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남의월요일에읽는시] 노루귀가 피는 곳
-최인숙(1966~)
그래 여기야 여기
신기해하고 신통해하는 것은 뜸이다
안으로 스미는 연기의 수백 개 얼굴이
아픈 곳을 알아서 나긋나긋 더듬는다
그러고 보면 뜸은 어머니의 손을 숨기고 있다
( …… )
할머니 무덤 여기저기에
노루귀가 피었다
겨울과 봄 사이
가려워 진물 흐르는 대지에
아니 너와 나의 그곳에
누가 아련히 뜸을 뜨고 계시다
어느 세상의 기혈이 뚫렸나 하루도 환하다
봄의 귀염둥이꽃 노루귀, 지금 필 시기다. 꽃이 먼저 피고 꽃이 질 무렵에 잎이 나오는데 그 모습이 노루의 귀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눈 녹은 땅의 묵은 잎 사이에서 피는 복수초처럼 봄의 시작을 알리는 꽃이어서 애호가들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는다.
시인은 할머니 무덤에 핀 노루귀가 겨울과 봄 사이에 뜸을 뜨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곳은 진물 흐르는 곳, 즉 눈이 녹은 장소이며 너와 나의 아련한 부위이다. 기혈이 뚫린 것처럼 화창한 날씨인 것을 보면 확실하다는 내용의 시다.
이 시의 매력은 봄의 화창한 날씨를 기혈이 뚫린 몸의 상태로 비유하고 그 출발이 뜸이고 뜸의 역할을 할머니 묘소의 노루귀가 하고 있다는 게 발군의 표현이다. 이 시가 어느 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임도 쉽게 수긍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나저나 매일 찌뿌둥한 필자의 몸에는 어떤 뜸을 떠야 기혈이 뚫리나. 요즘에는 술(酒)뜸 외에는 그 어떤 것도 효험이 없으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까.
김영남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