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명주 / 출처 : 오마이뉴스)
최근 몇 년새 국내에도 공정여행, 착한여행, 윤리여행, 지속가능한여행 등의 개념이 도입,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본래는 주로 제3국 여행에 초점을 두고, 그 유래나 의미에도 다소간 차이가 있으나 보다 '책임있는' 여행을 통해 '다같이 잘 살자'는 데는 이견이 없다.
팍팍한 일상에서 모처럼 벗어났는데 무슨 골치 아픈 얘기냐 할 수 있다. 그러나 고개를 까딱하듯 마음을 돌리면 결국은 도리를 지키는 삶의 방식에 다름 아니다. 기존의 여행이 '돈만 있음 뭐든 된다' 식이면, 후자는 기왕의 돈으로 여행지의 주민과 그 지역문화, 아울러 자연환경까지 이롭게 하려는 지당한 노력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이러한 공정여행(다른 모든 개념을 포함)의 가치에 매혹되어 지난 여러 달 국내외 여행을 하면서 스스로 실천한 행동 10가지다.
1. 물통 챙기기
물통은 뚜껑이 따로 있는 것이 좋다.
천원숍에서 산 2천 원짜리 물병이다. 한여름 여행을 할라치면 하루에 적어도 생수 3통쯤 사먹게 된다. 이 물병 하나로 경비를 절약하고 쓰레기도 줄이며 원천적으로 자원 소비를 경감시킬 수 있다.
물통은 컵이 별도로 있는 것이 좋다. 건망증을 우려해 컵과 병이 연결된 것을 샀으나 사용 결과 완전 분리된 것이 편했다. 어쩌다 누군가 주는 시원한 음료나 커피를 마시기도, 산에서 약수를 받아 먹기도 좋다. 무엇보다 종이컵 등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아 도 된다.
물은 숙소와 식당 등에서 채우면 된다. 세상엔 여전히 물 한 병쯤 내어주는 인정이 살아 있다.
2. 공정무역 제품 구입
가끔씩 편의점 등에 들렀다가 아주 반가운 것을 보게 된다. 일반 제품들과 나란히 비치되어 있는 '공정무역' 제품들을 만날 때다.
공정무역은 공정여행의 선개념이라 할 수 있다. 생산자와 그 생산지역에 정당한 노동환경과 대가를 지불하고, 생산품들의 유통과정을 투명화해 생산자도 소비자도 '윈윈' 하는 거래 개념이다.
공정무역, 공정여행 등의 인식이 점차 확산되면서 일반 가게에서도 피스커피, 공정무역 초콜릿 등의 상품을 살 수 있게 됐다. 물론 아직은 일부지만.
내가 마시는 커피 한 잔에 평화가 깃들어 있다니, 멋지고 행복하지 않은가!
3. '작은 가게' 이용하기
경남 고성의 한 작은 가게
여행하며 놀란 한 가지는 대기업이 운영하는 기업형슈퍼마켓(SSM)이나 편의점이 차도 뜸한 시골마을에 어김없이 들어선 모습이었다. 반면 지역주민이 운영하는 작은 가게나 재래시장 등은 대부분 썰렁했다.
여행자가 쓰는 돈이 가뜩이나 부유한 국내외 대기업이나 호텔, 항공사 등을 배불리느냐 여행지 주민들의 번영에 기여하느냐는 우리 선택에 달려 있다.
지역민이 운영하는 소박한 가게에는 흙내음 가시지 않은 신선한 제품이 있고, 덤으로 얼마쯤 깎아주고 얹어주는 기분좋은 인심도 있다.
4. 지역업소 이용하기
경북 구룡포 일본인 가옥 거리에 위치한 30년 전통의 여관
앞서 말한 작은가게 이용과 같은 맥락에서 숙소 또한 지역민이 운영하는 곳이 좋다. 가격 저렴하고 여행지 정보를 얻는 데도 유용하다. 운이 좋으면 역사책이나 안내서엔 없는 숨겨진 장소나 재미있는 전설을 전해 들을 수도 있다.
5. '남의 집도 내 집 같이'
예전에 어른 몇 분을 모시고 여행간 적이 있는데, 그 중 한 분이 숙박비가 아깝다며 부러 목욕을 하셨었다. 살뜰한 주부 마음이야 알겠지만 전기도 물도 결국은 '지구 살림'이다.
숙소에서 사용하는 냉난방이나 수돗물도 내 것처럼 아끼자.
6. 일회용품은 사절
대부분 숙소에는 칫솔과 면도기 등의 일회용 세면도구들이 비치되어 있다. 여행갈 때 본인의 세면도구를 챙겨 되도록 사용을 자제한다.
일회용 샴푸·린스나 인스턴트 커피, 냉장고의 음료 등은 나중을 위해 챙겨두는 센스!
7. 동식물과도 친구하기
일본 나가사키 어느 사찰에서 마치 강아지처럼 따라다니던 길고양이
길 위에서 만나는 건 사람만이 아니다. 꽃 한 송이, 바람 한 점, 길고양이, 동네 개도 벗이 된다.
사람 아닌 생명도 사람과 같이 소중하다. 요즘 이 자명한 사실조차 잊고서 동식물 학대와 자연 파괴를 일삼는 사람들이 비일비재하다. 모두가 생명을 경시하는 데서 온 무지의 소치다.
8. 탄소똥 배출 자제
탄소똥 안 싸는 착한 이동수단 자전거
비행기 대신 배,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 가까운 곳은 자전거나 두 다리로.
여행자가 움직이는 길 위엔 여러가지 흔적이 남는다. 그것이 어떤 것이냐는 또한 여행자의 노력에 달렸다.
과다한 탄소배출로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대량 이재민을 낳고 야채값을 폭등시킨 이상기후 또한 우리의 소비행태가 낳은 결과다. 내가 즐겁게 여행하는 지구를 깨끗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것은 신세를 지면 갚는 이치와도 같다.
9. 함께 고민·실천하기
"자연은 살아있다" / "연인을 위해 장미와 함께 콘돔을"
여행이 길어지자 개인의 여정이 자족적인 것 이상의 가치를 가질 순 없을까 고민하게 됐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T-캠페인'. T는 여행(Travei), 티셔츠(T-shirts), 함께(Together) 를 상징한다. 여행 중 내가 입는 티셔츠에 다같이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문제들을 담는 방식이다.
지난 3월과 5월 일본에서, 최근 두 달여의 국내 여행에서 전개했다. 타인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누군가 "맞는 말이네요. 저도 함께 하고 싶어요" 하면 되레 고맙기 그지 없었다.
10. 스치는 인연이 아닌 관계맺기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경북 구룡포 신도여관 주인 할머니와 이웃들, 경남 거제 칠천도 농군 부부, 일본 교토에서 만난 교코 아줌마, 경남 함안에서 '공짜잠' 재워준 뚱보갈비 이모들
여행지에서 만난 인연을 흔히 '스치는 인연'이라고 한다. 스치기만 하면 다행인데, 개중에는 그들을 동물원에 동물 취급하기도 한다. 양해없이 사진을 찍고 속엣말이나 제멋대로 행동을 할 때가 그렇다.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가 여행하는 장소는 다수 누군가의 '삶터'다. 그들의 일상이, 문화와 역사가 지속돼온 공간이다. 일본의 오사카와 교토, 국내 경상남·북도 스무 지역쯤을 돌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아픈 역사가 묻힌 교토의 미미즈카(귀무덤) 옆에선 "미안하다" 사과하던 교코 아줌마를, 오사카 신이마미아에선 김민종 닮은 친절한 게스트하우스 주인을, 경북 구룡포에선 한주 내내 공짜밥을 주시던 인정많은 할머니를, 경남 거제 칠천도에선 선량한 농군 부부를….
여행에서 돌아와 몇몇 분에겐 내가 찍은 사진을 보냈다. 우편물을 받은 상대는 전화를 걸어 "준다 했지만 정말 줄 줄 몰랐어" 하며 무척이나 고마워했다. 그리고 가장 든든하고 감사한 한 마디. "다음번에 오면 꼭 들러. 재워주고 먹여줄게."
여행자와 제주 도민으로 만난 장동건과 고소영(영화 '연풍연가'에서)은 만인이 부러워하는 '장고커플'이 됐다. 그렇게는 아니라도 기억하면 그립고, 다시 찾아선 반갑게 재회할 수 있는 벗들을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여행이 주는 최고의 선물일 것이다.
책임있는 착한 여행, 결코 어렵지 않다. 내가 걷는 길 위에 살아있는 모든 것과 공존하는 것이다. 당신은 어떤 여행을 하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