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념무상 몰입 로대가의 내면 엿보여 80평생을 무대에 바친 피 아니스트에게 피아노라는 악기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러시아태생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의 협연(18일)과 독주회 (20일)를 지켜본 한 피아니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돌아가 쉴 영혼 의 집, 편안한 무덤이 아닐까요." 일상적인 무대조명을 거부하고 엷은 핀라이트와 스탠드불만 밝힌 채 리히터가 마주앉은 피아노는 검은 무덤이었다.
틀에 매이지않는 자재로운 해석, 한음 한음 혼을 실어 무념무상의 몰입으로 펼쳐보인 달관의 연주는 영혼의 안식처같은 평화로움이었다.
리히터는 정명훈이 지휘한 바스티유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서 모차르트의 협주곡 6번, 9번 을 연주했다. 노대가의 모차르트는 여유롭고 천진난만했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느릿한 템포로 과장없는 피아노를 선보였다. 정명훈의 바스티유사운드도 리히터의 천의무봉한 건반과 틈새없이 잘 어울렸다.
독주회 당일 리히터가 개봉한 프로그램은 프로 코피에프의 소나타 제2번 작품14 , 스크리아빈의 소나타 제7번 , 라벨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춤과 모음곡 거울 등 인상파 계열을 중심으로 한 현대작품들. 하나같이 음의 이미지와 뉘앙스가 쌓아가는 조형미를 중시하는 곡들로, 전성기때의 격렬한 서정 대신 가라앉고 침잠하는 만년의 내면을 엿보게했다. 회화적으로 어둡게 세팅된 무대조명은 고독한 몰입을 받쳐주면서 객석의 집중도도 높여주었다. 다만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리히터 특유의 고집은 악보를 넘기는 대목에서 청중의 집중을 흐트려, 무대와 객석의 정서적 조응을 의도한 만큼 끌어내지는 못했다는 느낌이다. 리히터의 무대는 잘치고 못치고를 떠난 자리였다. 자기세계에 푹 빠진 별 하나를 보는 감동 감탄만 해도 모자라는 음악회 정말 음악회다운 음악회를 봤다 . 연주장을 찾은 많은 음악팬들은 이렇게 털어놓았다.하나 둘 별이 사라져가는 시대, 저별도 곧 스러지겠지 하는 안타까움과 거장의 내밀한 음악혼을 만난 기쁨이 범벅된 채 연주장은 오래도록 기립박수의 물결로 출렁댔다.
김용운기자 -조선일보
첫댓글 아~! 리히터... 그 자리에 함께 했었다면...