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 송천교회(松川敎會)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내륙순환길 4
영덕송천교회(松川敎會)는
낙평교회와 함께 1919년 영덕지역 3.18 독립만세 운동의 중심이었다.
송천교회 성도들을 중심으로 1919년 3.18 독립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일제의 탄압으로 교회가 두번이나 폐쇄되는 아픔을 격기도 하였다.
1919년 일시 폐쇄되었던 교회는 1920년 다시 교회 문을 열고
1928년 교회 내 신간회와 기독청년회를 조직하여 독립을 위해 앞장섰다.
1941년 일제에 의해 교회가 강제 폐쇄되어 원황교회와 일시 합병하였다.
송천예배당은 보기 드문 목조 건물의 예배당이다.
지붕 아래에는 목구조의 특이한 십자가 형태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으며
원형이 잘 보존되어 건축학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2006년 12월 4일 영덕 송천예배당(盈德松川禮拜堂)이란 이름으로 국가등록문화재 제288호로 지정되었고, 2024년 5월 17일「국가유산기본법」시행에 따라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변경 재지정되었다.
낙평교회의 전도사 김세영 조사는
1919년 3월1일에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구세군 낙평영문 권태영 담임사관에게 거사를 일으킬 것을 제안하지만,
김세영 조사는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고 구세군 권태영 사관은 송천교회의 정규하 장로와 90여명의 교인들과 합세하여 만세운동을 주도하었다.
3월18일 마침내
영해,영덕 일대의 많은 기독교인들과 3000여명의 군중들이
성내장터에 모여서 우렁찬 만세 함성을 외쳤다.
그것이 ‘영해만세운동’이다.
송천교회(盈德松川禮拜堂)
1910년 11월 20일 설립하여 12칸의 초가집을 예배당으로 사용하던 중
1953년 미국선교부의 지원을 받아 예배당을 건립하였고
마당에 우뚝 자리 잡은 낡은 종탑과
107년의 역사를 지켜온 목조 예배당은 살아있는 기독교 문화유산이다.
영해만세운동의 현장을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꼭 한번 찾아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