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시절의 어느 따스한 봄날
자전거 페달을 씨게 밟으며 작은고개를 넘어 아양교를 건너고 플라타너스 그늘이 시원한 도로를
휘바람을 불며 신나게 달리다가 농로로 진입하여 부동지에 도착하니 괜찮은 포인트에는 이미 선객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종사촌 H와 상의 끝에 인근의 신덕지로 향했다.
제방기준 송아지못 우안에서 무너미를 바라보며
신덕지는 내생애 첫 월척을 한 곳이라 요즘도 고속도로를 타고 부산방면으로 갈 때면 신덕지가 잘 있는지
목을 쭈욱 빼고 차창밖으로 수면을 쳐다보곤 하는 곳이다.
지금은 배스, 블루길 등의 외래어종이 들어와 터가 센 한방터가 되었으나 당시에는 말풀이 수면을 뒤덮어
작업을 하지 않으면 낚시가 불가능하던 조그만 토종소류지 였다.
신덕지에 도착하여 보니 여기도 자리가 마땅찮아 이리저리 기웃거리는데
탱자울타리 부근에서 낚시하던 어느 중년 조사님이 송아지못에 한번 가보라고 하였다.
그 조사님이 가르쳐 준대로 실개천을 따라 쭈욱 가니까 못뚝이 보이고 과수원 울타리를 돌아서
자전거를 끌고 낑낑 거리며 오르막을 힘들게 올라가니 수면과 뚝방이 보였다.
새로운 못을 접할 때의 그 기분은 신세계를 발견한 이의 그것에 절대 밀리지 않으리라.
우리 둘은 환호성을 지르며 못을 찬찬히 둘러 본뒤 제방우측 부근에 나란히 자리 잡았다.
송아지못 무너미에서 환성산을 바라보며
중앙의 뾰족한 산봉우리가 대구근교의 무박2일 종주산행으로 유명한 가팔환초의 환성산이다.
지금은 주변에 호텔과 공장 등의 건물이 많지만 당시에는 동네와 멀리 떨어진 아주 외진 곳이였다.
활처럼 휘어진 못뚝 아래는 사과밭이었고 상류는 청석삐알에 조그만 밭들이 조성되어 있었으며
제방 왼쪽 무너미 건너편에는 무덤이 몇기 있는 솔밭이 있었는데 그 부근이 뗏장 등의 수초도 적당히
있는 특급 포인트로 보였다.
그 옛날 H와 나는 이 정자 아래에서 낚시를 한 듯 하다.
나무그늘이 진 솔밭 포인트가 마음에 들었지만 이미 선점하신 분들이 있어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제방우측에 자리잡고 내리쬐는 땡빛을 피하려고 받침대를 땅에 박고 끈으로 우산을 받침대에 묶어서
그늘을 만들었다.
당시에는 파라솔이 귀한 시절이라 꾼님들 대부분이 우산으로 햇빛을 막은 듯
지렁이와 떡밥 그리고 밥플떼기 세가지 미끼를 써 보니 지렁이가 잘 먹혔다.
산지렁이가 아닌데도 굵고 노란 빛이 나는 통통한 지렁이라서 그런지 손바닥만한 붕어들이
환장을 하며 덤볐다.
H와 나는 다른 곳의 지렁이보다 훨씬 굵고 통통한 지렁이가 있는 붕덤산 옆 외딴집 아래 그 수채를
마치 소중한 곳간처럼 여기며 다른 이들이 물어도 절대로 알려 주지 않았다. ㅋ~
못둑아래 호텔 등이 있는 곳이 예전에는 사과밭이였다.
갈길이 먼지라 우린 해가 어디쯤 걸렸는지 수시로 하늘을 확인하면서 탈탈거리는 손맛을 즐기다가
해가 두어뼘 남았을 때쯤 나중에 이곳에 오면 저기 솔밭에서 낚시해보자면서 점방을 걷고
비포장 흙길을 자전거를 타고 율하천을 따라 쭈욱 내려와 집으로 돌아 왔다.
제법 먼길이라 집으로 돌아오니 땅거미가 내리는 저녁무렵이 다되었다.
송호지는 목책 등으로 못을 한바퀴 빙 돌 수 있는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어
대구근교의 숨겨진 산책명소로 알려져 있다.
다시한번 더 송아지못을 찾은 것은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어느 가을날 이였다.
송아지못은 자전거로 가기에는 좀 먼 곳이라 H와 몇번이나 이곳에 간다고 출발했다가도 중간에
사월지나 가산지, 중동지, 부동지, 상매지, 나불지, 분암지 등 좀 더 가깝거나 조황이 좋은 곳으로 출조장소를
급히 바꾸거나 자전거를 타고 이리저리 가다가 꾼님들이 많이 있거나 조황이 좋으면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눌러 앉아 버릴 정도로 당시에는 논밭 사이로 크고 작은 소류지들이나 둠벙들이 많이
산재해 있었기 때문에 출조장소가 중간에 바뀌는 경우가 비일비재 했었다.
비교적 가까운 K2 활주로 옆의 길가 조그만 둠벙과 그 라인에 있는 사월지와 중동지를 선호했던 것 같다.
사진을 잘보면
못 중앙부근 수면에 분수도 보이고 조명시설도 설치되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 옛날 기억을 되살려 율하천변을 따라 올라오다가 좁은 농로길로 들어서서 과수원 울타리를 지나
못상류 부근에 차를 주차 시킨 뒤 쭈욱 훑어보니 못은 변함없는데 그림이 그 때보다 더 좋아졌다.
무너미 좌측의 솔밭은 여전하고 못가장자리로 뗏장밭이 깔려 있고 무너미쪽과 상류 일원에는 부들과 갈대가
혼재한 정수수초가 덤성덤성한 것이 그야말로 환상적이라 목구멍으로 침이 꼴까닥 넘어갔다.
그 옛날 한번 앉아보고 싶었던 솔밭부근엔 자리가 세군데 닦여져 있었는데 무너미쪽으로 한분이 계셨고
그분과 조금 떨어진 솔밭입구 상류 뗏장밭에 참한 자리가 있어 퍼뜩 자리를 잡았다.
파라솔을 치고 정성스레 다대편성을 한 뒤 수면위로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웬지모를 만족감에
씨익 웃고 있는데 자박대는 소리와 함께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밤낚시 하시능교?"
뒤돌아보니 먼저 와서 무너미쪽으로 대를 편 나하고 연배인 듯한 칸츄리스타일의 꾼님이였다.
"녜, 함 해보고 씨알이 괜찮으면 늦게까지 할낍니더."
내자리로 다가온 꾼님은 낚시대를 참 이쁘게 폈다고 하면서 잘되는 포인트와 미끼는 현장새우가 잘 먹히며
대물이 잡히는 시기와 입질시간 등의 정보를 깨알같이 알려 주었다.
사진 중앙의 건물이 있는 곳에 솔밭이 있었고 그 부근이 송아지못의 특급 포인트 였고
내가 20세기말인 1997년경에 홀로 밤낚시를 한 곳이다.
그 칸츄리한 분은 이못에 자주 오지만 밤낚시를 한번도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뭔가 얘기를 하려다가
얼버무린 뒤 여기는 민가와 멀리 떨어진 워낙 외진 곳에 있고 음기가 센 곳이라 근처 꾼님들도
밤낚시를 꺼려한다고 하곤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였다.
그리고 얼마 후 보따리를 싸고 손맛보라고 한 뒤 오솔길을 따라 총총히 사라졌고 호수에 홀로 남은
나는 적당한 곳에 채집망을 던져 놓고 미끼를 끼워 캐스팅하니 해는 뉘엇뉘엇 노을이 참하게 지고 있었다.
송아지못은 좀 높은 지대에 있고 시계도 양호하여 음기가 세어 보이진 않는데 괜한 소리를
들은 것 같아 좀 찝찝했지만 민생고를 해결하고 캐미를 꺽어 찌불을 밝힌 후 차량과의 동선이 너무 멀어
아무도 오지 않을 듯 하여 차를 낚시자리에서 최대한 가까운 곳에 두려고 좁은 길에 후진하여
낚시자리에서 10여미터 지점까지 당겨서 주차하였다.
낚시자리로 돌아오는데 솔밭 무덤뒤에서 뭔가 후다닥 달아나는 듯 하여 무슨 짐승인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자리에 돌아와 담배 한개피를 무는데 수면을 뒤흔드는 앙칼진 소리가 들렸다.
꾸웨액~
고라니 우는 소리가 구슬픈 밤은 깊어 가는데 찌불은 밤하늘 행성처럼 깜박임조차 없었다.
그러다보니 고라니가 울 때마다 낮에 들은 얘기들이 달팽이관 속에서 끊임없이 확대 재생되는 듯한
요상한 느낌이 스물스물 나의 감각기능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못은 음기가 센못이라 현지꾼들도 밤낚시를 꺼리는 곳 입니데이!"
누군가가 옆에서 속삭이는 듯 낮에 들은 얘기가 반추되는 것 같아 괜히 미끼를 갈아 던지고 주변 물건을
정리하고 쓸데없이 차량이 있는 곳까지 왔다갔다 하기도 했다.
입질이라도 있으면 이 미혹한 상태를 극복할 수 있으련만 찌불은 미동조차 없으니 철수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듯 하여 결국 자정무렵에 점방을 걷었다.
찬바람이 부는 어느 날 율하천을 따라 산책하다가 그 옛날 송아지못이 궁금하여 무작정 천변을 거슬러 올라가서
그 옛날 기억을 반추하면서 송호지를 한바퀴 돌아보니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는 걸 실감한다.
지금 송호지는 낚시금지다.
추억만 남아있는 잃어버린 못이 되어 버렸다.
못은 그자리에 있지만 낚시꾼이 낚시를 못하는 곳이면 꾼으로선 잃어버린 곳이자 빼앗긴 못이라고 본다.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듯이 빼앗긴 못에도 봄이 올 수 있을런지?
율하천6교 삼거리에서 계속 올라가면 매여동에 다다르고 다리를 건너 송호지 상류를 지나고
대구외곽순환도로 아래를 통과하여 내려가면 부동마을과 부동지가 나온다.
이길이 예전에는 부동으로 넘어가는 임도 비슷한 좁은 비포장도로였는데 지금은
이렇게 잘 닦여져 있다.
오래전 송호지에 낚시하러 왔다가 여건이 좋지 않아 부동지로 가려고 나의 두번째 애마인 캐피탈을 타고
비포장도로이던 이 길을 따라 부동으로 내려간 적이 있었는데 길이 좁아 나무가지 등이
차량 여플데기를 찌익~ 긁는 소리를 들으며 괜히 이리로 왔다고 후회하던 모습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