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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물과 꽃들 스크랩 Vincent van Gogh의 아몬드꽃과 자작나무
옥렬 추천 0 조회 149 17.04.14 15:0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Vincent van Gogh. Seashore at Scheveningen. August 1882

 

 

 

Vincent van Gogh. Beach with Figures and Sea with a Ship. August 1882

 

 

 

 

Marc Chagall's 'Blue  Lovers'(1914)

 

   고흐와 샤갈의 그림에서 나를 사로잡은 색감은 푸른색(푸르스름한)과 노란색이다. 우리가 어떤 그림에 멈추는 것은 동일시의 감정을 느껴서일 거다. 소통의 순간이다. 샤갈의 불루는 피카소의 청색시대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생의 고뇌가 물씬 묻어나는 슬픔- 이라기 보다 오히려 밀란 쿤데라가 말한 노발리스적인  푸르스름에 가깝다. "비존재처럼 부드럽고 푸르스름한 죽음"에 가까운 블루다. 독이 빠진 순결한 슬픔이, 또 다른 슬픔을 어루만진다. 슬픔의 지하에 살던 자가 방금 슬픔의 문을 밀고 들어선 자를 어루만지다. 열흘 굶은 사람이 하루 굶은 사람을 어루만진다. 권경인의 시 <슬픔의 힘>이 생각난다. 고흐의 그림에서는 슬픔의 승화가  노란색으로 나타난다. 햇살이 금가루가 되어 쏟아지는 듯 한 황금에 가까운 노란색. 고흐 산문집겸 화집, <아몬드꽃>(생각의나무, 2007) 과 <자작나무>(생각의나무, 2007)을 읽노라니 고흐가 처한 절박한 生이 투명하게 걸러진 그 비의가 문득 궁금해진다. 어떻게 저렇게 빛나는 노란색을 만들 수 있을까? 고흐의 그림엔 생래적인 명랑성이 아니라 모든 것을 통과한 데서 나오는 달관의 명랑성이 보인다. 어떤  길이든  끝까지 자기 길을 간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그 투명한 명랑성은 그 자체로 세상을 다둑이는 힘이 된다. 모든 예술의 궁극은 선인지도 모르는 禪이다. 고흐의 그림은 베토벤의 질박함과 모짜르트의 명랑성이 동시에 존재한다.  농부들의 모습에서 불순물이 걸러진 것들이 지닌 힘이 넘친다. 나도 박차고 일어나 밭갈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고흐는 가슴이 따슨 사람이다. 자기 한으로 송곳을 만들어 세상을 찌르지 않는다. 고통에서 걸러낸 그 명랑성만이 예술의 사회참여, 그 진수를 맛보게 한다. 그림을 그리는 붓이든, 글을 쓰는 붓이든 '붓끝에 악을 녹이는 독이 있어야 그게 참여'라  했던 박경리씨 선생의 <문필가>라는 시가 문득 생각난다.

 

남은 부분은 생략이다 /저 물가, 상사화 숨막히게 져내려도 /한번 건넌 물엔 다시 발을 담그지 않으리라 /널 만나면 너를 잃고 /그를 찾으면 이미 그는 없으니 /십일월에 떠난 자 십일월에 돌아오지 못하리라 /번뇌는 때로 황홀하여서 /아주 가끔 꿈속에서 너를 만난다 /상처로 온통 제 몸 가리고 서 있어도 /속이 아픈 사람들의 따뜻한 웃음 /오래 그리웠다 //산을 오르면서 누구는 영원을 보고 누구는 순간을 보지만 /애써 기다리지 않아도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온다 /사람이 평생을 쏟아부어도 이루지 못한 평화를 /온몸으로 말하는 나무와 풀꽃같이 /그리운 것이 많아도 병들지 않은 /무욕의 정신이여 //그때 너는 말하리라 /고통이라 이름한 지상의 모든 일들은 /해골 속 먼지보다 가볍고 /속세의 안식보다 더한 통속 없으니 /뼈아픈 사랑 없이는 /어떤 하늘도 견뎌낼 수 없다는 것을 /기다리지 않아도 마침내 밤이 오고 /마지막 새소리 떨어져내릴 때 ( 권 경인, <슬픔의 힘> 중에서)

붓 끝에 /악을 녹이는 독이 있어야 /그게 참여다 //붓 끝에 /청풍 부르는 소리 있어야 /그게 참여다 //사랑이 있어야 /눈물이 있어야 /생명 다독거리는 손길 있어야 /그래야 그게 참여다.(박경리, <문필가> 중에서)

 

 

   서른 일곱에 죽은 반 고흐, 1875년부터 1890년까지 고흐는 엄청난 양의 채색화와 데생을 그렸다. 또 그 기간 동안 고흐는 수백 통에 달하는 편지를 쓰는데 대부분은 동생 테오 반 고흐에게 보내진 것들이다. 평생 대중의 몰이해와 가난을 견디면서 정상적인 삶과 광기어린 삶을 오갔던 고흐에게 동생 테오는 단순한 화상 이상의 후원자요 정신적인 공명판과도 같은 존재였다. 고흐는 테오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여동생 빌헬미나 등 가족과 폴 고갱, 에밀 베르나르 같은 동료 화가들에게도 편지를 썼다. 이 편지들은 테오의 아내 요한나에 의해 수집되어 1914년 여러 권의 책으로 발행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예술가 고흐의 천재성과 심오한 관찰력뿐만 아니라 결코 해소될 수 없었던 그의 정서적 불안, 그의 영혼을 끊임없이 괴롭혔던 사무치는 고독감과 곧잘 머리를 쳐들곤 했던 스스로에 대한 의혹을 읽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예술론이 변화되어가는 과정을 따라가는 동안 그의 철저한 작업윤리도 이해할 수 있다. 고흐는 이들 편지 속에 작업 중인 작품의 스케치를 첨부하거나 언젠가 그리고 싶은 그림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포기하는 일을 나는 규칙적으로 할 수 있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시작해서 그 시간을 따라잡으려면 두 배로 노력해야겠지. 아무리 의지가 강할지라도 네가 없었다면 나 역시 포기해야만 했을 거야.(1882년 8월)

결혼이나 아이에 대한 욕구가 점점 사라져가는 걸 느낀단다. 서른다섯의 나이에 이런 식으로 느끼다니 간혹 마음이 쓸쓸해지기도 해. (....) 난 이미 늙고 망가졌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 그러면서도 아직 사랑을 갈구하고 있어 그림에 열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해. 성공하려면 야심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야심이 내겐 우스꽝스럽게만 여겨진단다. (1887년 여름)

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인물화든 풍경화든, 감상적인 작품이 아니라 진지한 슬픔을 담은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단다. (....) 내 작업을 통해 보여주고 싶어. 이 괴짜, 이런 하찮은 존재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이것이 나의 야심이야. 어떤 상황에서도 분노보다는 사랑에, 열정보다는 평화로움에 근거한 야심이지. (1882년 7월 21일)

아틀리에에서 그려지는 이런 이국적인 그림들에는 이제 짜증이 나는구나. 몸을 털고 밖으로 나가 현장에서 그리라고 말하고 싶어! (....) 내가 정말로 배우고 싶은 건 바로 그렇게 현실을 바꾸고, 교정하고, 이탈하며, 부정확한 모습들로 표현하는 거야. 그래서 그것들이 글자 그대로의 진실보다 더 유용한 거짓말 그래, 거짓말이 되기를 바란단다. (1885년 7월) 

내가 그리고 싶은 건 성당보다 사람들의 눈이야. 이들 눈 속에는 성당에 없는 무언가가, 엄숙하고도 위엄이 있는 무언가가 존재하기 때문이지. 불쌍한 거지의 영혼이든 매춘부의 영혼이든, 인간의 영혼이 내가 보기엔 더 흥미로운 대상이야. (1885년 12월 18일)

 

 

 

농부들이 밭을 갈듯 나는 캔버스를 일구고 있단다!

요즈음은 하는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 이런 상태가 이미 오랫동안 계속되었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럴지 몰라. 하지만 상황이 나아질 수도 있겠지. 나로선 그런 기대를 하지도 않고 실제로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말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나아진다면 난 흡족한 마음으로 말하겠지.??결국 그런 거였어! 그러니까 거기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던 거야??라고.
-1880년 7월

무언가를 하지 않는 날은 하루도 없단다. 계속 단련하며 데생이나 습작 하나하나가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야. 그건 마치 길을 따라 걷는 것과 같아. 길 끝에 종탑이 보이지. 하지만 땅이 평평하지 않기 때문에 끝까지 왔다고 생각하는 순간 처음엔 보이지 않았던 끄트머리가 아직 남아 있게 마련이고 그래서 계속 더 걸어가야 하지. 하지만 목적지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어. 그 날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조만간 내 그림도 그 단계에 도달할 거야.
-1883년 10월 29일

내가 그리고 싶은 건 성당보다 사람들의 눈이야. 이들 눈 속에는 성당에 없는 무언가가, 엄숙하고도 위엄이 있는 무언가가 존재하기 때문이지. 불쌍한 거지의 영혼이든 매춘부의 영혼이든, 내가 보기엔 인간의 영혼이 더 흥미로운 대상이야.
-1885년 12월 18일

솔직히 말해 우리는 오직 자신의 그림을 통해서만 말할 수 있단다. 난 그것을 위해 목숨을 걸었고 그것 때문에 반쯤 미쳐버렸지.
-1890년 7월 24일

 

 

 

   <반고흐의 아몬드꽃>,  이 책은 편지 내용뿐만 아니라 편지나 스케치를 복사하거나 최종 완성된 작품을 함께 실어놓아 책장을 넘기고 있노라면 마치 반 고흐가 직접 우리 곁에서 자신의 작품세계를 설명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 자신의 말과 예술이 서로를 조명해주는 것이다. 또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큐레이터로 활동했던 편저자 H. 안나 수의 논평이 고흐의 그림과 편지, 삶을 하나의 맥락에서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이렇게 탄생한 값진 결과물을 통해 우리는 한 천재의 삶과 정신, 예술 속으로 감동적인 여행을 떠나게 된다. 
                                                                                  

 고흐의 눈으로 읽고 고흐의 심장으로 느낀다! 웅장하게 서 있는 도시의 성당보다 가난한 시골 농부의 눈빛을 사랑했던 예술가 빈센트 반 고흐. 인간과 자연에 대한 찬사로, 광기로 치닫는 예술혼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위태롭게 오갔던 그의 초상이 '반 고흐 미술관' 소장 드로잉 및 회화작품 250여 점, 편지 150여 통을 통해 생생하게 밝혀진다.


 

빈센트 반 고흐: 아몬드꽃빈센트 반 고흐, 우리는 왜 그의 작품에 매료되는가?


신화적 가난과 고독 속에서 피워 올린 예술혼, 뚜렷한 학력도 없이 그림에 대한 집념과 초인적인 노력으로 창조해낸 놀라운 미적 세계, 십여 년 만에 수백 점의 명작을 남긴 집중력, 스스로 자신의 귀를 자르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 광기. 반 고흐를 떠올릴 때면 우리는 이내 그를 둘러싼 무수한 수식어들의 미로 속을 헤매게 된다. 그리고 그의 삶과 작품을 날것으로 보고 느끼기도 전에 수많은 평론가들과 추앙자들이 만들어놓은 이미지의 늪에 빠지기 일쑤다.


생전에 이미 전설이 되어 전 세계의 찬사를 받았으며 집을 사기 위해 필요한 건 정물화 한 점뿐이었던 피카소와는 달리, 천재적인 재능을 대가로 고통스러운 운명을 감내해야 했던 반 고흐. 이렇듯 극적인 인물이기에 우리는 그의 삶과 작품에 감동하는 것일까? 그를 둘러싼 모든 수식어들을 걷어내고 인간 반 고흐를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며 베일이 걷힌 그의 삶과 작품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느낄 수 있는가?

그림과 편지로 완벽하게 복원한 반 고흐, 고독한 예술가의 초상 ,  반 고흐는 비범한 재능을 타고난 화가라는, 단순한 이미지에 갇혀 있지 않다. 그는 욕망과 재능, 광기 등이 종합적으로 콜라주된 비극적 예술의 뜨거운 상징이다. 그의 불우한 삶과 기행, 천재적인 재능은 극적인 아우라와 결합되어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화가로 격상시켰다. 하지만 그 화려함을 생전의 반 고흐는 전혀 누릴 수 없었다. 그는 철저한 빈곤과 고독 속에서 자신의 재능을 저주하면서 죽어갔을 뿐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아이러니마저 반 고흐의 예술적 품위를 높이는 질료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반 고흐의 삶은 예술적 광휘가 드리운 삶의 그림자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국내에 소개된 반 고흐의 책은 수없이 많다. 화집과 서간집, 그리고 평전에 이르기까지 대략 70종 정도가 출간됐다. 하지만 그 어떤 책도 반 고흐의 작품세계를 총체적으로 감상하고 해석할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하지 못했다. 도판이 뛰어난 책은 사료로서 참조할 수 있는 텍스트 노출이 부족했고, 텍스트 중심의 책은 작고 조악한 도판을 사용해서 화가로서의 반 고흐에 대한 적극적 감상을 방해했다.

생각의나무가 펴낸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는 그동안 출간된 반 고흐 관련 책이 고스란히 노출한 한계점을 성찰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보완하고 있다. 반 고흐의 매혹적이고 화려한 그림과, 인간으로서 그가 겪은 지독한 우울증과 고뇌가 드러나는 육필 원고를 함께 수록해 보면서도 읽을 수 있는 책, 화집이면서도 산문집인 책으로 가공해낸 것이다. 이 책은 반 고흐의 마지막 15년의 삶과 예술을 그의 작품과 편지로 완벽하게 복원한 책이다. 서툴고 거친 초기 습작부터 1890년 여름 권총자살 직전에 그린 <까마귀가 나는 밀밭>에 이르기까지, '반 고흐 미술관'에서 입수한 250여 점의 드로잉 및 회화작품과, 동생 테오와 고갱 등 동료 화가들에게 보낸 150여 통의 편지는 반 고흐가 바라던 삶과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했던 삶의 간극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반 고흐의 편지와 편지에 언급된 작품들을 연대순으로 함께 배치해 편지가 그림을 설명하고 그림이 편지를 이해하도록 도와 편견 없이 반 고흐의 본모습에 더욱 가까이 다가설 수 있도록 가이드 역할을 한다. 그래서 마치 반 고흐가 직접 자신의 삶과 작품을 설명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고흐는 성직자의 길을 포기하고 그림에 삶과 영혼을 내맡겼던 반 고흐의 천재성과 관찰력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간적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반 고흐의 사유와 예술론이 변화되어가는 과정을 따라가는 동안 그의 꿈과 열정, 농부의 노동과도 같은 그의 철저한 작업윤리를 읽을 수 있으며 동시에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던 고독과 광기, 정서적 불안, 그리고 자신에 대한 의혹을 읽을 수 있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에 실린 250여 점의 드로잉 및 회화작품과, 동생 테오와 고갱 등 동료 화가들에게 보낸 150여 통의 편지는 '반 고흐 미술관'과 계약하여 입수한 것들이다. 그리고 반 고흐가 그린 작품의 색과 질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대형판형에, 종이선택부터 인쇄까지 제작공정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아주 까다로운 색분해를 거친 다음 반복되는 컬러 인쇄 뒤에 본문 코팅 과정을 한 번 더 거쳐 색감이 더욱 돋보인다. 뿐만 아니라 표지를 <아몬드 꽃>과 <가지 친 자작나무> 2종으로 만들어 독자들이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수없이 많은 전 세계의 어떤 고흐 화집과도 충분히 경쟁할 만한 결과물을 통해 독자들은 120여 년 전 네덜란드의 청년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해바라기>의 질감만큼이나 선명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Vincent van Gogh. Self-portrait with Straw Hat. 1887



그림을 감상한다는 것은 한 번의 나의 시선으로 한번은 그림을 그린 반 고흐의 눈으로 보고 반 고흐의 심장으로 느끼면 좋을 듯하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를 읽는 가장 큰 즐거움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혹은 오해했던 반 고흐의 삶과 예술을 그의 눈과 심장으로 보고 느낌으로써 얻게 되는 지식과 감동에 있을 것이다. 반 고흐는 편지에 자신의 그림들이 어떤 의도로 무엇을 어떻게 표현했으며, 어떤 액자에 거는 것이 어울리고, 누가 보았으면 좋겠다는 등 각 작품의 작업과정과 그에 대한 의견을 세세하게 써내려가고 있다.


대표적인 예는 <밤의 카페>이다. 반 고흐의 대표작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름답게만 보는 이 그림은 그가 아를에 머물 때 사람들이 스스로를 망치러 가는 곳, 이곳에 들어서면 미치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곳, 싸구려 술집에서 어둠이 행사하는 세력 등을 표현하기 위해 강렬한 색채를 대조적으로 사용해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또 다른 그의 대표작 <해바라기>에 대해 반 고흐는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스코틀랜드인이나 미국인 애호가가 언젠가는 500프랑에 이 그림을 살 것이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오늘날 그의 작품에 매겨진 경이적인 가치와 비교하면 그의 지난한 생활고 속에 배인 페이소스가 강하게 느껴진다.


 

책표지를 클릭하시면 창을 닫습니다.『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가 그려낸 반 고흐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의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외롭고 가난한 삶 속에서도 꿈을 버리지 않고 열정을 피워냈으며, 성격적 결함과 인간관계의 어려움 속에서 고독과 싸워야 했고, 자연을 사랑하고 노동의 가치를 알았던 반 고흐. 그의 삶과 작품을 점철하는 몇 가지 키워드가 오롯이 담겨 있는 다음의 편지글을 통해 인간 반 고흐의 삶에 겹친 우리의 자화상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테오, 가난하고 고독했던 반 고흐에게 늘 힘이 되어주었던 사람은 다름 아닌 동생 테오 반 고흐였다. 파리에서 화상으로 일했던 그는 반 고흐를 경제적으로 지원했을 뿐만 아니라 형의 삶과 작품세계를 이해하고 공감했으며 그를 파리의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소개해주었다. 1872년부터 반 고흐와 주고받은 편지는 모두 668통에 이르는데 이 편지들은 반 고흐를 이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자료다. 그는 반 고흐가 죽은 지 6개월 후에 사망했으며 오베르의 한 무덤에 형과 함께 안치되었다.

고독, 고독은 반 고흐를 죽을 때까지 따라다녔던 고통스러운 현실이었다. 부모와의 불화, 사랑의 실패, 괴벽스런 성격, 가난, 동생에 대한 미안함, 동료 화가들의 무시와 냉대는 결국 그를 정신발작에 이르게 할 정도로 고독한 삶으로 내몰았다. 그림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열정을 불사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림 때문에 좌절하기도 한다. 어쩌면 사물의 본질을 표현하고자 한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 그를 더욱 고독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열정, 반 고흐가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한 기간은 십여 년밖에 되지 않지만 그가 남긴 회화작품만 해도 900여 점에 이른다. 테오에게 보낸 수많은 편지들 가운데는 화가의 길을 운명으로 여긴 반 고흐의 열정이 깊이 느껴지는 글들이 많다. 주변 사람들의 냉소와 미치광이 취급에 개의치 않고 작품에 몰두했던 열정과 언젠가는 인정받으리라는 확신이 없었다면 그는 늘 자신을 괴롭히던 고독과 불안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자유, 반 고흐가 그림을 정식으로 배운 건 파리 미술 아카데미에서의 수업 단 2개월뿐이었다. 그림을 체계적으로 배우려 했지만 틀에 찍어내는 듯한 수업방식을 참아낼 수는 없었다. 그는 다른 화가들과 함께 일하고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기법과 지식을 배웠으며, 미술관을 찾아가 대가들의 작품을 보는 일을 즐겼다. 인상주의, 점묘법, 일본판화의 영향을 받을 때마다 그의 작품은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의 작품은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특유의 색채와 질감으로 승화될 수 있었다.

인간애 , 한때 목사가 되고자 했던 반 고흐는 신학공부에 어려움을 느껴 결국 포기하지만 자연만큼이나 인간을 사랑한 박애주의적 성향은 그의 삶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다. 그는 1878년 벨기에의 탄광지역인 보리나주에서 머물며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 아이들에게 성경을 읽어주고 그들을 돕는다. 또 광부들의 삶을 스케치하는 데 열중한다. 이후 밀레의 영향을 받아 그린 농부들의 모습 속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 깊고 진하게 배어 있다. 

 

 

 

 

 


 

 

 

 

 

시간이 어찌나 잘 가는지요. 어머니께서도 요즘 저처럼 테오와 제수씨 생각을 많이 하실거라 생각해요. 무사히 분만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찌나 기쁘던지요. 윌이 도와주러 가있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사실 전 태어난 조카가 아버지 이름을 따르기를 무척 원했답니다. 요즘 아버지 생각을 많이 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이미 제 이름을 땄다고 하니, 그 애를 위해 침실에 걸 수 있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아몬드 꽃이 만발한 커다란 나뭇가지 그림이랍니다.

 

 

- 1890년 2월 15일

 

 

 

 

 

 

 


 

 

 

 

 

 

 Vincent van Gogh. Sower with Setting Sun (After Millet). June 1888.

 

 

 

 

 Vincent van Gogh. Harvest Landscape. June 1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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