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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철도고 기계과 8회 사랑방 원문보기 글쓴이: 정환창
전 반 전
첫째날
이른 아침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열린창문에 토광앞 담비집이 지척이라
삼복 넘기고서 새벽잠 잊어버린 담비(우리집 개 이름)가 밥그릇 긁는 소리려니 했다.
다시 몽중으로 돌아서려 할 즈음
또다시 그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아내와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서생원일 것이다.'
아내는 벽에 스위치를 올리고 난 마루로 나와 후레쉬를 찾으며 같이 같은 생각을 했다.
티뷔하단의 디지털이 4:56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서랍장 구석, 문갑 뒤편에서 옷걸이 밑에 까지 샅샅이 뒤졌건만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았다.
(담비짓인가 보다)
분명코 방안에서 들은 소리이건만 새벽잠이 아까워 그리 생각하기로 하고 도로 누웠다.
어디서 쥐새끼 모냥 잔뜩 움크리고 있을지도 모를 그 서생원을 원망하면서
그러나 아내는 못미더웠던지 미리 준비해 놓았던 끈끈이를 뜯었다.
그간의 경험으로, 방문 모서리로 나갈것이라 짐작하고 그곳에 깔아놓았다.
오래지 않아서
방문을 통해 무언가 나가는 아주 미세한 소리를 듣고 또다시 기가 막힐 정도의 같은 타이밍에 아내와 나는 벌떡 일어났다.
가장자리 끈끈이가 발라지지 않은 부분을 교묘히 통과하면서
약올리 듯 끈끈이 표면에 살짝 흔적만 남겨놓고 사라져 버린것이다.
아! 쥐새끼 같은 서생원 같으니라구...
잠은 아주 멀리 달아났고 무단히 잠을 깨운 그 서생원을 원망 할 뿐이었다.
같은날
낮엔 바쁜 일과로 그 서생원에 대하여 까맣게 잊고 있었다.
퇴근 30분전 같이 쥐잡이 하던 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회사에서 단합대회가 있으니 옆으로 새지말고 “얼릉” 오란다.
차를 자기가 써야 되겠다는 것이다.
어쩔수 없이 포기해야 할 시간을 도착시간으로 대야만 하는 사유를 즉석에서 기막히게 대었다.
부러 사무실에서 개겨대며 시간맞춰 나오다가 문득 깨달았다.
그렇지 !
엄니는 어제 동생내외 따라 부천 형네로 가셨다.
이 귀하고 귀한 시간 집으로 곧장 오기엔 너무 억울했으리라!
무슨 작당을 했는지 몰라도 장터 어디선가 개갈나게 음식상 받아놓고 수다떨고 있을 녀인
그대 앞에 놓인 그 귀한 시간 오뉴월 엿가락처럼 줄줄이 늘어지길 앙망하나이다.
.
.
.
방학이후 대문밖을 한번도 나가본 적이 없는 안방귀신 작은아들만 집에 있었다.
차려놓은 저녁상, 보온 밥솥에 밥을 꺼내다 뜨거워 하마터면 놓칠 뻔 하였다.
아들놈은 생각없이 뚝딱 한 그릇 해치우고
난 까닭모를 서글픔으로 물을 말아 새우젓 하구 간신히 넘겼다.
설거지를 하면서
언젠가 들었던 평균연령, 남자보다 여자가 8년을 더 산다했던 라디오 뉴스..
그래
그것만은 이 시대 나같은 남정네들에 대한 아주 특별한 신의 배려다.
늙으막에 이런 밥상이나마 채려 줄 할마씨 앞세우문 하룬들 어찌 살꼬?
어저께 마트에서 산 코브라라고 불리는 수도꼭지
이리로 당기면 이리로 와서 뿌려대고 저리 밀어대면 군말없이 저리로 가서 뿌려대는
그 자바라 수도관, 코브라와 같이 그렇게 살 일이다 하였다.
새벽에 놓친 그 서생원처럼 세상의 끈끈이 피해 가면서 살아가는 재주없는 요령부득인 바에는..............
날짜로는 둘째날
자정이 넘어서였으니까 오늘 새벽이었다.
큰아들을 학교서 데리고 집으로 왔다
큰아들은 차에서 내리면 혼자 달랑 먼저 들어가고 애비는 책가방 들고 대문닫고 뒤를 따른다.
제엄마는 자다가도 꼭 방문열구 나와 큰아들한테 눈도장을 찍는다.
삼종지도-
노후를 대비하는 아내의 눈물겨운 노력에 나는 늘 감탄한다.
이 큰아들이 현관문 열구서 마루에 올라서면서 대뜸 "쥐닷!" 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 쥐가 안방으로 들어갔는지 목욕탕으로 들어갔는지 그건 보지 못했다고 한다.
안방 스위치를 올리자 늘 거기에 있어야 할 안방귀신 작은아들은 오늘따라 웃방에서 자고 있었다.
바로 그때
나는 보았다.
안방에서 튀어나와 태평양 건너듯이 마루를 가로질러 화분대 밑으로 쏜살같이 사라지는 모습에
머리끝이 쭈빗하니 생각보다 엄청크고 살이 통통쪘다.
분연히 끈끈이를 마루끝, 화분대 모서리에 석장을 내리 깔았다.
아들들 불러세워 놓고 방문을 닫고 자라 이르고 누웠다.
사방은 쥐죽은 듯 고요하고 잠도 쉬 오지 않는다.
생각한다.
토광에 아직 묵은벼 예닐곱 짝 그대로 쌓여있거늘 어이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나으” 영역을 무단침입하여 위험을 자초하는 그 심사를 알 수가 없다.
뒤척이다 설잠 잔 아침
또 끈끈이에 살짝 흔적만 남기고 마루에서 놀다간 서서방
어떻게 요절을 내야할지 그것만 생각하면서 출근했다.
같은날 오후
현도 지나 부강 못미쳐 퇴근길에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마루끝 화분대를 몽땅 들어 내었다고 한다.
마루를 흙으로 메우기전 끄트머리 밑을 신발장 겸용으로 사용할 요량으로 남겨놓은 그 신발장을 들춰보니 놓여있던 재떨이에 네 마리 그리고 바닥에 두 마리 도합 여섯 마리 새끼를 낳아 놓았더라고 했다.
재떨이 채 들어내고 다시 남은 두 마리를 마저 들어내기 위해 집게를 가질러 간 사이 어미가 지 새끼들 물고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런 얘기 집에가서 해도 될걸 굳이 전화로 까지야 할거 있나?' 하고 물으니 '환장하겄네!' 하면서 끊는다.
(서생원이 아니라 서여사였구나! 그것도 자식이 여섯이나 딸린....)
집에 도착하여 똑같은 얘기 입에 거품물고 하는거 다시 재방송 들으면서 새벽잠 앗아간대 대한 복수심 보다는 어쨌거나 딴에 좋은 자리 골라 새끼 낳고 위급한 상황에서 목숨걸구 새끼들을 안전한 곳으로 신속히 대피시킨 그 모정과 지혜에 다만 감탄할 뿐이었다.
또한 그 복수심 보다는 아내의 '서여사 죽이기'가 이대로 진행될 경우 세상모르는 그 새끼들의 앞날을 생각하니 맘이 그리 편치많은 않았다.
그러나 아내의 의지는 결연하였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학교에서 큰아이 데리고 들어오니 안방에서 작은아들하구 티뷔보던 아내는 마루끝까지 쫒아 나오면서 마루 한 구석 책장 밑에서 그 서여사가 튀어나와 마루 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며 씩씩거렸다.
끈끈이를 다시 꺼내 이번엔 마루끝 문을 30센티 정도만 남긴채로 닫고 끈끈이를 그 길목에 놓는다는 것이다.
그 좁은 문을 통하지 않고서는 들어올 수 없는 외길을 만들어 놓고 거기서 잡겠다는 계산이었다.
저러다가 그 서여사 끈끈이에 붙으면 어딘가 감추워진 채 눈도 뜨지 못한 그 새끼들의 장래는 어찌 하릿고?
어미 뱃속에서 나와 아직 세상구경 한번 못한 채 다시금 왔던곳으로 돌아가야 하는 새끼들의 운명이 너무 기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튼 그렇게 밤을 보내면서 잡히고 말고는 어차피 서여사 팔자려니 했다.
셋째날 아침
아내의 탄식에 눈을 떴다.
또다시 끈끈이 한 귀퉁이 흔적만 남긴 채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면서 혀를 찼다.
한편으로 다행이다 싶으면서 한편으로 기가 차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침 출근전 아내는 가장 큰 끈끈이를 아예 새끼가 있었다는 마루밑 재떨이 놓였던 자리에 놓는 것을 보고 출근하였다.
우리 족보 앞 부분에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 손목과 젖가슴을 겁탈당한 조상 할머니가 왜놈의 손에 더럽혀진 것을 용납할 수 없다하여 그곳을 스스로 잘라내고 죽었다 하는 내용이 나오고 이어서 그 와중에 살아남은 갓난아이를 하인이 없고 도망가던 중 왜군에게 쫒기다 풀숲에 숨었는데 이 아이가 자꾸 울더라 했다.
속이 탄 하인이 아이에게 이르기를 '아가야 아가야 네가 정씨 가문을 이을랴면 울음을 그치고 이대로 대를 끊을랴면 계속 울어라" 하니 아이가 울음을 뚝 그쳤다고 적혀있다.
서여사! 그대
새끼들 일일이 고이 물어 어디다 감추었으며 그때의 절박함이 어찌 족보에 나오는 그 하인보다 덜함이 있으랴만
먹을거리 찾아 곳곳에 끈끈이 피해가며 새끼위해 목숨걸고 있을
혹은 지금 어디선가 빈젖 물리고 우는 새끼 달래고 있을 ......
그대 앞날에 부디 신의 가호가 있을진져!!
후 반 전
"찍찍 찌~익"
잠결에 들었다.
생명을 가진 존재가 그 생명을 위협받았을 때 튀어나오는 단발의 비명이 아니라 헤어나기 어려운 현실적 절망의 늪에서 포기할 수 없다는 마지막 몸부림의 그 긴 비명은 계속되었고 두런 거리는 아내의 목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가슴을 후비는 듯한 절규는 생각보다 길게 이어졌지만 머리가 뻐개질 것 같은 두통과 속쓰림, 무기력감으로 나는 또 다시 잠에 빠져들면서 그 소리도 함께 사그라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불을 헤집고 머리를 내 밀었을 때 식은땀으로 속옷이 잔뜩 젖어있었다.
안방 미닫이 열리는 소리에 작은아이려니 생각하고 나지막하게 불렀다.
용케도 들었던지 방문이 열리고 고개를 삐끔 내민다.
"물 좀 다오"
그리고 또 눈이 감겼다.
"아까 무슨 소리냐?"
살그머니 머리맡에 물컵을 놓고 나가려던 작은아이에게 물었다.
"부엌에서 쥐 잡았어"
.........
그랬구나....
깨스렌지 호스를 타고 밖으로 연결된 그 통로를 막은 이후 서여사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평온한 나날이 계속되었고 아내도 나도 서여사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몇일 전 싱크대 위에 놓아두었던 삶은 고구마에 이빨자국을 남김으로 해서 아직도 부엌 어느 구석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내는 목욕탕 하수도 구멍을 통해 침입했을거라 여겼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집안에서 밖으로 통하는 열린 길은 거기밖에 없었으니까
아내의 지시에 의하여 나는 하수도 맨홀위에 기왓장 올려놓고 흙으로 덮었다.
이제는 들어오는 통로도 나가는 통로도 모두 차단되었다.
이튿날
또다시 끈끈이가 놓여졌다.
이동 통로가 모서리를 좋아한다는 상식으로 냉장고가 놓여진 구석과 전기밥솥을 놓아두는 받침대 밑에 놓여졌다.
그렇게 이틀이 가고 사흘이 지나도 서여사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그날은 오랫만에 지차계가 열리는 날이었다.
본인이 지차이거나 아버지가 지차이거나 할아버지가 지차인 모든 사람들은 자격이 주어진다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딴은 장남인 육촌 동생까지 포함시키기 위해 붙인 조항일 뿐 큰 의미는 없었다.
벌초하던 끝에 우리가 살면 몇 백년을 산다고 가끔 만나서 저녁이나 같이 먹자하여 결성된 이 조직은 사촌 동생 셋과 고종사촌 셋 육촌 셋 이렇게 아홉에다 내가 끼었고 부부동반으로 두 달에 한번씩 장소 바꾸어 가며 저녁먹는 그런 모임에 난 댓방이었다.
오랫동안 술에 굶주렸고 토요일이고 보니 애초부터 마시기로 작정을 하고 “존경하는 제수씨 여러분! 오늘 이 댓방이 꼭지가 돌더라도 양해를 해 주십사....” 미리 선포를 하고 시작을 하였으니 결석자 빼고 남자들만 일곱이라 '위하여' 한번에 쏘주 한병이 비워지는 판이었다.
결국 상위에 빈병만 빼곡이 세워놓고서야 끝이 났고 곧바로 이층에 있는 노래방으로 옮겨갔다.
여자들 신나서 마이크 서로 잡으려 다툴 즈음 남자들은 슬그머니 나와서 카운터 앞에서 캔 맥주로 입가심 하는 것도 따지고보면 정해진 순서에 의한 것이다.
이튿날이면 속아퍼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시원한 캔맥주 비우고 있을 때
당직인 작은아이한테서 손전화가 왔다.
동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할머니는 거기 가셨다고 한다.
엄니 동갑네 친구분으로 얼마전 심장이 좋지 않다는 소릴 들었지만 갑작스런 전갈에 흥이 깨지고 아내와 함께 그 집에 들어섰을 때 마당엔 화톳불이 피워져 있었다.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한잔 두잔 마시기 시작하면서 기억의 끝자락을 잃어버린 채 등허리 시려워 집으로 돌아온 것이 새벽 네시였다.
..............
속이 쓰려오는 가운데 눈이 뜨인것은 아침 열시경
마당에서 엄니와 아내의 다투는 소리에 잠이 깼다.
김장은 계획된 일이었고 공교롭게 예기치 못한 초상이 나고 보니 아침 일찍 서두른 모양이다. 해마다 김장 담글때면 엄니와 의견 충돌로 인해 스트레스 받는 아내였다.
부시시 일어나 현관문 열고 마당을 향해
"나 살아있어"
..................
한마디 했건만 들은 체도 안한다.
"나 살아있다구"
"그래서요"
"뭣 좀 먹여야 되지 않겄나..."
"여기 아직 아침 먹은 사람 없어요, 이거 눈에 안뵈요?"
독이 잔뜩 오른 목소리다.
아프면 서러움이 더 짙게 배어나오는 법
"김장이고 지랄이고 사람이 살고봐야 먹던지 말던지 할거 아닌가?
나 죽고 나서 잔뜩 담아 놓은 김장 누구 퍼멕일라 그러나?"
"에고 한심한 양반아"
하더니 분을 삭이지 못하고 이내 눈물까지 글썽인다.
밥얻어 먹기는 글렀다는 생각에 냉장고 열어 물병 채로 벌컥벌컥 들이키고 또다시 자리에 누웠다.
얼만가를 지나서 방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사람이 언제 철이 들겠냐는 둥 누군 김장하느라 정신 없는 판에 무슨 웬수가져서 그리 술을 퍼 마시느냐는 둥 한차례 긴 소나기가 지나가더니 안방에 국수 삶아 놨으니 일어나 먹으라 한다.
"그렇게 사람 가슴에 못 박아놓구 그 국수를 내가 먹은들 어디 살로 가겄나"
염치가 없으면 암말두 말구 먹었으면 되련만 주제에 존심은 살아가지구 그 한마디 그예 내 뱉고 보니 싫으면 관두라 하며 나가 버린다.
속은 쓰려오고 그 얼큰할 칼국수 눈 앞에 어른 거린다.
갓 담근 김치 찢어 먹으면 속이 좀 가라앉을 것 같건만 매정한 여편네 상 치우는 소리만 들려온다.
속은 쓰려도 다행이 잠은 온다.
한참을 자다가 속아파 깨고 정확히 한시간 간격으로 자다뜨다를 반복하던 중 상가에 갔던 아내가 행여 내가 아직 숨이 붙어있나 궁금하여 방문을 열어보는 것을 미리 눈치챈 나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자는 척 했던 것이다.
"쥐 잡혔어요"
짐짓 잠에서 깬척 눈을 떠보니 환하게 웃는 아내의 얼굴에 승자로서의 환희와 관대함이 어우러져 이내 관세음보살처럼 자애로운 모습으로 돌아온것도 신기하거니와 부엌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칼국수 한 그릇에 김장김치 쪼개어 한 그릇 담아 갖고 들어온다.
"모두 세 마린데 한 마리는 크고 한것 보니 지난번 그것이었나봐
그새 새끼가 그리 컸나?"
"어떡했어?"
"저 두엄탕 끄트머리 거기다 묻었어"
.....................
서여사는 그렇게 갔다.
처음 마주친지 석달만에 두 자녀와 함께 짧은 생을 마감한 것이다.
석달간의 일방적 싸움은 절대 강자의 승리로 돌아갔고 절대 약자는 죽음이란 참혹한 댓가를 치렀다.
휴일 오전 그의 죽음은 인간사 사십대, 적당히 늙은 한 아낙에게, 그의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얽히고 꼬인 갈등을 풀어 평화를 가져다 주었다.
전생에 무슨 죄가 있어 혼을 그 조그만 백에 담겨 하루 하루 불안하게 살아야 하는 형벌을 감내해야 했는지 모르지만
결국 아내의 손에 의해 그는 전생의 업보를 감하고 윤회의 새로운 수레바퀴에 돌려지게 된것이다.
오늘 아침 그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나는 토광에 깔아 놓았던 끈끈이를 치웠다.
올 겨울에 한하여 그들 동족들의 우리집 토광 출입을 허가하며 가급적 한 포대만을 정하여 표나지 않게 양식으로 일용할 것을 권고하면서.....
2001.11.20
조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