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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창고가는길
 
 
 
카페 게시글
여행 스케치 스크랩 사람과 자연이 하나되는 어메니티 서천2
청한 추천 0 조회 92 06.08.19 18:5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월하성 마을에 아침이 밝았다.


벌써 바다에 나갔다 온 어부들은 배에 앉아 그물에 걸린 고기들을 떼어내고 있는 데 어획이 신통찮다.


손가락만한 새우가 한대접 조기 새끼인 황석어가 아주 조금씩 잡힌 그물코를 손질하는 어부의 어깨가 무거워 보였다.


서천 바닷가 마을에 어선들은 작아서 그런지 모두 육지에 올라와 있는 것이 특이했다. 경운기로 바퀴위에 실려서 경운기로 끌고 바다로 갔다 일이 끝나면 다시 육지로 올라와 각 집 대문앞에 놓여 있는 것이 다른 마을과 다른 풍경이다.  농촌에 가면 집집마다 경운기 한대씩 서 있는것과 같은 풍경이랄까?


 

(서천으로 나가는 지방도로 가에 서 있는 어선들 집이 바다에서 멀면 이렇게 도로가에 세워놓고 가까운 집에서는 대문앞 공터에 배를 주선하고 있다.)


오늘 첫번째 목적지인 희리산 휴양림을 가려고 월하성마을을 나왔다.


쌍도를 낀 해안가 마을로 월하성과 이웃한 선도리가 있다.  선도리 역시 갯벌체험을 하는데 이곳의 체험료는 2000원으로 월하성보다 싸다. (그러나 그 요금이 어린이까지 포함된 가격인지 별도의 가격인지는 모른다.)   선도리마을이 아마도 리소재지인지 마을 규모가 제법 크다. 바다가 보이는 둔덕 해송숲에 캠핑장과 공원을 잘 꾸며놓아 야영을 하면서 바다를 즐기기로는 월하성마을보다 더 좋다. 바라보이는 풍광은 쌍도가 겹쳐보여 한개의 섬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월하성마을보다는 못하다.


 

(선도리에서 바라다본 쌍도의 모습 섬하나가 저 섬 뒤에 있어서 한개의 섬처럼보인다. 바닷물이 썰면서 드러나는 갯벌이 마치 모세의 기적 한장면처럼 보인다. 저 섬 너머까지 물이 빠지며 월하성마을까지 이어진 갯벌이 펼쳐진다.)




선도리를 통해서 서천으로 나가는 해안도로는 길가의 해송숲과 그 숲에서 키우는 버섯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바다가 어우려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고 있다.  생각지 못한 풍광을 만나는 것도 여행의 묘미이자 즐거움인데 이 해안도로를 발견하게 된 것은 이번 여행에서 얻은 뜻밖의 소득이다.


 

(울창한 송림이 쭉이어지는 도로는 서천 여행에 새로운 볼거리와 재미를 준다. 저 송림 너머로 보이는 바다가 계속 길을 따라온다.)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장항방면을 버리고 서천방면으로 접어들어 다시 춘장대와 서천방면 갈림길에서 서천쪽으로 길을 잡으면 고개를 하나 넘어 주유소 앞에 희리산 휴양림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주유를 하러 들어간 주유소에서 길을 물으니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곳이라면서도 상세히 길을 알려주신다.


서천에 놀러 온 사람에게 더 좋은 곳을 알려주려는  마음씨가 엿보이지만 우리의 목적지가 이미 결정되었음에 그 분의 마음을 마음으로만 받는다.


희리산으로 들어가는 길은 농로를 이용한 길이라 협소해서 교행이 불가능한 구간이 꽤 길다. 다행히 붐비질 않아서


다행이다. 마을과 논 사이를 통해서 들어가는 길이니 넓히기도 어려울 것이니 오고 가는 사람들의 행운과 양식만이 편안한 운전이 될 것이다.



희리산 휴양림 입구 앞에 있는 저수지가 덥고 추운 이미지를 한방에 날려버린다. 계곡을 막아 세운 저수지에 비친 산그늘과 정자가 어울려 마음속에 그림을 그리게 만든다.


 



  



 

 

 



두시간짜리 등산로를 갖고 있는 휴양림은 해송 사이에 야영데크와 통나무집등이 들어서 있다. 등산로 주변에 잘 가꾸어 놓은 야생화 단지와  일반 농작물 단지는 나무에 붙어있는 이름들과 더불어 휴식을 겸한 자연학습을 가능하게 한다.  해변과 가까운 휴양림에서 일박하면서 뜨거운 낮에는 계곡에서 한 낮의 강렬한 햇살이 비껴가는 네댓시에는 해변으로 나가 해수욕과 갯벌체험을 하는 것도 서천여행에서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추억이 될 듯하다.


 

오늘의 주 방문지가 모두 서천의 동쪽 부여와 맞닿은 지역에 있어 다시 서천 동쪽으로 이동한다.


서천 동쪽 지역은 서천의 문화적 자산이 모여있는 곳이다.


부여와 맟닿은 지역에 있는 월남 이상재 선생의 생가를 향해 가면서 길 가에 있는 모든 문화재와 볼거리들을 찾아보자는 목적을 가지고 길을 떠난다.


제일 처음 만나는 곳이 기산마을에 있는 이하복가옥이다.


일본 강점기에 고향에 내려와 동강중학을 세워 지역 인재를 키우는 문화운동을 하신 분의 가옥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휴가중이란 팻말을 달고  굳게 닫힌 문을 보고 아쉬운 마음을 달래면서 돌아 나오는데 마을 어귀에서 어르신 한분이 달려오시면서  가옥을 구경왔냐고 물으신다.

그렇다고 하니 문 입구에 써 놓은 핸드폰번호 못보았냐고 왜 전화 하지 않았냐고 하신다.  

둘째 아드님이 사시면서 관리하시는데 미국방문을 가시면서 혹시라도 찾아 오는 사람들이 헛걸음 할까 봐 자신에게 열쇠를 맡기셨단다. 

관리를 부탁하고 떠나신 어르신이나 전화도 안하고 돌아서는 방문객을  외면하면 그만일텐데 일부러 달려와서 한참동안 집안을 구경시킨 동네 어르신이나 두분의 마음 씀씀이에 이 고장 후학들을 가르치고자 낙향하신  이하복 선생의 마음씀이 어땠는가를 간접체험하게 한다.

 서천에서 만나는 인심이 이렇게도 질박하고 후하다.


 

 

(여초선생이 쓰신 가목재란 현판이 붙어있는 출입문이 안채와 사랑채를 가르고 있다.  처음에 지은 집은 가목재의 왼편인데 식구가 늘면서 안채와 사랑채인 집에 이어 붙여서 사랑채를 새로 만들면서 두집을 잇는 담과 출입문으로서 기능하는 문이다. 편의에 따라 자유자재로 확장시키는  전통한옥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집의 구조는 중부지방의 가옥형태인 ㄱ자가옥의 안채와 일자가옥의 행랑채가 한 공간을 이루는 안채와 이에 공간을 확장해 사랑채와 행랑채의 한 공간이 만나 두 공간을 이루고 있다.


 

  (안채의 사랑채와 바깥채의 행랑채가 가목재란 문을 사이에 두고 일렬로 지어져 있다. ) 




이하복 가옥에서 서천 인심을 가득 안고 바로 옆에 있는 기산체험마을로 간다. 기산체험마을은 마을에서 농사체험과 솟대만들기등 문화체험 전통음식만들기등 숙박하면서 체험을 할 수 있는 마을이다. 마을어귀에 있는 기산초등학교와 협력해 더욱 알찬 체험을 꾸려가고 있다. 지역 교육기관과 마을이 협심해 농촌을 살리는 방법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모습이 감동을 준다.


마을안에는 아동문학가가 지은 식물예술원이 있다.   여러가지 분재와 야생화원 연지등으로 가꾸어진 정원은 체험마을의 중요한 한 부분을 이룬다.


 

 

 

 

 (예술원안에 있는 꿈꾸는 나무:맛난 연 아이스크림과 각종 차와 기념품을 팔고 있다. 사진전시회와 시낭송회등도 열려 농촌지역에서의 문화 공간으로 역할을 톡톡히하고 있다.)

 

 

기산 체험마을을 나와 다음 목적지인 문헌서원으로 향한다.


문헌서원은 고려말 삼은의 하나인 목은 이색선생을 모신 서원이다.  이곳이 한산 이씨의 본향이기 때문에 목은 이색선생이 갖는 의미는 아주 중요하다.  이하복 가옥의 현판에도 목자가 들어가 있듯 한산 이씨에게 이색 선생은 정신적 지주임이 틀림없다. 이렇게  선생을 모시고 배향하는  서원까지 있으니 말이다.


기산마을에서 한산모시관을 향하다 표지판을 보고 좌회전해서 들어간 길은 마을길인지 일차로길이다. 대체로 잘 되어있는 표지를 따라 한참을 가다보니 중간에 이따가 들를 봉서사 표지가 보이는 삼거리를 지나니 저 멀리 산 밑에 한옥 건물이 보인다.


멀리서 보이든 한옥은 사원을 관리하는 분의 집인 듯 일반 농기구가 가득차 있고 그 집을 지나자 하마비가 아닌 하차비가 여기가 주차장이니 모두들 차에서 내리시오 말하고 있다.  시대가 변해 말대신 차를 타고 다니니 하마비 대신 하차비라 써 놓은 감각이 돋보인다.


주차장 바로 위에 있는 연못에선 황소개구리가 놓은 올채인지 미꾸라지 만한 것들이 헤엄치고 저 멀리 남생이가 했바라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 평화롭다.


서원은 관리를 하지 않는지 쇠락한 모습이 역력하다. 너른 터에 자리잡은 서원은 일반적인 서원의 전학후묘의 구조가 아닌 횡렬식 구조로 배치가 되어 있다. 가운데 루와 서생들이 묵으며 공부했을 강당이 자리하고 그 오른편에 이색선생의 영정을 모신 건물이 있고 왼편 가장 높은 자리에 공자및 선현들을 모신 사당이 있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폐되었을 때 많은 건물들이 없어진 것인지 산속에 있는 넓은 터에 자꾸 신경이 간다.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 보물로 지정된 영정은 보지도 못하고 강당영역에 있는 개와 사당가는 길에 있는 화장실에서 닭몇마리와 보고 왔다. 시원한 우물엔 가재와 방게만이 놀고 있어 서천의 귀한 문화자산이 이렇게 대접받아야하나 생각이 들었다.  요즘 한옥체험이 유행이라는데 있는 건물들을 손보고 너른 터에 새로운 한옥들을 지어서 서원체험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기산체험마을과 이하복 가옥 이상재 생가, 그리고 봉서사를  연결한 문화상품을 만들면 범고창신하는 새로운 관광상품이 될 수있을텐데...


 

 (목은선생 신도비와 영정각) 



 

문헌서원을 나와 근처에 있는 건지산 봉서사를 찾는다.  문헌서원에서 한산면으로 나가는 산길로 올라가니 봉서사주차장이 길 한켠에 잡초에 덮여 있다. 이름난 절이 아니니 관광객은 없고 지역 신자들만 찾나보다. 땡볕이 싫어 무례를 무릎쓰고 요사채 안마당까지 차를 타고 들어간다. 길가에서 몇십미터 들어 오지 않았는데도 절안은 길가와 달리 우거진 숲과 매미소리가 우렁차다.


느티나무 그늘아래서 매미소리를 들으며 쉬니 마음이 한가로워진다. 오가는 사람도 없고 내다보는 사람도 없다. 사람에게 시달리지 않고 조용히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가라앉히기엔 더할 나위 없다.

 

 

 

 


봉서사를 내려올 때는 올라온 길과 반대로 내려오면 그 쪽이 한산면 사무소 쪽이다.


월남 이상재 선생이 감옥에 있을 때 기독교에 귀의하신 때문인지 내려오면서 보이는 동네마다 커다란 교회들이 있다. 면사무소 근처에 있는 향교는 들르지르 못하고 월남 이상재 생가를 향해 부여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간 시간이 마침  점심시간이라 유물전시관은 문을 닫고  복원해 놓은 생가만 본다.

 


 


일자형 초가집이 나란히 두 채가 있는데  이건물안에  걸어놓은 이상재 선생이 아들에게 주었다는 교훈이 준엄하게 다가온다.


생가를 방문한다는 것은 볼거리보다는 그곳에 살다간 사람에 대한 알고 느끼는 것이 중요한데 사전에 준비가 안된데다 전시관까지 문을 닫으니 싱거운 마음이 든다.


한산모시관도 그렇구 문헌서원도 게다가 이상재 생가까지 누군가의 해설이 필요한 부분에서 모든 것이 생략되니 껍데기만 보고 다닌 여행처럼 느껴진다.  느낌이 있는 여행은 여행자가 많은 준비를 해야겠지만 바쁘게 사는 현대인이 훌쩍 떠나와 쉬면서도 의외의 것을 얻을 수도 있는데 이런 것은 지자체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따라 덤으로 주어지거나 어쩌면 그것이 여행의 주가 될 수도 그래서 다시 한번 찾아오는 여행이 될 수도 있다.


관광을 많이 외치지만 아직도 소프트웨어가 많이 부족한 느낌을 갖고 생가를 떠나 서천의 마지막 여행지인


금강하구둑의 철새탐조관으로 향한다.



 

 

 




철새는 떠나고 없지만 철새탐조관에 박제로 남은 철새와 텃새들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다. 철새들이 찾는 철에는 입장료가 있지만 그 외에는 무료로 개방하는데 앞으로 올 철새들을 미리 봐두는 것도 상상의 날개를 펼 수 있어 좋다. 


이틀간 다닌 서천은 분명 새로운 계절이 되면 새로운 모습의 옷을 입고 있을 것이다. 네 모습의 서천중 이제 한 모습을 보았다고 할 수 있을까?  빛이 달라지면 모습도 느낌도 다르다고 했으니  365일 날마다 새로운 모습의 서천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과 자연이 하나되는 서천이라 했으니 이제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서천은 천가지 만가지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지 모르겠다.


여행내내 서천은 천혜의 자연에 비해 문화가 약간 모자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동쪽의 기산마을과 주변의 문화재를 어떻게 엮어 사람이 그안에 들어서 생활하고 그 속에서 배우는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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