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ncent van Gogh. Seashore at Scheveningen. August 1882
Vincent van Gogh. Beach with Figures and Sea with a Ship. August 1882
Marc Chagall's 'Blue Lovers'(1914)
고흐와 샤갈의 그림에서 나를 사로잡은 색감은 푸른색(푸르스름한)과 노란색이다. 우리가 어떤 그림에 멈추는 것은 동일시의 감정을 느껴서일 거다. 소통의 순간이다. 샤갈의 불루는 피카소의 청색시대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생의 고뇌가 물씬 묻어나는 슬픔- 이라기 보다 오히려 밀란 쿤데라가 말한 노발리스적인 푸르스름에 가깝다. "비존재처럼 부드럽고 푸르스름한 죽음"에 가까운 블루다. 독이 빠진 순결한 슬픔이, 또 다른 슬픔을 어루만진다. 슬픔의 지하에 살던 자가 방금 슬픔의 문을 밀고 들어선 자를 어루만지다. 열흘 굶은 사람이 하루 굶은 사람을 어루만진다. 권경인의 시 <슬픔의 힘>이 생각난다. 고흐의 그림에서는 슬픔의 승화가 노란색으로 나타난다. 햇살이 금가루가 되어 쏟아지는 듯 한 황금에 가까운 노란색. 고흐 산문집겸 화집, <아몬드꽃>(생각의나무, 2007) 과 <자작나무>(생각의나무, 2007)을 읽노라니 고흐가 처한 절박한 生이 투명하게 걸러진 그 비의가 문득 궁금해진다. 어떻게 저렇게 빛나는 노란색을 만들 수 있을까? 고흐의 그림엔 생래적인 명랑성이 아니라 모든 것을 통과한 데서 나오는 달관의 명랑성이 보인다. 어떤 길이든 끝까지 자기 길을 간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그 투명한 명랑성은 그 자체로 세상을 다둑이는 힘이 된다. 모든 예술의 궁극은 선인지도 모르는 禪이다. 고흐의 그림은 베토벤의 질박함과 모짜르트의 명랑성이 동시에 존재한다. 농부들의 모습에서 불순물이 걸러진 것들이 지닌 힘이 넘친다. 나도 박차고 일어나 밭갈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고흐는 가슴이 따슨 사람이다. 자기 한으로 송곳을 만들어 세상을 찌르지 않는다. 고통에서 걸러낸 그 명랑성만이 예술의 사회참여, 그 진수를 맛보게 한다. 그림을 그리는 붓이든, 글을 쓰는 붓이든 '붓끝에 악을 녹이는 독이 있어야 그게 참여'라 했던 박경리씨 선생의 <문필가>라는 시가 문득 생각난다.
남은 부분은 생략이다 /저 물가, 상사화 숨막히게 져내려도 /한번 건넌 물엔 다시 발을 담그지 않으리라 /널 만나면 너를 잃고 /그를 찾으면 이미 그는 없으니 /십일월에 떠난 자 십일월에 돌아오지 못하리라 /번뇌는 때로 황홀하여서 /아주 가끔 꿈속에서 너를 만난다 /상처로 온통 제 몸 가리고 서 있어도 /속이 아픈 사람들의 따뜻한 웃음 /오래 그리웠다 //산을 오르면서 누구는 영원을 보고 누구는 순간을 보지만 /애써 기다리지 않아도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온다 /사람이 평생을 쏟아부어도 이루지 못한 평화를 /온몸으로 말하는 나무와 풀꽃같이 /그리운 것이 많아도 병들지 않은 /무욕의 정신이여 //그때 너는 말하리라 /고통이라 이름한 지상의 모든 일들은 /해골 속 먼지보다 가볍고 /속세의 안식보다 더한 통속 없으니 /뼈아픈 사랑 없이는 /어떤 하늘도 견뎌낼 수 없다는 것을 /기다리지 않아도 마침내 밤이 오고 /마지막 새소리 떨어져내릴 때 ( 권 경인, <슬픔의 힘> 중에서)
서른 일곱에 죽은 반 고흐, 1875년부터 1890년까지 고흐는 엄청난 양의 채색화와 데생을 그렸다. 또 그 기간 동안 고흐는 수백 통에 달하는 편지를 쓰는데 대부분은 동생 테오 반 고흐에게 보내진 것들이다. 평생 대중의 몰이해와 가난을 견디면서 정상적인 삶과 광기어린 삶을 오갔던 고흐에게 동생 테오는 단순한 화상 이상의 후원자요 정신적인 공명판과도 같은 존재였다. 고흐는 테오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여동생 빌헬미나 등 가족과 폴 고갱, 에밀 베르나르 같은 동료 화가들에게도 편지를 썼다. 이 편지들은 테오의 아내 요한나에 의해 수집되어 1914년 여러 권의 책으로 발행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예술가 고흐의 천재성과 심오한 관찰력뿐만 아니라 결코 해소될 수 없었던 그의 정서적 불안, 그의 영혼을 끊임없이 괴롭혔던 사무치는 고독감과 곧잘 머리를 쳐들곤 했던 스스로에 대한 의혹을 읽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예술론이 변화되어가는 과정을 따라가는 동안 그의 철저한 작업윤리도 이해할 수 있다. 고흐는 이들 편지 속에 작업 중인 작품의 스케치를 첨부하거나 언젠가 그리고 싶은 그림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포기하는 일을 나는 규칙적으로 할 수 있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시작해서 그 시간을 따라잡으려면 두 배로 노력해야겠지. 아무리 의지가 강할지라도 네가 없었다면 나 역시 포기해야만 했을 거야.(1882년 8월)
내가 그리고 싶은 건 성당보다 사람들의 눈이야. 이들 눈 속에는 성당에 없는 무언가가, 엄숙하고도 위엄이 있는 무언가가 존재하기 때문이지. 불쌍한 거지의 영혼이든 매춘부의 영혼이든, 인간의 영혼이 내가 보기엔 더 흥미로운 대상이야. (1885년 12월 18일)
<반고흐의 아몬드꽃>, 이 책은 편지 내용뿐만 아니라 편지나 스케치를 복사하거나 최종 완성된 작품을 함께 실어놓아 책장을 넘기고 있노라면 마치 반 고흐가 직접 우리 곁에서 자신의 작품세계를 설명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 자신의 말과 예술이 서로를 조명해주는 것이다. 또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큐레이터로 활동했던 편저자 H. 안나 수의 논평이 고흐의 그림과 편지, 삶을 하나의 맥락에서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이렇게 탄생한 값진 결과물을 통해 우리는 한 천재의 삶과 정신, 예술 속으로 감동적인 여행을 떠나게 된다. 고흐의 눈으로 읽고 고흐의 심장으로 느낀다! 웅장하게 서 있는 도시의 성당보다 가난한 시골 농부의 눈빛을 사랑했던 예술가 빈센트 반 고흐. 인간과 자연에 대한 찬사로, 광기로 치닫는 예술혼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위태롭게 오갔던 그의 초상이 '반 고흐 미술관' 소장 드로잉 및 회화작품 250여 점, 편지 150여 통을 통해 생생하게 밝혀진다.
고흐는 성직자의 길을 포기하고 그림에 삶과 영혼을 내맡겼던 반 고흐의 천재성과 관찰력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간적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반 고흐의 사유와 예술론이 변화되어가는 과정을 따라가는 동안 그의 꿈과 열정, 농부의 노동과도 같은 그의 철저한 작업윤리를 읽을 수 있으며 동시에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던 고독과 광기, 정서적 불안, 그리고 자신에 대한 의혹을 읽을 수 있다.
Vincent van Gogh. Self-portrait with Straw Hat. 1887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가 그려낸 반 고흐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의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외롭고 가난한 삶 속에서도 꿈을 버리지 않고 열정을 피워냈으며, 성격적 결함과 인간관계의 어려움 속에서 고독과 싸워야 했고, 자연을 사랑하고 노동의 가치를 알았던 반 고흐. 그의 삶과 작품을 점철하는 몇 가지 키워드가 오롯이 담겨 있는 다음의 편지글을 통해 인간 반 고흐의 삶에 겹친 우리의 자화상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열정, 반 고흐가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한 기간은 십여 년밖에 되지 않지만 그가 남긴 회화작품만 해도 900여 점에 이른다. 테오에게 보낸 수많은 편지들 가운데는 화가의 길을 운명으로 여긴 반 고흐의 열정이 깊이 느껴지는 글들이 많다. 주변 사람들의 냉소와 미치광이 취급에 개의치 않고 작품에 몰두했던 열정과 언젠가는 인정받으리라는 확신이 없었다면 그는 늘 자신을 괴롭히던 고독과 불안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자유, 반 고흐가 그림을 정식으로 배운 건 파리 미술 아카데미에서의 수업 단 2개월뿐이었다. 그림을 체계적으로 배우려 했지만 틀에 찍어내는 듯한 수업방식을 참아낼 수는 없었다. 그는 다른 화가들과 함께 일하고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기법과 지식을 배웠으며, 미술관을 찾아가 대가들의 작품을 보는 일을 즐겼다. 인상주의, 점묘법, 일본판화의 영향을 받을 때마다 그의 작품은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의 작품은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특유의 색채와 질감으로 승화될 수 있었다.
시간이 어찌나 잘 가는지요. 어머니께서도 요즘 저처럼 테오와 제수씨 생각을 많이 하실거라 생각해요. 무사히 분만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찌나 기쁘던지요. 윌이 도와주러 가있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사실 전 태어난 조카가 아버지 이름을 따르기를 무척 원했답니다. 요즘 아버지 생각을 많이 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이미 제 이름을 땄다고 하니, 그 애를 위해 침실에 걸 수 있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아몬드 꽃이 만발한 커다란 나뭇가지 그림이랍니다.
- 1890년 2월 15일
Vincent van Gogh. Sower with Setting Sun (After Millet). June 1888.
Vincent van Gogh. Harvest Landscape. June 1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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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세계를 읽어주는 나뭇잎숨결 원문보기 글쓴이: 나뭇잎숨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