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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열쇠를 쥔 소녀, 파멸로 치닫는 요부, 일몰의 언덕에서 장미 향을 피우는 중년
여인까지…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신비로운 ‘단독자’들이 함께 모여 만들어 내는 그림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경쟁과 긴장, 모성과 자매애로 충만했던 여배우들이 있는 풍경 속으로.
Photographed by Kim Bo 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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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과 전도연이미숙
난 프로페셔널한 배우를 좋아해. 배우는 평생을 배우답게 살아야 한다고. 배우라는 타이틀이 어디 쉽게 얻어지는 것인가? 연기만 잘한다고 배우가 되는 것은 아니잖아. 인성과 개인의 철학과 사회 의식과 연기라는 고도의 기술이 합산돼서 탄생되는 거라고. 누군가에게 “난 배우예요”라고 말할 땐 그 어조와 태도에서 감격과 자랑스러움이 배어나와야 하는 거야. 그래서 관객들이 주머니 털어서 영화 속의 나를 보러온다고 했을 때, 그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것이 오로지 ‘연기적인 기술’이어서만은 안 돼지. 아름다워야 하고, 매력적이어야 하고, 관객의 일상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있어야 하고, 그 삶과 사회에 그 배우의 존재로 인해 파도와 해일이 일어야 한다고.
난 이제까지 작품 중에 <정사>가 참 좋아. 연하의 남자에 대한 사랑이고 게다가 불륜이었고, 당시에는 좀 이르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그 영화로 사람들이 가족과 사랑과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잖아. 이재용 감독 말대로 ‘10년 후에 봐도 촌스럽지 않은 영화’라고. <스캔들>의 조씨 부인 역은 <정사>할 때부터 감독이 얘기했지. 몇 년 걸릴 테니까 기다려 달라고. 1982년에 <장희빈>하고 나서 20년 만에 사극이야. 남정네들을 가지고 줄다리기 하는 캐릭터, 그거야말로 정말 여배우가 탐할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 아니겠어? 시대가 흘러도 남녀 사이의 밀고 당기는 사랑 게임은 똑같다구. 그런데 사극 속의 여인들은 남정네 앞에서 감추고 내숭 떨어도 결국엔 계산하지 않고 수절하든가 아주 밤도망을 가버리든가 드라마틱한 선택을 해버리거든.
그런 순수함과 요부스러움으로 치면 도연이한테도 딱 떨어지지. 도연이야말로 정말 양면이 많은 아이니까. 난 도연이 영화 중에 <약속>이 정말 좋아. 최고라구. 난 요즘도 가끔 <약속>을 보고 울어. 그 똑 부러진 여의사가 남자랑, 그것도 깡패랑 결혼해서 살겠대잖아. 세상에 그런 아픈 사랑이 어디 있어. 전도연이가 그 신파를 진짜 인생처럼 만들어서 내놨는데, 나는 그때만큼은 배우가 아닌 여자가 돼서 그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린다니까. 순발력과 몰입이 대단해. 고정된 이미지를 갖고 가지 않고 장르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그런 대담함도 요즘 여배우들에게 볼 수 없는 모습이고.
난 내가 영화를 만든다면 <대부> 같은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구. 가족 대대로 벗어날 수 없는 처절한 운명과 맞서야 하는. 힘과 신파와 운명과 사람이 있는 거대한 시대극 말이야. 할머니 대부터 손녀까지, 심장을 짜는 극적인 신파와 모던한 여성성이 공존하는 그런 드라마 말야. 난 <스카페이스>의 미셸 파이퍼 같은 역할 정말 좋아해. 보스의 와이프가 똘마니인 알 파치노와 사랑에 빠지잖아. 그 역에 도연이를 캐스팅해도 좋지. 도연이는 장애인도 할머니도 할 수 있는 여배우야. 카메라 앞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몇 초 만에 계산을 끝내는데, 스크린에선 천연덕스러운 본능만 보이지. 자기를 벗어 던질 수 있는 근성이 없는 여배우라면 죽었다 깨도 불가능한 일이야. 스타가 남발하는 시대잖아. 한 계절 반짝하는 거 말고 수십 년이 지나도 하늘에 반짝이는 별이 되려면 늘 도전하고 관리하고 내가 나이기 이전에 ‘여배우’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여배우로 살기 위해 난 얼마나 노력하겠어. 집에서도 밤에도 선글라스 쓰고 있다구. 그래서 인공적인 사진이 싫어. 연기는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데 사진 앞에선 어쩔 수 없이 발가벗은 내가 나와버리잖아. 결혼하고 나도 10년의 공백이 있었어. 그때 갈등이 많았지. 배우의 길을 가야 하나, 직업인의 길을 가야 하나. 안전한 직업인을 선택하려면 당연히 ‘아줌마’배역을 맡아야지. 하지만 스스로 포기하기 싫었어. 직업적으로 아줌마의 길로 들어서 버리면 후배 여배우들도 차례로 나이의 중력에 항복해 버릴 거 아냐. 능청스럽고 사악하고 여성스럽고 섹시하고 때로는 무한의 관용과 의리를 지니고 있을 것 같은, ‘중년’이라서 뒷방에 있는 게 아니라 ‘중년’이라서 주목 받을 수 있는 그런 여배우로 계속 갈 거라고. 50대가 되면 60대가 되면 혹은 70대가 되면 그때쯤 ‘이미숙은 어떤 여배우’라고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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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연
미숙 언니는 저 가채만 벗어버리면 몇날 며칠이고 밤새며 촬영할 수 있겠대요. 흠흠흠. 언니는 20년 만이라지만 난 사극이 처음이에요. 언니는 나를 ‘변신’에 능한 배우라고 보지만, 난 사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이에요. 감독들이 내 전형적이지 않은 외모 때문에 여러 가지 이미지를 발견하고, 그래서 매번 다른 배역을 맡겨버리는 것뿐. 아시잖아요? 난 여배우 대열에 서기까지 다른 여배우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어요. 대부분 ‘저 여배우 예쁘다’에서 시작하는데 난 ‘전도연 연기 잘한다’에서 출발해서 지금의 여배우가 됐지요. 미숙 언니나, 혜영 언니나… 내가 윗세대 대배우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호흡할 수 있는 이유? 기가 센 남자 배우들을 상대해와서 그런가 봐요. 한석규 선배(<접속>), 최민식 선배(<해피 엔드>) 등등…. 배우들은 서로 알지요. 나도 살고 너도 살려면 기싸움으로 소모하기 보다 연기로 서로 토스가 되어야 한다는 걸.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 혜영 언니는 모든 부분에 자신감이 넘쳤고 최선을 다했고, 반면 그래서 늘 텐션과 불안 속에서 살았죠. 미숙 언니는 연기할 때만 잠깐 텐션 상태에 들어가고, 모든 부분에서 릴랙스예요. 일상에서 위트와 카리스마가 넘치죠.
하지만 여배우와 여배우의 관계는 나이가 적든 많든 현장에선 라이벌 의식을 느껴야 하는 상대랍니다. 나이가 많을수록 절대 포기하고 싶어하지 않죠. 달아나지도 않아요. 난 그게 너무 좋아요. 평생 배우로 살 거라는 라이벌의 팽팽한 에너지가 느껴지니까요. 누군가를 의식하고 사는 것을 통해 자신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죠. <발몽>이나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 등 <스캔들>의 여러 원작들을 보면서 생각했어요. 미숙 언니가 맡은 ‘유혹녀’ 조씨 부인은 아주 세죠. 난 미셸 파이퍼를 좋아하는데, 그녀도 유혹녀인 글렌 클로스한테 끌려가더군요. 전통적으로 숙부인은 캐릭터 어필에서 약자입니다. 그래서 욕심이 생겼죠. 내가 맡은 ‘순결녀’ 숙부인을 전도연만의 색깔로 각인시키고 싶다는. 난 언제나 특별한 사람이길 원해왔습니다.
난 미숙 언니의 <겨울 나그네>를 좋아해요. 강석우 씨와 안성기 씨 사이에서 단발 머리에 청순가련한 여배우의 심상을 최고로 표현해주었던. 그때 난 영화 속의 여배우가 참 아름다운 존재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역할은 ‘이미숙’이라는 여배우가 아니면 할 수 없지요. 언니는 <정사>와 <울랄라 시스터즈> 같은 느낌을 극단적으로 다 소화할 수 있어요. 예쁜 얼굴로 모든 장르를 소화하는 것을 보면 ‘정말 배우다’라고 감탄하지만, <겨울 나그네>처럼 여배우의 정점을 보여주는 로맨스가 다시 언니를 통해 리메이크 되었으면 해요.
난 여배우의 최고 조건은 ‘예쁜 외모’라고 생각해요. 질리지 않는 외모가 바로 여배우의 천부적인 재능입니다. 난 내가 출연한 영화를 한 번 이상 본 적이 없어요. 한 번 보면 ‘질려서’ 다시 보기 싫어요. 화면 속의 나는 조금의 실수도 보여주지 않으려는 악바리 같아 보여서 징그러워. 너무 독하고 치열한 기운이 느껴지죠. 요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시청자나 관객이 원하는 건 숨도 못 쉬게 연기 잘하는 여배우가 아니지 않을까? 내가 나에게 관대해질수록 보는 사람도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거라는 거죠. 난 스타 여배우로 안주할 생각도, 대배우로 도약할 생각도 없어요. 스타의 위치나, 여배우로서의 명예에 큰 욕심이 없기 때문에 맘껏 모험을 즐기기도 했어요. 어차피 나, 전도연은 불변이니까요. 나는 결혼이 일을 놓게 되는 순간이라고 생각해왔어요. 여배우는 사라지는 것으로 명분을 얻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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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가 지닌 유혹의 기술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이미숙이 반경 1백m 공기를 자신의 카리스마로 후끈하게 전염시켜 버리는 뜨거운 스타일이라면 전도연은 한 발 뒤로 물러서서 면도날처럼 조분조분 자신의 끼와 여성성을 씹어서 내뱉는 차가운 스타일이다. 6월의 태양이 작열하는 어느 오후, 검은 가채를 이고 툇마루에 버선발을 드러내고 장부처럼 웃는 이미숙과, 제 이름이 쓰인 녹차 생수통을 들고 다소곳이 말을 풀어내는 전도연은 너무 다른 여배우의 모습이다. 방석을 챙겨주고, “언니는 한복 색깔이 좋아서 컬러로 찍어야 예쁜데”라고 연신 이미숙을 서포트하는 전도연이나, “예쁜 도연이 좀 잘 찍어주세요”라고 특별히 당부하는 이미숙이나 그들은 서로의 재능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그래서 스크린 속에서 스스로가 더욱 존엄해질 수 있었던 여배우들이었다.
출처 : 스캔들카페
첫댓글 와우,, 정말 멋진 말을 하셨네요,, ^ ^ 약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는데,, 그래도 기사 읽으니까 좋네요~ ^ ^
그렀네요~읽을수록 참 대단한 배우라고 생각들어요..이걸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인데,배우로써의 인생,참 매력적인것 같아요.그리고 배우로써의 자부심 대단하신것 같아요~~암튼 저도 오랜만에 기사 반갑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