자면,그것은 그저 '죽음에 이르는 병'의 일종일 뿐이다.
그 똑똑한 피폐의 공전 속에서 자의식은 發光하거나 發 狂의 징후까지 보이고.마치 굳은 살처럼 파고들어 세상에 대한 냉소와 자기피폐의 기운은 '자기파괴의 미학적 중동"(벤야민)에 이르기까지 반복되게 마련이다.
무릇 근대 이후의 똑똑함을 잃지않으면서도 명랑하고 이드거니 연대하면서 살고자 하는 이들은 이 '내면에의 골몰'을 슬기롭게 극복해내는 지속가능한 삶의 양식,즉 명석하면서도 명랑한 방식을 개발해야 한다.
이것은 이론 (삶의 이유)을 세우지 말고 일.하자 -바로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살 수 있게 한다.(볼테르) 는 탈형이상학적 메타 계몽적 지혜를 넘어,이론들을 뚫어내며 삶의 양식으로 몸을 끄-을-고 일상의 낮은 자리로 내려앉는 일이다. 이러한 뜻에서도 지식은 늘 양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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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주는 여러가지 불안, 공포,갈등을 무리하게 긍정하지 않으려 한다.
프로이트 말처럼 애초에 신의 계획안에 행복이란 애초에 없었을 거란 말을 믿는다.
내가 살아가야하는 존재의 정당에 대해서도 너무 골머리를 싸매진 않으련 한다.
니체의 말처럼 왜 내 삶을 정당화 시켜야 하는가
그저 살아가는 건지 모른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나의 불안, 내게 처한 어려움 어려움 외면하지 않고 힘들더라도 정면으로 똑바로 응시한다.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디오니소스적 긍정이라고 했다.
긍정적으로 살자는 그 달콤함이 주는 그 가식이 너무 싫었는데, 니체의 말은 가슴에 확 와닿는다.
현실 그대로의 한복판에서 마주하는 나의 숨결
그 숨결을 ,보다 잔잔하게
명랑하게 살 수 있는 방식은 혹시 사랑일까
사랑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들
(하나: 다양한 사랑에 관한 감독의 따뜻한 시선들)
브로큰 임브레이스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
출연: 페넬로페 크루즈, 루이스 호마르,호세 루이 고메즈 (스페인 영화.2009)
(스페인 죽기 전에 또 한번 가봐야겠어요. 란사로테도…)
스페인의 섬 란사로테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이 이 영화의 출발점임을 밝혔다.
바다의 모래사장에서 서로를 열정적으로 끌어안은 저 모습을 보면서 참 눈물나게 아름다운 장면이라 생각했다.
존레논의 love is touch가 저렇게 가슴에 와닿게 한편의 그림처럼 마음 속에 콱 박힐 수 있게촬영한 감독의 역량에 새삼 놀란다.
그의 영화 (나쁜 교육) 에서 골대를 마주하고 선 두 소년의 애틋하게 교환되던 그 시선 그 눈빛은
love is feelig (누가 그들의 그 순결한 느낌을 동성간이라고 욕할 수 있을까.
감독 자신이 게이이기 때문에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너무 감사하다 ,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사랑까지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건, 큰 목소리를 내지않고도, 인정할 수 있게 만든 건 순전히 알모도바르 몫이다.
나는 그 저 감독이 말하는 것에 정성들여 귀를 귀울였을 뿐이다.나는 누구라도 말하는 사람의 진정성이나 진실이 담겨져 있다면 귀기울일 각오가 되고 있고 그렇게 편견없이, 어떤 체계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폭넓게 헤엄치고 싶을 뿐이다)
이 영화는 마테오(전 영화감독)의 나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지금은 장님이 된 이 감독의 회상 장면
1994년으로 이야기를 되돌린다( 현재와 과거가 뒤섞이면서 이야기가 복잡하게 전개되면서 흥미를 자아내는 것도 알마도바르 특유의 연출 기법인듯 싶다)
그에게 재벌 회장 어니스토의 정부인 레나가 여배우의 꿈을 안고 나타난다.
마테오는 첫눈에 그녀를 사랑하게 되고, 레나 역시 영화를 찍으면서 그 감독에게 빠진다.
레나는 배우로서 마테오 감독의 '여자들의 가방'이라는 작품을 출연하게 된다.
이 영화의 촬영은 어니스토의 아들이 담당하며 둘 사이를 감시하게 되는 역할이다.
이 영화에서 멈출 수 없는 강렬한 사람에 자신을 맡기는 역할을 섬세하게 표현해낸 페넬로페 크루즈의 연기가 압권이다
극중에서 청순한 오드리 헵번의 모습으로 변장하는 모습도 요염한 소피아 로렌의 모습,,관능적인 마릴린 먼로를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이다.
페넬로페 크루즈는 '비키 크리스티나'에서 처음 봤는데, 완벽한 스칼렛 요한슨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아름다움과 자신감있는 당당함에 반해버렸다.
이 영화 속에 세 사람의 각기 다른 사랑의 집착과 열정,질투심 이런 감정들을 다 이해할 수 있다.
사랑은 거룩하고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있다.
사랑이라는 그 상자 안에 들어있는 그 숱한 감정들
외로움, 설레임, 정열, 분노,의심,집착, 적개심,복수심, 환희,뿌듯함, 충만감,,자기혐오, 실망, 포근함, 자신감, 반가움,뾰로통함, 판단 능력 상실, 감격
아마도 자기 안에 이렇게 유치한 감정이 있었던가를 들여다보는 계기도 되면서, 스스로가 어떻게 행동하고 변할지 몰라서 당황하기도 한다.
그 어쩔 수 없음에 이끌리듯 미끄러지면서 생겨나는 그 욕망들을 사랑이라 정의 할 수 있는 건가
이 세 남녀에게서 그런 마음의 풍경들을 볼 수 있다.
젊고 아름다운 여인을 자신의 재력으로 옆에 두기는 하지만 ,자신에게는 자신이 없으니 그 사랑이 늘 의심이 되고, 집착이 되어버려서 복수를 계획하는 불운한 재벌 어니스토
어쩌면 자신이 가장 잔인해지기도 하며 치욕스러워져서 어디 숨고 싶었던 순간, 추악하고 치졸한 모습도 사랑 속에 있었을지 모른다.
보면서 욕을 집중적으로 하게 되는 인물이지만, 나름 그 인물이 그렇게 변해가는 게 전혀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닌듯 싶다.
알모도바르는 모든 인물의 심리 묘사를 탁월하게 표현해냄으로서, 다양한 사람의 심리를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를 준다.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안전한 사랑이 아닌 고통스런 희열의 관계에 뛰어들음으로써 갖은 위협과 처벌을 감수하면서도 돌진하는 레나의 사랑
모든 충동은 죽음 충동이라는 라캉의 말이 왜 계속 떠올랐을까.
쾌락원칙을 넘어서려는 충동이 주체의 지울 수 없는 욕망의 자리할 때 죽음으로 연관된다.
실질적인 죽음이 아니더라도 그 너머에 '살아있으나 살아있지 않은..' 공간으로..
실제로 마테오나 레나는 둘만의 공간으로 도피하지만 그곳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레나는 그 자리에서 죽고,마테오는 장님이 된다.
생각해내고 싶지않았고 들춰내고 싶지않았던 어두웠던 기억을 마주함으로써 마테오는 구원의 가능성과 마주하게 된다.
영화 속 인물들 다 모두 어쩌면 그 애틋했던 순간을 영원으로 잡고 싶어서 몸부림쳤던 그저 우리 곁에 있는 그런 사람들일지 모른다.
..
보지못하는 눈으로 손으로 만지면서 느끼는 예전의 기억들., 그 영상
우리들은 보통 자신들의 사랑에 대해선 아름다운 이미지와 추억들로 부풀리고, 남들이 한 사랑에 대해선 유치하고 나만큼의 사랑은 아니었다고 은근히 폄하한다.
특히나 도덕적으로 용납이 되지않은 사랑에 대해선 말할 것도 없다.
세상에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다양한 삶의 방법이 있는 것처럼 다양한 사랑의 형태가 존재할런지 모른다,
쉽게 납득이 가지않는다고 해서 흔히 보아온 사랑의 형태가 아니라고 해서, 그 가치들을 무시하거나 열외로 친다거나 넘겨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그들은 하이데거가 말한 신만이 우리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명제에 과감히 또는 힘겹게 도전하는 투쟁가들일지 모르니까.. 그러나 몹시도 나약한 불완전하기만한...
(두울—너무나 인간적인 사랑스런 첼로 연주)
요요마와 함께 세계 첼로계를 양분하는 수퍼스타 미샤 마이스키
우리에겐
올 해는 그의 딸 릴리 마이스키가 피아노를 같이 연주했다.
이번 연주회에서는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 엘레지.. 쇼스타코비치의 첼로 소나타를 연주했다.
구소련에 거주한 미샤 마이스키는 유대인 줄신으로 반체제 운동에 연루되어 2년 여간의 투옥생활과 정신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고 한다.
자신의 개인적인 처절한 슬픔과 한이 음악에도 녹아있는 듯, 열정적이면서도 , 겸손한 그의 성품에 더 많이 놀랐다.
연신 땀을 닦아가면서 연주를 하면서도, 앵콜에 끝까지 화답하여 5곡이상의 앵콜을 해주었다.
인간적인 따뜻함이 느껴져서 어찌할 줄 모르게 고마웠다.
그렇게 까지 열심히 혼신의 힘들 다해 연주하고, 그렇게까지 앵콜에 대해 기뻐하는 마음으로 연주를 하는 사람을 처음 봐서 일까.
예전에 키신이 10곡이상의 앵콜을 해서 놀랐는데, 직접 이렇게 보니 정말 더 뭉클하다.
연주도 물론 기량이 뛰어나야겠지만, 그 이면에 녹아있는 인간애가 사람을 더 울린다.
뒤에 이어진 싸인회에서도 또 한번 놀랐다.
그 연주를 그렇게 비교적 고령(61세)에 열심히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러나 입가에 연신 미소를 띄며 한명 한명에게 정성스럽게 싸인을 해주었다.
나는 일단 처음엔 줄 서서 기다려서 싸인만 상큼하게 받았다.
그리고 다시 줄을 서서 맨 뒤에 갔다.
전에 이무지치 싸인회 때 싸인 받고 사진 동시에 찍고 해서 뒤에 줄 선 사람들의 원성? 을 받아본 적이 있어서, 이번엔 최대한 교양있게,남에게 피해를 덜 주는 한에서 시도한 방법.
맨 뒤에 서서 사진만 찍자고 했다.
그랬더니 통제하는 사람들이 나더러 아까 싸인 받지 않았느냐고 제재를 한다.
아뿔사 , 옷 색깔이 눈에 너무 튀었나보다.
아까는 싸인만 받은거니 사진만 제발 찍게 해달라고 동생이 사정을 해서 겨우 힘들게 사진 한컷.
사진을 찍으면서 연신 함박웃음 날리던 마음씨 좋은 분
내겐 그가 들려준 그 첼로소리 보다 그의 함박웃음과 인간에 대한 애정이 더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보니 날카로운 바이올린 소리에 비해 첼로의 음색이 더 정겹고 인간적인 것도 같다.
원래는 바이올린의 날카롭고도 화려한 떨림을 무척 좋아했다.
첼로 소리가 마음에 앉은 날을 난 정확하게 기억한다.
8년 전 가을비내리던 일요일 오후
잠에서 깨어났을 때들렸던 카잘스의 무반주 첼로에 가슴 먹먹해지면서 울먹여졌던 그 때.
현악기에선 바이올린 소리에만 취해있다가, 그때 이후로 첼로에도 귀 기울였던 것 같다.
음악은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나의 마음에 문득 들어와서 헤집어 놓고 자리 마련한다.
(갖은 쑈를 하며, 창피한 거 무릎쓰고 찍은 사진이 너무 흔들려서 유령처럼 나왔어요. ㅠㅠ)
미샤 마이스키가 들려줬던 보칼리제의 그 애수어린 그 고요한 선율이 늦가을의 그 애절함과 잘 어우러진다.
슬픈 헤어짐의 느낌이 저렇겠지..
아 딸과 연주하는 아름다운 순간 , 그 소중하고도 사랑스런 그 느낌이 얼마나 정겨운지
다비드 오이스트 라흐 부자의 그 연주의 모습도 내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명연으로 기억되는 데 이들 또한 그렇게 기억될 것 같다. 그 천상의 소리보다 어쩌면 난 그저 그 같이 하던 그 공간의 그 애틋함만으로 기억할른지 모르겠다.
(셋—내 자아의 다른 모습-친구 (alter ego))
죽음을 체험했던 사형 체험에서 극적으로 살아난 도스토예프스키가 그걸 체험으로 쓴 글을 보면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사형대에서 기다리면서 죽기 몇 분 전에 들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생각
형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교회가 있었는데 그 금빛 지붕 꼭대기가 밝은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더랍니다.
그 무서우리만큼 집요하게 이 금빛 지붕과 지붕에 반사된 햇빛을 바라보면서 그 광선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답니다….(중략..)—
만일 내가 죽지않는다면, 어떨까, 만일 생명을 되찾게 된다면 어떨까,그것은 얼마나 무한한 것이 될까,그리고 그 무한한 시간이 완전히 내 것이 된다면,그렇게 된다면 나는 1분의 1초를 100년으로 연장시켜 어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1분의 1초를 정확하게 계산해서 한 순간도 헛되이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중략..)—도스토예프스키
때가 되어 떠나게 되는 죽음에 대해 이젠 비교적 자주 생각을 해보는 나로서는,죽음에 대한 생각을 회피하지 않고,억압하지도 않는다.
“인생은 한번, 죽음도 한번,태어남도 한 번,소멸도 한 번 뿐이다”
라는 쉴러의 말처럼 한 번 뿐인 나의 인생을 어떻게 열정적인 시간들로 채워넣을 수 있는지만 생각하고 싶다.
단 1분도 헛되이 쓰고싶지않다. 늘 옥죄어오는 말이다.
회사에서 주어지는 점심 시간도 항상 무언가를 계획하며 내겐 의미있는 시간으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올 가을 가장 나를 설레이게 했던 것은 덕수궁의 모과 나무였다.
매일 가다시피 하면서 덜커덕 어느날 나의 마음 깊숙이 들어와버렸다.
모과 색깔의 변화 과정을 하루하루 세심히 살펴보니 어제 다르고 오늘 달랐다.
늘 그 자리에 멍청하게 서있는 줄 알았는데, 색깔이 미묘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초록에서 연두에서 노랑으로 변해가는 속에서 향기도 짙어지는 것 같았다.
모과 노랗게 변하는 날, 가을도 끝나가는 거겠지..
11월의 어느 날
그날 모과는 노란색인데, 많이 야위었다. 추워보였다
(빨간 산수유 열매도 정말 예뻤어요, 말려서 먹는거라던데 맛이 너무 궁금해서 살짝 먹어봤어요. ㅎㅎ)
세상 모든 것이 마지막에 아름답듯이, 너무나 아름다운 단풍나무를 보면서 그렇게 한참을 서있었다.
단풍이 끝물인듯 싶었다. 너무 아름답다. 눈이 아플정도로, 그래서 넘 시큰하다. 단풍의 서러운 운명을 생각하며 너, 정말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라디오에서는 김 목경의( 부르지마)가 나오고 있었다.
그 때 전화벨이 울렸다.
하루도 빠짐없이 전화하는 친구다.
오늘 아침 하늘봤니.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나더라.. 역시 나의 친구다.
나는 지금 단풍이랑 은행나무가 너무 아름다워서 한참 쳐다보고 있어. 너도 봤으면 좋았을텐데..
오늘 하늘보면서, 헤어진 남자친구가 생각나더라. 그 애랑 여행가면서 바라본 하늘이 너무 예뻐서 찍어 놓은 사진이 싸이에 있는데 아까 그거보는데 넘 슬프더라.
아 헤어진지 거의 1년이 되어가는 남자친구를 아직도 그녀는 곳곳에서 발견하곤 한다.
그와 듣던 노래들 그와 걷던 거리, 그와 같이 봤던 하늘, 그가 좋아하던 음식, 그와 같이 봤던 영화들,
“그리하여 하나의 역전이 내도한다. 그 사람이 나를 제쳐놓고 괴로워하는데.왜 내가 대신 괴로워야 한단 말인가?
그의 불행이 나로부터 그를 멀어지게 하는데,왜 나는 그를 붙잡을 수도, 그와 일치될 수도 없으면서 그의 뒤를 숨가쁘게 쫓아다녀야 한단 말인가..?
그러니 조금 떨어져 있자,
거리감을 쌓는 훈련을 하자.”—사랑의 단상 중에서
헤어져서 어쩔 줄 몰라하던 그녀에게 내가 살며시 적어 준 글이다.
그러나 이게 뭔 위로가 될까..
작년 가을, 그 예쁜 그녀가 내가 실연의 상처를 고백해왔을 때, 나는 정말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에 쌓였었다.
이렇게 예쁜 그녀도 차이는 구나..
난 주위에서 실연했다는 친구를 보지 못했다. 자신이 남자를 찼다는 얘기는 숱하게 들었지만, 실연을 당했다는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살면서 남자한테 보기 좋게 차인 건 나 혼자인듯 했다.
너무도 창피하고 수치스러워서 아무에게도 말안하고 ,혼자 끙끙 앓기만 했다. 일기장에 수십번 그애의 이름을 적어가면서도 , 나는 그와의 사랑을 철저하게 없던 일로 억압하면서 지워나갔다. 그렇게도 눈물을 잘 흘리던 내가 , 그 어마어마한 사건에는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고, 그애를 줄창 미워하며,사랑이 아니었노라고. 부정하면서 , 그 상처를 없애려 한 것이다.
그러나 친구의 실연 이야기를 들으며 같이 아파하는 가운데, 거의 20년이 되어가는 사건을 생각하며 그 가을 내내 울었다.
나는 처음에 친구의 사랑이야기에 슬퍼하는 줄 알았는데,실은 그것보다는 그 옛날 나의 기억이 튀어나온 것이었다.
말하자면 옛날의 이별에 대해 뒤늦게 애도의 과정을 밟는 거였다.
그 과정은 ,하루가 아닌 한달도 아닌, 그 가을 내내 친구와 같이 계속되었다.
이젠 나는 정말 웃을 수 있다.
늘 미운 모습만 떠오르던 그였는데, 그가 늘 불러준 노래, 그의 온화한 미소, 그애의 날렵하고 긴 손가락,그애의 날카로운 콧날과 샤프한 턱선이 생각났다.
난 이제 정말 의연하게 오지 오스본의 굿 바이 투 로맨스를 웃으면서 들을 수 있는데. 친구는 아직도 힘든가보다.
얼마나 더 네가 아파야할까.
내가 온 마음을 다해 이렇게 이 친구에 대해 진심으로 아파하고, 걱정하게 될 줄은 몰랐다.
우리 둘은 정말 치열한 경쟁 관계였었다.
대학교 때 경쟁 관계란 유치하지만 늘 남자의 문제이다.
서로 각기 다른 매력으로 , 사람들을 사로잡으면서도 늘 내겐 그녀가 가진 것이 부러웠다.
옷을 잘 입지 않아도, 화장을 하지않아도 언제나 늘 예쁜 그녀
내 스스로 내 최대의 매력은 순수함과 청순함이라고 여겼는데,그녀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지는 아픔을 경험했다.
그녀는 내가 쓴 글에 대해 한마디 언급을 하지 않았으며, 내가 입은 옷에 대해서도 누구나 돈있으면 옷을 잘 입을 수 있는 거라고 했다.
나도,그녀도 서로에겐 거의 한마디 칭찬을 하지 않았으나.오히려 다른 친구들에 대해선 칭찬을 늘어놓으면서, 서로에 대해 경계를 했다.그녀는 나를 한참 따라다녔으나,얼굴이 좀 아니라는 이유로 내가 무참히 차버린 동기 친구를 , 사귀면서,나를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문제는 나는 전혀 그 동기 친구를 좋아한 적이 없음에도, 괜히 화가 났다.
내가 좋다고 학교 서클 모임에 데리고 가기도 했고 ,(결정적으로 그 동기친구가 차인 이유는 그 서클 모임에 갔기 때문이다. 그곳에 본 그애의 모습이 너무나 초라하게 못생겼다고 느꼈다.)
내게 구구절절 편지를 써대더니 이건 뭐란 말인가.
몇 번 만나다가 말 줄 알았는데, 몇 개월을 사귀면서 내 속을 은근 건드렸다.
아니 몇 개월 그냥 만나다 말았으면, 그저 참아넘길 수 있었는데, 그들은 제대로 사랑을 하고 있었다.
그 후로도 몇 번인가 어떤 남자가 누굴 좋아할까가 우리둘의 주요한 관심사였다.
누군가 자신을 좋아하는 걸로 자신의 자아상을 확인할 수밖에 없던 시절이라 더 날카로웠다.
말하기 미안하지만, 남자들은 좋아하는 여자가 그 친구 아니면 나로 양분되고 있었다.
그렇게 껄그럽고도 기묘한 관계지만 관계의 끈을 놓지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마음을 확 터놓게 된 게 언제였을까..
나는 늘 그 친구의 마음에 대해 확신이 없었기에 갈까 말까 늘 엉거주춤한 상태였다.
물론 속으론 난 그애의 그 미모도 좋았고, 나와 비슷하게 은근히 덜렁대고 산만하면서도 여리고 감성적인 마음을 좋아했다.
싸이를 시작하면서 그앤 나를 새롭게 발견했다고 했다.
어느 순간 내가 , 책에 의해서 사고가 많이 열려지고 타인을 포용하게 된 점을 발견했다고 한다.
자신의 마음을 다 털어놓아도 아무 문제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갑자기 그 애가 내게 너무 많은 것을 털어놓아서 내가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너무 고마웠다.
세상에 누군가가 나를 이토록 신뢰하면서 자신을 열어보인다는 게 , 책임감을 가지고 그 애 옆에 있어줘야 겠다고 생각했다.
시시때때로 걸려오는 전화, 불안할 때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회사에서 바쁠 때도 쉴새없이 걸려오는 그 애의 전화를 한번도 귀찮다 생각한적 없고, 오히려 너무 고마웠다.
그저 아무런 비판도 판단도 하지않고 ,이야기 들어주면서, 서로를 더 알아가고, 더 깊게 보듬어주고 , 치유해주는 길로 나아갔다.
공의존이라 해도 할말은 없다.
물론 그 친구에게 내가 없어서는 안될 존재라는 게 흐뭇하긴 했지만,내 자신의 가치를 전적으로 그것에 의존하지도 않고..
그애에게 독립적인 삶을 방해하지도 않는다.
그저 곁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뿐이다.
최대한 솔직하게
발설해버림으로써 치료하거나 최소한 고통을 경감하는 프로이트의 심리치료가 그대로 행해진다.
하이데거에게서 인간은 세계-안에-있음으로 명명되는데 .이는 인간이란 만들어진 세계에 던져있으면서 동시에 거기서부터 세계를 만들어가는 존재자라는 의미이다… 중략.. 그러나 오히려 반대로 확실한 것은 내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 나는 가장 가까운 듯 하면서 실은 가장 먼 것이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세계 –안에- 있음이라고 규정하면서 인간에게 세계는 전제될 수밖에 없음을 분명히 한다.’인간은 자신을 세계 안에 던져져 있으면서 그 세계 안에서 남들이 사는 대로 살아가기 때문에 오히려 이제 과제는 나는 누구인지 나자신을 찾아내는 것이다.”—(이 땅에서 철학하기 )중에서
하이데거나 싸르트르가 말한 것대로 존재의 우연성이라는 게 인간의 자유라는 점을 허락했다고도 할 수 있으나, 반대로 그래서 고독하기도 하고, 자유도 항상 자신보다 힘있는 누군가에 의해 침해받을 수 있는 자유라는 것도 슬프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는 부분 중에서 가장 커다란 힘을 받는 게 친구아닐까.
그러나 친구라 해서 다 같은 친구는 아닐 것이다
내 존재의 우연성을 정당화 해주는 친구는 실은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친구만이..
자신이 살아가는 정당성에 대한 증거에 대한 회의나 탐구를 니체처럼 간단하게 무시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내겐 어렵다.
계절 탓 일까
이 텅비어있는 공허는
이 황량한 계절이 지나면 언제나 봄은 온다.
그것은 자연의 진리다.
아무리 깊은 아픔이 있다하더라고 어딘가에는 희망이 있다.
그것은 인간의 진리다.
인간의 희망엔 사람이 있다.
극복이 안되는 어려움 뒤에 늘 손잡아주는 친구가 있다.
사람은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모든 존재를 돌보고 보살펴야 하는 존재라는 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넷—사랑의 지름길은 있을까..? 사랑의 묘약-오페라
개인적으로 오페라 중에서 라트라비아타를 가장 좋아한다.
중학교 때 워낙 춘희를 감명 깊게 읽어서 내가 만나는 친구들마다 그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내가 주인공 춘희가 되어서 연기를 하노라면 아이들은 정신없이 쏙 빠져서 이야기를 듣곤 했다.
표정과 그 동작과 대사 전달력이 압권이었다.(살면서 늘 아쉬운 점은 가지않은 길에 대한 미련일 것이다. 연예인이 되고싶었다. 감정이입이 잘 되고 , 말을 재치있게 잘 하고 유머감각이 풍부한 편이라 개그맨이 되고 싶었다.한때는 내가 하는 말에 사람들이 뒤집어지면서 웃는 걸 보는게 넘 즐거웠다,
공연도 여러번 봤었는데 가장 기억나는 곳은 시카고 리릭 오페라에서 봤던 라트라비아타이다.
보니까 그곳엔 오페라 구경 온 사람들이 드레스를 많이 입었었다.
사람들 옷입은스타일을 구경만으로 재미났었다.
무대도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화려했고 노래도 시원하게 잘 불렀다
축배의 노래 장면에서는 가슴이 팍팍 뛰었다.
어느 계절에나 가슴 뛰게 볼 수 있는 라트라비아타
안나레트레브코의 주연으로 dvd로 도 봤는데 정말 멋졌다.
이에 비해 사랑의 서약은 가을에 정말 어울리는 오페라인 듯 싶다.
이번 공연은 배경을 어느 시대로 한정짓지 않고 우주 공간이라고 설정을 해서 시간적인 공간적인 제약을 없애고 관객들에게 상상하게끔 한 거 같다.
외모와 부 총명함등 소위 말하는 모든 조건을 갖춘 아디나, 그 이면에 자존심 강하고 상처 받기 쉬운 내면을 가지고 있으며 겉으로는 사랑에 대해 냉소적인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랑에 대한 갈망을 주인공 네모리노 못지않게 가지고 있다.
"이제 아디나도 날 사랑하는게 분명해 . 저 눈물을 보면 알아. 아디나의 뛰는 가슴을 한 순간이라도 느껴볼 수 있다면,내 한숨을 그 숨결에 섞을 수만 있다면.
그때는 죽어도 좋아. 더는 바랄게 없어"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을 그처럼 유명하게 만든 '남몰래 흐르는 눈물 '의 노랫말이다.
이 아리아는 약장수에게 속아 싸구려 포도주를 사랑의 묘약으로 알고 마신 주인공 네모리노가 마을 처녀들에게 둘러싸야 인기절정의 순간(묘약의 효과가 아니라 세상 떠난 삼촌이 남긴 거액의 유산 덕분)을 누린다음,아디나가 약장수에게서 네모리노의 진실을 바친 직후에 나온다 (아디나의 사랑을 얻으려고 묘약을 살 돈을 구하려고 입대지원서를 썼다는)을 듣고 격의 눈물을 바친 직후에 나온다. 스토리가 클라이맥스를 향해 갈 때 주인공의 벅찬 가슴을 표현한 최고의 아리아인셈이다.--사랑의 묘약 중에서.-
최고 절정의 환희의 순간 차분하고 서글픈 한 바순 소리가 나오면서 노래가 시작된다.
절절하게 애끓는 느낌에 숨이 턱 막힌다.
이 노래는 재 작년 가을 정말 정신없이 들었던 노래이다.
어느 순간 노래가 가슴에 박히더니 가을 내내 내곁을 떠나지 못했다.
사랑의 서약 오페라 보는 내내 이 노래가 어떻게 표현되고 어떤 느낌을 내가 받을지가 궁금했다.
노래는 가을날이라 그럴 수 없이 내마음에 스스로 미끄러져 들어와 헤집어 놓는다.
그 절절함.그 애틋한 애닯음, 그 소박하면서 순박한 청년의 저런 사랑을 누가 외면할 수 있으랴 싶을만큼 처절했다.
마시면 내가 좋아하는 상대가 나를 열렬하게 좋아하게 된다는 약장수가 말하는 가짜 사랑의 묘약
말도 안되는 줄 알면서도, 헛된 희망에 속을 끓이는 그 누군가는 없을까.
사랑에 묘약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진실한 마음 이상 그 무엇이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나 자신 속 어느 한켠 간직되어 있는 순수한 마음 둘춰내는 눈부시게
찬란한 가을이다.
(다섯—내가 알고 있는 사랑에 관한 가장 완벽한 노래 _)
(1982년 오아시스 레코드이더군요. 이 모습을 한참 바라보는데 정말 느낌이 좀 그렇더군요 쏴아~하는 그 기분)
12월 8일이면 존레논이 죽은지 29년 되는 날이란다.
존레논은 아까운 나이에 죽어서 내게 더 애틋함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살아생전에 난 굳이 말하자면 ,헤이 주드의 폴매카트니가 더 좋았다.
난 일찍 죽어서 요절한 천재들을 다 좋아한다.
카라바죠, 쉴레,
마흔이 넘어서 사는 삶은 감성도 순수도 열정도 다 잃어버린, 덤으로 사는 삶일 거란 생각을 젊을 때 늘 했었다.
불꽃처럼 치열하게 살다간 , 그들의 삶
존 레논의 러브가 사무친 것은 16살 때였다.
그때 이 노래에 정신없이 팔려서 이 노래를 들으며 일기를 적어갔던 추억이 눈에 선하다.
구체적인 러브의 대상이 있었던 것도 같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사랑은 과연 뭘까를 정말 혼자 고민 많이 했던 거 같다.
유난히 가늘고 긴 하얀 손가락을 선호했던 나는 (손가락 선호자들은 꽤 많은 가보다. 하이데거도 히틀러의 그 손에 열광했다니..) 그 손가락으로 들려주던 그 수많은 팝송을 들으며, 실은 누군가를 사랑했다기 보단, 그냥 내 안의 정열을 그 손가락 긴 누군가에게 투사시켰던 것 같다.
그 가사들을 꼼꼼하게 보면서 나는 그때 사랑을 혼자 feeling이라고 생각했다.
부모에게서 사랑을 받다가 ,내가 최초로 선택해서 집중한 사랑이 경이롭고도 아렸다.
가벼운 미소 한자락에 웃음짓고, 눈물 흘리고..
사랑에 관한 수많은 시와 노래 중에서 이 노래처럼 나의 마음에 깊숙하게 다가온 것도 없을 것 같다.
나는 이 노래를 올해 거의 매일 들었다.
한강 산책하면서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가슴 한켠이 짜릿하면서 울음이 나올 것 같은 그 기분은
한강의 물빛인지. 불빛인지, 요동치고 발버둥 치는 내 마음의 정체를 나도 잘 모른다.
사랑에 관해서 나의 마음을 가장 많이 흔들어 놓은 것은..
그대가 왔다--
능숙하게,
내 우렁찬 목소리 때문에
내 훤칠 한 키 때문에
그대는 날 바라보았고
내가 단순한 사내아이임을 알아보았다.
그대는 내 심장을 빼앗아 움켜쥐더니
그냥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어린 계집아이가 공을 가지고 놀듯이
...
사랑한다--마야코프스키(그는 마침내 ,자신의 절대적인 사랑의 욕구에 놀라 달아나지 않는 한 여인을 릴리에게서 발견하게 된다.
이 시에서의 그는 정치를 떠나있다
마침내 자기의 심장을 둘 곳을 발견한 것이다.(사랑과 죽음의 시인 마야코프스키 중에서 -- )
세익스피어,소네트 29번
운명에게도 사람에게도 버림받았을 때
나는 홀로버려진 신세를 한탄하며
대답없는 하늘을 향해 헛되이 외쳐보고
내 신세를 돌아보며 운명을 저주한다
.
하지만 문득 그대를 생각하면
나의 마음은
천국의 문턱에서 노래를 부른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많이 부족하고 덜 가진 자신을 경멸하고
심지어 그런 처지의 운명을 저주하다가도
그대를 생각하면 마음이 부자가 된다
그래서 나는 내 신세를 왕과도 바꾸지 않겠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사랑에 빠질 때라고 말했던 세익스피어답게 가슴에 사무치는 시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한 사람으로 축소되고 , 그 사람이 신이 되는 것이라고 위고가 말한 것처럼,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은 내겐 신이고 종교다.
내게 그 사람이 유일한 것처럼, 그 사람도 내게 유일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누군가를 간절하게 원하고, 서로에 대해서 깊게 알아가기를 바라는그 자아 탐구의 과정들이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절정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존 레논은 짧게 살다갔지만, 너무도 행복했을 것이다.
정신적인 교감이 통하던 오노요코와의 사랑
어릴 땐 그들의 사랑이 이해가 되지않았다.
솔직히
나도 남들이 그랬던 것처럼 왜 존레논이 왜 그녀를 택했는지 ..
소위 나도 세속적인 잣대로만 파악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존 레논이 쓴 글
" 사람들 눈에 요코가 어떻게 보이든 나한테는 최고의 여성이다.
비틀스를 시작할 때부터 내 주면에 예쁜 여자들은 얼마든지 널려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에 나와 예술적 온도가 맞는 여자는 없었다.
난 늘 내 음악을 이해하는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꿈을 꿔왔다.
나와 예술적 상스을 공유할 수 있는 여자 말이다.
요코가 바로 그런 여자였다."--세기의 사랑 중에서
모든 면에서 온도가 맞았던 그들의 사랑.
육체나 마음이 오고가는 사랑보다 더 강렬할 수 있는 말에 관한 사랑
얼마나 집요하게 상대를 고집할 수 있는 건지는 숱한 예를 통해 익히 알고 있다.
"정신적인 사랑은 상대가 지닌 지적 능력과 인품이 나로 하여금 정신적 결핍을 느끼게 하며 상대와의 교감을 통해 지적 결핍을 해소하려는 욕구로 작용한다. 대화와 교감을 통해 상대에게서 지적,정신적 미를 얻고 상대와 일체감을 이루면서 인격적 관계를 형성하려는 열정이 바로 정신적 사랑이다." --사랑의 철학 중에서..
싸르트르와 보봐르 ,
하이데거와 한나 아렌트 , 벤야민과 라시스,매창과
누군가를 사랑함에 있어서 가장 실현해야할 과제로 free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둘 사이의 동등한 가치와 인격을 전제로 한 사랑이라면 ,개개인의 특수성 개별성 다 고려해주어야 한다.
자신의 권리와 자유, 재능을 포기해서도 안되고, 상대를 위한 전적인 헌신도 위험하다.
상대방에게 자유로운 선택권과 권리를 지닌 존재임을 인식해야 하고 또 그렇게 대우해줘야 한다.
그러나 누군가를 정말로 사랑하는 그 순간
그 숱한 이론들이 실로 허망해진다.
사랑의 열정에서 비롯된 그 어리석음은, 사소한 것에도 하찮은 것에도 목숨을 걸게 되며 상대에게서 자유로워지기는 쉽지않다.
어리석게 사랑하는 것
사랑하다가 더 어리석어지는 것.. (
이런 바보같은 어리석음에 굴복하며 무너지고 자빠지고 하다가 결국엔 어떤 고요한 순간이 오겠지...
집착과 강박에서 벗어나
그 숱한 외로움과의 싸움에서
자신을 비워내고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
보바르에게 죽음이란,
‘다시는 내게 말을 걸지 않는 것”
싸르트르의 죽음이 슬펐던 이유는
그의 말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사실
"싸르트르와 나 사이에는 늘 말이 있었어요."
어떤 경우에도 포기할 수 없었던 말 , 그 우정
얼마나 아팠을까..
그러나 얼마나 목숨을 걸고싶은 도약의 바램이었을까..
"
Love is real, real is love..
Love is feeling, feeling love..
Love is wanting to be loved..
Love is touch, touch is love..
Love is reaching, reaching love..
Love is asking to be loved..
Love is you You and me..
Love is knowing We can be..
Love is free, free is love..
Love is living, living love..
Love is needing to be loved..
Love is wanting to be loved..
여섯—엇갈린 사랑에 관하여 –화양연화
감독: 왕가위
장만옥, 양조위
(이별 연습 하고 난 뒤 서럽게 울다가 탄 택시 안에서 마주 잡은 손, 오늘 저 안들어갈래요,,,)
얼굴도 한번 못본 카페 내의 친구가 내가 쓴 글에서 내가 화양연화를 못본 것을 안타까이 여겨 디비디를 회사 옆 카페에 맡겨놓았다.
아마도 얼굴을 보면 조금은 서로 부담스러울까봐 그랬던 것 같다.
이렇게 상대에게 조심스럽게 마음을 열어보이면서도 진실로 상대를 배려해주는 태도가 너무 고마웠다.
누군가가 나의 마음 속을 급히 열어보이려 다가오면 움찔 뒤로 물러난다.
마음은 급히 열고 싶다고 해서 열어지는 건 아닐 것이다.
오랜 시간 함께 한 사람들에게만 보여주는 선물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야말로 첫 눈에 , 첫 어떤 그 느낌만으로 필이 확 오는 경우가 간혹 있을 순 있겠지만, 그게 스스로 못미더워 항상 앞으로 가지 말라고 째찍질한다.
누군들 가슴 속에 죽고못사는 뜨거운 감정 가지고 살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것들이 주었던 그 실망감, 허망함을 기억하기에 다시는 인간에 대한 실망으로 상처받지 않으리라, 총체적이고 전면적인 관계보다는 , 살짝 어떤 일정부분에서의 공유에 더 집착했는지 모른다.
더 이상은 내게 오지말 것이며 알려고 하지도 말고, 일정부분 내가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보여주고 , 언제든 헤어질 땐 눈물 많이흘리지 않을..인간관계의 그 한계들을 인정하는 것..
붙잡고 싶다고 해서 내 곁에 있어주는 것도 아니며, 그가 함께 하고자 해도 이미 인연의 배치가 달라지면 어쩔 수 없었던 그런 흐름을 그냥 숙명이라고 받아들인다.
모든 것을 보여주었는데도 오히려 그것이 집착과 질투로 이어지고,때론 치명적인 약점으로 기억되어, 부메랑처럼 나를 위협했던 것들은 늘, 함께 하고자 했던 그 열망들이 얼마나 많은 한계를 가진 것들인지를 알게 해준다.
갈등을 겪을 소지가 적게,일정한 거리에서, 그러나 나를 가끔은 위로해주며, 긴장감없이, 그리고 공통의 좋아하는 목록이 있다면 더 즐거웠다고 도 생각했다.
일정거리를 두려는 마음을 치고들어오는 사람들, 실은 은근 갈망하고 있었을까.
어쨌거나 너무도 감사한 마음으로 화양연화를 보았다.
1962년 홍콩, 상하이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주로 사는 아파트를 배경으로 새로 이사오게 된 두 가구를 배경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아비정전의 그 쓸쓸하고도 음울하면서도 한장면한장면 강하게 인상되는 점이 상당히 비슷한 느낌을주는 영화다. 정말 오랜만에 영화를 보면서 펑펑 소리내어 실컷 울었다.
마음을 계속 두드리는 음악, 간절하면서도 절제된 눈빛,대사, 장만옥의 가냘픈 몸매에 화려한 딱붙는 의상, 아비정전으로 해피투게더로 중경삼림에서 보았던 양조위의 그윽하면서도 정신없이 빨려들어갈 것 같은 그 애절한 눈동자,담배를 쥔 그의 손가락에서 묻어나던 그 진한 외로움, 속절없던 그 담배 연기,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전해져오는 상대의 향기에 빠져드는 그 미세하고도 숨막히는 떨림을 그토록 아름다운 화면으로 담아낼 수 있을까. 정신이 얼얼하다.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잠이 쉽사리 오지 않았다.
그냥 멍하니 아무 생각도 없이 그들의 그 애처로운 곁에 두지 못해서 안타까운 눈빛만이 떠올랐다.
이별 연습 장면이 자꾸 생각났다.
비가 오던 날 미리 헤어지는 연습해보기
언제가는 다가 올 이별을 생각하며 흐느끼다가 양조위 품에 안겨 그간에 맘 속에 담긴 모든 서러움을 털어내려듯 애처럽게 울던 그녈 보면서 나도 그녀가 된듯 한참을 울었다.
뼈밖에 안남은 가녀린 장만옥이 입은 그 화사한 분홍색 보라색 꽃무늬도 얼마나 따라서 울던지..
가느다랗게 떨리는 그녀의 손이 너무 애잔했다.
헤어지는 생각만으로 저렇게 서로운데, 진짜의 이별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견딘 게 아니라 그냥 어쩔 수 없는 삶이었겠지..
좁다란 골목길에서 자꾸 부딪히는 남녀, 그 밀착된 공간만큼 서로의 감성을 서로의 느낌을 그렇게 진하게 아늑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있을까.
아름다운 콘텐츠의 집합체란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뱃속에서 느끼던 평화로움이 아니었을까 싶다.
화양연화
인생에서 가장 가장 아름다운 한때
꽃처럼 아름다운 시절.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한때는 그렇게 누군가를 간절히 사랑하고, 그리워하면서 가슴 벅찼던, 늘 함께 있고싶은 그 뜨거웠던 열망으로 인해 삶이 얼마나 빛나보이던지, 그때가 화양연화이리라..
옆 집에 살면서 장만옥의 남편과 양조위의 부인이 서로 불륜의 상대임을 감지했을 때, 그들의 상처난 구멍을 메워줄 수 있고, 마지막 존재의 확인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서로였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늘 불안했다
실패의 가능성 때문에 늘 서성였다.
불안과 고뇌가 사랑을 이끌어가는 중심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정말 불안했던 것은 서로에게 배우자가 있다는 사실보다, 영원히 함께 하는 절절한 사랑이라는 자체에 대한 회의도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서로 다른 길을 가면서, 서로를 그리워할 여지를 주는 게 사랑을 더 혼자서 오롯이 지켜낼 수 있지는 않았을까.
내 사랑을 영원히 지키고 싶은 마음.
일본의 연절사에 가서 거짓 이별 의식을 치르고 난 다음에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사귐을 가지는 젊은 연인들
캄보디아에서 봉인하는 양조위의 의식..
'산에 가서 나무 하나 찾아
거기 구멍을 파고는 자기의 마음을 속삭이곤
진흙으로 봉한다.
비밀을 영원히 가슴에 묻고
그와의 만난메 그녀는 수줍어 고개를 숙였고
그의 소심함에 그녀는 떠나가버렸다.
--화양연화 중--
캄보디아에서 나는 왜 덥다고 짜증만 내며 아무 것도 안했을까.
다시 캄보디아게 가게 된다면, 나도 양조위처럼 그렇게 가슴에 묵직하게 혼자서 지켜낼 것을 봉인하고 싶다.
그것이 무엇일까.
그는 지나간 것들을 기억한다
먼지 낀 창 틈 사이로 과거을 볼 수 있겠지만
모든 것이 희미하기만 하다.
희미해져서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고 싶겠지..
벌써 나 이 영화 몇 번 봤을까.
몇 번을 보면 이 애닯음이 , 이 서러움이 달래질까.
사랑하는 사람과 나의 거리 , 아득하지만, 재로 잴 수는 없지만,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해와 달, 별까지의
거리 말인가
어쩌겠나 그냥 그 아득하면 되라라
사랑하는 사람과
나의 거리도
자로 재지 못할 바엔
이 또한 아득하면 되리라
그 아득한 그리움만으로도 한평생 살아지는지도 모르겠다.
가슴 하나 텅 빈듯, 채워진듯.. 그 아련함으로..
그래도 여전히 마법 같은 사랑의 능력을 믿으며~
첫댓글 살아있는 한 感 의 변화를 계속 겪는 것이고,그리스어의 pathos가 겪음이라고 할 수 있네요. 살아있기에 늘 무언가를 겪는 거겠지요.
저번 주에 크게 겪어냈어요. 1년넘게 글로만 소통했던 분들을 만났고,어젠 건스 앤 로지스의 공연을 보았습니다.
글로만 소통한 분들을 만난다는 건 도망가고 싶을만큼 두려움도 크고, 숨고싶었지만, 막상 만나고 돌아오니 잘 해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신을 솔직하게 들여다보고 내보이고 서로를 점검해주고 비춰봐줄 수 있는 관계들..어떤 존재이든 타자와 관계를 맺지않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지요
기왕이면, 내 영혼을 채우고 있는 기본 개념들이 더욱 더 크고 넓게 변양될 수 있는 그런 만남들이 이어졌음 좋겠어요. 저 또한 그렇게 작은 물결이라도 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존재였음 싶구요. 내 글을 얼핏보고 그저 잘난척하는 글로만 파악할 수도 있지만, 그 내면에 녹아있는 나자신의 치열한 본심을 캐치해주는 진심어린 친구들, 언제인가 얼핏 호퍼를 좋아한다고 아주 잠깐 내뱉었는데, 그걸 기억했다가 호퍼책을 선물해주는 친구, 너무 선하게 사는 페르소나가 위태해보였는데, 그로인해 자신도 더 남을 감싸안게 되었다는 친구
포도알 같은 눈동자 시큰한 콧등을 가진 표정 풍부한 페르소나라고 말해주는 친구.. 아 올겨울은 얼마나 더 뜨거워질까요. 이만. ㅎㅎ 일욜 건스앤로지스 공연 두시간반동안 공연이 늦어져도 전혀 화나지 않음은..내 젊은 날의 정신적 지주를 만난다는 그 설레임과 떨림으로.. 아 많이 늙긴했어요. 그 꽃미남에 멋진음성이 많이 퇴색하긴 했어도 키보드 직접 연주하며 노벰버레인 불러줄 땐 천상이 따로 없지 않나..
ㅎㅎ 정말 많이 울었어요. ㅠㅠ 아 참 그 공연에 분명 배철수 아저씨 있을거라고 저 흰머리 아저씨 눈부라리며 열심히 찾았는데.. 그를 발견하곤 사진 같이 찍었슴다.. 멋있어요. ㅎㅎ 그 옷차림도, 그 분위기도 그 뱃살없는 날렵한 몸도. ㅎㅎ 송골매시절 빗물부르던 배철수 아저씨 목소리 은근 멋집니다. ㅎㅎ 저도 배철수,이문세,감창완,노회찬,손석희,힌비야처럼 그 감성과 그 지적인 느낌으로 나이들 수 있다면..
ㅎ감창완,힌비야처럼 나이들면 없는 재주도 생길까요?닷새만에 포스팅 하셨는데,제가 기다리는 일에 소질 없다는 거 새삼 확인했습니다.ㅡㅡ//노래 참 좋습니다.오늘로서 4/4분기 마무리하고 살짝 비칠거리는 마음,머물다 갑니다.
나이 한 살 더 먹으면 없던 재주 정말 생겼으면 좋겠네요. ㅎㅎ 저는 그나마 있던 재주도 더 퇴색하는 것 같던데요. ㅎㅎ 제가 글은 진즉에 써놓고 빨리 못올렸어요. 기다리셨다면 ,소문만 내고 죄송해요. ㅎㅎ 노래 좋지요. 언제 들어두요. 아.. 정말 올해도 다 가네요.아쉬워요. 날씨 많이 춥던데 잘 지내시지요..? 연꽃바람님 . 제가 쓴 글에 대해 댓글 한번도 빠짐없이 써주신..개근상 수여해야 할 것 같아요. 고마운 마음 어떻게 전해드릴까요..? ㅎㅎ 단연 1등 성실 개근상인데요. ㅎㅎ 추운 날씨에 늘 건강하시구여.~얼마안남은 올해도 해피하게 보낼까요. 우리 ~
페르님 화양연화에 대해서 말해볼께요..캄보디아 성곽에 들어있는 쪽지가 있을까 그 곳에서 기웃거렸지요..웃으면서 나의 화양연화를 봉인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제 시절을 정리하고 이젠 꽃이 아닌 열매를 맺어야겠다라고 삶을 다지며 살고 있지요..페르님 지금 어쩜 페르님에게 화양연화가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제가 초록이 키우는 것을 특기인데 지금 이 겨울을 잘 벼틴 꽃이 가장 탐스러운 꽃이 핍니다. 수국도 다른 동백꽃도요..
다른 꽃들도요.그래서 전 20 30대를 화양연화라고 말하지 않는답니다..니증에 제가 키워낸 동백과 삽목한 수국을 같이 볼 수 있는 시간이 있겠지요..건강하세요..오늘은 날이 굉장 춥네요.
캄보디아 가셔서 그렇게 멋진 의식을 치루셨군요. 아 저도 그랬어야 했는데 덥다고 지저분하다고 툴툴만 대고 왔으니.. 이 영활 봤으면 캄보디아를 정말 가슴에 품고왔을텐데요. ㅎㅎ 아..꽃이 아닌 열매를 기다리는 마음.. 봄왈츠님에게 성숙한 느낌이 전해져요. 전 언제 그렇게 겸허하게 인생을 관조할까요. 전 꽃에 집착하다가 이렇게 다치는데요. ㅎㅎ 제게 화양연화라고 말씀해주셔서 넘 감사드려요. 말씀만으로 고마운데.실은 제 화양연화 시절은 언제라고 정확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겨울을 잘 버틴 꽃..근데 그 추운 겨울 버텨내기 쉽지않은데요. 아…~겨울 안버텨내고도 이쁜 꽃은 없나요..? ㅎㅎ
가끔 페르님의 글을 보면서 미안함은 좀 더 페르님을 능가할 댓글을 쓰지 못하는 저의 부족함을요..그리고 백석시집 저 기대해요..저는 백석의 광팬이라는 것을 살짝 정보 흘립니다 ㅋㅋ..그리고 글이 많이 편해졌어요..그것은 세월이 감이 아니라 조금씩 타인의 마음까지 젖어들어가는 글맵시의 성숙이라고 크게 인정해드리고 싶습니다,,타인에 맞출 필욘 없으나 그러나 타인으로 인한 나의 존재라는 면에서 말씀드립니다
에고.. 왜그러셔요… ㅎㅎ 정말 많이 겸솜하세요. ㅎㅎ. 봄왈츠님 댓글 저 너무 행복해요. 그 진실한 느낌과 정성이 다 전해지니까요. 백석의 광팬.. ㅎㅎ 아 예.. 잘 기억하고 있을게요. ㅎㅎ 글이 살짝 넘 귀여우셔서 웃다가 갑니다. /글이 많이 편안해졌군요. ㅎㅎ 몰랐어요. 타인의 맘까지 젖어들어가는..와 좋아요. 정말 제가 이젠 그렇게 성숙해지는건가요. ㅎㅎ 타인에 맞출 필요는 없다에서 뜨끔이에요. 전 안그려려고 하는데 아직도 가끔 그러는 것 같아서.. 그게 제 천성이 좀 순해서 그런건지 사랑받으려고제자신 죽이는 건지 구분이 안가요. ㅎㅎ 정성스런 댓글 짱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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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님 작은 아버지 이야기 넘 짠해요. 아 정말.. 글을 넘 서정적으로 정감있게 써서 저 그 작은 아주머니 어디있나 찾아주고 싶어져요. 작은아주머니 나름의 사연이 있었겠지요. 그게 몰까요. 남편 놔두고 나갈 수밖에 없던 그 사연.. 그 사연도 만만치 않은 사연이겠지요. 그나마 딸내미가 영국가서 잘 살고 있으니 다행이다 싶어요. 엄마한테 미처 다 받지 못한 사람,누구엔겐가 다 받고있길 바라구요. 사소님이 작은아버지 닮아서 예쁜가봐요. ㅎㅎ/ 노래 넘 절절하지요. 진짜루요..~!사소님 팝송 좋아하셨지요..? 누구 좋아하셨어요..? 갑자기 궁금.. 궁금..
작은 아빠 반 만 따라갔으면...^^ 말이라두 이쁜 단어 감사해요..레너드 코헨.죠르쥬 무스타키.리차드 막스.존레논.. 사실..이분들 밖에 몰러요.언니 덕분에 여기 올 때마다 이 노래 들을 수있네요. ^^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걸까?(Thank you)............. 글쓰는 일이 너무 어려운데, 페르님은 어찌 이리 글을 길~게 잘 쓰는걸까요? 비법 좀 알켜주세요... 나도 댓글 길~게 쓰고시퍼요... 나 오늘 종일 한바닥 글 쓰다가 지쳤다요...
물고기자리님 말씀에 동감 백배 ㅋㅋ 나도 생유~
물고기자리님 몬 암호인가 했습니다. ㅎㅎ 열세살 소녀처럼 좋아하는 순수한 모습에 제가 더 많이 행복했습니다. 물고기자리님 표정이 참 풍부하신 거 아시나요..? 표정이 아주 섬세해요.그래서 예술가이지 싶어요. 얼굴 모습에 생각이 다 읽혀서 넘 좋아요. 전.~! 글을 길게 쓰는 건. ㅎㅎ 워낙 수다쟁이라서 그런 거 아닐까요. 이렇게라도 털어놓지 못하면 한이 될까.. 싶어서.. 그냥 두서없이 주절거리는 거 잖아요. ㅎㅎ 물고기자리님..많은 분들의 글에 매일 정성스럽게 댓글 쓰시느라 얼마나 힘드실까.. 그 정성스럼 마음씀에 놀라요. 가끔~ 추운 겨울 그 예쁜 두터운 부츠랑 행복하게 보내세요. 그 부츠 넘넘 탐나요. 언니가 사준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