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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보 16/ 김일성 외/ 고은
김일성
우수리 한푼 없는 땅 건넜다
피붙이들 하나하나 원수에게 잃었다
싸움 속에서
꿈은 무르익었다
그 남만주의 밤 한별* 동지는 아슬아슬하였다
아슬아슬 노래였다
산 첩첩 바다가 없었다
다음 백년이 오기 전 백년아 수이 가거라
한 이름에서
우둔한 감정이 사라질 빈 들녘까지는
이곳은 아직 넘어갈 바람 치는 고개 몇이 더 있다
촉목하라**
* 한별 : 동북항일연군시기 젊은 김일성 장군의 호
**촉목(觸目) : 눈에 닿는 일체(「조당집(祖堂集)」)
승렬이 무덤
소련 경비대에 들키면 끝장
그날 밤
비가 추적추적 왔다
남으로 도망가는
몇 가족이 숨죽여 산등성이를 허위 넘었다
이윽고 북위 38도선
소련 경비대에 들키면 끝장
넘을 때
젖먹이가 울었다
엄마가 그 아기를 포대에 씌워
울음소리를 막았다
드디어 넘었다
돈 먹은 안내자는 금세 사라지고
젖은 산등성이
명감나무 가시에 찔리고도
모두들 휴 휴 비 맞으며 숨을 쉬었다
이제 살았다
이제 넘었다 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아기 엄마가 포대기를 벗겼다
두살배기 아기는
숨막혀 죽어 있었다
엄마는 죽은 아기 흔들었다
흔들며
울부짖었다
승렬아 승렬아 승렬아…… 승렬아
아빠가 삽도 없이 맨손으로 흙을 팠다
아기송장 빼앗아 묻어버렸다
승렬아
승렬아
승렬아……
에레나
1940년 노고지리 솟아오르는 이른봄 초록 보리밭머리 태어났습니다
젖이 모자라
마을 돌며 푸대접 젖동냥으로 자라났습니다
그렇게 아기거지의 삶이었습니다
여섯 살 때부터
어머니 따라 밤품삯일을 나섰습니다
그렇게 아기일꾼으로 숨찬 삶에 발디디었습니다
전쟁 뒤
열여섯살 제법 아리따웠습니다
조금 웃음 머금어도
보조개가 쌍이었습니다
막막한 세상임에도
그 눈동자 속에 무슨 천사같은 부신 손님이 내려와 있었습니다
1956년 여름
저녁 야학당에서 돌아오는 길
지프차 미군 두 놈에게
강간당했습니다
죽고 싶었습니다
죽고 싶었습니다
하늘도 없어져버렸습니다
그러나 고향은 감싸주는 곳이 아니라
손가락질하는 곳이었습니다
울며
집 떠나
팔자대로 경기도 송탄 미군부대 밖 양공주가 되어버렸습니다
순자가
에레나가 되었습니다
화대 내지 않고 패대던
미군 사병 한 놈을 취중살해했습니다
무기수가 되어
그동안의 에레나가
다시 순자로 돌아갔습니다
수원
공주
순천 형무소를 전전했습니다
그녀의 입에서 한번도 사랑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온 세상이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되었다고 떠드는데
그녀의 입은 종일 벙어리였습니다
가슴 잿더미 벙어리였습니다
타인의 눈
그 전쟁은
모르는 사람과도 주고받던 인사말을 앗아갔다
느린 말씨도
순하디순한 말씨도 앗아갔다
말들이 빨라졌다
말들이 날섰다
가을 썬득썬득한 바람 속
사람들의 해맑은 눈빛들도 앗아갔다
차츰
사람뿐 아니라
소와 말의 눈도 자갈밭 머리에서 충혈되어 사나웠다
대전역전
껌팔이 아이 하나가
다른 아이 하나를 죽도록 패대고 있었다
삥 둘러서서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바람이 먼지를 일으켜세웠다
누구에게도
고행산천의 정든 얼굴은 없었다
절망
1950년 10월 5일
지난 3개월
점령당한 서울을 탈환한 뒤였다
온통 희망투성이였다
서울 자하문 밖
늘 냇물소리 들리는 납작집
자두꽃은 내년 봄에 피겠지
병들어
누워있는 그 집 딸이
유엔 잠바 입은 사내한테
강간당했다
그녀는 늘어져버렸고
사내는 침을 탁 뱉고 사라졌다
길가의 전봇대에는 이승만 대통령 만세 매카서 원수 만세가 붙어 있었다
온통 희망이었다
소년 준호
어둑어둑한 섬진강 기슭
아버지의 뼛가루를
바뿐 물살에 뿌려 날린 뒤
소년은
노고단 쪽을 바라보았다
노고단은 구름 속
이제 열네살 준호는
어디에서도
아버지 없이 사흘 굶어 살아갈 것이다
바람은 앞에서 불어올 것이다
소년의 얼굴은 아버지의 얼굴을 빼다박았다
빨갱이 새끼
빨갱이 새끼
그 이름이 평생 따라붙을 것이다
귀향
1950년 6월말
중학교 5학년 김명규는 학도병으로 나갔다
부대는
부대 이동이라는 이름으로 후퇴를 거듭했다
빼앗고 빼앗기기 몇십번
경상북도 왜관 윗녘 다부원전투에서 살아남았다
거기서 살아나다니
소대원 생존자 9명 중의 하나였다
여드름이 많았다
그가 서울 수복 이후
카빈총 메고
고향에 돌아왔다
오래 과부이던
어머니도
형 세규도
철수하는 인공위원회에 학살당했다
동네에서 한영식이 있었다
어머니 무덤
형의 무덤에서 하루를 보냈다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의 무덤에도 다녀왔다
한밤중 총소리가 났다
자살이었다
막소주 대둣병이 넘어져 있었다
양형모
여덟살 아이에게
눈보라였다
여기가 어디야
1·4후퇴 경기도 평택쯤
정거장 뒤
가도 가도 논뿐이었다
이모작 보리밭 논뿐이었다 눈이 쌓였다
눈보라였다
그 논바닥에 가마니 둘러
피난민 80여명 눈보라 속 웅숭그렸다
그 가운데
형모 아버지 어머니
형모와 동생 둘 다섯 식구였다
한가족으로 살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한가족으로
굶어도 함께 굶고
먹어도 함께 먹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저녁나절 땔감 구하러 형모 떠났는데
쾅!
하고 폭탄이 떨어졌다 오폭이었다
80여명이 온데간데없이 날아갔다
형모 달려와보니
아버지도
어머니도
동생들도 없었다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함께 온
백승복이네 식구도 없어졌다
폭탄 떨어진 웅덩이 일대
팔뚝 하나
구두 한 짝
잘린 목 하나
안경 하나 흩어져 있다
신음하다가 신음소리 끊은 송장 있다
그뒤로 형모 구멍난 담요 두르고
고아의 길 동서남북 없이 가고 있었다
눈보라 그쳤다
언 하늘에 대고
어머니를 불렀고 아버지를 불렀다
동생들도 불렀다
형진아
형렬아
그 홀아비
1955년 겨울 영동 두메
경부선 기적소리가 멀리 들려왔다
기적소리 있으면
세상은 아직 세상 그대로였다
산들이 서로 벌거숭이
밤에는 덜덜 떨겠지
산들이 서로 벌거숭이 닮아
누가 누군지 몰랐다
오천산
미륵산
촛대봉
앞산
쌍봉리 뒷산
누가 누군지 몰랐다
아이들이 그리는 것은
늘
벌거숭이 붉은 산
황토산
그리하여 황소 울음소리도
붉은 울음이었다
그런 산등성이 석양머리
한 사람 지친 걸음이 넘어온다
누굴까?
누구기는 누구
절반은 돌아버리고
절반은 제정신인 그 사람
마누라와
아이 둘 한꺼번에
박격포탄에 맞아죽고
황소 한 마리도 죽어버리고
혼자 살아남은 사람
머리숱 많은 이종수 그 사람
소리는 기러기 소리인 듯
높은 소리였다
어허 3년 전쟁으로 몇백만명이 죽어갔다
그 죽음 가운데
이종수의 가족도 있었으니
빈 외양간 들어가
여보 마누라 여보 마누라
그리고
장섭아
차선아
차섭아
이 소리밖에 나오지 않는 그 사람
그해 8월
갓난아기
두 이레 지나
16일째
아직 이름도 짓지 않았다
눈도 뜨지 않았다
1950년 8월 7일
항구의 창고들이
미국 전투기들의 집중폭격을 받았다
소이탄이 작렬했다
항구의 언덕빼기
채 눈뜨지 못한 갓난아기 다리
조용히 죽어 있었다
엄마는 그것도 모르고
그냥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이런 세상 갓난아기 그 생애가
무엇하러 있었던가
송탄 피난민수용소
수용소라 부르지만
쇠울타리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숯고개 너머
중고품 천막 치거나
합판 판자로 움막 지어
비바람 우선 막은 곳이었습니다
바야흐로 중공군이 메뚜기떼처럼 내려온다 합니다
또 송탄에서
조치원으로
아니면 대전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끝내 임시수도 부산으로 갈까 합니다
이런 어수선인데
북녘땅 신안주에서 온 유병철이 아내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누비옷 속에 움츠러든
유병철에게 무슨 풍류가 남았던지
허허 철새 한 마리 태어났구나 하고 막소주 반되를 마시고
기뻐하였습니다
용둘리 두 집
군산 십리 밖 용둘리
하와이 무궁화 기어오른 전나무 울타리
선산 김씨 재준 영감네 큰댁
본채 방 넷
사랑채 방 둘
행랑채 방 하나
그런데도 피난민 한 식구 거절했다
사나운 개
마구 날뛰며 짖어댔다
청풍 김씨 평모네 집
본채 방 둘인데
방 하나 비워 피난민 한 가구 들였다
헛간에 붙어 있던
허섭스레기 쌓인 방 비워
오들오들 떠는 피난민 한 가구 들였다
타관사람 맞이함이 이렇게 두 가지였다 겨울 밭보리 푸르렀다
함박눈이 내렸다
용둘리 피난민 그럭저럭 열한 세대였다
똥냄새 달라진 변소도 늘어났다
이정순의 넋
인공(人共) 3개월 다 지나갔다
면 인민위원회 간부들
도망쳐야 했다
눈에 핏발 뻗쳐
그냥 도망치지 않았다
150명 비행장 야간작업이라고 끌고 가
일제말
관동군 방공호마다 밀어넣었다
생매장이었다
죽창에 찔려
염통이 튀어나온 채
벌거숭이로 강간당한 채
돌멩이로
머리 맞아 죽은 채
아니
산 채로 밀어넣고 흙 덮었다
용둔부락 미인 이정순
아버지가 반동
옛날 수리조합 이사장이어서
그 아리따운 외동딸
이놈 저놈 윤간당한 채 묻혀 있었다
거의 썩어가는 시신인데도
어찌 그다지
지그시 눈 감고 죽은 얼굴
조용하고
조용하더뇨
다음해 1주기 무렵
전쟁은 아직도 그칠 줄 모른는데
옥정골
이정순의 친구 고옥희의 꿈에
이정순이 나타났다
옥희야
나 돌아왔다
우리집 삽살개
어머니 따라가며 들길 갈 때
오줌 누어
이정표 남겼단다
나도 이 하늘에 이정표 남겨
다른 길 가지 않고
나 돌아왔다
고옥희 잠깨어 혼자 울었다 첫닭이 울었다
그해 겨울 들판
겨울 들 푹 쉰다
부지런한 주인이면
갈아엎어
추운 바람 쏘이는
겨울 들 푹 쉰다
전사통지서가 왔다 등사판 글씨였다
아들 이승호 하사의 유골상자는 아직 오지 않았다
아버지 김칠성은
하루아침에
쉰한살에서
일흔살 쯤 늙어버렸다
마누라 방바닥 쳐 울부짖는 소리 두고
혼자
겨울 들에 나가 있었다
어디 바라볼 데도 없었다 담배 세 대째였다
여자 몸값
전선에서 남자가 싸구려다
철의 삼각지
하룻밤 3시간 전투에서
아군 97명
적군 142명 죽었다
후방에서 여자는 싸구려다
하룻밤 사랑 값이
러키담배 한값 값이었다
임시수도 남포동
하룻밤 넋을 빼주면
다방 하나 차지한다
후방에서 여자는 싸구려가 아니다
18세기까지
조선 함경도에서
딸 낳으면 경사났다
남도 장사꾼에게
베 한필 받고
내주는 계집아이였다
19세기까지
조선 평안도에서
아들 낳으면 통곡했다
땅에 묻어버리거나 불알을 발라버렸다
병정세 바쳐야 하기 때문이었다
전선에 정일권 총장 나타나면
그날 밤은
춘천에서
홍천에서 색시 실어왔다
각하 객고는 그때그때 다 풀으셔야 합니다
니나노는 똥값이고
마담이나
미스 김은 금값이었다
다섯살 용식이
가난이 고향이었다 정말
다섯살 아이
한나절 입을 움직이고 있다
입 속에
무슨 사탕이 들어 있나?
입 속에
무슨 사탕이 녹아가나?
아 해봐
요녀석 무얼 먹지?
아 하고 어린 입이 열렸다
그 애틋한 혓바닥 위
차돌 하나
배고파서 무얼 먹고 싶어서
차돌 주워
그것을 입 속에 넣고
우물우물 빨아대고 있었다
해설피 좌악 퍼지는 소름 뒤 산바람이 내려왔다
수복 이후
인공 3개월
수도 서울은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
빈집들
미처 떠나지 못한 사람의 집들
모두 다
비오는 날
낙숫물소리만 하루 내내 쉬지 않았다
인공 부역자 40만명
사형
무기
징역 30년
15년
5년
밀고로 검거되었다
무고로 색출되었다
오랜 적대자를
빨갱이로 조작 고발하였다
서대문형무소
무기수 김청랑
눈썹과 눈썹 사이
검은 사마귀 늘 경건하였다
인공시절 서울시 인민위원회 궐기대회에
단 한번 참석한 일밖에 없었는데
빚진 자 유민우의 모략으로
궐기대회 악질 선동자로 기소되었다
그는 고문으로
영양실조로
우울증으로 죽어갔다
끝의 뇌졸중으로 죽었다
무기수가 2년 미만의 기결수로 끝장났다
사체 인수자도 없었다
경기도 검단산 기슭 형무소 무연고자 묘지 풀밭에 묻혔다
빨갱이 2
나는 빨갱이가 아니었다
어느날
내 아이 담임선생 만나
삼거리 주막에서
술 한잔 대접했다
막걸리 한 되하고 반 되를 더 마시는 동안
담임선생은
내 아이를 칭찬했다
공부는 어중간이지만
아이들 싸움도 잘 말린다 했다
그러다가 눈썹 사이 주름 잡히며
김선생은 말하였다
앞으로는
모든 사람이 다 잘사는 평등시대가 옵니다
땅은 지주의 것이 아니라
모든 농부의 것이 됩니다
나는 술맛을 잃고 눈을 번쩍 떴다
주막 안에는
할멈과
술꾼 두 사람이 있었다
며칠 뒤
사복형사가 나를 잡으러 온다는 말을 들었다
동네 이장이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다
이상하다
성님은 빨갱이가 아닌데……
겁이 났다
20릿길 처갓집으로 피했다
그러다가 다른 집으로 피했다
여기저기 옮겨다니다가
너무 신세지는 것이 싫었다
그때 누군가가 산으로 가는 길이라 해서
그 사람 따라갔다
나는 빨갱이가 아니었다
그러다가
나는 빨갱이가 되고 말았다
빨갱이 4
원당리
그 인심 순후한 마을에도
미움이 끼쳐들었다
그 우애 가득한 마을에도
가난과 함께
서로 감싸주는 마을에도
저녁 연기 깔리며
서로 타성받이도
한 핏줄인 마을에도
미운 살이 끼쳐들었다
어쩔까나
윗뜸 재복이네
3년 전
논물 싸움으로
아직껏 윤철이네와 말을 하지 않고 지낸다
그 재복이가
윤철이네 담벼락에
벽보를 붙였다
‘이승만은 미국놈 앞잡이이다’
‘대동청년단은 이승만의 개들이다’
지서 순경 득달같이 자전거 타고 나타났다
벽보 붙인 것
왜 신고하지 않았느냐고
윤철이를 잡아갔다
그날로 윤철이는 빨갱이가 되어버렸다
신세 조져버렸다
윤철이 마누라 빨갱이 여편네
윤철이 아들 용섭이 빨갱이새끼
윤철이네 삽살개 빨갱이네 개새끼였다
변영재
그다지도 덕망이 높았지
그다지도 신망이 깊었지
거창군 신원면 면장 변영재
자전거 타고 퇴근하다가
마을사람 만나면
어느새 자전거 내려
안부 묻고
제삿날 물었다
인민공화국 세상이 되었다
그해 여름 내내
지서 순경이나
대동청년단 지부 다 도망갔으나
오직
변영재 면장은
대한민국 신원면 면장에서
인민공화국 신원면 인민위원장이 되었다
대동청년단원도 돌아와
함께 살았다
그러다가 인민군 후퇴로
다시 대한민국이 돌아왔다
인민위원장은
다시 면장으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
변영재 한 사람이
그렇게 한 고장의 난세를 무사하게 넘겼다
이래야 했던 시절이었다
아니 거창 학살사건이 있기까지는
이래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한두 군데
턱없이 그랬을 뿐
그러지 말아야 할
학살과
보복학살의 시절이었다
죽어 무덤만이 그 저주들을 벗어나
자손의 잔디가 무자손의 잡초에 밀려나고 있었다
어떤 인민군
거창고을 산중에도
인민군이 왔다
인민군 몇 명이
몇단위로 왔다
열아홉
열여덟
열여섯짜리 풋내기였다
순 촌놈들이라
몇마디 말 오고가면
영락없는 산골아이들
밤 박꽃처럼
순박한 아이들
군기는 제법 엄했다
한 녀석이 외딴 마을에 가서
소녀를 꼬드겨 일을 벌였다
이 일이 알려지자
전우들의 심판으로
총살당했다
인민군은
국민학교 아이들에게
아니
인민학교 아이들에게 열심히 노래를 가르쳤다
원수와 더불어 싸워서 이긴……
아침은 빛나라 이 강산……
태백산맥에 눈 내린다 총을 들어라 출정이다
그리고 「김일성 장군의 노래」도 가르쳤다
가르치다가
가르쳐
함께 노래 부르다가
그 여름날과 함께
어느날 사라졌다
그뒤 국군이 왔다 무거운 철모 쓴 국군이 왔다
우물물 검사한 뒤
우물물 실컷 마시고 싸움터로 떠났다
김종원
일인에게 개
만인에게 이리
사람 속에
이런 사람이 없다면
어찌 개도 이리도
사람 속에 있겠나
계엄민사부장 김종원
이승만의 개
신성모의 개였다
거창 양민학살 사건은
아무리 군이 숨겨도 하나하나 드러났다
국회조사단이
임시수도 부산에서
거창군 신원면으로 갔다
김종원의 머리가 빨리 돌아갔다
국군을
지리산 빨치산으로 위장시켜
따발총 위협사격을 하자
조사단은
나 살려라 도망갔다
그뒤 그는 작전명령 위반죄로
군사재판 3년 선고였는데
두어달 뒤
신성모 장관이 형집행 정지로 내보냈다
개주인 이승만은
그를 군인 대신
경찰관으로 특채하였다
경찰국장
치안국장
다시 만인의 이리였다
어떤 교훈도 진리도 그에게는 낙서일 뿐
오직 권력의 급소에 늘어붙는 것
그리하여 권력을 실컷 빨아먹는 것만이
그의 개 같은 하루하루
어떤 대동청년단
무서웠다
그들 일당이 나타나면
마을 하나
쑥대밭
닭을 잡아갔다
돼지도 잡아갔다
쌀독도 퍼내었다
빨갱이 잡는다면
모든 무법이 법이었다
처녀도
무엇도 겁탈했다
면사무소 사무도 좌우했다
면장은 허수아비
대동청년단과
지서 순경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
북한 출신 서북청년단은
주로 사람을 죽이고
남한 출신 대동청년단은
주로 약탈을 한다
이런 반공으로 한 정권이 길어져갔다
아 그들 후손의 시대 어서 오라
간첩시절
나그네 잠자리 내주지 않으면
가문의 수치였다
나그네 밥상 차리는데
찬밥 차리면
몇 대 가문의 수치였다
60년 전까지만 해도
50년 전까지만 해도
나라 빼앗긴 시절에도
전쟁중에도
옛 인심의 흔적 그대로여서
지팡이 하나
갈아입을 옷 여벌 가지고 떠난 길
먹는 일
자는 일은
가는 데마다 그 마을이 따뜻이 베풀었다
사흘 머물러
병들면 약까지 달여주었다
옛날 네덜란드 표류선 생존자 하멜 일행이
제주도와 전라도 거쳐
서울에 호송되어 오는 동안
이 세상 어는 나라 기독교 신자들로부터
받은 대우보다
더 따뜻한 대우를 받았다
인간이
인간을 만나는 대우였다
지친 걸음걸음
조선의 백성들 인심 순후함이
어찌 다른 나라와 견주어지랴 하고 감탄해마지 않았다
몇백년 뒤
이런 손님대접이
전쟁 이후 사라져버렸다
아니 손님박대뿐이 아니라
손님을 고발하기 시작했다
수상한 자 간첩이다
떠도는 자 간첩이다
이른 아침 바닷가 배회하는 자
아무나 보고
실실 웃는 자 다 간첩이다
신고하라
신고하여 팔자 고치는 보상금 타라
이제 이 나라 산야에 나그네가 없어졌다
제주도 중산간마을
1948년 4․3사태가 지나갔다
아직
공포는 남았다
살육도 남았다
적의와 원한 깊은 골짝에 그냥 잠겼다
제주도 인구 3분의 1이 없어졌다
한라산은 구름 속에 있고
저녁 파도는 늘 높았다
한라산 중간산 일대
수복리
갈고개
굴말
인당리 등 일곱 마을
그 마을들
할멈이나 헌 아낙들만 살아남았다
처녀란 처녀 다 없어졌다
서북청년단이 다 망가뜨렸다
남은 아낙들에게
사내 씨가 말랐다
아낙들 의논이 퍼져갔다
그 의논만이 새로운 삶
20리 저쪽 오름 넘어
한 젊은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이 31세
장가 못간 벙어리
그 벙어리 불러다가
씨를 받았다
대낮에도
밤에도
이 마을 아낙 다섯
저 마을 아낙 넷
또 저 마을 아낙 둘
이렇게 날마다
날마다
하루 걸러
밤마다 씨를 받아
아낙들 아이 뱄다
그래서 죽은 남편 성씨의 자식을 낳았다
벙어리는 폭삭 늙어
나무지팡이 짚고 먼 수평선 눈 감고 바라보았다
소위 학도병
중학교 4학년 또는 5학년짜리들
북쪽 인민군 내려올 때
무더기로 불려가
입대한 젊은이들
중학교 4학년 또는 5학년
고등학교 1학년짜리들
1․4후퇴
북이 내려온 때
마구 불려가
입대한 젊은이들
10대 후반 젊은이들
그 풋오얏들
그 풋능금들
그 풋대추들
포항전투에서 죽어갔다
중부전선에서 죽었다
대한민국 수복의 땅 전투가 끝나는 곳 모두 무덤이었다
망우리 묘지
공동묘지도 전쟁은 가만두지 않았다
망우리 공동묘지는
서울의 저승
1950년 9월 30일
그곳조차
싸움터였다
6천개의 무덤들은 엎드려 있고
유엔군과
인민군은
무덤 사이
총탄 빗발치다가
서로 달겨들어
총검으로 찔렀다
전사자의 시체가
무덤 사이
여기저기 널브러졌다
흑인병사
백인병사의 시체
인민군의 시체
벌초하지 않은 풀 깔고 나뒹굴었다
사투 1시간 15분
쌍방 시체 73구
이상
망우리 공동묘지는 다시 묘지로 돌아갔다
인민군
1950년 여름
38선 이남
남쪽에 와 있는 인민군
비행장 야간작업 감독하는 인민군
비행기가 무서워
담배 피우지 않는 인민군
담뱃불이 5킬로미터 저쪽까지 보입네다
16세
17세였다
제 키만한 따발총 메고 있었다
두메산골에서 막 소집된 인민군
순박하다
부끄러움 많다
이런 소년들이 그 엄청난 전쟁에 몇 삼태기씩 쏟아부어 바쳐졌다
상해 현계옥
1941년 상해 공회당 누런 강물이 내다보였다
각국 합동예술제가 열렸다
중국
불란서
독일
영국
소련
일본
장내에는
각국의 국기가 걸렸다
밖에도
각국의 국기가 휘날렸다
오직 나라 잃은 조선만이
조선의 국기
태극기가 없었다
불란서 조계
독립운동가를 따라온
처녀 현계옥이 거기 있었다
예술제 끝날 무렵
순서에도 없이
갑자기 무대에 올라왔다
진행자가 제지할 수 없었다
태극기를 꽂아놓고
가야금 산조를 연주했다
유장했다
간절했다
자진모리 넋을 뺐다
장내가 물 깊이 가라앉았다
박수가 터져나왔다
중국사람 누군가가 울면서 말했다
소저(小姐)께서는
10만 대군의 조선독립군에 버금가는 일을 하였소이다
소저야말로 그대 나라 독립을
세계 각국 사람에게 선포하였소이다
이승태
17세에 체포되었다
지서 폭파계획에 가담했다
지서 건물 일부 파괴했다
도피중에
체포되었다
고문 뒤
예심 유치장 1년이 지났다
미성년자 석방조치가 재가되었다
반성문에 담당형사가
나가면
대일본제국에 충성을 다하겠다고 쓰고
지장 찍으라 했다
나는 조선사람입니다
일본에 충성할 의무가 없습니다
나가면
내 조국에서 일본이 물러갈 때까지
민족해방을 위해 싸우겠습니다
또 소년은 말하였다
아버님은 나 때문에 앉은뱅이가 되셨습니다
나 찾아내라고
아버님께서 눈구덩이에 처박혀
고문을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동상 걸려
다리 하나 못 쓰게 되셨습니다
어찌 내가 일본에 충성을 다하겠습니까
이승태
소년은 청년이 되었다
해방 직후
건국준비위원회 청년부 차장이었다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여운형이 암살당하자
일주일 단식으로 애도했다 그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사랑
나는 부모의 사랑보다
아비의 사랑보다
자식의 사랑보다
더 높은 사랑을 보았도다
1930년 가을
식민지 조국을 해방하기 위해
북만주를 떠돌던 젊은이의 시였다
이름 이익재
나이 27세
이런 시를 남기기엔
아직 이른 나이인지 몰라
그 사람이 전사하자
남만주 독립군 무현 황토산 기슭에 묻었다
나무 비에
이 시도 새겼다
다시 세상은
부모의 사랑으로 돌아갔다
아내와 자식의 사랑으로 돌아갔다
모든 집들은 다른 집들과의 담이 높아갔다
( 2008년 1월 23일, 고은 시인의 「만인보 16」을 읽고 마음에 걸린 시 들을 옮겨 적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