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7월1일
비가 내리는 일요일 새벽 3시 거실에 나오니 아들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한국과 미국 청소년 축구중계 본다고 기다리는 중이라며 잠깐 자다가 일어날테니 경기시작 아침 6시에 깨워 달라고 한다. 낼 모레가 기말고사 시험이라 걱정을 하면서도 약속한 시간에 깨우니 아들은 꿈쩍도 안하고 잠에 취해 있다.
2일 출근했다가 저녁에 독서실 들러 아들과 함께 집으로 오면서 내일부터 기말시험이니 열심히 해서 중간고사 점수를 만회하라고 일렀다.
3일 기말고사 시작일이라 아들을 일찍 깨웠다. 시험과목 총정리 시키고 학교에 태워다 주려고 기다리면서 식사를 많이 하라고 하니 그러면 똥을 많이 싼다며 밥을 조금 먹는다. 별스런 걱정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싶으면서도 집에서 한 번 화장실 들어가면 세월 가는 줄 모르는 아들이니 이해가 된다. 학교에서 화장실 갔다가 시작종이라도 울리면 당황스러울 것이고 그런 이유로 똥이 무서워 밥을 못 먹는다니 웃을 수도 없다.
4일 독서실에서 새벽 1시에 시험공부를 하고 들어오는 아들을 거실에서 기다리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으니 힘내라고 했다. 건강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공부 1등하는 것보다 더 우선이겠지만 학벌이 삶의 정도를 가늠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실력이나 대학을 무시하거나 간과할 수 없어 당장 성적이 나쁘면 부모들은 안절부절 눈앞이 캄캄하고 절망적인 심정이 되는 것이다.
5일 주차장에서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구입한 오래된 나의 차를 타고 출근한다. 14년 전 당시에 2년 쯤 소유한 승용차 르망을 처분하고 우리나라 최고급 세단 브로엄을 주문했다.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로 차를 판매하는 친구조차 자제를 요청할 정도였는데 아들이 태어난 나의 기쁨과 자부심은 그렇게 컷다. 뒷좌석 아래에 아예 고무바람 매트 침대를 만들어 유치원 들어가기 전까지 나와 아들과 함께한 자가용이다.
6일 기말고사 마지막 날 새벽에 깨워 책상에 앉게 했는데 자다 일어난 아들의 눈이 붉고 몸을 가누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그렇지만 삶이란 경쟁의 연속이고 노력의 바탕위에 서는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음을 잡고 아들을 독려했다.
7일 토요일 거실에서 신문을 보고 있다가 등교하는 아들 붙들어 밥을 먹게 했다. 점심쯤 아내는 딸이 사용하는 바이올린 수리를 하고 왔고 아들은 영화를 본다고 전화가 온다. 시험을 마친 아들과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극장이 있는 불광동 백화점에 갔는데 교통과 시설이 혼잡스럽다.
8일 욕심버리고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삶이라고 아침에 거실에 앉아 생각을 했다. 그러나 더 나은 경제적인 부를 만들기 위해 땀흘리며 살아가는 현실을 보면 마음 비우고 산다는 것은 종교인이 아닌 이상 어려운 일이고 더구나 나처럼 경쟁속에 있는 사람에게는 결코 원하는 삶이 아니다. 일요일인 이 새벽에도 무악재를 넘어가는 차량 행렬은 사람들의 삶의 전쟁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는게 아닌가. 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리는 장마철 오후에 어머님께 전화를 하니 날 더운데 잘 지내냐고 오히려 내 안부를 먼저 묻는다.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건강하신 것같아 마음이 놓였다.
9일 아들에게 청심중 편입시험 일정을 제시하며 응시 여부를 물었다. 나는 아들이 작년에 이어 다시 도전하기를 바라는 편이고 아내는 기존 인창중에 적응했고 반장까지 하고 있으니 반대를 하는 입장이다. 시험에 응시해서 자신의 영어 실력을 테스트하고 현재의 정도를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 나였지만 괜히 시간만 낭비하고 마음만 들뜨는 부작용이 있을 것이라는 상대의 생각이다. 합격을 한 상황을 가정해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시험을 응시한 후 생각하기로 하고 영어학원에서 청심중학교 편입영어 에세이 예상문제를 받아왔다.
10일 서대문 교육청에 들러 국어학원 등록서류를 제출했다. 아내가 오랫동안 집에서 수업했는데 수강생이 늘어나다 보니 불편하고 엘리베이터도 우리집 19층에 주로 멈추어 주민들에게 미안함이 있었다. 집 주변에 장소를 물색하고 다녔는데 마땅한 곳이 없어 결국 한양상가 2층에 류선생 교실을 만들기로 했다.
11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아들 청심중학교에 제출할 소개서를 내가 2시간 동안 작성했다. 작년 초등학교 졸업 전에 응시하여 1차 서류합격으로 거실에서 환호를 올리며 좋아했는데 영어회화 면접에서 SO~ SO~ 를 많이 남발하여 2차에 불합격한 아들이다. 영어를 배운다고 필리핀에서 연수하다가 급히 와서 응시한 작년 청심중학교 시험과 8살 때 경기초등학교 입학을 위한 추첨까지 포함하여 아들의 인생 두 번째 낙방이었다. 머리도 식힐 겸 오후에 맨발로 안산을 올라 걷는다. 숲에서 불어 오는 바람이 여름의 무더위를 날려 갈 무렵 갑자기 어둠이 몰려오고 또 장마철 비가 내린다.
12일 새벽에 일어나 아들 방으로 들어가니 어제 내가 작성한 내용을 아들이 자필로 완성해 두었다. 성적증명서는 아내가 받도록 중학교에 내려주고 나는 노량진으로 갔다가 오후에 돌아와 아들이 그 동안 받아 둔 상장을 복사하고 서류를 마무리 했다. 작년 준비한 것을 보관한 터라 중학교 1학년 회장 임명장 외에 몇 장만 더 첨가한 것이다.
13일 서류접수를 위해 청심중학교로 출발하여 학교에 2시30분경 도착했다. 평일임에도 조용하여 방학인가 싶어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가니 학생들이 독서실에서 책을 보며 면학에 열중하고 있다.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일반 중학교와는 확연히 분위기가 달라 사람들이 선호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고 구조나 시설은 외국 학교라 착각될 정도였다. 준비한 서류를 제출하고 토요일 오전 10시30분 면접시간과 안내문을 받았다.
14일 청심중학교 편입시험장으로 이른 시간에 출발했다. 집에서 도시락까지 준비하여 내부순환도로를 거쳐 이동하는데 주말이라 교통정체가 심하다. 마석 평내부근 고속도로를 통과하여 대성리 부근에 도착하니 짙은 녹음과 오른쪽으로 북한강 물줄기가 시원하게 여름 풍광을 보이고 있다. 스무 살이 넘어 군대라도 갈 때 배웅하는 느낌이 들어 옆에 앉은 아들을 바라 보니 검은 피부에 부리부리한 모습으로 잠이 들어 있다. 10시15분에 학교에 도착하여 수험표(아들 수험번호 210106)를 받고 3층 고사장으로 올라가니 1학년 편입 응시자만 60여명이다. 여기는 완전 국제학교 형식이라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고 유학생처럼 기숙사 생활을 하여 인기가 있는 통일교 재단의 학교인데 오늘도 편입생 3명을 뽑으면 경쟁률 20:1은 될 것이다. 오전 영어에세이 응시하는 아들의 자리를 확인하고 내려오는데 파이팅을 외치는 부모와 합장하는 부모까지 모두의 눈빛이 간절하여 대학입시를 방불케 하는 현장이다. 12시10분까지 오전시험이라 학교를 구경하고 점심을 약속한 본관 구내식당에서 기다리다 이내 내려온 아들과 집에서 준비한 도시락을 먹었다. 마치 소풍이라도 온 것같다고 말하며 맛있게 먹는 중에 김치가 모자라 남은 반찬으로만 식사를 마무리 했다. 점심 후 운동장 스탠드에 아들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스프링쿨러가 쉼 없이 돌면서 물을 흩뿌리고 있다. 아담하고 깨끗한 잔디구장 여기에 꼭 합격하여 유창하게 영어도 배우고 아들이 좋아하는 축구도 신나게 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1시부터 5시까지 영어 인터뷰 시험이라 4시간의 여유가 있어 근처에 있는 유명산에 차를 몰고 가서 중턱부터 정상을 향해 걸어 올랐다. 날마다 안산을 맨발로 다니는지라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는데 초행길이고 사람도 없는 음산한 계곡 더구나 바람이 심하게 불어 나뭇잎 날리는 소리에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정상부근에는 승용차도 올라올 수 있을 정도의 흙길이 있고 ‘유명산 소구니 862미터’라고 적힌 표지석이 자리하고 있다. 중턱에서부터 출발했으니 1시간 소요된 것이지만 700미터 정도인 북한산, 도봉산보다 훨씬 높은 경기도에서는 그래도 이름있는 산이다. 심호흡을 하고 왔던 길로 빠른 걸음으로 다시 내려오니 3시30분이 되었다. 청심학교로 돌아가 인터뷰 면접을 마친 아들을 태우고 서울로 오면서 청평 근처에서 따뜻한 칼국수를 먹었다. 멀리 청평댐의 물보라가 시원스럽기만 하다 .
16일 딸이 창문을 열어 두어 방으로 비가 들이쳤다. 아침에 빗물 청소를 하고 학교가는 아들에게 끓여 놓은 죽을 한 모금 마시게 했다. 청심중학교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오늘도 최선을 다하라고 말하며 평소처럼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저녁에 동렬이 처남 내외가 당숙 아저씨 국립의료원 문상을 왔다가 우리 집에서 하루를 묵는다. 동렬이는 결혼 전에 왕십리 아파트에서 함께 생활한 적이 있는 아들의 자상한 외삼촌인데 오늘도 늦게까지 컴퓨터와 관련하여 이야기를 나눈다.
17일 어제 아들의 컴퓨터에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다가 평소하는 인터넷을 보았는데 어른 프로그램도 있었다면서 조카가 벌써 자라 어린애가 아니라며 처남이 놀라움을 표시한다. 오늘 아내는 예술의 전당으로 ‘산불’ 연극을 보러가고 아들도 극장에 간다면서 나선다.
18일 장마가 계속되더니 오랜만에 쾌청한 날씨다. 노량진 수업을 마치고 인천(간석동 상가투자) 사업이 어려워 답답한 심정으로 보내는데 청심중학교에서 아들 불합격 문자가 들어온다. 일도 안 풀리고 아들도 뜻대로 되지 않고 답답하고 아쉬움이 많은 우울한 하루다. 인생에서 처음 가는 길이 운명처럼 중요할 수 있는데 경기초등학교와 청심중학교 특별한 케이스에는 동승하지 못하고 평범한 중학생으로 생활해야 한다니 잘난 아들이 내 눈에는 너무나 아까웠다.
19일 간석동 상가의 어려움으로 밥만 앞에 두고 식탁에서 고민에 잠겨 있는데 잠에서 덜 깬 4학년 딸이 눈곱이 붙은 채로 다가와 앉는다. 이래도 저래도 사랑스러운 딸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예쁜 모습으로 변하여 갈 것이다. 저녁에 음력 6월6일 형님의 생일이라 노량진 수업을 마치고 신내동으로 달려가 화분에 담겨 있는 꽃을 전달하고 돌아왔다.
20일 여름 휴가기간을 7월 말부터 정하는데 딸이 캠프와 중복되어 난감해 하더니 외할머니 생신도 휴가 기간에 있다고 하니 가족과 함께 한다고 의견을 통일시킨다. 학교에 가는 아들은 맨유와 서울FC간 축구경기 보러 저녁에 상암월드컵 경기장에 가자고 예약을 하라기에 오전과 오후에 경기장 사무실에 전화를 하니 계속 통화중이고 오후 6시에는 업무가 끝났다는 음성이 나온다. 황당하여 아들에게 상황을 이야기하자 막무가내 신경질을 부려 양쪽에서 내가 얻어 맞는 꼴이 되었다. 밤 10시경에 용구엄마(처제)가 한나와 한별이를 데리고 예고도 없이 우리집에 와서 잔다.
21일 새벽에 장모님 전화가 와서 용구네 식구들 찾는걸 보니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데 내가 섣불리 나설 수가 없어 눈치만 살폈다. 맨손으로 학교에 가는 아들에게 필기도구라도 챙기라 지적하니 토요일이라 할 일도 없다며 막무가내 현관을 나간다. 저녁 식사중에는 아내에게 본격적으로 내가 대부업을 해보겠다고 설명을 하자 강의나 계속하라고 한다. 대부업이 위험한 일이기도 하지만 과거에 전타임 마감강사였던 나의 경력이 아까워서 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 스스로는 학문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더 많고 또한 노량진 입시학원 프로세계에서의 자존심이 뭉그러지는 치열한 현장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강의는 그렇게 쉬운 일이냐며 화를 냈지만 무엇을 하든 물질이 계급처럼 중요한 사회에서 나는 반드시 경제적인 부를 축적할 것이다.
22일 중학교 1학년 아들 14번째 생일날 새벽 6시에 정릉을 지나 북한산에 올랐다. 봄에 진달래가 피었을 때 왔다가 한여름 녹음 속에 다시 들어섰다. 조카 생일이라고 중계동 고모와 용구네 식구들도 온다기에 서둘러 산에서 내려와 점심쯤 집에 돌아왔다. 1시경 모인 가족들 10명이 동네에 있는 피자헛으로 가서 생일파티 하고 아들은 용구와 중국 국보전에 나머지는 시내구경 간다기에 인사동 입구에 내려 주었다.
23일 일찍 집에 온 아들은 축구하러 가고 딸은 아파트 마당에서 자전거를 타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고 있다. 방학 날이라 아들이 가져 온 성적표를 찜찜한 마음으로 펼쳐 보았다. 중간고사에 이어 기말고사 석차도 실망스러웠지만 그것보다 담임 의견란에 ‘악동이지만 말은 잘 듣는다고 적혀 있다’ 중학교 1학년의 아들이 악동이라니 나쁜 놈이지만 말은 잘 듣는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먼저라서 아들의 허물은 모른 채 담임만 야속하게 생각되었다.
24일 늦게까지 자는 아들을 억지로 깨워 약속하기를 방학 기간에는 일찍 일어나 아침식사 하고 개인시간을 갖는 것으로 했다. 하지만 아들은 오늘도 계획 없이 하루종일 잠만 자니 답답하고 더구나 나의 투자사업도 신통치 않은데다가 요즘에는 노량진 강의까지 의욕이 꺽여 스트레스가 늘어난다. 하루를 마무리 하면서 아무리 어려워도 내 모습을 잃지 않으리라 여러 번 다짐했다.
25일 아프칸 사태로 밤 9시경 한국인 인질이 1명 살해되어 온 나라가 충격에 휩싸였는데 집에서는 아들이 엄마와 싸우고 늦게 들어가겠다는 문자를 보내온다. 아프칸이나 우리 집이나 대립과 갈등은 마찬가지라 생각하고 아들에게 전화하니 PC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엄마가 사랑하기 때문에 야단했을 것이니 일찍 들어가라고 문자를 보내고 강의 마치고 돌아오니 아들은 이미 자고 있다.
26일 어제 母子지간에 다투었으니 아침 분위기가 좋을 리가 없다. 출근하면서 아들 방으로 들어가 아무리 화가 나도 엄마한테 대들면 안 된다고 타이르고 책상 위에 있는 아들 지갑을 열어보니 학생증만 달랑 있어 5000원을 넣어 주었다. 세월이 흘러 여러 이유로 가족이 흩어지는 날에는 차라리 지금이 그리울 것이다.
27일 전국에 있는 입시학원들이 1학기 종강이고 3,4일씩 방학으로 접어드는 7월의 막바지다. 해마다 이 맘 때가 되면 산으로 바다로 마음이 먼저 가 있어 들뜬 기분으로 사람들이 시간을 보낸다. 휴가철에 나는 주로 고향으로 내려가 어머님과 시간을 보낸다. 홀로 계시는 어머님을 두고 나와 자식들만 즐겁게 지낼 수 없고
오히려 함께하는 것이 더 재미있고 보람이 있기 때문이다.
28일 내일 장모님 생신이라 아내와 아들 딸은 오늘 먼저 내려가고 나는 강의 일정으로 내일 가기로 했다. 노량진 특강시간에 현대시 10여편을 단숨에 해설했는데 준비를 많이 해서 그런지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29일 장모님 생신이라 청주에 갔는데 용구 아빠도 오지 않고 더구나 조카 재규가 새벽에 쓰러져 성모병원 응급실로 갔다면서 가족들이 긴장의 시간으로 보내고 있다. 곧장 성모병원으로 찾아가 만나보고 이야기를 들으니 성당 일로 피곤하여 순간적으로 새벽미사에서 정신을 잃은 모양이었다. 돌아온 의식을 확인하고 청주를 출발하여 고향으로 가면서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려 대천해수욕장에 들어섰다. 여름 휴양지로 유명한 곳임에도 물이 탁하여 실망스러웠는데 오랫만에 바다에 온 아들과 딸은 좋아라며 즐겁게 해수욕을 즐긴다.
30일 저녁에 고향집에 도착하여 어머니와 식사를 마치고 바다와 여름 휴가의 낭만적인 기분을 느껴려고 마당에 텐트를 치고 잤다. 아침에 눈을 뜨니 덩그러니 마당에 누워 있는 꼴이 거지같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볼까 두려워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 아침에 김치찌개로 식사하고 집을 나서 동해안으로 향하는 시간, 어머님과 동행하기 위해 온 것인데 무릎이 좋지 않아 걷기도 힘들다며 한사코 거부하신다. 어머님과 함께 가까운 서해나 집 주변을 여행하는 것이 좋을 듯도 싶었지만 가까운 곳도 외출하여 걷기 힘들다니 어쩔 수 없이 우리만 동해안을 목표로 출발했다. 충청도를 가로질러 제천휴게소까지 순식간에 이동하여 한여름 물레방아가 돌고 있는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고 동강 줄기를 따라 오후에 단종의 한이 서린 영월 청령포에 도착했다. 섬이라기에는 초라한 유배지를 나룻배를 타고 건너 우뚝 솟은 소나무와 마주하여 지난날의 슬픈 역사를 이야기했다. 영월을 출발하여 태백으로 고개를 넘는 길에 널찍하게 자리잡은 정선 카지노에 들렀다. 도박을 하지도 못하고 취미에도 없어 카지도 안은 구경도 안하고 아들과 지하에서 오락하고 분수가 있는 공원을 걸으며 기념사진만
찍었다. 이른 저녁에 조용하고 깨끗한 발리콘도(숙박비 92000원)에 여장을 풀고 다시 나와 태백방향으로 10여분을 가니 삼국시대 적멸보궁 정심사가 있다. 과거에는 석탄의 기운이 하늘을 덮었을 이곳에 지금은 길 가장자리를 흐르는 물소리가 전부이고 조용하기 이를데 없는 강원도 산골이다. 숙소로 돌아오면서 고한읍내 회관에서 부대찌개로 저녁을 먹고 아이스크림과 치킨을 사가지고 콘도로 돌아 왔다.
31일 해발 700미터 발리콘도에서 잠을 자고 새벽에 일어나 산책을 하고 오니 어젯밤 늦게까지 문자만 하고 여행이나 강원도 경관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듯한 아들은 계속 자고 있다.
참치찌개로 아침식사하고 마운틴 콘도로 이동하여 곤도라를 20여분 타고 1400미터 스키장 정상에 도착했다. 평창 올림픽을 대비하여 조성하는 과정인데 오를수록 구름이 아래 깔리고 한여름인데도 추위까지 밀려오는 정도다. 사방을 둘러 봐도 온통 산으로 둘러 쌓여 방향을 분간하기도 어렵다. 정상에서 한참을 보내고 다시 내려와 오후에 태백산 도립공원으로 들어가 석탄박물관을 구경하고 나왔다. 날도 덥고 긴시간 혼자 운전하니 피곤하고 1박2일 일정을 뒤로하고 서울로 향하는데 아내는 다시 동해바다로 가자고 한다. 본인은 즐거운 여행이지만 나는 초행길이라 길도 몰라 신경쓰이고 마음의 여유도 없으니 답답하다. 아들에게 동해안 가는 길 검색을 시켰더니 더듬거리기만 하고 내가 한다고 나서다가 선글라스까지 부서졌다. 동해안을 포기하고 에어컨도 켜지않고 고속도로 4시간을 달려 서울로 돌아왔다. 차량 정체와 비싼 물가 등을 생각하면 사람들이 움직인는 휴가철에는 집 근처에서 지내는 것이 좋고 봄이나 가을 특히 평일에 시간을 내어 여유롭게 다니는 것이 현명하게 휴가를 보내는 방법이다. 매미의 합창과 함께 8월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