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본 신나는 그러나 비장했던 20일 '축제 한마당'
축제였다.
스스로 만들어낸 질서였다. 35만개의 촛불이 만들어낸 성난 파도였다. 잘 생긴 민주주의였다. 그러나 비장했다.
2004년 3월20일.
서울 광화문과 부산 서면 등 나라 안팎 50곳에서 ‘탄핵무효·부패정치 청산 백만인대회'가 열렸다. 친구끼리, 온가족이, 연인끼리, 홀로 촛불을 들고 모였다. 주최 쪽은 80만여명이 함께 했다고 한다. 온라인으로 참여한 45만명을 포함해서다.
지난 87년 6월항쟁 이후 최대 규모라는 얘기도 나온다. 민주주의를 되찾자는 목소리는 10년이 훌쩍 넘어서도 똑같다. 그러나 도드라지게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 87년엔 경찰과 대치하는 맨 앞엔 항상 돌과 최루탄이 어지럽게 뒤섞였다.
하지만 이번엔 87년 이후 태어난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거리로 나온 가족들의 직접 참여였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하나로 어울린 대동마당이었다.
‘탄핵무효와 민주수호’를 외치는 함성에는 비장함이 담겨있었다. 그러나 아이 손을 잡고 나온 부모, 노부부, 학생들, 동창회, 시민사회단체의 표정과 행동은 평화스러웠다.
박원석(43·서울 광진구 구의동)씨는 “탄핵 사태 이후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한 동네 5가족이 함께 왔다”며 “오늘의 경험은 지역민주주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여명이 참여한 이화여대 민주동우회의 이상덕(48·76학번) 회장은 “87년 6월 항쟁이라는 역사의 현장에서 태어난 민주동우회가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촛불시위에도 힘을 모아야 한다는 데 뜻을 함께 했다”고 말했다.
“역사의 현장에 있고 싶다”며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도 많았다. 경기 용인 수지읍 주민 50여명은 아예 버스를 대절해 올라왔다. 학생들을 데리고 온 고등학교 교사 이은아(28)씨는 “민주주의의 질서와 규칙을 아이들한테 가르쳐주고 싶다”고 말했다.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70~80년대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던 30~40대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가던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자녀들과 함께 촛불을 들고 있는 것”이라며 “이런 세대의 바람이 월드컵 공동응원을 경험한 10~20대들에게 전해져 지금과 같은 참여민주주의의 큰마당을 만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가수 정태춘씨는 이를 “지난 90년대가 준비한 혁명이자 80년대가 주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노래했다.
경찰과의 물리적인 충돌도 없었다. 경찰의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79개 중대 8천여명의 병력을 배치했지만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 단지 경찰이 이날 오후부터 갑작스레 촛불행사의 '무대설치 불허'하는 바람에 행사가 뒤늦게 시작했을 뿐이다.
이날 오후 5시께를 지나면서 광화문이 먼저 열렸다. 늘어나는 인파에 경찰도 길을 터 줬다.
점점 늘어난 시민들은 마침내 왕복 16차선인 광화문 네거리에서부터 덕수궁 앞까지 거리를 가득 메웠다.
이날 행사에 함께 했던 시민들은 촛불행사를 '민주 대 반민주'의 한판승부라고 입을 모았다.
실제 행사를 준비한 '탄핵무효·부패정치청산 범 국민행동' 쪽도 행사가 열리기 전부터 촛불문화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보였다.
정치권과 일부 언론이 촛불행사에 나온 시민을 '노사모'라고 폄하했다. 하지만 이날 촛불을 들어 밤을 밝힌 이들은 스스로 ‘우사모’라고 되받아쳤다.
김정란 상지대 불문과 교수는 '촛불집회에 온 사람은 ‘노사모’가 아니라 ‘우사모’'라고 말했다.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란 얘기다. 김 교수는 “노무현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뽑은 공화국의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서다. 노 대통령은 상징적인 의미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낯선 사람과 어깨를 마주하고, 서로서로 촛불을 밝히는 그들 앞에 정치적 당파성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광화문에서 열린 행사 1, 3부 사회를 본 영화배우 권해효씨는 “일부 정치권과 언론이 '노빠'정도로 생각하고, 심지어 청와대 이야기도 하는데 이것은 ‘상식 대 몰상식’이고, ‘민주 대 반민주’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디시인사이드 정치사회 갤러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학생 신상민씨는 “정치인들이 촛불집회 하는 사람을 '노사모'라고 말했는데, 우리는 ‘노사모’가 아니라 모든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나섰다'고 말했다.
이날 시민들은 “탄핵무효”, “민주수호” 등 단 두 개의 구호를 외쳤다.
서울 광화문 촛불문화제의 경우 저녁 11시20분께 끝이 났지만, 자정이 될 때까지 광화문에 모인 시민들의 손에는 촛불이 들려있었다. 민주주의의 새 희망을 키워나갔다.
이날 행사와 관련해 김혜애 범국민행동 상황실장은 “날씨가 춥고 경찰이 무대설치를 막은 가운데도 아무런 충돌없이 평화적으로 잘 마무리 됐다'며 “충분히 예상했던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전국에서 계속되고 있는 촛불문화제는 민주주의의 저력이 나타난 축제였다'고 평가했다.
인터넷 게시판에도 촛불문화제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모임이라고 평가하는 댓글이 올라오고 있다.
<인터넷한겨레> 게시판에서 'blackrose010'라는 아이디를 쓰는 네티즌은 '이 땅에 서 있는 것이 그렇게 싫었는데 저 국민들을 보니 대한민국에 사는 것이 자랑스럽다'며 '우리 국민은 머지 않아 민주를 반드시 쟁취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탄핵무표 부패정치청산 범국민행동'은 22일부터 일주일동안 촛불문화제와 함께 '탄핵무효' 천만인 서명운동을 계속 이어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